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낮에는 돈을 벌고, 그 번 돈으로 밤에
검정고시 공부하던 시절에 만났던
교우 부부와 강화도여행길에 나섰다.
강화 조양방직 카페.
찾아간 날은 관광객들로 자리를 기다
릴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조양방직은,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인조
직물을 생산했고 강화가 섬유산업으로 널
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곳이다.
일본주택,
건축양식에 한옥의 미를 가미한 건물
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곳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강화 갑부였던 홍재묵.재용 형제가
1933년 최초의 민족 자본으로 설립
하였는데 이는 1936년 서울의 경성
방직보다 3년이 빠르다.
2013년,
TV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조양
방직 사무실이 옛날 국수집으로 나
오며 알려졌다.
지금은,
그 조양방직 공장을 개조하여 빵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대형 카페로
변신하였다.
왼쪽이 우리 부부
지나간,
시절의 장면들이 곳곳에 차려져 파
노라마처럼 향수에 젖는다.
앗!
필자가 태어나기 전, 이승만 대통령
(1954년)이 방문 당시 조양방직 여성
이 일하는 모습이구나.
‘당신의 잠재력과 자존감
긍정의 에너지를 뻥튀기 하라
인생 짧다’
어릴 적,
뻥튀기 장사가 마당에서 ‘뻥이여’
하고 외치면, 놀래 달아나던 기억
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
갖고 있는,
재능을 맘껏 뻥 튀겨야지 숨겨두
고 발휘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당신의
고정관념을
쓸어버리자’
조양방직 카페 벽에 쓰여 진 글귀다.
하긴,
고정관념에 갇혀버리면 창의성이
나올 리 없지.
조양방직 카페 거울속의 나.
‘행복한 가정은
가족계획 실천으로’
한 가정에,
7남매, 8남매 하던 시절,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책은 다 어디가고 지
금은 세계에서 가장 적게 낳는 나라
가 되어 버렸는가.
결혼부부가,
평균 한 명도(0.7명) 안 낳는 시대
에 이르러, 외지 전문가로부터 50년
후 사라질 국가로 전락해 버렸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밖을,
나와 보니 참새들이 찾아와 먹이를
쪼아 먹고 있네.
한 무리의,
참새들은 나무에 둘러 앉아 신기한
듯 관광객들을 내려다보누나.
연산군 유배지.
강화 교동에 조선 10대 군주인 연산
군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강제 폐위되어 유배살이를 하다가 2
달 뒤인 11월 6일 죽음을 맞이한 곳.
圍籬安置위리안치란,
왕족이나 고위관리에 적용된 유배로,
일정한 장소에 죄인을 격리하여 구속
시키는 형태를 말한다.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입구에는 작년 5월
에 오픈한 ‘화개정원’이 새로운 명
소로 떠오르고 있다.
화개산,
스카이워크 전망대는 모노레일을
타도 되지만, 자연을 만끽하면서
올라야 제 맛이다.
풍경은 평화롭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있는 시간이다.
비껴간,
인연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을.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교동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
이,
간절하고 아름다운 50여년 친우
들과 기록에 남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고 세번째가 아내.
황산도 횟집.
싱싱한 회가 입안으로 직항할 생
각에 마음이 설렌다.
자고로,
음식은 먼저 눈과 코로 먹는 것.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맛있는 것은 알리는 게 예의.
풍미 가득.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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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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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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