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회는 왜 하는가?
-우리시대 시인들 봄맞이 시낭송회하든 날-
(1)
한국사람 미국 뉴욕에 가면 장님처럼 길 찾기가 어렵듯, 내가
서울종로 3가 지하철 출구가 어딘지 약도 준비 없이 나섰다가
이국땅에 첫 발 내딛듯 허둥지둥 하다가 일단 밖으로 나와서 사방
살펴보니 반가운 경찰파출소가 눈에 띄어 들어갔더니
일요일 인데 칠팔 명의 경찰관이 한가하게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떻게 왔느냐” 물어 나는 길을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약도를 찾아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게로 다가온 친절하고 상냥하고 생기발랄한 여자경찰이
컴퓨터 앞 의자로 안내해주고 다음카페를 열어 준다. 나는
독수리타법으로 쳐서 약도를 찾아내어 여기라고 했더니
여자경찰이 벽에 붙어있는 큰 지도 속의 위치를 콕 찍어 가리켰다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밖을 나오자 뒤따라 나와 더욱 친절하게
“저쪽 보이는 사거리 옆입니다.” 라고 했다 내게
군부독재시절엔 경찰파출소가 원수 같아 외면하고
지례 죄지은 듯 두렵고 보기 싫어 뒷골목으로 피해 다녔지만
김대중 대통령 이후 나는 길을 잘 모르면 무조건 찾아 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선입견이 생기고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백골단’ 부활...5공식 진압으로 회귀하는 건 아닐까
유인촌 문화 장관이 실명 거론하며 공기업임직원 ‘사퇴협박’하고
‘저격수’ 총대 메는 낌새가 심상치 않은데
행여나 앞으로 우리시대시인들이 쓴 시가 불온하다면서
예전처럼 마녀사냥하려고 덤벼들지는 않을까 의뭉스럽다
어쩌면 폐기처분 직전에 불씨처럼 되살아난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칼날을 세우고 있잖은가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고
걷다보니 7번 출구다, 분명 이 근처에 있을 건데 찾지 못하면
어디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로 해장국이라도 먹으며 물어 볼까
배회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였다
결국 이렇게 쉽게 찾게 되었다(2008년3월16일 낮 12시경)
(2)
수원에 살며 이번 행사에 총지배인격인 여걸 유시인과
경기도에서 온 음악담당 연자방아 시인,
카운터 일을 맡은 새신랑 간사 시인, 노총각 김시인
주방장 윤시인은 돼지족발을 썰고, 모두들 먼저 와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상태로 오후에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뭣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배가 고프다
역시 젊은 새신랑시인이 인터넷으로 중국집을 찾아
짬뽕과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일일주점명분으로 찾아온
손님들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일찍 오시다니
언제나 존경스럽고 별칭이 영원한 청년이시고
오직 통일시 쓰기에 여생을 바치고 계신 아흔 한 살
이기형 시인이 백발을 휘날리며 예언자처럼 일찍 오셨다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 지주이시고, 동지 같고, 스승 같고
아버지 같으신 노시인께서 앉아있는 자리가 더없이 크게 보이고
더욱 든든하고 넉넉한데 푸짐한 족발 한 접시(1만5천원) 시키시고
나를 마주 앉혀 놓고 함께 먹자, 처음 먹어보는 족발 맛이 좋다고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반가운 박일소 시인이 왔고
내가 30대 초반에 농민교육 받을 때 전주에서 처음 만났던
김효사 시인은 고향이 경북 고령이지만 서울 사는지 20년 넘고
2년 전 딸 시집보낼 때 자작시를 써 직접 ‘축시’로 낭독한 열정은
늦가을 들국화 향기 같은 체취를 풍기는 시인이다
또 발걸음도 가볍게 찾아오신 한사모(한겨레사랑모임)의 노재우
전 회장님도 오셨다, 아내는 오래전에 여의도의 큰 교회 전도사로
있다가 퇴직했고, 사위가 목사, 아들 온가족이 독실한 신자인데
스스로 무신론자 가장으로 이 시대 가장 멋있는 휴머니스트다
또 한사모 부회장 이남동님은 영등포 살고 아이디가 ‘철물사장’
이서철 선생님은 팔순 넘고 수원에 살며 한겨레창간독자다
같은 독자로 독립문 근처에서 여행사를 하는 노총각 ‘씨유’도 왔다
김효사 시인이 소개시켜준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상임의장’
박석률 선생도 내게 명함을 건네주어 뜻 깊은 만남이다
이적 목사와 강화도의 최자웅 신부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민통선 막걸리 통 들고 지하철 옮겨 타고 오느라 고생도 많았겠지만
가난한 시인들 일일주점을 위한 노력을 하느님이 잊지 않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리라, 멀리 청주서도 김창규 목사가
늦기 전에 부지런히 달려 왔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3)
4시부터 시낭송이 시작 되었다
사회는 수력발전소근무하며 우리시대시인들 사무국장 채상근 시인
그리고 최자웅, 김창규 두 공동대표 인사말씀으로 시작 되었고
이기형 노시인께서 축사로 우리시대시인들이야말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강조하시고 청년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과장도 축소도 아닌 있는 그대로 칭찬을 하셨다
14명의 우리시대 시인들 시소식지 ‘창간호’가 횃불처럼 떠올랐다
앞으로 어떠한 반향을 일으키고 주목받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장담컨대 시류에 편성하는 아류 짓은 하지 않으리라
저마다 자신 있고, 개성이 뚜렷한 자작시들을 낭독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어떤 시전문지에 추천 받거나
당선작품으로 등단한 경력도 없이 어떻게 동참하게 됐다
그래서 부족한 나의 자작시 ‘내가 대통령이라면’을 읽느니
차라리 애송시 ‘해연은 날아온다’(이기형)를 낭송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낭송 했다
이제 이적 시인의 말마따나 이번 ‘창간호’를 통하여 나도
명실공이 시인들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나야말로 문학소년, 문학청년 시절도 거치지 못했고
돌연변이처럼 늦깎이로 뛰어들은 불나방이 된 걸까
십 수 년 전엔가 청주의 김 시인이 내게 말하기를
시집 2백 권을 읽어라 하여 동기부여가 됐고 힘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 시집 2백 권을 읽지 못한 것 같고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창작교실’을 읽어 본 것이 시공부가 됐다
누구나 한글만 쓸 줄 알면 ‘시창작교실’ 백번만 읽고
연습하면 시를 쓸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돈 없는 젊은이가 시인된답시고 비싼 등록금 내고
전국에 흔해빠진 대학문창과 진학하는 20대 청년들에게
우선 좋은 책 읽고, 많은 시적경험을 하라고 권고 하노라
시인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인생을 진실하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시를 잘 쓰는 시인이라 할지라도 기교나 부리고
예전의 친일파시인의 제자 되어 아류 행위나 하고
청풍명월만 읊조리고 ‘한반도대운하 음모’는 그저 모르는 척
질타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시인은 자연파괴범 동조자 아닐까
시 한 편 써주고 분에 넘치는 원고료 받아먹고 입 다물고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시나 일간지에 게재되게 하는 걸
나는 경멸하지 않을 수 없어, 좋은 시를 애송하고 싶은데
이해 못하고 어려운 시는 도저히 암송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제 나는 당당히 ‘우리시대시인들’의 동지가 되었기에
봄맞이 난장 시낭송회를 영원히 기억하며 즐거워하리라
누구나 땡감을 먹어봐야 얼마큼 떫은지 알 수 있듯이
시도 직접 써봐야 시인의 입장을 알고 행복도 느낄 수 있으리라
(4)
이렇게 시낭송회가 끝나고 이어진
<여왕코끼리의 힘>(조명 시집. 민음사) 출판기념 행사는
감동적이었다, 시인에게 한 권의 처녀시집이 태어난다는 것은
보석 같은 언어로 만든 아름다운 생명의 숨소리를 듣는 거다
내가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시인을 아내로 만나 공주처럼 받들고 사는 것 아닐까
시인 아내 또한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섬길지니
나는 저세상에 가서는 반드시 시인 아내나 애인을 만나리라
섭섭하게도 처녀시집을 10권만 가져왔다니 내 차지는 없겠고
다음 기회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오면 읽어 볼 수 있겠지
그 기회가 열흘 후가 될지, 한 달 후가 될지,
일 년 후가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몹시 가난한 자는
십년 후, 백년 후에도 <여왕코끼리의 힘>을 접할 기회는 없으리라
조명 시인을 내가 처음 만난 인상은 지난해 12월29일 마포의
‘민들레영토’에서 열린 민통선아동 통일시창작낭송회 참석하고
뒤풀이 시간에 생맥주집 앞자리에서 본 한 송이 백합화였다
그러나 두 번째 되는 날 엉뚱하게도 노란 산수유 꽃처럼 보였다
뜻 깊은 출판기념을 베풀어줘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조명시인이
최자웅 신부의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는 합창이 신묘하다
어쩜 그토록 조화로운 한목소리를 내는 악기 같았을까
천생연분으로 느껴져 언제 또 두 분의 화음을 들어 볼 수 있을까
(5)
우리시대시인들 시낭송회 모든 행사를 마감하고
손님들도 떠나고, 이적 시인이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저 남해바다 낭만적인 도시 삼천포에서 해조처럼 날아온
미모의 소나무 시인과 악수 한번 못하고 해어졌을지 몰라
오늘 난 내 몸을 사랑하고 혹사시키지 말자는 각오로 열심히
독특한 민통선 밀주와 서울막걸리를 맘껏 마셨고
맛있는 돼지족발과 꼬리, 과일안주를 부지런히도 먹었다
오늘 참가 시인 모두 찾아온 손님들 접대하느라 애썼고
느낀 감동도 봄나물 풋풋한 향기처럼 상큼했으리라
모두들 너무나 수고 했고, 우리시대시인들의 앞날이 장대하리라
민족통일 되는 그날까지
(너무 길게 쓴 걸까요. 죄송해요. 짧게 쓸 기술이 없어서요. 이렇게 쓰기도 인내력이 필요하고, 읽는데도 인내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나는 요즘 KBS2 TV의 낭독의 발견 이란 프로그램에 우리 문학을 살려 달라고 호소아닌 호소를 하고 있답니다 졸작 이지만 나의 시도 올려놓고 낭독을 해달라고 기다립니다 만 감감 무소식 입니다 현재 방영되는 유일한 문학 프로그램입니다
댓글 주신 님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이시 낭송회 때나 어디서든 만나 뵐 기회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