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빼어난 경관에 조상이 물려준 유적까지 갖춘 금오산(`14.7.12)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48 14.07.24 04: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오산(金烏山, 977m)

 

산행일 : ‘14. 7. 12()

소재지 : 경북 구미시 남통동과 칠곡군 북삼읍, 그리고 김천시 남면의 경계

산행코스 : 금오동천 주차장우측 능선금오산(현월봉)약사암마애보살입상오행석탑습지금오산성안내판금오동천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칼날 같은 가파른 절벽(絶壁)이 마치 병풍(屛風)을 두른 듯한 빼어난 산세(山勢)는 물론이고, 약사암(藥師庵)과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 : 보물 제490), 도선굴, 금오산성(金烏山城) 등 조상들이 물려준 유적(遺跡)들을 갖추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다. 때문에 산 주변에 관광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관광명승지(觀光名勝地)로 느껴질 정도이다. 꼭 산행이 아니더라도 가족들끼리 한번쯤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금오산은 국내에 여러 곳이 있다. 먼저 경남으로 눈을 돌리면 밀양의 금오산(766m)과 하동의 금오산(875m) 등 두 곳이나 있다. 그리고 향일암으로 더 잘 알려진 전남 여수의 금오산(320m) 말고도 충남 예산군에 또 하나의 금오산(234m)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곳 구미에 있는 금오산이 가장 빼어나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금오동천 주차장(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중부내륙고속도로 남김천 I.C에서 내려온 뒤 우회전하여 4번 국도를 탄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효성실버요양원조금 못미처에서 국도를 빠져나와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길 왼편에 두메산골(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이라는 음식점이 보인다. 이 음식점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 도로(금오동천길)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오동천(金烏洞天)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의 위 도로에서 오른편 산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금오산도립공원안내도가 커다랗게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 역시 도립공원답구나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등산로 정비가 잘되어 있는 것이다. 널따란 길가에는 각종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까지 세워 놓았다. 어린이들이 자연학습탐방로로 이용해도 충분할 정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분쯤 지나면 첫 번째 이정표(금오산정상 주등산로/ 금오산정상 급경사)가 나온다. 이정표는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금오산 정상으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알려주고 있다. 오늘의 산행은 원점회귀 산행, 오른편의 급경사(急傾斜)코스를 따라 올랐다가 내려올 때에 왼편 길로 내려올 계획이다. 조망(眺望)이나 암릉에서의 스릴(thrill) 등을 감안할 때 능선은 내려올 때보다는 올라갈 때가 제맛이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왜 이정표에다 급경사라고 적어 놓았는지를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르막길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길가에 가득 찬 소나무들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들이 내뿜는 은은한 솔향이 코끝을 스치는데, 그 솔향 속에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그득할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 때문에 무겁던 머리가 어느새 맑아져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름의 연속이다. 잠깐 숨을 죽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안가 또 다시 가파르게 변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도(高度)를 높여갈수록 조망(眺望)이 트여간다는 점이다. 칠곡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오선들녘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나 조망이 트인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건너편 산자락에 흉물스럽게 파인 채석장(採石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명색이 도립공원(道立公園)인데 산을 찾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저런 시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는 생각해볼 일이다. 갈림길에서 50분 남짓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오르면 오른편으로 길이 나있는데, 이정표가 없어 어디에서 올라오는 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급경사(急傾斜)가 끝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큰 오르내림이 없는 완만(緩慢)한 경사의 산길이 계속된다. 능선에 올라서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삼각점(三角點, triangulation point) 하나가 보인다. 대부분의 삼각점은 산봉우리 위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은 봉우리로 보이지 않아 의아스럽다.

 

 

삼각점에서 10분쯤 더 진행하면 또 다시 전망대(展望臺)를 만나게 된다. 이번의 전망대는 시야(視野)가 좌우로 트인다는 게 아까 능선으로 올라올 때와 다른 점이다. 오른편에는 아까 보았던 오선들녘이 더 넓고 확실하게 펼쳐지는데, 이번에는 굴암사에서 올라오는 암릉구간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왼편으로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고개를 약간만 돌려도 흉물스러운 채석장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평범하게 변한다. 울창한 숲 때문에 조망(眺望)도 열리지 않을뿐더러 순수한 흙길인지라 특별한 볼거리 또한 없다. 숲 얘기가 나왔으니 짚어보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숲이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바뀌어있는 것이다. 어쩌면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바뀐 것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에서 7분쯤 지나면 굴암사 가림길’(이정표 : 금오산 정상 1.5Km/ 굴암사 1.6Km/ 금오동천 1.9Km), 이어서 4분 후에는 소림사 갈림길’(이정표 : 금오산 정상 1.3Km/ 소림사 1.0Km, 굴암사 1.7Km/ 금오동천 2.1Km), 그리고 13분 후에는 '도수령 갈림길‘(이정표 : 금오산 정상 0.8Km/ 도수령 1.5Km, 숭오리 2.4Km/ 금오동천 2.6Km)을 만나게 된다.

 

 

 

 

도수령 갈림길에서 주능선이 시작된다. 주능선을 만나면서 산길은 본격적인 암릉길로 변하는데, 좌우 낭떠러지를 이용해 쌓은 산성의 흔적이 보인다. 어른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로 낮은 것이 돌담 수준인데, 금오산성(山城)이란다. 이어지는 산길은 산성을 따라 나있다. 금오산성은 산의 정상부와 계곡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으로 외성(外城) 길이가 약3,700m, 내성(內城)은 약2,700m에 이르렀다고 한다. 금오산의 암벽(巖壁)이 태반을 차지하는 천연요새(天然要塞)로 북문인 대혜문을 비롯한 남문서문중문 등과 건물터가 남아있다. 고려(高麗) 말기 왜구(倭寇)의 침입 때 주변지역 백성들이 성에 들어와 지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태종10(1401)에 크게 고쳐 쌓았다고 한다. 그 후로도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거치며 국방상의 요충지로 부각되어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계속 고쳐 쌓았다고 전해진다.

 

 

 

 

 

암릉구간을 빠져나와 다시 흙길로 접어든다 싶더니 산길이 잠시 주등산로를 오른편으로 빗겨나간다. 돌무더기로 부르는 게 더 옳을 것 같은 돌탑 한 기가 있는 바위벼랑 위이다. 위로 올라서면 맞은편에 있는 거대한 바위벼랑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 벼랑의 왼편 끄트머리에 보이는 철탑(鐵塔)이 바로 금오산의 정상인 현월봉이고, 벼랑의 오른편 중간쯤에 보이는 전각은 약사암(藥師庵)의 종각(鐘閣)이다.

 

 

 

 

본래의 길로 되돌아와 잠시 걸으면 오른편으로 오솔길 하나가 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1~2분 더 걸으면 또 다른 오솔길이 오른편으로 열린다. 두 길 모두 제대로 된 등산로는 아니지만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금오산 최고 백미(白眉)라는 약사암(藥師庵)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로 들어서서 비탈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돌탑(石塔) 몇 기()가 세워져 있는 바위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이 바위봉은 약사암 방향이 서슬이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약사암의 전경(全景)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제비집처럼 절벽(絶壁)에 매달려 있는 절집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암봉 위에다 올려놓은 종각(鐘閣)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저런 대역사(大役事)를 이루어낸 스님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따름이다.

 

 

 

 

전망대에서 빠져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오른편에 철조망(鐵條網)을 끼고 이어진다. 주한미군(駐韓美軍)의 군용시설(軍用施設)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다. 이를 알리려는 듯 출입은 물론이고 사진촬영이나 기록까지도 안 된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이 자주 눈에 띈다. 철조망을 따라 잠시 걸으면 미군부대 시설이 한눈에 들어오는 헬기장(이정표 : 금오산 정상 0.1Km/ 북삼방향, 효자봉·도수령), 이어서 성안갈림길(이정표 : 성안·칼다봉/ 효자봉·도수령)을 지나면 드디어 금오산의 정상이다.

 

 

금오산의 정상은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원래의 정상은 다른 시설(施設 : 경고문에는 미군시설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다른 글에서 보니 KBS송신탑이란다.)에 빼앗긴 채 정상보다 한참 아래인 철망 옆에 초라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금오산 현월봉(懸月峰)'이라고 적은 큼직한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위풍당당해야할 정상표지석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산줄기인 민주지산과 황학산이 웅장하고, 남서쪽에는 가야산, 그리고 동쪽에는 팔공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흐릿하게 나타날 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10분이 지났다. 참고로 금오산의 정상은 달이 걸린다는 현월봉(懸月峯,976m), 약사여래의 전설이 담긴 약사봉과 보봉으로 이루어 져 있다. 정상 부근이 하늘로 비상 하려는 새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 같기도 하다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또한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 빛 까마귀가 노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과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해서 금오산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해볼 일이다.

 

 

 

정상표지석 아래로 난 길로 잠깐(50m) 내려가면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이라는 어마어마한 현판을 달고 있는 약사암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천년고찰(千年古刹)인 약사암(藥師庵)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 사이, 그러니까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다. 약사암은 신라 눌지왕 때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다. 조선 중기에 사명 유정(四溟 惟政)스님이 금오산성을 축성하면서 중창(重創)했다고 하나, 약사전, 삼성각, 일주문, 종각, 요사 등 현존하는 전각(殿閣)들은 모두 근세(近世)에 들어 세운 것이다. 건물들 중에는 앞 봉우리에 조교(弔橋)를 가설하여 세운 종각(鐘閣)이 특이하다.

 

 

 

 

약사암에 들어서면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과연 어떻게 이렇게 까마득한 암벽(巖壁)에다 절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선계(仙界)에나 있을법한 암자와 하늘다리를 지나 허공에 뜬 듯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은 여느 암자에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아까 지나왔던 바위협곡(峽谷)은 선계로 들어오는 출입문 이었던 모양이다. 절집 마당에 서면 아까 이곳을 보기 위해 올랐던 절벽 위 전망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낙동강의 품에 안긴 구미시와 발아래에 펼쳐지는 금오산 도립공원은 또 하나의 보너스이다. 금오산의 또 다른 이름은 와불산(臥佛山)’이라고 한다. 그런 내력이 있는 산이기에 약사암이나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 같은 걸작품(傑作品)들이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약사암에서 마애보살입상으로 가는 길은 요사채 옆으로 열린다. 요사채로 들어가기 전에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화장실이 나오고 등산로는 화장실의 옆으로 나있다. 산비탈을 옆으로 째며 난 길을 따라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8분 후에는 갈림길(이정표 : 마애보살입상 0.4Km/ 약사암 0.2K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법성사로 내려가는 길이니 마애불(磨崖佛)로 가려면 당연히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갈림길을 지나자마다 수직(垂直)의 높다란 암벽(巖壁)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등산객이 보인다. 석간수(石間水)를 받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다 얼른 쭈그려 앉고 본다. 갈증도 심했지만 석간수라는 소리가 더 구미를 당겼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석간수는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위를 타고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는 생각보다 그 양이 많았고, 그 맛도 또한 일품이었다. 그러나 난 이곳에서 비정한 인심을 보고야 말았다. 첫 번째로 받은 석간수 한 컵(250)을 집사람에게 먼저 권했는데 조금이라도 남겨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내 눈초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닥까지 다 마려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마름은 집사람이 항상 입에다 매달고 다니는 사랑보다 더 강열한 욕망이었던 모양이다.

 

 

석간수를 혼자 다 마셔버린 집사람의 흉을 보면서 10분 정도 걷다보면 제법 너른 공터에 올라서게 된다. 절집이 들어앉아도 충분할 정도의 넓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봉사(普峰寺) 터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변에 널린 기와 파편들과 일선지(一善誌)라는 기록물에서 근거를 했다니 틀림없을 것이다. 마애불은 공터의 뒤편 깎아지른 듯한 자연 암벽의 바위 모서리에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금오산마애보살입상(金烏山磨崖菩薩立像)은 각 부의 조각(彫刻)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그 조성 연대를 10세기 전후의 고려(高麗)시대로 보고 있다. 이 불상의 특징은 절벽의 쑥 내민 바위 면을 깎아 부조로 새겼다는 점이다. 이러한 예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을 정도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5.5m, 입상 높이 4.2m, 대좌 높이 0.5m이다.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이 있지만 마멸 때문에 조식(彫飾)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긴 눈은 가늘게 뜨고 있고,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작고 오뚝한 콧잔등으로 이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장대한 신체에 강한 부조로 조각되었지만 얼굴의 표현이 경직되어 있고, 하반신의 표현이 다소 둔해지는 것이 고려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한다.

 

 

 

마애보살입상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돌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오형돌탑이다. 전망 좋은 암반지대에 수십 기의 돌탑들을 쌓아 놓았다. 그 돌탑들이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기막힌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금오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빼먹지 않고 꼭 들르는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좋은 풍광에다 조망(眺望)까지 뛰어나니 어느 누가 이곳을 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오산은 돌탑이 많기로 유명하다. 수많은 돌탑들이 이곳뿐만 아니고, 아까 올랐던 약사암이 잘 보이던 전망대,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절벽 위 등 금오산의 곳곳에 널려있다시피 할 정도이다. 돌탑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 돌탑들을 손수 쌓으셨다는 분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카메라를 달라신다. 그러면서 우리부부가 서야할 장소를 일일이 지정까지 해 주신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해 주신 그분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본다. 돌탑에 적혀있는 글귀가 마음에 닿아 옮겨본다. < , -라꼬!! 그래요 오늘의 고통은 먼 훗날 추억이 되고 나의 역사가 된다. 오늘의 고통은 지나가는 소나기다>

 

 

 

 

오행돌탑에서 다시 산비탈을 옆으로 째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오늘 산행은 금오산의 정상인 현월봉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셈이다. 오행돌탑을 출발해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너덜지대가 나온다. 산자락에 널린 무수한 돌들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득 금오산에 돌탑들이 많은 이유를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돌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많은 돌탑들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잠시 후에 갈림길(정상·약사암 0.9Km, 성안 0.8Km/ 마애불 0.6Km)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 이정표에 오른편으로 방향표시를 해놓고 오형석탑과 마애불을 거쳐서 약사암과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그 거리는 1.2Km, 참 고마운 사람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정상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표기하지 않은 도립공원사무소 측보다 훨씬 낫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대혜폭포를 거쳐 구미시에 이르게 되니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성안마을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숲길을 따르게 된다. 원시(原始)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숲은 그동안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뿐이 호젓한 산길을 10분쯤 걸으면 습지(이정표 : 성안 0.1Km, 정상/ 폭포 1.8Km/ 마애석불 1.5Km)가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폭포가 나온다고 적혀있는데 이는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서 명금(鳴金)폭포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대혜폭포를 일컫는 말이다. 금오동천으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면 이 폭포라는 말에 헷갈리지 말고 성안마을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금오동천에도 1폭에서 4폭까지 4개의 폭포가 있는데 금오산의 정상부근에 세워진 이정표들에는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곳의 습지(濕地)는 자연습지(自然濕地)라기 보다는 인공습지(人工濕地)로 보인다. 제방(堤防)의 형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옛날 이곳의 이름은 성안마을, 아마 그들이 살아갈 때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 쌓았던 못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탓에 자연습지 못지않은 환경으로 변해있었다. 낮은 키의 풀들이 무성하게 펼쳐진 것이 이국적(異國的)이기까지 한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면 아름다워지게 되기 마련인 모양이다.

 

 

습지의 가장 위쪽(이정표 : 정상·금오동천/ 칼다봉·자연환경연수원/ 폭포 1.9Km) 에 성안마을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옛날에 성안마을이 있었던 곳인 모양이다. 금오산의 해발고도 800m 어림에는 평탄면이 나타난다. 그 평탄면에 성안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제법 많은(40200명 정도) 주민들이 살았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산정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부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 國輿地勝覽)에 나타난 수원(水源)은 못이 3개소에 계곡이 하나이던 것이 선조28(1595) 배설에 의한 수축 때는 97(97)이라 하여 9개소의 우물과 7곳의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인조17(1639)에 이낙(李烙)에 의하여 수축되었을 때의 산성에는 7개의 저수지와 1개의 계곡 그리고 8개소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화전정리사업(火田整理事業)으로 인해 사라졌다가 최근에 다시 마을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성안마을터를 출발하자마자 만나게 되는 울창한 낙엽송 숲이 끝날 즈음에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정상/ 금오동천/ 성안)로 나뉜다. 오른편 금오동천으로 방향을 잡으면 산길은 작은 개울을 건너 이어진다. 길가의 풀들이 길게 자란 것이 이곳도 역시 습지의 생태를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잡초(雜草)와 넝쿨식물에 묻혀있는 성터를 만나게 된다. ‘금오산성 안내판과 이정표(금오동천 2.7Km/ 금오산 정상 0.9Km)이 세워진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금오동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길은 계곡을 따라 나있다. 물론 처음에는 물기 하나 없는 건천(乾川),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수차례에 걸쳐 개울을 가로지르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편치 않은 산길이다. 바닥이 너덜로 되어있는 탓에 내려서는 게 여간 사납지 않기 때문이다. 산길은 꽤 지루하게 이어진다. 구경거리도 없는 산길이 20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던 산길이 물을 만나면서 조금은 나아진다. 비록 미약하지만 물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계곡이 깊어지면서 주변의 풍경도 점차 볼만하게 변해가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금오동천(金烏洞天)에 들어선 모양이다. 금오동천이란 아까 금오산성의 안내판이 있던 곳에서부터 산 아래 칠곡군 숭오리까지의 계곡을 일컫는다. 소문에 의하면 기암괴석(奇巖怪石) 사이로 맑고 깨끗한 물이 사철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른다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풍경을 모여주지 못하고 있다.

 

 

산성터에서 내려선지 40분쯤 되면 의자와 몇 개의 안내판이 세워진 쉼터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산길의 풍경은 확연히 변한다. 벤치(bench) 등 편의시설과 안내판들을 길가 곳곳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자연관찰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쉼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1폭포(瀑布) 갈림길이다. 1폭포는 이정표를 따라 등산로에서 50m정도를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1폭포의 하부에 있는 소()가 선녀탕이다. 이 선녀탕은 용마(龍馬)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仙女)가 목욕을 했던 곳이며, 1폭포는 목욕 중 용마가 사라져 천상으로 오르지 못한 선녀가 옥황상제(玉皇上帝)께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1폭포는 눈물폭포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단다. 또 용마가 물을 마신 곳이 구유소, 몸을 씻은 곳이 용시소이다. 15m정도 되는 높이의 눈물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왜 갑자기 눈물처럼 보이는 것일까? 사실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너무 가늘기 때문이다. 요즘 메마른 장마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금오동천 주차장(원점회귀)

다시 등산로로 되돌아와 하산 길을 재촉하면 또 하나의 이정표가 2·3폭포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준다. 내려가 볼까 말까로 고민하는데 집사람의 고집이 의외로 완강하다. 주어진 하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자는 것이다. 집사람의 의견대로 다시 하산 길을 재촉하면 곧이어 아침에 출발할 때 헤어졌던 급경사로와 만나게 되고, 이어 금오동천주차장에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시간은 총 4시간30분이 걸렸다. 중간에 막걸리를 마시느라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20분 정도를 걸은 셈이다.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는 주차장에서도 5분 정도를 더 내려가는 곳에 주차되어 있다. 식당의 시설을 빌려 점심상을 차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식당 옆 계곡에서 몸을 씻고 평상에 둘러앉아 먹는 백숙은 가히 일미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맛에 난 안전산악회를 자주 찾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