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제7회 춘란배에서 중국이 7명이 8강에 진출한 가운데 유일하게 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이창호 9단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배불리 진수성찬을 먹었는데 목에 가시가 하나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중국바둑은 이와 유사한 상황이 몇 차례 있었다. 제5회 춘란배와 제7회 삼성화재배에서 중국기사가 8강에 6명이 올라갔지만 아무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악몽이 있다. 이 때문에 춘란배 8강에 입성한 7명의 중국기사들은 이창호라는 존재가 아주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누가 먼저 이창호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놓고 중국 랭킹 1위인 구리 9단이 첫 번째 타자로 나서게 됐다.

구리 9단은 중국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8강전에 단 1명의 외국기사가 올라왔다. 난 외국선수와 대결을 벌이기를 바랬고 그 외국선수가 마침 이창호라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만약 내가 이창호 9단을 이긴다면 중국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그리고 농심배에서 나는 이창호 9단과 만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 아쉬움을 채울 수 있어 좋다. 이창호와 같은 고수와 겨룰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의 기력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창호 9단도 “농심배에서 구리와 만날 가능성도 있었는데 비껴갔다. 춘란배에서 다시 구리 9단과 겨루게 되어 꽤 기대되는 한판이 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춘란배는 마치 중국 3명, 한국 1명이 남은 상황에서 농심배를 치르는 꼴이 됐다. 이창호 9단은 우승을 위해서 8강전에서 구리 9단을 상대로 첫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 다음 준결승전과 결승전 두 고비가 남아 있다.
이창호 9단과 구리 9단의 역대 전적은 4승 2패로 이창호 9단이 다소 앞서 있다. 이에 대해 구리 9단은 “기록을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기록은 단지 과거에 대한 설명일 뿐이며 바둑은 한 판 한 판 두어 나가는 것이다. 만약 내 컨디션이 좋은 상황이면 이창호를 이길 가능성이 50%가 넘을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국이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이지만 만약 구리 9단이 이창호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엔 웃음을 띄면서 “7:1 상황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좀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요”라며 중국의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
춘란배의 7:1 결과를 가지고 중국바둑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또다른 질문에는 “10년 정도를 놓고 그동안의 결과만 바라본다면 한국이 절대 우세라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이들은 최근 몇 년은 중국기사들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국과 거의 대등했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약간 지나치게 앞서나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구리 9단은 정규적인 세계대회 이외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금년 10월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세계두뇌스포츠대회라고 밝히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에 열리는 두뇌스포츠 올림픽은 우리가 개최국인 만큼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출전명단이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아마 나도 출전할 것 같다. 6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는 바둑에서 많은 금메달을 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창호 시대를 이어 세계 1인자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시대를 만들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엔 “만약 없다면 틀림없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프로기사로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생각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 이다. 또한 기사들 사이의 경쟁은 이창호 세대보다 더욱 치열해 졌다. 모두의 실력차이가 비슷해 졌다. 이창호와 같은 천하무적의 시대를 열기란 아주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정한 목표는 적어도 세계1인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며, 이창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