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하나 못 받은 공직생활 (1)
기나긴 공직 생활 중 훈장은 받지 못 했지만 표창은 다음과 같이 비교적 많이 받았다.
1955. 8. 15 강원도지사 표창
1958, 1, 6 강원도지사 표차
1963. 12. 15 강원도지사 표창
1966. 12. 5 강원도지사 표창
1970. 12. 31 강원도지사 표창
1973. 5, 14 강원도지사 표창
1963. 10. 12 내무부장관 표창
1975. 6. 27 내무부장관 표창
1976. 4. 15 농수산부장관 표창
1996. 2. 28 경제기획원장관 표창
1963. 7. 27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표창
1963. 12. 17 대통령 표창
1976. 12. 31 대통령 표창
1969. 1. 1 근정포장 (대통령)
1985. 10. 26 새마을포장 (대통령)
1976. 11. 30 第2回 東谷賞 受賞
내무행정 분야에 종사하면서 도지사 표창과 내무부장관 표창 그리고 대통령 표창 등은 받을 수 있지만,
나는 그 외에 이색적인 표창 세 개를 받은 바 있다.
그 첫째가 농수산부장관 표창이다.
당시 나는 양양군수로 있으면서 새마을운동 추진에 온 정력을 기울였으나, 그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께
새마을성공사례 보고를 두 번이나 드렸고, 내가 지도한 서면 수리는 새마을사업 성공사례 보고 후보
마을로 선정은 되었으나 한 군에서 세 번은 할 수 없다고 탈락되었다가, 시대가 바뀌어 후임인 정준시
군수가 최규하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무부에서는 표창을 주지 않았는데 엉뚱
하게고 농수산부장관 표창이 내게 주어졌던 것이다. 식량증산이나 농산 분야에 그 어떤 특이한 공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표창이 주어졌으니 이색적인 표창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의 표창이다. 5‧16 군사혁명 정부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을 설립하고 고급
공무원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했다.
그리하여 고등반 과정 지방행정반 제1기 교육이 실시되었는데 이에는 각시도의 국과장과 시장 군수들이
그 대상이고, 우리 도에서는 김순권 보건사화국장, 이동진 속초시장, 김재기 평창군수 등이 입교를 했으며,
당시 무보직으로 있던 나도 흰밥에 뉘처럼 끼어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전국 각시도에서 차출된 83명의 인원이 교육을 받았으며 전원이 기숙사 합숙 교육이었다.
3 개월 정도의 교육을 마치고 1963년 7월 27일 수료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교육원장의 표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하나밖에 없는 표창을 내가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가 왜 표창을 받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시험을 잘 본 것도 아니고, 수강생의 자치활동에 참여한 것도 아닌데 표창을 받았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 번째의 이색적인 표창은 경제기획원장관 표창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나는 퇴직 공무원들과 의론해서 ‘춘천행우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그 이사장이
되었다. 그런지 얼마 후 신용협동조합 중앙회에서 정기총회가 있어서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시상이 있었는데 최고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기획원장관 표창을 내가 받았다.
당시 신용협동조합은 전국에 500 여개가 있었으며, 자산 규모도 400억대 500억대 정도로서 일반 시중
은행의 지점 못지않았다.
거기 비해 우리 행우신협은 설립한지 2년도 되지 않아 자산은 10억원 남짓했으며, 점포도 없이 춘천시
지방행정정동우회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미미한 조합이다.
그런데 그 이사장인 내가 최고상을 받았으니 이 또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양양군수로 있을 때에 새마을운동 추진에 진력하여 새마을성공사례 보고를 세 번이나 하는 전무
후무의 업적을 세운 바 있다.
이것은 농수산부장관,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그리고 경제기획원장관으로부터 무슨 공로 무슨 이유로
표창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을 감안하면, 훈장을 받을 만도 하건만, 훈장은 고사하고 도지사의 표창도
받지 못하였으니, 강원도의 시상 대상자 선정의 잣대는 지나치게 엄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훈장 하나 못 받은 공직생활 ( 2 )
전항에서 나는 무슨 공로 무슨 공적에 의하여 표창을 받았는지 모를 정도의 이색적인 표창을 받은 바 있다고
술회하였거니와, 5·16 군사혁명 후 또다시 이색적인 표창을 받았다.
그것은
1963년 10월 12일 내무부장관 표창
1963년 12월 15일 강원도지사 표창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 표창
등 3개월 동안에 세 개의 표창을 연이어 받은 일이다.
1963년은 5․16 군사 혁명이 난지 1년이 지난 해이고, 도지사는 현역 육군소장인 이 용 지사이다.
당시 나는 재정과장으로 있었다.
재정과의 업무는 예산, 지방세, 지적 등 3 개인데, 그중 예산 업무는 예산을 편성해서 내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으면 되는 하나의 요식 행위이고, 지방세의 업무는 지방세법에 의해서 시군에서 지방세를
징수하는 것을 재정과에서는 감독만 하는 것이며, 지적 업무는 종래 세무서에서 관장하던 것을 내무
행정 분야에 이관해서 시군에서 다루는 것으로, 이들 세 업무를 아무리 충실히 수행한다 하더라도
도지사 표창은 모를까 내무부장관 표창이나 대통령령 표창은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무더기로 표창을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사자인 나는 모르지만, 윗분이 보기에 그만한 공로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세 개의 표창을 무더기로
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세 개의 표창을 무더기로 줄 게 아니라 그보다 상위의 포상인 훈장을 주는 게 합리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표창복은 있어도, 훈장을 받는 훈장복(勳章福)은 없는 모양이다.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지금은 공직생활하면서 별다른 징계가 없으면 30년이상 퇴직자에겐 옥조근정 훈장이 수여 되는데 그 당시엔
그런 제도가 없었나 봅니다. 저도 정년 퇴직당시 옥조근정훈장. 행정자치부장관표창.경찰청장표창.등 3개를
한꺼번에 받고 퇴직했습니다.종욱 아벗님 같이 훌륭하신분은 무궁화 대훈장(훈장의 최상급)정도 수여받으셨
어야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 글귀를 읽어 보신 지인께서.
더 값진 건강이라는 훈장을 받았다는 위로(?)의 말씀이 있었다네요...
오늘도 약속 모임에 나가시는 건강하신 모습이 활기차시다.
어르신의 글속에 마음의그릇 크기름 가늠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댓가를 못받앗을시엔 상당히 자기 중심적인데 어르신은 모든걸 긍정적으로
받아드리시니 존경받아 맞땅하신분이죠. 또한 마음이 건강하시니까 신체도 건강하시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