여름밤 / 정호승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어느 여름날 / 덕송 홍성기
싱그러움 가득 담은 어느 여름날
동네 마실길엔 호두가 익어가고
가지와 호박들이 대롱대롱
여기도 꽃
저기도 꽃 꽃
꽃잔치 벌어진 우리 마을 골목길
채송화, 봉선화, 참나리, 원추리
능소화, 접시꽃, 무궁화, 온갖 채소들
서로 먼저 달려와 반갑다고 인사하는 데
한산한 골목길엔 인적이 없다
삼백 년 된 느티나무 그늘 만들고
쉬어가라 붙잡지만 찾는 이 없어
스산하고 쓸쓸하고 답답한 가슴
아파트 화단 샛노랗게 익은 살구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 개 주워드니
"농약 살포" 못먹게 한다
어느 여름날
내가 사는 동네 마실길
꽃들은 천국인데 정 많던 사람들
어디로 가고 쓸쓸함만 더한다.
여름날의 친구 / 이세복
콩밭 매는 아낙이 안쓰러워
눈치 빠른 샛바람 찾아와
가슴골 달래준다
뙤약볕이 절정을 이루면
끈적임 씻어낸 냉수에 뒤질세라
영혼 없는 바람개비가
오수(午睡)를 초대한다
깨꽃이 떨어질 때쯤
참깨 털어내는 어머니를 위해
알맹이와 부스러기까지
깔끔이 분리하는 바람개비
어찌나 농부들 맘 알아주는지
둘도 없는 여름날의 친구다
벌써
고소한 향이 진동하듯
소금꽃 피는데도 흥겹다.
여름날의 어린 추억 / 장희주
마당 끝 개울물 따라
맨발로 뛰어다니던 여름날
돌 위에 앉아
찰방찰방 물장구치며 웃던 얼굴
파란 하늘에 물든 웃음소리
시간도 흐르는 줄 모르고
해가 저문 줄도 몰랐던 시절
개울물은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어느새 저만치 흘러가고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손을 담그고 있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들린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소리
작은 물소리
그 속에 숨은
어린 나의 해맑던 웃음소리
여름날의 환상 / 박명숙
우물에 수박 한 덩이
여름을 꽁꽁
동여매고 둥둥 떠 있고
구슬땀을 식힐 등목으로
서늘한 순간이 있던 시절
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멍석 깔고 누워
별똥별 떨어질 때
누워있는 풀숲에 개똥벌레가
수놓던 여름밤
아름다운 추억들이 반짝인다
어떤 시절은 추억이
환상의 꿈처럼 찾아오고
어떤 시절은 추억이
꿈도 꿀 수 없는 전설로 남겨진다.
추억을 먹고사는 우리가
전설 중의 전설
그 전설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 사라지는 것들의 풍경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어느 여름날 / 마석 서정희
한 풀듯
울부짖던
오란비 거둬가니
이글댄 태양빛에
온누리 뽀송하네
초록숲 마주 한 하늘
회포 푸는 한나절
병아리
비약대는
한낮은 다 지나고
어둑한 앞마당에
솔바람 스며드네
한 계절 가고 오는 데
남은 추억 한 자락
손가락
사이사이
모래알 빠져나가듯
올망졸망 품 안의 것
날개 달고 날아가네
이 여름 순간 영원히
화폭 위에 남기려
여름날의 추억 / 유화 서순임
무더운 여름밤
집 앞 정자나무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 소리
모깃소리 또한 윙윙 거리며
잠 못 이루어었지
밤하늘에 총총 거리는 별들과 은하수
별똥별 떨어지고
마루 끝 토방 아래 모깃불 피어놓고
한 여름밤의 모기들 쫒으며
연기을 날린다
오손도손 가족들의 대화 속에
정이 흐르던 밤
곱게 머리를 땋은 댕기머리 울 언니
빨간 봉숭아꽃 한 줌 따다가
나의 열 손가락 손톱에 올려
피마자 잎 싸매주고
스르르 잠이 들었던 어린 시절
여름날의 휴식 / 백승운
여름이 쏟아내는 열기 사이
나뭇잎 틈새로 파고든 가을
어느새 풀벌레 소리에
말랑말랑 익어가고 있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옷에 스며들어 풀 먹인 모시처럼
딱딱하게 말라 뻑뻑해져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지친 육체 위에는
하얀 포말의 소금 알갱이가
염전이 되어 짭조름하게
절여져 갈 때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공휴일처럼 찾아온 징검다리 연휴
거센 계곡물에 벌거벗겨진
여름 일상을 풍덩 담그면
높고 파란 하늘이 보이고
산 위에 걸터앉은 하얀 구름이
꽃밭처럼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피고 지고
시린 물보라 사이
다슬기가 반딧불이를 소환하여
깨끗하게 씻긴 여름 일상을
데리고 하늘로 간다.
여름날의 꿈처럼 / 오민아
햇빛이 눈부신 날
멍 때린 상념 속에
스며든 그리움에
피어난 아지랑이
여우비
지나간 자리
무지개 꽃 피었네
비 그친 오솔길에
아련한 흙냄새는
한여름 소낙비로
젖어든 꿈이여라
입가에
번지는 미소
꿈의 나래 펼친다
초여름 / 박목월
가지마다 새잎 돋아
초록 세상 여는 달
보리밭 이삭들은
누렇게 익어가고
산도들도 싱그러운
풀향기 풍기는데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노네.
쓸쓸한 여름 / 나태주
챙이 넓은 여름 모자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빛깔이 새하얀 걸로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오동꽃은 피었다 지고
개구리 울음소리 땅 속으로 다 자지러 들고
그대 만나지도 못한 채
또 다시 여름은 와서
나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소
집을 지키며 앓고 있소
첫댓글 흐린날씨를 보이는 목요일날 아침시간에 음악소리와.
좋은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전국 날씨는 지역에 따라서 소낙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습니다 말복(末伏)을 하루 앞두고 조석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줌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