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사
백제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태봉사는 심묘련화보살이 3대
독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기도를 하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아미타삼존불을 발견하고 그자리에 지금의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원래는 태봉산(胎峰山) 동쪽 기슭에 방치되었던 것으로서 어린아이들의 귀와 손등을 파손시켜 형상을 잃어 가는것을 제공 박상래스님께서 옯겨 전각을 짖고 석불의 파손 부분을 보수하고 이곳에 태봉사(胎峰寺)를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절을 태봉사(胎峰寺)라고 한것은 절이 있는 산이름이 태봉산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태봉산은 전설에 의하면 마한(馬韓)의 기준왕(基準王)이 아들셋을 얻었는데 그아들의 태를 묻었기에 태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또한 전설에 의하며 기준왕이 세 아들을 얻기위하여 이 석불에 기원을 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아들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이곳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있다.
태봉사 대웅전에 모셔진 이 불상은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 광배(광배)에 3구의 석불을 돋을새김한것이다.
사각형의 대좌(臺座)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둥글로 원만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고 규격화되어 단정한 인상을 풍긴다.
태봉사 안내석
태봉사 입구
태봉사 부도
태봉사 해태상
태봉사 대웅전
1982년에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늘려 지었으며 가공석의 높은 기단 위에 있다. 건물 구조는 초익공 형태에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안에는 백제시대 삼존불상과 함께 근래에 만든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좌상, 소불상 2체, 동자상 2체와 석가여래도․지장보살도․관음보살도․신중도 등의 탱화를 봉안했다.
태봉사 원응료
태봉사 범종각
태봉사 범종
태봉사 목어
태봉사 삼존석불
유형문화재 제12호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태봉사는 심묘련보살이 3대독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기도를 하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아미타삼존불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태봉사 극락전에 모셔진 이 불상은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 광배(光背)에 3구의 석불을 돋을 새김한 것이다.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둥글고 원만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고 규격화되어 단정한 인상을 풍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 처리에서 형식적인 면이 보이며, 무릎을 덮어내린 자락은 대좌까지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 비해 빈약한 체구는 어깨와 손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는데, 왼손은 내려 배에 대고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대고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의 보관을 쓰고 합장한 보살입상은 본존과 비슷한 얼굴에 체구는 날씬한 편으로 관음보살로 생각되며, 동자승 형태의 오른쪽 보살상은 손에서 보이는 세부표현의 투박성 외에는 역시 날씬한 모습으로 나한상이라기 보다는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삼존불(三尊佛)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하는 아미타삼존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아들을 점지하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지금도 득남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대웅전내의 지장보살상
대웅전내의 삼존불
대웅전 십우도 벽화
태봉사 삼성각
삼성각내의 칠성탱
태봉사 오층석탑
태봉사 쌍사자석등
태봉사 수조
태봉사 지장전
태봉사 찾아가는 길
미륵사지에서 함열 쪽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삼기 농공단지에 이르게 된다.
이 곳 연동리 사거리에서 망성 가는 718번지 지방도로를 따라 0.7㎞ 정도 가면 길 왼쪽에 태봉사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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