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꿈이 있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정진하다 보면
제일 힘든 것이 수마를 극복하는 일이다.
오죽하 면 '잘 수(睡)' 자에 '마귀 마(魔)'를 붙였을까.
해인사에서는 일년에 두 번 결제 기간 중에.
강원 학인은 물론 종무소 소임자까지
사찰 운영에 꼭 필요한 인원과 환자를 제외하고
선방 큰방에서 용맹 정진에 참석을 해야 했다.
이 기간에는 백련암에 계시던
성철 큰스님도 가끔 내려외서
큰방을 둘러보며 격려를 하곤 하셨다.
해인사 용맹 정진은 규칙 또한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일단 정진에 임한 대중은 입선 죽비 후
삼십 분 이상 좌복을 비우면 무조건 걸망을 싸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인례스님이 따로 있어 잠깐 쉬는 시간에
어디로 사라졌다가 돌아오지 않는스남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런 상황과 정진에 익숙하지 않은 학인들
이 수마를 이기지 못해 갖가지 해프닝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
선방 스님들이야 늘 하는 정진이니
'프로' 답게 꽃꽃하게 않아 있는 모습이지만,
제대로 기초도 배우지 못한 학인들은 정진은 뒷전이고
거의 졸음과의 전쟁을 하는
그야말로 참선'이 아닌 잠선'을 하는 것이다
정진을 시작하고 하루 이틀은
나름대로 기를 쓰며 정진을 하는 모습들 이나.
사흘을 넘기고부터는 이 수마 때문에 아주 애를 먹는다.
앉아서 졸다가
뒤로 꽈당 넘어지는 스님,
방선 죽비를 쳐도
듣지 못하고 계속 졸고 있는 스님,
졸고 있다가 경책 죽비를
어깨에 대도 졸지 않았다며 버티는 스님,
정진 중에 아예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드러누워
좌복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며 심지어 잠꼬대까지 하는 스님.
예불을 하는데 가사가 아닌
좌복을 어깨에 두르며 펴려고 애쓰는 스님.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다가 그대로 앉아 조는 스님도 있다.
또 졸고 있는 사이에 업성이 드러나
전생이나 출가 전에 했던 동작들을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스님들도 가끔 있다.
우리가 '한의사'로 부르는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정진하다 졸면서
한의원에서 하는 그 순서대로 동작을 하곤 했다.
먼저 처방전을 적는 시늉을 하고.
다음은 약 담을 종이를 나란히 깔고.
그다음에 한약을 고루고루 분배해서 담는 동작까지,
흡사 진짜 한의원에서
약을 짓는 듯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장군죽비를 어깨에 메고 경책을 돌다가
그 스님 앞에만 가면 어찌도 저렇게 똑같이
재현할 수 있을까 하면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수마란 놈은 우리의 잠재된
본성까지도 드러나게 만드는 수행자의 무서운 적인 것이다.
학인 시절 지족암에 주석하고 계시던
일타 큰스님을 친견하려 간적 이 있었다.
마침
참선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서장을 배우고 있던 터라
지리산 토굴 시절의 용맹 정진이 떠오르면서,
선방 좌복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엉덩이가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스님께서는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서
정진중에 가장 힘든 것이 수마를 극복하는 일이라 하셨다.
그리고
다음과같 은 게송을 일러주셨다
야유몽자불입 하고 구무설자당주 하라."
夜有夢者不入 無舌者當住口
----밤에 꿈이 있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고,
입속에 혀가 없는 자만 마땅히 머물라는 말씀이셨다.
수행자가
꿈이 있다는 것은 번뇌 망상이 들끓고 있다는 증거다.
오매불망 화두를 들되 자면서까지도
화두를 챙겨야하 는 '몽중일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자가
말이 많으면 그것 또한 화두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입속에 혀가 없는 듯이 말을 적게 하고
늘 내면을 관조해야만 비로소 수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타 스님께서 해주신
법문은 이후 참선 공부의 큰 지침이 되었다.
이곳 무문관은 오로지 혼자 수행하는 곳이다 보니.
자칫하면 안일과 타성에 젖어
수마와 친구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혼자 독방에 간혀 있으니
'구무설자 당주'는 자연히 될 것인데.
'야유몽자불입'의 경지는 아직 먼 것같다
옛날 고승들은 혼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면서 좌선하였다는 기록이 많다
혼침에 빠지면 의식이 몽롱하여 정신 없고
주인 없는 좌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경허 스님은 수마를 극복하기 위해
목에 칼을 받쳐놓고 정진을 하셨다고 했다.
나도 흉내나 내볼까 하고 과도를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이 방에서는 과일을 깍아 먹을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
걸망 속을 뒤져보니 원형으로 된 지압봉이 보였다.
지름이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인데
마치 수반의 꽃꽃이 봉처럼
바늘 같은 침이 많이 꽃혀 있는 것이다.
평소 지압용으로 가지고 다니다가
선방에 갈 때면 졸음 방지용으로 머리 위에 올려놓고 정진하곤 했었다.
대중 선방에서
혼침이 극심할 때 머리 위에 올려놓으면
지압 효과로 머리가 시원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졸다가 떨어지면 그 소리에 대중들이 놀라니까
떨어뜨리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 수마 극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해태와 혼침. 즉 정신적 해이와
육체적 졸음에 대한 극복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상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육신에 대한 사무치는 무상감.
사대가 텅 비어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무상감.
이 육신에 대한 무상한 마음이 가득 사무치면
절로 마음이 긴장이 되면서 화두가 순일하곤 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살 것처럼 허덕이지만,
죽음은 언제 나를 방문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저승사자가 나를 데리러 와도
한 치의 머뭇거림이나 후회함이 없이
자신 있게 따라갈 수 있겠느나는 것이다.
그리하면 어찌 촌음을 방일하겠는가.
어느 날 부처님께서
수행하다 졸고 있는 목갈라나(목련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졸리운가? 목갈라나여."
"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목갈라나여, 어떤 생각을 하다가
혼침이 그대를 덮쳤든지 간에
그 생각에 더 이상 주의를 팔지 말아야 하며.
그 생각에 자주 머물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렇게 하면 혼침이 사라질 수 있느니라"
혼침, 이것은
부처님 당시부터 모든 수행자들을 괴롭히는 장애였다
오죽하면 선종의 초조이신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을 하실 때,
하도 졸리니까
눈꺼풀을 아예 잘라버렸다고 할까
전설이긴 하지만
그 눈꺼풀이 떨어진 자리에 차나무가 돋아났다고 한다.
수행자라면 그만큼 이 수마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한다
새벽노을이 참 좋다.
앓고 난 뒤 이렇게 새벽노을을 보니 감화가 새롭다.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길게 내보냈다.
'알 수 없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7.18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