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千手經)교리해설(敎理解說)♤
*經名 千手經:
이 경은 당나라 무제 때에 서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오신
<가법 달마대사>께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광대원만무애 대비심다라니경
(千手千眼觀世音菩薩 廣大圓滿無碍 大悲心陀羅尼經)을 번역하신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많이 쓰고있는 이 천수경이다.
이밖에도 당나라 지통(智通)이 번역한 천안천비 관세음보살 다라니 신주경
(千眼千臂 觀世音菩薩 陀羅尼 神呪經)이 있고 역시 당나라 스님이신
보데류지가 번역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모다라니신경
(千手千眼 觀世音菩薩 牟陀羅尼身經)등이 있다.
천수(千手):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나타내는 뜻으로 손이 천개라는 말이며,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준말.
경(經):부처님이 설한 교법과 그것을 기록한 불교경전을 총칭하는 말이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입으로 저지른 죄를 맑히는 참된 말);
이 말에는 우리가 염불을 할 때나 또는 부처님에 대한 찬탄이나 소원을
빌 때는 먼저 양치질 같은 것으로 입에서 나는 술, 고기, 악취 등의
더러움도 없애고, 안으로는 입으로 저지른 악담이나 욕설이나 이간질
말이나 헛된 소리 한 것에 대해서 먼저 뉘우치고 앞으로는 그러한 것을
금하겠다는 뜻이다. 비단 염불 할 때 뿐아니라, 개인 상호간에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이렇게 한다면 모든 일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은 당연할 것이요,
그렇지 않고 악구업(惡口業)을 한다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구시화문(口是禍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삼업(三業)이라 하여 죄(業)를 짖는다 하였으니
그 첫째가 구업(口業)이고, 다음이 신업(身業)이라 하여 몸으로 짖고 끝으로
뜻으로 짖는 의업(意業) 즉 마음으로 짖는 삼업(三業)을 조심하고 짖지 않아야
한다.
정(淨): 맑은, 깨끗하게 하는, 어떤 허물이나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깨끗함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청정(淸淨)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구업(口業); 말로써 짓는 짓거리를 한 마디로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업(業)은 좋든 나쁘든 어떤 결과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누구나 이 업(業)이 있는 한 언제까지든지 생사(生死)가 있게 마련이고,
때문에 계속 나고 죽는 윤희(輪廻)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수행 위는 이 업이라는 속박을 완전히 벗어나 자유자재한
해탈인(解脫人)이 되는데 에 있다.
해탈에는 인과(因果)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아름답다느니 추함이니가 없고, 증오도 있을 수 없는,
원만무애(圓滿無碍)한 자재만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불교는 열반을 이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자면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 보다 나은 짓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만히 있는 무위작(無爲作)은 열반(涅槃)과는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나태요, 게으름이며, 열반은 부단한 정진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과(果)이다.
또한 열반만을 얻는다면 소아(小我)의 안락만을 위한 것이요,
남과 나에게 다같이 이익될 행위를 함으로서 열반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승보살(大乘菩薩) 내지 불(佛)이 될 수 있으니 여기에 동입미타(同入彌陀)
대원해(大願海)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업의 종류로는,
허망어(虛妄語): 실답지 않고 참이 아닌 말.
이간어(離間語): 이쪽 저쪽 말을 달리하여 이간시키는 말
추악어(醜惡語): 상스러운 소리나 악한 말.
잡예어(雜穢語): 남을 속이는 말 등이 있다.
진언(眞言): 진실된 말, 말다운 말, 참다운 말, 하등의 허물이 될만한
찌꺼기가 없는 진실된말.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다섯 방위의 안밖으로 있는 모든 신을 안위 시키는 참된 말) :
불교에서는 신을 인정치 않는데, 이 대목에서 신은 육도중생중의
하나인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며, 하늘나라 사람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지도 않는 것으로서, 마땅히 이것도 부처님에게
제도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잡신 따위를 말하며,
이 잡신이 불 보살이나 스님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못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능히 피해와 괴로움 따위를 주므로,
이 천수경에서는 앞부분에 이 진언을 둔 것이다.
즉 귀신을 달래서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이 가니 물러나라”는 뜻이 들어있다 할 수 있다.
오방(五方): 불교에서 사용하는 세계관에서 중심에 수미산이라는
체를 두고 그 산을 중심으로 동은 동불바데, 남은 남염부제,
서는 서구야니, 북을 북울단원, 이라 하여
동, 서, 남, 북, 중앙, 다섯 방위를 말하는 것이다.
내외(內外): 오방이 안과 바깥이니 공간적으로 보아 이 우주 전체를 말함.
안위(安慰): 위로를 해서 편안하도록 해주는 것을 말함.
자고로 귀신은 번잡스럽고 나부되므로 그러치 못하도록 나무라고
타이르며 달래는 것을 말한다.
제신(諸神):모든 신을 말한다.
*개경계(開經偈): (경을 펴는 글귀절)
개경: 부처님께서 본 경을 말씀하시기 전에 그 예비로 말씀하신
서경(序經)에 해당한다.
계(偈): 계라는 원래의 의미는 노래라는 의미가 있다.
경전의 첫부분에나 끝난 부분에 다다라서는 대체적으로 한번쯤 아름답고
묘한 뜻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 그 계에 해당되나 때로는 본문과 관계 없이도
이 계를 읊는 수가 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더없이 깊고 오묘한 법);
불교라는 말의 다른 말이기도 한 불법(佛法)은 그 진리가 정말 깊고
가이없으며 묘하고 묘해서 이 이상에 갈만한 다른 진리나 종교가 없다는 뜻이다.
무상(無上); 위로는 더 이상 없다라는 것이지만 모든 진리 중에 불교의 진리
이상으로 갈만한 것이 없고, 우리가 바라는바 최고의 목표도 이 불교를 알고
실천하는데 에 있으며, 부처님 이상에는 그 어떤 신적 존재나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심심(甚深): 깊고 깊어서 심히 깊다는 말이다.
질적으로 본다면 부처 되기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요,
양적으로 본다면 무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요
경(經), 율(律), 논(論) 삼장(三藏)이니 이 심심 이라는 뜻은
불교가 그만큼 많고, 어렵고 조그만 알아도 행복하며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되므로 이러한 모든 내용을 담아서 심심미묘라고 하는 것이다.
미묘법(微妙法): 미는 불교 논리학에서 말할 때 질량의 최소 단위를 나타냄이니,
일목요연하여 다른 종교와 같이 주입식으로 “이러 이러하니 믿어라”는
식이 아니고 각각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유 설명과 분석이 철두철미하여
꺼칠꺼칠하거나 까실까실한 종교가 아닌 뜻으로 미요,
묘는 이와 같은 불법이 부처님 자신으로 봐서는 다 아시고 증득하신 것이나,
중생으로 봐서는 마치 어떤 신경(神境)을 보고, 듣고, 거기에 젖어드는 것
같아서 묘(妙)라 함이요, 법은 진리라는 다른 말로서 사회에서 갖는 法 에대한
개념과는 다르다,
불교의 법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 法자는 해탈의 내용인 부처님이 설한 교리나 실천 요강 등을
진리로 보고, 이것을 또한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해서 [法]이라고
한 것이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백천 만겁토록 만나기 어려워라);
우리가 흔히 불교 불교 하지만, 실상 이 법을 만나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는 믿게 되는 것도 아무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불교를 알고 실천 한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닌 것임에,
이러한 불법을 이제나마 만나서 믿고 받들게 된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냐는 것이다.
겁(劫):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가장 긴 단위를 겁이라고 한다.
대체로는 년으로 셈할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나타낼 때 겁이라는 말을 쓴다.
이 겁이 얼마나 긴 세월이냐 하면 둘래가 사십 리나 되는 큰 창고 속에 보일 듯
말 듯한 계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그것을 삼년만에 한 알씩 들어내어 모두 없어질
때까지를 일겁이라 한다.
혹은 둘래가 사십리나 되는 큰돌을 하늘나라 사람이 내려와서 무게가 있을 듯
없을 듯한 천의로서 삼년마다 한번씩 스쳐 그 돌덩이가 닳아 없을 때까지의
기간을 일겁 이라고 한다.
또 겁에는 대중소(大中小)가있다. 위에서 말한 일 겁이 소겁이고 팔십리돌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중겁 백이십리 돌이 닳아 없어지는 기간을 일대겁
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 천체계가 형성 되었어 없어지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도
이 겁으로 계산한다.
즉 지구를 두고 말할 것 같으면 이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 이십겁이 걸리고,
일단 형성되어 존속하는 기간이 역시 이십겁 동안이며,
존속 기간을 지나서 부서져가는 기간을 이십겁,
완전히 부서져 버려서 멸공으로 돌아가 또다시 형성될 때까지의 공간이
이십 겁이 걸리는바, 지구가 한번 나서 없어질 때까지는 모두 팔십 겁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고, 이팔십겁을 비로소 일대겁이라고 하는 것이다.
난조우(難遭遇): 만나기 어려운 것을 만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불교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법화경(法華經) 방편품에 나오는 사난(四難)과 일반적으로 일컬어져 오는
사난(四難)이 있다.
법화경에는 첫째 치불난(値佛難)으로 우리가 부처님 살아 생전 때에 태어나서
그 분을 만나게 되는 일이 어렵고, 둘째 설법난(設法難)으로 아무리 부처님
설법을 듣고 싶어도 들으려는 마음과 거기에 응해주실 부처님의 뜻이 인연이
안되면 소용이 없는 일이니 이 인연이 되어 설법하시기가 어렵고,
셋째 문법난(聞法難)은 교법을 능히 듣기가 어렵고,
넷째 신수난(信受難)은 교법을 믿어 받아 지니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상 네 가지는 단순히 사난이라고 하는 편이 낫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네 가지는 첫째 사람되기 어려움이니
이것은 모든 중생 중에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요,
가장 불성에 가까운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 중에서도 남자로 태어나기 어려움이니
이것은 여자보다 남자가 불도를 수행하고 통달하는데에 훨씬 유리한
요건과 근본 조건을 갖추고 있음이요,
셋째에는 남자로 태어나도 다른 종교가 아닌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 일이며,
넷째는 이 불법을 만났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수행생활을 하고 불법을
계승해나가는 스님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난조우에 대한 측면적 설명을 해 보앗어나,
본문의 뜻에는 그저 [만나기 어렵다]라고 해석해 나감이 무난할 것이다.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내 이제 보고 듣고 수지 함을 얻었나니);
불법은 보고 듣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바를 내적으로 관조하여,
보고 실답게 받아서 행동으로 옮겨가는 실천적 종교라는 말이다.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바라옵건대 여래의 참된 뜻 알아 지이다.);
과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그 참된 뜻이 무엇이며,
그 요지가 어떠하며, 무엇을 일러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인지 바로 알기를 바라옵 나이다.
원(願):보통으로는 그저 어떤 것을 바란다.
또는 바라는 상태나 그 희망을 말한다.
일반인들이 가지는 원(願)은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한(恨)을 맺고 살아가거나, 한 많은 생(生)을 마치고 마는 일이 많다.
여기에 반해서 불교의 원(願)은 몇 겁(劫)을 다시 죽고 나더라도
언젠가는 기어코 이루고야 말겠다 는 뜻이 있는 것이다.
해(解):불교는 단지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하고,
또 믿고 안 바를 행동 실천으로 해나가야 한다.
이 세 가지 신(信), 해(解), 행(行)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에 이 해(解)가 있는 것은 다른 종교들과 상이한 점이기도 하다.
어떤 종교에서는 이 우주삼라만상을 누가 만들었다고 해놓고선
그 말이 곧 불변의 진리라고 내세워 무조건 그것을 믿도록 강요하고,
일단 거기에 토대를 두어 그 내용이 옳은 양 여러 가지 이론과 증거를
제시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믿어야 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조건이긴 하지만,
믿는 데에는 그 내용이 믿어질 수 있을 만한 충분한 논리와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누구든지 충분히 알라는 것이다.
믿기만 하고 앎(해:解)이 없다면 공염불을 하는 것과 같고,
알기만 하고 행(行)이 없으면 학자는 될지언정 불교인(佛敎人)은 되지 못한다.
해(解)를 잘못하면 동(東)쪽을 향해 서(西)쪽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이 있을 뿐이고 이는 진리에 대한 죄를 저지르는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여래(如來):(여래십대 발원문 참조)
진실의(眞實義): 뜻과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함이요,
수단과 방법을 배제한 영구 불변하는 실의(實義)를 말한다.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법장을 여는 진언)
법장(法藏):일반적으로 경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전은 그 자체가 수많은 진리를 담고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 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 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손도 천개요 눈도 천개이신 관자재보살님의 넓으시고 크시며
두루 가득하시고 아무런 걸림이 없으신 대비심의 큰 다라니를 청함);
관세음보살님의 능력은 무한장이라는 뜻으로 손도 천개 눈도 천개라는
이름을 가지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들을 구제해 주시는 능력의 발휘는 완전하고 온전하시며,
망설임이 없으시므로 자재(自在)보살이요,
구제해 주시는 방법과 모양은 어느 한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광(廣)이며,
구제해 주시는 폭과 결과가 크시므로 대(大)며,
두루두루 일체 모든 중생을 다 건져 주시므로 원(圓)이요,
조금도 결여되거나 모자라게 구해 주시는 분이 아니므로 만(滿)이요,
구해 주시는 데에는 구하는 자기 자신이나 구함을 받는 중생이나 모두 응당하며,
허물스러울바가 없는 것이므로 무애(無碍)요,
보살이 우리를 구해 주시는 마음은 항상 어머니가 그 아들을 위함같이
걱정스럽고 예스럽게 여기시므로 대비심(大悲心)이시오,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악을 버리시고 큰 최선만을 가지고 계시므로
대다라니(大陀羅尼)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 참조)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범어의 [아박로기데습벌라]를 현장법사는
{관자재보살}이라고 번역했고 구마라습은 [관세음보살]이라고 번역했다.
대비심(大悲心):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려는 마음.
남의 괴로움을 보고 가엽게 여겨서 구제해 주시려는 마음을 비(悲)라 하고,
불보살님의 이 비심(悲心)은 깊고 크시므로 대비(大悲)라고 한다.
혹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을 구제해 주시려는 마음이 관세음보살만큼 당하지
못하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며, 그래서 특히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고 한다.
불보살님이 중생을 건져 주심에는 모두가 중생(衆生)을 괴로움으로부터
이락(利樂)캐 해주심인바, 이것은 보살님의 하실 바 일로서,
대비(大悲)가 아닌 대희심(大喜心) 임직도한데 유독 비(悲)자를 씀은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보살이 중생의 괴로움을 건져 주시는데 에는 자기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소아(小我)나 편애가 아닌 평등애(平等愛)로써
마치 어머니가 여러 아들을 다같이 사랑해주고 그 아들에게 대해서
근심, 걱정, 염려를 해주는 것과 같으므로 悲인 것이다.
구십살을 먹은 노인이 육십살 먹은 자기 아들을 보고서 걱정,
근심을 한다는 것과 같이, 일체 중생이 다같이 부처 되기를 원하시는
것과 같이, 일체 중생이 다같이 부처 되기를 원하시는 불보살은 중생들이
중생의 탈을 벗기 이전에는 아무래도 어린 자식을 키워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을 한시도 놓을 수 없으니 그것이 悲 가 될 수밖에 없는 소치다.
또한 悲는 자비(慈悲)의 준말인바, 기독교의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테스트를 해본 사랑이며, 그 시합에 불합격하므로 써 원죄가 생겨버린 바라면,
불교의 悲는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괴로운 것이며,
그래서 보살은 때로 중생들의 허물을 보시고는 한없이 슬퍼하신다는 것이다.
대비심(大悲心)이야말로 영원한 모성애(母性愛)인 것이요,
관세음 보살님은 바로 중생의 참 어머니이시다.
다라니(陀羅尼): 끝과 양의 한정이 없이, 모든 악한 법(法)을 버리고
한량없이 좋은 법(法)만을 가지는 것을 [다라니]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지혜와 삼매라는 의미가 있어 능히 말을 잊지 않고, 뜻을 분별하며,
우주의 실상에 계합하여 수많은 법문을 보존해서 가진다는 내용이 들며,
진언(眞言)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으므로 이 [다라니]는 번역을 하지 않고,
음(音)그대로 외우는 게 원칙이다.
이것을 번역하지 않는 이유로는 원문이 가지는 전체의 뜻이 해석된 말에
한정되는 웅색을 피하기 위한 것과 밀어(密語)라 하여 다른 이에게
비밀히 하는 뜻이 있다.
누구나 이 다라니를 외우면 한량없는 말을 들어도 잊지 아니하며,
끝없는 이치를 알아서 학해(學解)를 돕고, 모든 허물과 장애를 벗어나서
한량없는 복과 덕을 얻게되는 영험적 효험이 있는 까닭에 [다라니]라고 한다.
범문(梵文)의 짧은 구절을 진언(眞言)이나 주문(呪文)이라고 하는데 에 비해서,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또는 대주(大呪)라고 한다.
이 천수경(千手經) 해설에 있어서도 이 [다라니]는 번역하지 않을 것이므로
다라니의 번역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 두고자 한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천 칠팔백여년전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 왔을 당시
이 때에 들어온 경전은 바로 당시 인도의 문자인 [산스크리트]였든바,
이 인도 말을 중국의 한자말로 번역하는데 에는 오늘날 우리가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보다도 더 어렵고 심혈을 깊이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었든 것이다.
더욱이나 앞에서 말한 [다라니]와 같은 것은 도저히 번역할 수가 없고,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이라고 확신하므로 소이 다섯까지
이유를 들어 번역하지 않았든 것이다.
다섯 가지란 오종불번(五種不飜)의 이름인데,
첫째는 다라니와 같은 것은 지극히 알기 어려운 비밀(秘密)의 뜻이 숨어있고,
이 비밀 중에도 중생이 불도(佛道)를 깨치고자 할 때에 그 중생은 불타의 뜻에
계합한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뜻에 맞추어서 깨달으려 하니
이것은 중생 그 자체에 비밀한 요소가 있어서라고 하는 바
이것을 중생비밀(衆生秘密)이라고 하고, 또한 도를 깨치신 부처님은 아무리 좋고
진리에 합당한 말로서 열반의 즐거움과 기쁨을 중생들에게 일어 주시기는 하나,
그것을 고지 곳대로 중생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 내의(內意)의 뜻은
더더구나 모르니 이는 아무래도 부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알거나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역시 비밀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여래비밀이라고 한다.
둘째 뜻이 너무 많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번역 못하니,
예를 들어 나무(南無)를 의지한다, 귀의한다, 돌아가 의지한다,
돌이켜 기대한다, 자기를 맡겨 버리는 것, 목숨을 바치는 것,
신앙심으로 나를 내맡기는 것 등등으로 아무리 멋있고 잘 번역 해보아도
그냥 나무(南無)하는 것 보다 시원찮은 것과 같다.
셋째 번역 할만한 말이 없기 때문에 번역을 안하는 것으로,
마치 김치를 서양에서 번역하는 것과, 샌드위치를 우리가 번역한 것과 같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요.
넷째 고풍(古風)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서인바,
옛날의 인력거를 <사람을 태우고 사람이 끄는 차>라고 해석하는
어설픔과 같음이니 이런 것은 번역을 아니 함이요.
다섯째는 차라리 번역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 되므로 번역치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연필]을 만년동안이나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연필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만년필}이라고 쓰는 게 좋음과 같은 것이다.
계청(啓請): 읽어서 청해 아뢰옵니다 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여러 진언(眞言)을 외우고 다라니를 읊어서 불보살님네들을 청하여
아뢴다는 말이다.
*계수관음 대비주(稽首觀音 大悲呪):[관세음보살님의 대비주에 머리 조아리니];
관세음 보살님의 대비주인 신묘장구 대다라니에 절한다는 뜻이다.
계수(稽首);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것.
관음(觀音); 관세음보살님의 준말. 평소에 어머니라고 부르다가도 다급할
때는 [엄마]하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그만큼 세상살이가 고달프고도 다급하므로
[관세음보살]을 [관음보살]이라고 줄여서 부르게 되는 것이다.
대비주(大悲呪): 인간이 그 어떤 것을 갈구하고 희망할 때 그 희망을 막는
모든 장애를 없애주고, 대신 보살의 원력에 의해 소원성취와 희망 달성을
해주시므로 대비주라 하며, 본 천수경에 있어서는 천구관음의 주문인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일컫는 것이다.
*원력홍심 상호신(願力弘深 相好身);(원력도 넓고 깊으시며 거룩하시어);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관세음보살님의 얼굴도 잘 생기신 반면에 마음씨도
중생구제의 일념이신 고운 분이시라는 말이다.
원력(願力); 원심(願心)의 뜻은 바라는 바가 마음속에 그치고마는 정도라면,
원력은 바라는 바를 이룰만한 힘과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보살님의 원(願)은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모두다 행복으로 이끌어 주시는
데에 있고, 그것은 마음에만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육바라밀(六波羅密)이라는 방법과 사섭법(四攝法)이라는 수단으로
능히 힘을 발(發)하시므로 원력인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님의 자비심은 크고 가이없어시므로 홍심이시며,
그 행을 하시기에 충분한 신체적 요건을 갖고 계시므로 상호신이신 것이다.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일 천의 장엄하신 손으로 넓이 보호하시며);
많은 중생을 한번에 손 두 개로 제도해 주시기에는 모자람으로,
많은 손을 가지시고 널리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지켜보아 주신다는 말이다.
천비(千臂); 팔이 천개라는 말로써 그만큼 능력자이시라는 뜻이다.
장엄(莊嚴);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며, 훌륭한 공덕을 쌓아서
몸을 장식한다는 말이므로,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충분히
건져 주실만한 위의를 갖고 계심을 뜻한다.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邊觀照):(일천의 밝으신 눈으로 두루 살펴 보아주시고)
천안(千眼):천개의 눈이므로 못보시는바가 없고,
안 보시는 바가 없으신 관세음보살님이시다.
불교에서 말하는 [눈]에 대해서 이 [천千]자가 아닌,
천안(天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불타께서 갖추신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오안(五眼)중의 하나로서 이 천안(天眼)을 가지게 되면
아무리 적은 어떤 사물이라도 볼 수 있다하며,
중생들이 미래에 생사(生死)하는 모양까지도 미리 알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안은 언뜻 생각기엔 믿어지지 않는 점이 없잖으나
실지로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눈을 육안이라고 하는데,
뉴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육안으로 보고,
거기에 [만유인력]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지혜의 눈인 혜안의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오안을 다 갖추신 부처님이시야 말로 아무리
우리가 숨어서 나쁜 짖을 해도 그분은 능히 아시며,
아무리 우리가 멀리서 착한 일을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가까이 에서
보고 다아시는 것이다.
중생이 있는 곳이면 그분의 보살핌은 언제 어디서나 한발 앞서 와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관조(觀照); 지혜로서 사리를 비추어보아 밝게 아는 것.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진실한 말 그 속에 또 비밀한 말씀을 베푸시며)
진실어(眞實語); 입으로 말미암아 저질러지는 모든 허물을 여윈 참된 말.
밀어(密語): 언어로 나타난 말속에 다시 보이지 않는 미묘하고 알기 어려운
말이 있다는 뜻.
이것은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에 그분이 여러사람을 향하여 한입 같은 말로
설법을 하는데에도 그것을 든는 대중들은 모두 제각기 자기 수준과 이해력에
의해서 각각다르게 알아 듣고 이익을 얻는수가 많았다.
또 이 진실어 중에는 그 자체에 신묘(神妙)한 힘이 있어서 비밀한 뜻이 있고,
혹은 보살의 말과 중생의 말과는 비록 같은말, 같은 소리 일지라도 얻고
생각하는 정도가 다르므로 능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의 숨은 의미가 있어므로
비밀한 것이다.
아이를 가져본 어머니와 가져보지 못한 여자가 말하는 모성애(母性愛)는
같은 말이면서도 다른 것과 같은 것이다.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조작 없으신 그 마음에 자비심을 일어키시어)
무위(無爲); 모든 법의 진실체를 말한다.
위는 작의 뜻이므로 무위는 어떤 인연 조작이 없고, 나서, 병들고, 늙어서,
죽는 사상(四相)이 없는 진리를 말한다.
본문에 이 구절이 있는 것은, 불보살의 그 수행덕으로 봐서는 우리 중생들과는
달리 좋거나, 나쁘고, 싫거나, 반가움의 차별상을 이미 끊으셨지만,
우리 모든 중생을 위하여 구제심 비심을 내어 줍시사 하는 뜻이다.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우리들의 온갖 소원을 속히 이뤄지게 하여 주시옵 소서)
*영사멸제 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모든 죄업 남김없이 깨끗하게 씻어 주옵고)
죄업(罪業); 죄와 업은 거의 같은 말이나, 죄는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라면
업(業)은 불가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다.
죄는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은 벌을 받는 것으로 연결되며,
그 벌은 자기 자신이 받거나 아니면 그 후손 들이 받는 것으로 여겨져 오는게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에 반해서 불교의 업은 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계속 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 죄의 대가를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업의 속성은 자기가 짖고 자기가 받은것이며 그 누가 대신받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든 재속에 들은 불씨같이 꼭 숨어있다 자신을 태운다.
이승 저승 어디서든 꼭 자기가 지언 업보는 자기가 받는다 라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하여 꼭자기가 받어며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라는 인과법(因果法)을 꼭 믿어야 할
교훈이다.
그렇지 않고 이 죄업을 면할수 있는 길은 참회하고 하심을길러 업장을 줄이는
방법과 해탈의 큰 방법에 의할 수밖에 없다.
*천룡중성동자호(天龍衆聖同慈護);(하늘과 용과 뭇 성인들이 함께 감싸주시사)
천룡(天龍); 불법을 수호하는 신(神)은 팔부중신이라하여 여덟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천, 용, 야차, 아수라, 가루라,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 이며
천과 용은 그 중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중성(衆聖);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인을 말한다.
*백천삼매돈훈수(百千三昧頓薰修);(백천가지 온갖 삼매 한꺼번에 닦으리다)
삼매(三昧); 온갖 잡되고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서 요동이 없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녕스러운 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삼매를 정(定)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만일 누구든지 진정한 삼매에 들기만하면 곁에서 총소리가 나도 놀래지 않고,
어두운 밤길도 훤히 비춰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육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장애물에 구애를 받지 않고도 상대방의
속셈도 어느정도 알수 있음도 이 삼매의 초보적인 작용에 의함인 것이다.
노름꾼들의 초보적이고 삿된 정신 통일을 사삼매(私三昧)라고 한다면,
진리를 관조할 수 있는 삼매는 정삼매(正三昧)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삼매를 통해서 체달한 지식은 세상의 어떤 체험적이거나, 경험적,
또는 과학적인 지식 보다도 알찬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삼매로 얻은 지식은 법력이라는 불과사이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은 육체의 근육으로 얻은 힘이 아니라, 정신으로 얻어지는 참된 힘이다.
그리고 본문에 백천삼매라고 하여 마치 삼매에도 그수가 백천가지나 있는 것처럼
여겨 질 수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 없이 많은 번뇌망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삼매도 많다고 표현한 것이지, 실제상에 있어서 삼매는 불교적인
의미의 삼매 뿐이다.
훈수(薰修); 삼매에 듬이 옷에 향기가 배인 것과같이,
일시적이 아니라 항상되고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받어서 가진 이몸이 광명당이 되오며)
광명당(光明幢); 광명의 깃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광명은 불보살의 몸으로 놓는 빛이나 지혜를 말한다,
이는 무명(無明)의 반대되는 말로써 부처님 자신을 일컨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모든 무명의 번뇌를 여의고, 이 세상에 진리의 큰 햇불을 내셨으니
이를 광명이라 함이요,
이 광명은 또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악마를 항복 받아서 어둠을
깨트리고 불도를 깨닫게 한다.
광명에도 두가지가 있는바, 그것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색광(色光)과
중생을 능히 이익되게 하시는 지혜의 빛인 심광(心光)이 있다.
여기에 당(幢)자를 붙인 것은 이것이 깃발과 같은 지휘력이 있음을 뜻한다.
즉 중생을 지휘해서 깨달음의 길로 이끌며 동시에 마군을 항복시키는 불보살의
위의와 공덕을 표시한 것이다.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이 법 지닌 이 마음 신기로운 곳집이라)
신통(神通); 사람으로는 하기 어렵고 생각할 수 없는 신기로운 재주나
일을 말한다. 흔히 불교의 도인(道人)들이 신통을 많이 부렸다고 하는데,
사실 불교의 위대성은 신통을 부리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통을 부릴만한 무애자재력에 있는 것이다.
신통은 다만 불보살님이 중생들을 제도하는데에 있어서 실(實)이 아닌
권세를 부릴 필요가 있을 때에만 부득불 행해 보이는 것이다.
부처님 살아 계실 당시에도 부처님을 시기 질투하든 반대파들이 신통이나
마술로서 부처님과 시합을 하려 했어나, 부처님은 그들을 피하여 일곱 차례나
피신해 버리셨더니 반대파들은 그것을 오히려 불타가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선전을 해대므로 결국은 할 수 없이 실제로 신통과 마술 시합을 해서
그 당시 천하만인이 놀라도록 했다는 사실은 퍽 인상깊은 일이다.
장(藏);포함하다와 저축하다의 뜻이있다.
경전은 글과 뜻을 포함, 저축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신통장은 무한한 신통이 있다는 말이다.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모든 번뇌 씻어버리고 괴로움 바다 저건너);
괴로움 바다라는 이 사바세계를 고해(苦海)라고 한데서 연유된 말이다.
고해에는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四苦와 八苦가 있다.
또 세상 살이가 바다에 비유된 것은 망망하고 끝이없어며,
파도가 일어서 가고져하는 곳을 가지 못하도록 앞길을 막아버리는 장애가 많기
때문이다.
진노(塵勞); 진(塵)이란 온갖 잡념과 망상으로 도를 닦는데에 장애가 되는 요소요,
노(勞)는 진의 장애로 인하여 잠못 이루고 괴로워하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끊기에도 여간 힘이 들지 않아서 노고 서러움으로
이 두 말이 합쳐서 진노라고 하는 것이다.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방편을 증득하여 보리문에 들어가지이다)
보리(菩提);대체로 보리라고 읽는다. 불교의 최고 이상경지인
불위(佛位)에 이르는 길이 되며 그 지헤를 말한다.
방편(方便);방은 방법을 뜻하고 편은 편리를 뜻한다.
이것은 불보살님이 일체 중생을 제도하심에 있어서 어떤 고정불변한 한가지
방법으로만 하시는게 아니라, 각양각색으로 그 중생들의 개성과 이익에 맞추어
제도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내 이제 대비주를 읽고 외워서 맹세코
귀위하노니)
귀의(歸依); 돌아가서 의지함, 구원을 청함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이마음 먹은대로 소원 다 이뤄지이다)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자비한 관세음보살님께 귀위합니다.)
나무(南無); 귀의한다. 돌아가 의지한다. 나무라는 말은 원래 불교의 용어이나
여기에는 자세히 관찰해 보면 두가지 뜻이있다.
그 하나는 자귀의(自歸依)요, 하나는 불귀의(佛歸依)다.
자기에게 돌아가서 의지한다는 말은 자기의 사욕이나 삿된 이익에 따라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本)에 맞는 역사적 사명에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의 삿된 벼슬이나 권력 장악을 버리고
오직 자기의 본아(本我)에 귀의한 것이요, 나무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망각하고, 자기를 벗어났을 때나, 자기를 뛰어 넘을려고 할 때
이것은 돌아가 의지함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에 대한 망각이요 배신이며
파멸인 것이다.
이에 반해서 불귀의는 자기의 소원과, 幸, 不을 전적으로 부처님에게 내맡겨
신앙으로써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요, 앞서서 말한 자귀의와 불귀의가
하나로 실천연결될 때 이야말로 진정한 나무(南無)인 것이다.
*원아속지일체법(願我速知一切法);(이 세상의 모든 진리 속히 알지며)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지혜의 눈을 빨리 얻어서)
혜안(慧眼);(천안광명변관조의 오안참조)
*원아속도일체중(願我速度一切衆);(한없는 모든 중생 어서 빨리 건져이다)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좋은 방편을 일찍 얻기 원합니다)
선방편(善方便); 최선의 방편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지혜의 배에 속히 오르기를 바라옵니다)
반야선(般若船);먼저 이 반야라는 말은 법(法)의 참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 최고의 지혜를 말하며, 이것을 얻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를 얻지 않고서는 아니되므로 이 반야를 오히려
부처님의 스승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반야지혜는 일반지혜와는 달리 또 법의 여실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 절대,
무비, 무념, 무분별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상대 차별을 관조하는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 반야에 배라는 선(船)자를 붙인 것은 어리석음에서 불타의 지혜로
나아감을 배에 타고 나아가는 형상에 비유한 것이요,
혹은 이 경지에 이르르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음을 곧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탈 수 있음을 곧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배에 비유한 점도
있고, 또는 이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여 극락세계로 갈 때에는 그 지혜의 배를
용(龍)이 싣고 아미타불 국토에 간다고 하여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도 한다.
*원아조득월고해(願我早得越苦海);(괴로움의 바다를 빨리 건너가기 원합니다)
*원아속득계족도(願我速得戒足道);(나로 하여금 계족도를 속히 얻게 하소서)
계족도(戒足道);戒의 발로 道의 길을 밝아서 모든 악이 없고 덕이 원만하여
원적산에 올라간다는 뜻.
*원아조등원적산(願我早登圓寂山);(고액 떠난 원적산에 어서 속히 올라이다)
원적산(圓寂山);번뇌의 잡념을 여의고 생사를 뛰어넘은 절대 청정의 경지를 말한다.
대부분 스님네들이 돌아가신 것을 입적(入寂), 귀적(歸寂), 시적(示寂)이라고
표현한는데에 비해서 이 원적은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뜻한다.
이것에 산을 붙인 것은 이 경지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아서 마치 높은 산을
처음부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산은 千古萬年토록 묵묵한 力用을 가지고 있다.
*원아속회무위사(願我速會無爲舍);(깔끔한 법의 진리에 어서 빨리 닿게 하소서)
무위사(無爲舍);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유의에 대한 반대어로
아무런 조작이 없는 경지가 마치 사람이 이곳저곳을 해 메다가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안온한 것과 같은 뜻으로 사(舍)를 붙인 것이다.
속회(速會);회(會)는 모인다는 뜻인바, 열반이나 최고 정각의 자리에는 과거불과
현재불과 미래불이 다같이 함께 계시며 계실 곳이므로 하루속히 그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의미다.
*원아조등법성신(願我早登法性身);(원컨대 법성신을 속히 얻게 해 주옵소서)
법성신(法性身);법성이란 항상 변하지 않는 법(法)의 성(性)이요,
이것이 모든 진리와 질서의 본체이다. 이 본체는 형체도, 빛도, 색깔도,
향기도, 없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인데, 부처님은 항상 이곳에 머물러 계시는
것만이 아니라, 중생구제를 위해서 인간 세계로 태어나시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 계시다 마야부인의 태에 들었다가
이 세상에 나심은 법신(法身)으로 계시다가 중생들을 구제하려 화현하신 것이다.
*아약향도산(我若向刀山);(내가 만약 도산 지옥으로 가오면);
이 대목의 본문에서 계속 나오는 향은 처음세곳은 간다는 뜻이 있고
뒤에 아귀, 수라, 축생에게 있어서는 본다거나 대한다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도산(刀山); 십지옥(十地獄)의 하나로서 칼날이 촘촘히 꽃어있는
언덕 아래로 죄인들을 던져서 고통을 받게 한다는 지옥이며
우리말로 칼산이라 한다.
*도산자최절(刀山自崔折);(도산 절로 무너지고)
*아약향화탕(我若向火湯);(내가 화탕지옥에 가옵거든)
화탕(火湯);쇳물을 끓이는 큰 가마솥에 죄인을 던져 벌하는 곳, 화탕지옥을 말함.
*화탕자고갈(火湯自枯渴);(화탕지옥의 쇳물이 저절로 말라지고)
*아약향지옥(我若向地獄);(내가 지옥으로 가오면)
지옥(地獄); 지옥은 극락에 반대되는 뜻으로 불낙(不樂)이라고 하고,
또는 무행처라고도 한다. 사람이 살아생전에 지은 죄업에 따라서 나게되는,
땅밑(지구에 있는 땅아래를 말하는 것이 아님)에 있는 감옥을 말하며,
불교우주관에 따른 남섬부주의 아래로 이만유순을 지나서 무간지옥이 있다고 한다.
이 지옥의 크기는 길이 넓이 깊이가 각이만유순이며,
무간지옥을 위로 일만 구천 유순이 있고, 그의 각 층층에 대초열지옥,
초열지옥, 대규환지옥, 규환지옥, 중합지옥, 흑성지옥, 등활지옥 등이 있으므로
이 칠 지옥과 무간 지옥이 합해서 팔열(八熱)지옥이 되고,
여기에 다시 사방에 四문이 있고, 문 밖마다 四소지옥(小地獄)이 있어서
이것을 합하여 十六유증지옥이라고 한다.
팔열지옥 까지를 모두 합하여 일백이십팔(一百二十八)지옥이 있다한다.
또 팔열 지옥의 주위에 알부타, 니부랄타, 알찰타, 확확파, 호호파, 올발라,
발특마, 마하발특마의 팔한지옥(八寒地獄)이 있다.
이 같은 지옥들은 염라대왕이 다스리며, 지옥 중생들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준다고 한다.
일유순은 사십리요 일리는 삼백육십보라고 한다.
지옥에 대한 설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팔열지옥(八熱地獄); 여덟 가지 뜨거운 고통의 지옥
1,대초열지옥; 뜨거운 고통이 아주 심한 지옥
2,초열지옥; 뜨거운 불길이 몸을 둘러싸서 그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운 지옥
3,대규환지옥; 지독한 고통에 못 견디어서 통곡을 터뜨리게 되는 지옥.
4,규환지옥; 온갖 고통에 못 견디어 딩구러면서 자기를 원망하며 슬픈
고함소리를 지르는 지옥.
5,증합지옥;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기구가 한꺼번에 닥쳐왔어
몸을 핍박하여 해치는 지옥.
6,흑성지옥; 뜨거운 쇠사슬로 몸과 팔다리를 묶어놓고,
큰톱으로 몸둥이를 자르는 지옥.
7,등활지옥; 뜨거운 고통을 받아 죽었다가는 찬바람이 불어와 다시 살아나면,
또다시 뜨거운 고통을 받게되는 지옥
8,무간지옥; 쉴 사이 없이 고통을 받는 지옥이며 다른 지옥은
그 기간이 있어 끝이 나면 다시 다른 생명을 받아 가게되나 무간지옥은
영원히 그 고통을 받기만 하지 끝이 없으므로 무간지옥이라 한다.
팔한지옥(八寒地獄); 찬 것으로서 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여덟 가지 지옥이며
팔열지옥 옆에 있다한다.
1,알부타지옥; 매서운 추위로 몸이 부르트는 지옥.
2,니랄부타지옥; 추위로 몸이 부르튼 것이 터지는 지옥.
3,알찰타지옥; 추위에 못 견디어서 내는 소리가 <알찰타 알찰타>하므로 붙여진
지옥 이름.
4,확확파지옥; 역시 추위에 견디지 못하여 신음하는 소리로서 이름 붙여진 지옥.
5,호호파지옥; 위와 같이 추위에 못 견디어 내는 이름에서 붙여진 지옥 이름.
6,올발라지옥; 심한 추위로 몸이 퍼렇게 엉혈지며, 가죽과 살이 얼어 터져서
푸른 연꽃과 같이 되는 지옥.
7,발특마지옥; 살과 가죽이 벌겋게 되며, 불어터져서 붉은 연꽃과 같이 되는 곳.
8,마하발특마지옥; 발특마보다도 더 크게 붉은 연꽃같이 불어터지는 지옥.
팔한지옥(八寒地獄)의 일백이십팔지옥은 앞에서 설명한 팔열지옥을 참작하면
알 것임.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갈 때에는 염라국(閻邏國)에 가서 선악(善惡)의
죄를 재판 받아서 극락이나 지옥으로 가는데, 이때 거기에는 업경(業鏡)이라는
큰 거울이 있어서 제아무리 죄를 속이거나 숨기려해도 모두가 그 거울에 명경
알속같이 훤히 드러남이 마치 오늘날 비디오나 텔레비젼에서 스위치만 누르면
과거의 영상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듯이 저승에도 그들 생전의 일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므로 거기에 따라서 죄의 경중을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 텔레비젼이 있는데 하물며 어찌 신의 세계에는 그보다 더한
업경대가 없겠는가, 죽어서 업경대에 비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상상해보면
누구든지 죄를 지어서는 안될 일임을 알 것이다.
*지옥자소멸(地獄自消滅);(지옥이 스스로 없어지고)
*아약향아귀(我若向餓鬼);(아귀세계에 내가 가면)
아귀(餓鬼); 육도(六道)중의 하나로서 굶주린 귀신을 아귀라고 한다.
이는 살아 생전에 남의 재물을 많이 강탈하고 인색하면 죽어서 아귀가 된다고 한다.
그 형상은 배의 크기가 산만한데 반해서 목구멍이 바늘구멍만 하므로,
아무리 배가 고파 허덕여도 음식이 목구멍에 걸리므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절에서 스님네들이 공양을 잡수실 때 될 수 있는 한 밥알 찌꺼기까지 버리지
않고 먹는 것은 공양에 대한 가치와 시주물에 대한 공덕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일면으로는 그렇게 깨끗이 먹은 그릇을 씻어내면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곡식이나 양념의 요소가 있으므로 그것을 아귀에게 주어야만이 아귀가 능히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네들이 공양 시에 식기를 깨끗이 하여 잡수는 까닭은 이상의 두 가지일
외에도 밥알 하나를 그냥 버리면 그 밥알이 썩을 때까지는 하늘의 재석 천왕이
무릎을 끓고 비신다고 하니 이는 그만큼 공덕이 깃들은 곡식을 헛되게 썩혀
내버리는 죄에 대한 용서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쌀이라는 한문 글자 미(米)는 쌀 한 알에 농부와 그 외의 힘들이는
자기 손을 무려 팔십팔(八十八)번이나 들어서 먹게 되는 것이므로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팔십팔(八十八)을 붙여서 쓰면 미(米)자가 된다.
*아귀자포만(餓鬼自飽滿);(아귀가 저절로 배불러지며)
*아약향수라(我若向修羅);(수라세계 내가 가오면)
수라(修羅);육도 중생 가운데에 하나며 아수라(阿修羅)라고 한다.
이것도 귀신인데, 항상 싸우기를 좋아한다.
원래 인도에서는 가장 우승한 성령으로 받들어졌고 또 가장 오래 전부터
숭배되어온 신이기도 했어나, 중세기 이후에는 무서운 귀신으로 인식되어 왔다,
항상 남이 잘 되거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한다.
사람이 평소때 시기, 질투, 싸움을 많이 하면 죽어서 이 귀신이 된다.
*악심자조복(惡心自調伏);(악심이 스스로 가라앉고)
*아약향축생(아약향축생);(짐승세계에 내가 가면)
축생(畜生); 일반적으로 짐승뿐만 아니라 사람을 제외한 모든 움직이는 동물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성질이 무지하여 어리석고, 부모 형제의 차별을 모르는 것이다.
중생이 생을 받는데는 알로 태어나는 것, 태로 태어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化生으로 나는 것, 유색인 것과 무색인 것과, 생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비유색(非有色)과 비무색(非無色), 비유상(非有想)과 비무상(非無想)등등의
열두 종류가 있다 는바, 이 십이유경(十二遊經)에 보면 고기가 육천사백종이요,
새가 사천오백종, 짐승이 이천사백종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축생이 사는 곳은 물과 하늘과 땅위에 널리 분포되며,
누구든지 악한 짖을 많이 하고, 어리석음을 내세우면 죽어서 축생이 되는 것이다.
*자득대지혜(自得大智慧);(지혜가 스스로 얻어지리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
(크신 관세음보살 님께 귀위 하옵니다.)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南無大世至菩薩摩訶薩);
(큰 대세지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대세지보살(大世至菩薩);아미타불에게 두 가지 큰 위덕이 있는데,
왼쪽의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나타내고, 오른쪽의 대세지보살님은 지혜를 나타낸다,
이 대세지보살님의 지혜와 광명은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두루 비치어 삼악도인
지옥과, 아귀와, 축생 도를 여의게 하는 위없는 힘을 얻게 하시는 분이므로
대세지라 한다.
이 보살 님께서 한번 발을 내디디시면, 모든 세계와 모든 악귀나 마군 들의
세계가 진동을 겪으므로 대세지라 하기도 한다.
그 형상으로 보면 머리 위에 보배 병을 얹고 아미타불
오른 편에 합장을 하고 계시는 형상이 통례이다.
이 보살 님은 특히 우리 인간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어서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이라도 능히 극복해서 희망을 달성하도록 인도 구제하여 주시는 뜻이 있다.
*나무천수보살마하살(南無千手菩薩摩訶薩);
(크옵신 천수보살님께 의지합니다)
천수보살(千手菩薩); 온몸이 항금색이며 손이 천개고 눈도 천개인
관세음보살 님을 말한다,
이는 두눈과 두손 외에 양쪽으로 각각 이십 개의 손이 있고,
그 손바닥마다에 한 개씩의 눈이 더 있으니, 결국은 사십손, 사십 눈이 되며,
이 四十手는 자비로써 한 손에 각각 二十五有를 구제하므로 四十에 二十五有를
곱한 즉 눈과 손이 모두 천개씩 된다.
이 분은 일체중생을 제도하시는 큰 작용이 있음을 표한 것이며,
특히 지옥의 고통을 해탈케 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해 주신다.
설명문의 이십오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윤회계에 중생이 나고 죽을 때 변신하는 존재를 스물 다섯 가지로 나눈 것이다.
사악취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넷과 사주인 동불바데, 남염부주,
서구야니, 북울단월의 넷과, 육욕천인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의 여섯과 칠색계인 초선천, 범왕천, 제이선천, 제삼선천, 제사선천,
무상천, 오남함천의 일곱과, 사무색계인, 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의 넷을 합하면 이십오가지가 된다.
대대분은 이 이십오유를 줄여서 삼계와육도라 말하는데 중생들은 항상
이곳을 윤회하는 것이다.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南無如意輪菩薩摩訶薩);
(여의륜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여의륜(如意輪); 여의는 여의보주(如意寶珠)요,
륜(輪)은 법륜(法輪)의 줄인 말이다.
관세음보살 님은 육도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모든 이익을 주시는
것으로 본업을 삼으시는 분으로서 그렇게 하시는 능력이 마치 어떤 큰 보물을
가지셔서 큰 신통도술을 부리는 것과 같이 느껴짐으로 보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또 여의는 중생의 소원을 다들어 준다는 의미요 수레바퀴는 불법을 굴리는
표시이기도 하다.
*나무대륜보살마하살(南無大輪菩薩摩訶薩);
(크옵신 대륜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대륜보살(大輪菩薩); 앞서 말한 여의륜에 대해서 가일층한 찬탄이다.
관세음보살님은 이 우주 전체의 모든 소원과 이익을 두루 들어주시므로
더없이 그 능력이 크시다 는 의미로 대륜이라고 했다.
또는 관세음보살의 삼십삼존중 한 분으로 손에는 금강저라는 지혜의
무기를 들고 계시니 이는 어리석음을 끊은 지혜의 덕을 나타낸 것이다.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南無觀自在菩薩摩訶薩);
(관자재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나무정취보살마하살(南無正趣菩薩摩訶薩);(크옵신 정취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정취보살(正趣菩薩); 화엄경전에 구도자로서 오십삼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불법을 묻던 선재동자에게 해탈법을 설해주신 보살이 이정취보살이며,
역시 관세음보살의 화현신(化現身;같은 분이지만 때에 따라 다른 형태로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이시다.
또 이보살님은 항상 옳고 바른 곳에만 계신다고도 한다.(관세음보살 참조)
*나무만월보살마하살(南無滿月菩薩摩訶薩);
(크옵신 만월보살님께 귀위 하옵니다.)
만월보살(滿月菩薩); 역시 관세음보살님의 위덕을 나타내는 말이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구제해 주옵시는 능력은 마치 큰 보름달과 같아서
이 세상 어느 곳 어디든지 빠짐 없고 치우침 없이 두루 비치시므로,
이와 같은 물질에 비유컨대 보름달과 같음으로 붙여진 이름인바,
이도 관세음보살의 화현신이다.
*나무수월보살마하살(南無水月菩薩摩訶薩);
(크옵신 수월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수월보살(水月菩薩);삼십삼관음중 한 분으로써 달빛이 훤히 비치는 바다 위에
연꽃을 밟고 서 계시는 형상을 하고 계신다.
불교의 교리에는 물과 달이 많이 비유되는데 여기에서 그것을 잠깐 언급코자 한다.
물은 우리들의 마음에 비유하고, 달은 진리에 비유한다.
호수의 물이 잠잠할때는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똑같은 형태로 물위에 비친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잠잠해서 잡념을 완전히 없애면 거기에 곧바로 지혜가
나서 진리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호수에 바람이 없을 때 달은 그대로 비치듯이,
우리의 마음에 잡념이라는 바람을 끄면 진리는 멀지 않은 바로
내속에 현현(現顯)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경지를 체득하기 위한 불교적 수행방법이 소위 참선(參禪)이다.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南無軍茶利菩薩摩訶薩);
(군다리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 군다리는 약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감로병(甘露甁)을
말하는 바, 이 보살님은 감로병을 들고계시며 모든 고액을 제도해 주시는
일을 맡아서 특히 자비를 펴시는 보살님이시다.
형상으로는 머리가 하나인데 팔이 여덟이시며 성낸 모양을 하며,
우리를 자신의 악에 물듬을 경계하는 표시다.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南無十一面菩薩摩訶薩);
(십일면보살님께 귀위 합니다)
십일면보살(十一面菩薩); 십일면의 뜻은 관세음보살의
몸 하나에 얼굴이 열한분이 있는 보살님을 말한다.
앞과 뒤와 왼편과 오른편의 십면은 모두 보살의 수행하는 단계인
오십이위중 십지(十地)를 표시하고, 맨 위에 일면은 불면(佛面)으로
부처가 된다는 뜻을 나타낸다.
*나무 제대보살마하살(南無諸大菩薩摩訶薩);(모든 크신 보살님들에게 귀위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보살님은 한 분이 아니라 수없이 많이 계신다.
불교의 이런 면을 흔히들 다신교라고 말하나, 소이 다신교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잡신적인 뜻은 아니며, 오히려 범신적인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보살님들은 모두 한마디로 하자면 부처님의 후보자들인 것이다.
불교는 어느 특정한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미리 정해놓은 종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최고위인 불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수 없이 많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이 지구상에서 인구가 오십억이라면 그들이 모두 불법에 귀위하여
부처가 된다고 할 때 보살의 수는 오십억이요, 불타도 오십억불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도 천백억화신이라고 말했고, 보살은 무조건 우리에게 이익을 주시는
분이면 그가 누구이든지 보살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 보리쌀도 그 어원이 [보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분량과 사량을 떠난 대원경지의 부처님자리 에서보면 공자도 보살이요,
예수도 보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보살은 그 목적인, 중생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말이나 소로도 화현하시며,
도적의 무리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 두목으로도 변신하시는 것인바,
공자나 소크라테스라도 태어나지 못하실 바가 있겠는가,
불교의 이러한 관용적이고 포괄적인 교리는 타종교에 대해서도 항상
우호적이 아닐래야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흔히 타종교인들은 불교를 비방하는 수가 있지만 좀처럼 불교인들은
그런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마땅히 이래야 할 것은 이렇게, 저래야 할 것은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게
소위 불교의 저 유명한 중도사상(中道思想)이다.
부처님이 도를 깨치시고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이 중도(中道)요,
자기가 깨친 것도 바로 이 중도라고 하신 것으로 미루어보아 얼마만큼
중도(中道)가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중도의 중(中)은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니라 최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써, 실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사고방식은
우리 인간들의 불완전 속에서 오는 모순을 적당히 얼부무리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미 중도를 깨치시고 체득하신 분이므로 그 분에게는 있을
것만이 있고, 행할 것만을 행하시는 분이므로 그 분이시니 이 중도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무본사아미타불(南無本師阿彌陀佛);
(본사이신 아미타불게 귀위 합니다)
여기에서 본사라는 뜻은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의 스승이신 아미타불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절 올릴 때도 그 염불 구절이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고 되어 있는바,
본사라는 말은 곧 우리들의 스승, 또는 나의 스승이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고 아미타불을 본사라고 한다면, 그에 앞서서 법장비구에게
감화를 주신 세자재왕불을 본사라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신기하고 큰 다라니 주문)
*사방찬(四方讚);(사방을 찬탄함)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量);(첫째 동방 씻어 도량이 깨끗하며)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量);(둘째 남방 씻어 청량함을 얻었고)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셋째 서방 씻어 정토를 갖추었으며)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넷째로는 북방 씻어 오랫토록 안강 하리라)
위의 네 방위에서 동방이 깨끗하다 함은 해가 솟는 곳임이요,
색으로는 청색이요, 남방이 청량하다 함은 태양광선이 직선이 아닌
방선(傍線)으로 색은 황색이며, 서방은 극락세계가 있음이니 정토가
마땅함이요, 색은 적이며, 북방이 안강타 함은 색이 흑색으로서 온갖
잡귀가 날뛰는 방위이므로 그런 잡귀들을 조용케 시키는 것이다.
위의 말에서 색(色)은 주역의 방색(方色)에 나타난 글이나 다소 참고가
되므로 이용한 것이다.
*도량찬(道量讚);(도량을 찬탄함)
도량(道量); 도량이란 말의 원음은 도장이나, 대부분 도량이라고 일컨는다.
이것은 어느 특정한 지역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처하는 곳의 주위를
말한다. 절의 주위가 곧 절의 도량인 것이다.
*도량청정무하예(道量淸淨無瑕穢);(도량이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으니)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삼보와 천룡이 이 땅에 오시 도다.)
삼보(三寶);삼보란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하신 불교의 경전과,
그것을 받들고 몸소 실천하기에 노력을 하며 동시에 타인에게 전달해 주시는
모든 스님네들을 가리켜 세 가지 보배라고 하여 삼보라 한다.
불교는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든 것이므로 불보(佛寶)요,
이는 부처님 살아 생전에만 있었든 게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수없이 내려온
것은 불법이라는 가르침 자체가 있었기 때문이므로 법보(法寶)요,
셋째의 승보(僧寶)는 아무리 부처님이 계셨고 불법이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고 계승시킨 스님네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명맥을 이을 수 없을 것은
당연한 일로서 이세가지를 가리켜 불교의 세 가지 보배 삼보(三寶)라 한 것이다.
*아금지송묘진언(我今持誦妙眞言);(내 이제 묘한 진언을 가져 외우나니.)
*원사자비밀가호(願賜慈悲密加護);(원컨대 자비로서 감싸안아 주옵소서)
*참회계(懺悔偈);(참회하는 계송)
참회(懺悔); 참회에 대한 글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있는
[지난 세상 내가지은 모든 악업은 쓸대없는 탐심, 진심, 치심으로서 몸과, 입과,
뜻을 따라 지었아오니 제가 지금 뉘우치고 지성 참회 하옵나니]라는
참회문에서 알 수 있는 것같이 모든 허물과 죄지음의 용서를 비는 일을 말한다.
참회를 하는 형식이나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이참(理懺);진리의 참된 형상을 관하여 여러 가지 죄를 뉘우치며 용서받는
방법이니, 쉽게 말하자면 자기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 냉정한 이성으로 잘못을
뉘우쳐 반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사참(事懺);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거나 경전을 많이 외워서 죄를 사하는
방법이다. 부처님 전에 나아가 절을 한꺼번에 삼천 번씩 하는 방법이다.
3,포살참법(布薩懺法); 스님네들이 보름과 그뭄인 십오일 삼십일 에 모여서
계율에 대한 경을 읽혀 듣게 하고, 보름동안에 각자가 지은 죄가 있으면
여러 스님네들 앞에서 참회하여, 선을 기르고 악은 없에는 방법이다.
일반가정에 있는 신도들은 초파일, 십사일, 십오일, 이십 삼일, 이십 구일,
삼십일 의 엿새 동안에는 특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여덟 가지 계(팔관재계)를 지킬 것이다.
팔관재계는
첫 째 어떤 생명이든지 죽이지 말 것,
둘 째 도적질이나 훔치지 말 것,
셋 째 음행하지 말 것,
넷 째 거짖말 하지 말 것,
다섯째 술 먹지 말 것,
여섯째 꽃과 향기를 쓰거나 바르지 말 것,
일곱째 일부러 잘 꾸며진 좌석에 참석커나 앉지 말 것,
여덟째 때아닌 때 에 먹지 말 것 등이다.
4,자자참법(自恣懺法);음력 정월 보름날부터 사월 보름날까지 석달동안의
공부를 마친 안거의 마지막 날에, 그 동안 같이 지냈던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간의 보고, 듣고, 남을 믿지 못해서 의심했던
일들을 솔직히 털어놓고 그간에 잘못된 일이나 죄에 대해서 여러 대중 앞에서
여러 대중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일이다.
5,삼종참법(三種懺法);
일정하게 규정된 작법에 따라 부처님 앞에서 용서를 비는 작법참(作法懺)과,
정에 들어가 잘못을 생각하면서, 불 보살님이 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심이
있기를 바라는 취상참(取相懺)과, 마음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아서 무상 무열의
실상을 관하여 어리석음과 잡념을 버리는 무생참(無生懺)을 삼종참법이라고 한다.
6,삼품참법(三品懺法);
첫번째 상품참회(上品懺悔)이니 온 몸의 털구멍과 눈으로 피를 흘리는 참회요,
두번째 중품참회(中品懺悔)니 온 몸에서 땀이 나고 눈에서 피가 흐르는 참회요,
세번째 하품참회(下品懺悔)니 온 몸에 열이 나고,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참회다.
이 외에도 참회법(懺悔法)에는 경전을 읽어 죄장을 참회하는 것으로 법화참법,
미타참법, 등이 있고, 또 참회할 때에는 一,오른 어깨를 벗어 들어내고,
二.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三.합장을 하고, 四.범한 죄명을 말하고,
五.대비주의 발에 절을 하는 참회오법 등이 있는 것이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옛부터 지어온 모든 악업은)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이 모두 탐진치로 말미암이요)
탐진치(貪瞋痴); 탐은 탐욕, 진은 진에, 치는 우치라는 말이다.
욕심 내고, 화 내고, 어리석은 이 세가진는 우리들이 가진는 모든 잡염과,
공상과, 죄악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서 끊기도 어렵거니와,
이 세가지는 구도심(求道心)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서 오히려 중생을 해치므로,
그 작용이 마치 독사의 독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도 일컫는다.
*종신구의지소생(終身口意之所生);(몸과 입과 마음을 쫓아서 생겨 남이니)
신구의(身口意); 이셋을 삼업(三業)이라고도 한다.
신(身)은 몸으로 저지르는 온갖 동작이요,
구(口)는 입으로 짓는 온갖 짓이며,
의(意)는 마음으로 짖는 온갖 못된 뜻을 말한다.
이 세가지로 짓는 바가 악작(惡作)일때는 악업(惡業)이요,
착한 일 일때는 선업(善業)이다.
선악(善惡)이 따로 있거나 생긴 것이 아니라 모두 이 신구의(身口意)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악(善惡)의 원인 결과는 다름아닌
나 자신에게 전적으로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내 이제 모든 잘못을 용서 빕니다);
위에서 들추어낸 모든죄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죄가 있을 것이니,
그것들을 하나라도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백하여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참제업장십이존불(懺除業障十二尊佛);(죄를 사해 주옵는 열두분의 부처님이시여)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南無懺除業障寶勝藏佛);(업장을 사해주시고 용서하옵는
보승장불님께 귀위합니다)
*보광왕화렴조불(寶光王火炎照佛);(보광왕화렴조불게 귀위합니다);
이 부처님은 한번만 불러도 재물을 헛되게 낭비한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고 함)
*일체향화자재력왕불(一切香火自在力王佛);
(일체 향화가 자재하신 력왕불게 귀위합니다);
일평생 잘못한 죄를 이 불타의 명호로 용서 받는다고 한다.)
*백억항하사결정불(百億恒何沙決定佛);(백억 항하사 결정불게 귀위합니다);
이 명호 한번으로 목숨죽인 죄를 사한다고 한다.)
*진위덕불(振威德佛);(진위덕불게 귀위합니다.);
이는 삿된정을 통하고 악한 말한 죄를 용서 받는다고 한다.)
*금강견강소복괴산불(金剛堅强消伏壞散佛);(금강견강소복괴산불게 귀위합니다.);
이 부처님 명호를 염송하면 지옥고를 면한다함)
*보광월전묘음존왕불(普光月殿妙音尊王佛);(보광월전 묘음존왕불께 귀위합니다.);
이 부처님 명호를 한번만 불러도 불타의 교서를 한번 들은 것과 같은 공덕을
갖게 해 주신다고 한다.)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환희장마니 보적불게 귀위합니다.);
이 부처님은 일평생 성낸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이다.)
*무진향승왕불(無盡香勝王佛);(무진향승왕불게 귀위합니다);
이 분은 끝없는 생사의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한다.)
*사자월불(獅子月佛);(사자월불게 귀위합니다.);
이 분은 영영토록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옵시는 분이시다.)
*환희장엄주왕불(歡喜莊嚴珠王佛);(환희장엄주왕불게 귀위합니다.);
이 분은 지어온 큰 죄를 모두 사해 주신다는 분니시다.
*제보당마니승광불(帝寶幢摩尼勝光佛);(제보당마니승광불게 귀위합니다.);
이 분은 모든 엉큼한 수작으로 지어온 죄를 사해 주시는 분이라고 한다.)
*중죄금일참회(重罪今日懺悔);
(산목숨 죽인죄를 내 이제 뉘우치고 용서비옵니다.)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
(도둑질한 죄도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사행중죄금일참회(邪行重罪今日懺悔);
(사행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
(거짓말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입발림말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이간질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악한말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重罪今日懺悔);
(탐애한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진애중죄금일참회(瞋恚重罪今日懺悔);
(성내고 화낸 죄업도 내 이제 참회하고 비옵니다.)
*치암중죄금일참회(痴暗重罪今日懺悔);
(어리석음으로 지은 죄업 오늘 참회하고 비옵니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백겁으로 쌓인 죄업)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한 생각에 없어져서)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마른 풀을 불태우듯)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흔적조차 없어지이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죄의 자성 따로없어 마음따라 일어난 것)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妄);(이 마음만 없이하면 죄 또한 사라지리니)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죄와 마음이 다함께 없어져야)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이것을 이름하여 진참회라 이른다내)
*참회진언(懺悔眞言);(참회하는 참된 말씀)
*준제공덕취(准提功德聚);(준제 보살님의 크신 공덕)
준제(准提); 이는 관세음보살님이 육도를 순회하시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이 육도에 따라서 각각 관세음보살님을 따로따로 한분씩 세워 육관음이라고
하는바, 이 육관음중의 한분이 곧 준제관음이시다.
이 보살님께서는 특히 우리 인간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애쓰시는 분이므로
인도의 능화(能化)라고도 한다.
특히 준제관음은 그 공덕이 매우 크시므로 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七俱地佛母大准提菩薩)이라고도 하니, 칠구지란 말은 숫자적으로
칠억(七億)을 말하므로, 이 준제보살님의 덕이 그만큼 크고 광대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그 덕은 가히 이루 다 말할 수 없어서 불모(佛母)라고 하는 것이다.
*적정심상송(寂淨心常誦);(지성스런 마음으로 항상 외우면)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그 어떤 어려움도)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능히 침범치 못하리니 이런 사람은)
*천상급인간(天上及人間);(하늘에나 사람이나)
*수복여불등(受福如佛等);(부처님과 같은 복을 받을지니)
*우차여의주(遇此如意珠);(이 여의주를 만나면)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결정코 이에 더할것 없을새라)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南無七俱地佛母大准提菩薩);
(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님께 귀위합니다.)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법계 찬탄의 진언)
*호신진언(護身眞言);(몸의 보호를 받는 진언)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
(관세음보살님의 깊고깊은 본마음의 큰 진언)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는 [옴마니 반메훔]인데 [옴]은 하늘나라, [마]는 아수라, [니]는 인간,
[반]은 짐승세계, [메]는 아귀, [훔]은 지옥을 가리키며,이 육도 중생들을
제도하여 다시는 육도에 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원래 이 육자는 아미타불께서 관세음보살을 칭찬하신 주문이고,
무량광불이 대자대비로 관자재보살의 몸을 나투어 이 [옴마니 반메훔]의
육자로 육도중생의 생사고를 없애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육자주만 외우면 모든 위대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지금 [라마교]에서는 이 육자만 지송하면 모든 착함과 위대한 행위를
하는 것이 된다고 믿고, 티베트인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국민이 이 주문을
항상 외우고 있다 한다.
*준제진언(准提眞言);(준제보살의 진언)
*아금지송대진언(我今持誦大眞言);(내 이제 대준제주를 지니고 외워서)
지송(持誦);지니고 외운다는 말은 입으로만 하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의미다.
*즉발보리광대원(卽發菩提廣大願);(광대한 깨달음의 지혜를 내기 원합니다.)
보리(菩提);정각의 가장 높은 지혜를 말한다.
*원아정혜속원명(願我定慧速圓明);(원컨대 내 정혜가 속히 훤히 밝기를 바라오며)
정혜(定慧); 정(定)은 마음을 한 곳으로 머물게 함이요,
혜(慧)는 형상의 사물과 본체의 이(理)를 비추어 살펴 아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정(定)을 통하여 혜를 내자는 것이지,
다만 정에 머물러 있자함이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정과 혜는 본시 항상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정혜를 득(得)한 사람에겐 정혜가 하나이요, 아직 정혜를 수득하지 못한
자에게는 항상 정과 혜가 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호수의 물결이 잠잠하지 않고서는 하늘의 보름달이 그대로 비칠 리가 없는
것이고, 물결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그때는 곧 달이 그대로 나타난 때인
것과 같다.
원명(圓明); 불교에서 갖는 원자에 대한 개념은 일반개념과 약간 다르다.
일반개념은 둥글다는 뜻과, 영(ㅇ)이라는 뜻과, 아무것도 없는 제로라는
뜻과 속이 빈 공(空)이라는 뜻들이 있음에 반해서, 불교에서는 둥글다는 뜻과,
ㅇ이 아닌 속이 가득찬 만(滿)의 뜻과, 알맹이가 가득찬 것이라는 뜻과,
실속과 내용이 알찬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위의 원명은 바로 불지(佛智)요 보리지혜(菩提智慧)를 나타내는 말이다.
*원아공덕개성취(願我功德皆成就);(모든 공덕을 다 이루기 소원 이 오며)
*원아승복변장엄(願我勝福邊莊嚴);(위없는 공덕을 장엄하게 갖추기 원이 오며)
승복(勝福); 이긴 복이라고 글자대로 읽을 것이 아니라, 이상 더 크거나,
위대하거나, 장할 것이 없는 가장 높고 큰복을 말한다.
그러므로 복중에서도 가장 크고 위대한 복을 승복이라 하는 것이다.
위로는 정각을 이루고 아래로 중생을 다 재도 할 수 있다면 이 복이야 말로
바로 승복이 될 것이다.
*원공중생성불도(願共重生成佛道);(모든 중생과 다함께 성불하기 원하옵니다)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부처님의 열 가지 큰 원을 세우신 글)
여래(如來); 다른 부분에서도 대략 언급한 일이 있는바와 같이 불타(佛陀)는
직접 자기자신이 생사를 내맡기고 그 노력의 결정으로 불교라는 진리를 깨닫고,
그 종교를 세우신 바, 이는 어디까지나 무신론이요, 절대 종교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부처님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은 가히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
그 분을 불러야 할 바를 몰랐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마치 일 국의 대통령에 있어서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각하니, 국왕이니, 국부니, 대왕이니 하는 존칭어가 생겨나게
마련인 것과 같은 것이다.
일 국의 대통령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가비라국의 왕자로서 왕의 자리까지로
스스로 포기하고 수도자가 되어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에 대해서야,
그 당시 그분을 받들어 모시던 일반 대중들의 존경심과 흠모의 정은 실로
무어라고 말할 수조차도 없었을 것임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신 부처님의 이름이 무려 열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보더라도 조금도 불타의 위대성에 대해서는 의심스럽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 열 가지 이름은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이며, 이 외에도 세존, 사생자부, 삼계대도사 등등의
존칭어가 수없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각각의 설명은 보살(菩薩)오십이 위와 더불어 설명함으로서 말로는
부처님을 일컫기가 쉽지만, 진실로 불타가 되기는 얼마나 어렵고 힘들며
복잡한 것인가를 한 번 밝혀 두고자 한다.
여래십호(如來十號);(부처님의 열 가지 다른 이름)
1,여래(如來);여(如)는 진여(眞如)이니, 곧 이 우주의 근본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심은 단지 육체를 가진 인간
(고담마 싯달다{부처님의 왕자 때의 이름})가 [마야]모친의 태중에서 나심이
아니라, 이는 이미 우주의 근본진리를 한 인간의 형태로 바꾸어
그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시고 모든 중생들에게까지도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 보이신 분이시니 이는 마땅히 곧 바로 진여[진리]가 오신
것(래;來)이라 고하여 여래(如來)라고 이름 한 것이다.
2,응공(應供); 이 말은 모든 나쁜 것을 이기신 바요,
나고 죽는 생사의 고통을 초월하신 바며, 가장 참되신 바요,
그 참된 곳에 이르신 바며, 마땅히 참되시다 는 뜻을 가진 것으로 이렇게
위대하신 불타께서는 응당히 우리 모든 중생들의 올리는 음식과 예배,
등등에 응할 자격이 응당히 있으시다 는 뜻으로 생긴 이름이다.
바꾸어 말하면 존경의 대상이 응당히 된다는 의미로 [응공]이라 한다.
3,정변지(正邊知);부처님은 이 세상일만 아시는 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와 과거의 과거 현재 미래와, 현재의 과거 현재 미래와,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아시며, 아시는 바에 그치심이 아니라
능히 아심의 몸[지체;知體]가 되신 분이라는 뜻으로 생긴 이름이다.
4,명행족(明行足); 이는 부처님의 실천력이 조금도 어둡거나 암매스러운 곳이
없고 항상 밝은 태양과 같으시사 당당하시고 떳떳하심이라,
능히 삼세 는 물론, 모든 진리의 다함과, 끝이 없는 것까지라도 훤히 아시고
실천을 꼭하시며 입으로나 말씀으로나, 몸으로 하신 행동으로나,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하신 행동이 꼭 부처님 행위 그것이므로
명행의 발이라 하신 것이다.
5,선서(善逝);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잘 가셨다]는 뜻이다. 호거(好去),
호설(好說), 선해(善解), 묘왕(妙往)등으로도 풀이된다.
이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을 하직하심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인연에 따라 충분히 하실 일을 다했고, 좋은 일만을
가려서 다하신 분이고, 인연 법에 따라 불타로서의 이 세상 육신으로서는
더하실 것이 없으니, 마땅히 열반하신 어른이라는 뜻으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열반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라야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6,세간해(世間解);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알 바를 다 아셨고 모르는 것도
그분께서는 다 아시는 분이 시므로, 이는 아는 것의 아는 것도 아셨고,
모르는 것의 모르는 것까지도 다 아셨으므로 불려진 이름이다.
7,무상사(無上士);부처님은 행복의 최고 정점인 열반을 증득하셨으니
이것은 왕이나 신이나 신 왕이나 신왕의 왕일지라도 부처님만큼 위대하고
높으시지 않으므로, 부처님 위에 갈만한 분이 없다하여 불려진 존함이다.
8,조어장부(調御丈夫);우선 조어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최선의 방법으로
잘 다스려 항복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의 말은 모든 악과, 선과, 일체의 것들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옳게 다스린 대장부라는 뜻인데, 과연 무엇을 얼마나 잘 다스리고
옳게 하 섰는지 여러 가지 중에서 다만 그분의 수도시(修道時)의 사실만이라도
간단하게 추려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하의 내용은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자기의 말씀임을 밝혀둔다.
[나는 실로 고행자. 최상의 고행자다. 나는 실로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또한 더럽고도 가난한 삶을 행한 자다. 최상의 더러운 곳에서 가난하게
산 자다. 나는 실로 무엇이나 혐의롭고 싫어하는 혐염(嫌厭)행자다.
최상의 혐염행자다. 나는 실로 누구보다도 외롭고 혼자인 고행자다.
최상의 고행자다. 나의 고행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옷도 벗고 산 무례자요, 손을 핥는 자였다.(오너라) (있어라)는
청을 받지 않고 가져다주는 것이나 또는 특히 내게 베푸는 것이나,
특정한 곳에서 청하는 것, 또 아이 밴 부인에게서나, 젖먹이는 부인에게서나,
남자에게 안긴 여자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않앗다.
개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가 엉킨 것을 받지 않았다.
물고기와 육고기를 먹지 않고, 곡식으로 만든 곡주와 과일로 만든 과즙과,
죽물을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 한 번 먹거나 이틀에 한 번 먹거나
이랫동안에 한 번 먹었다. 이렇게 해서 한 번 먹도록 까지 정기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나는 또 야채, 피밥, 등겨, 물거품, 풀, 해묵은 과실, 저절로 떨어진 과실
등은 먹었다.
나는 옷으로는 삼베 천과, 짐승깃털과 같은 것으로 엮어 입었다.
나는 수염과 털을 자르고 항상 섰거나 또는 끓어 앉으며 가시로 만든 침상
위에 눕고 하루에 세 번씩 목욕을 했다.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고행과 어려움을 행했다.
실로 이와 같은 것이 나의 고행이었다.
또 다음과 같이 나는 더러움을 수행한 일이 있었다.
내몸에는 여러 해의 때가 끼어서 저절로 살가죽이 되었다.
나는 이런 때를 손으로 떨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빈예행이었다.
또 나는 다음과 같은 혐염행이 있었다.
나는 나아가거나 물러가거나 조심조심 한 방울의 물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나의 혐염행이었다.
또 내게는 다음과 같은 고독이 있었다.
나는 고요한 숲속에 있었다.
목동들이나 풀 베는 자나, 나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숲속에서
더 깊은 숲속으로, 낮은 지대에서 더 낮은 지대로,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도망해 갔다. 그 까닭은 그들이나를 보지 못하고,
나 또한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치 고요한 숲속에 있는 사슴이 사람을 보고 숲에서 숲으로 도망하는
것과 같이 나는 도망해 갔다. 이런 것이 나의 고독행이엇다.
나는 어미 소가 없을 때 또는 목동이 없을 때에는 네발로 기어가서 어리고
젖내나는 송아지의 소똥을 먹었다. 이러한 것이 나의 부정식이었다.
나는 무섭고 두려운 침침한 숲속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라도 아직 탐욕심을 버리지 않는 자로서는 그 총림에 들어가면
거의 모두가 두려워서 몸에 털이 일어선다고 했다.
나는 밤에는 춥고 눈이 내리는 겨울철의 초순에서부터 하순까지는 밤에는
맨 땅바닥에 있었고, 낮에는 침침한 숲속에서 지냈으며 또 여름철의 낮에는
맨땅위요, 밤에는 침침한 숲속에서 지냈다.
이리하여 나에게도 나도 모를 놀랠만한 계송이 저절로 생각났다.
<더운 날도 추운 밤도
오직 홀로 무서운 숲 속에서
벌거숭이로 불도 없이 앉았으니
말없는 자는 원을 이루리라>고.
또 때때로 나는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시체의 해골을 자리로 삼았다.
그때에 이 목동들이 내 곁을 지나다가 내게 와서는 침도 뱉고 오줌도 깔기며,
썩은 나무 부스러기도 던지며 내 귀에 나무 꼬챙이를 집어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조금도 미운 마음을 일어 키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일이 나의 거처하는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대추 한 알만을 먹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몸은 극히 수척해졌다.
내 사지는 마치 갈대나 (카라풀)같이 되었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과 같고, 내 등허리 척추는 마치 자라틀에
고드랫돌과 같이 숨을 쉴 때마다 들고나고 하였으며,
내 갈비뼈는 오래된 묵은 집의 석가래의 부러진 것과 같았다.
또 마치 깊은 샘물의 빛을 굽어보이는 것같이 내 눈빛도 적게 먹음으로
말미암아 적게 보였다.
내 배 가족은 척추에 들어 붙었기 때문에 뱃가죽을 만지면 척추가 잡히고
척추를 만지면 뱃가죽이 잡혔다.
또 나는 대소변을 보러 가서는 힘이 없어 거꾸로 넘어지기도 했다.
또 나는 멥쌀 한 알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멥쌀 한 알씩으로 하루를 넘긴 내 몸은 몹시 마르고 쇠약해졌다.
이러한 고행, 이러한 수도, 이러한 고통으로써도 나는 인법(人法)을 넘은
특수한 최상지견(最上智見)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왜냐하면 성혜(聖慧)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9.천인사(天人師):
이는 하늘세계 에서나, 인간 세계에서나 스승님이 된다는 뜻이다.
만일 어떤 조물주가 있더라도 그도 역시 부처님에게는 배워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10.불(佛): 이 불자(佛字) 한 자를 해석 설명하는 데에도 실로 팔만 대장경을
다 들어댄다 한들 완전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과연 부처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살펴보기나 하자는 데에 그쳤으면 하는 생각으로
소위 오십이위를 설명하려고 한다.
오십이위(五十二爲)란 인간이 불타가 되어 가는 동안 닦아야할 오십이 단계와
그 내용이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을 합해서 오십이로 셈한다.
<가>십신(十信) : 불타의 가르치심을 조금치도 의심 없이 믿어야 하는 계단이다.
一.신심(信心); 결정코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확고하게 선 지경이다.
二.염심(念心);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며,
三.정진심(精進心); 불교수행을 조금도 게으름 없이 계 속 해나가는 것이다.
四.혜심(慧心); 항상 어리석고 우매하거나 삿된 마음은 버리고 오로지
정(正)과 실(實)을 닦아 나가는 일사 불란한 마음을 말한다.
五.정심(定心); 산란하거나 잡된 마음을 버리고 오직 불타가 되기 위해
마음을 한 곳으로 갖는 것.
六.불퇴심(不退心); 수행 도중에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七.호법심(護法心); 부처님과 불법을 위해서는 내 한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가짐이다.
八.회향심(廻向心); 자기의 모든 공덕을 오히려 다른 모든 사람에게 되돌리며,
자기는 더더욱 발전의 기틀을 굳건히 하여 불과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九.계심(戒心); 소극적으로 나쁜 짓만 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착한 일을 해 나가는 마음의 결심이다.
十.원심(願心); 더욱 더 원만한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발원심(發願心)을 내는 것이다.
<나>십주(十住): 앞에서 말한 십신(十信)을 닦아서 참되고 올바른 위치에
흔들림이 없이 머무른다는 의미로 주(住)라 한다.
一.발심주(發心住); 전 십신(十信)에서 닦은 수행공덕을 보다 완전케 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분발 노력하는 것이다.
二.치지주(治地住);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고 무상한 고로 자기가 자기를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자성(自性)의 본체(本體)를 똑바로 살펴 알아서 바르게 맑게
다스려 나가는 지위다.
三.수행주(修行住); 계속 좋은 지위와 좋은 일로 불타가 되기 위해 실천해 나가는
지위요.
四.생귀주(生貴住); 비로서 정각자가 될까 말까하는 씨앗의 유전인자만큼
다다른 지위.
五.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불타와 흡사하게 능통자재술을 갖추어
부족함이 없는 지위.
六.정심주(正心住); 용모도 부처님과 흡사하고, 마음가짐도 부처님을 닯은 지위이다.
七.불퇴주(不退住);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도저히 타락되거나 물러나지 않는 지위며.
八.동진주(童眞住); 그 마음이 부처님을 닯아서 어린애의 마음과 같으므로
성내거나 미워하는 등의 삿된 마음이 없는 지위이다.
十.관정주(灌頂住); 비로소 부처님께서 다음에 부처될 것이라고 인정해
주실만한 지위에 다다른 것이다. 고대의 인도 풍습에는 왕자(王子)가 자라나서
곧 왕위(王位)를 이을만하면 왕(王)이 손수 사해(四海)의 바닷물을 왕자(王子)의
머리 위에 부어 줌으로서 예식(禮式)을 삼았는바 관정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다>십행(十行): 보살이 십주(十住)에서 불자(佛子)라는 인가를 얻은 뒤에
다시 나아가 이 때부터는 자기의 수행공덕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일로써
닦아 나가는 계단이다.
一.환희행(歡喜行);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쁜 행동이시니,
곧 중생을 제도함이 보살의 괴롭고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二.요익행(饒益行); 보살이 중생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심에는 항상 넉넉하고
충분토록 해 주심이다.
三.무진한행(無瞋恨行); 어떤 경우에도 성내거나 한스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고
중생을 보살핌이다.
四.무진행(無盡行);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심에 있어서는 계속 계속으로 쉬임없이
하심이요.
五.이치난행(離癡亂行);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심에는 조금 치라도 미숙 되거나,
잘못되거나 순서가 뒤바뀌거나 하는 등의 헛스러움이 없는 것이요.
六.선현행(善現行); 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심에는 항상 그 결과가 옳고 참된
것으로 나타나게 하심이요.
七.무착행(無着行); 어떤 보수나 값을 바라거나 일방적으로 인정을 갖고 중생
구제를 하심이 아니요.
八.존중행(尊重行); 보살이 중생을 건져 주심에는 건져주시는 자기나, 건져질
대상인 중생이나, 건지는 행위, 그 자체를 조금도 가볍거나 소흘히 여기시지
않고 공경히 하심이요.
九.선법행(善法行);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심에는 그 기준을 부처님과, 법과,
그 내용에 맞게 하심이요.
十.진실행(眞實行); 보살이 중생을 건져주심에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되시고 실다우심이다.
<라>십회향(十廻向): 오십이위 중에서 삼십위는 이미 수행해 왔는바, 여기에서는
다시 지금까지 해온 모든 공덕을 오히려 일체 중생에게 되돌려 주시는 동시에
보살 스스로는 그러한 공덕으로 인해서 불과(佛果)로 나아가는 다리로 삼으시는
지위이다.
一.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보살이 중생 제도를
하실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성스럽고 완성된 인격자가 되게 공덕을 쌓으심이요.
二.불괴회향(不壞廻向); 중생들로 하여금 삼보(三寶)를 믿고, 신앙심을 가져서
크고 한량없는 공덕이 되게 함이요.
三.등 일체제불회향(等 一切諸佛廻向); 이는 삼세(三世)의 부처님들이 행하고
지으신 바의 회향과 똑같이 생사에 집착되지 않고 보리 지혜를 얻어서 부처 되게
하심이요.
四.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보살 수행시의 닦은바 모든 공덕이 두루 비치어
이익이 됨이요.
五,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 보살의 끝없고 가이없는 공덕으로 무진한
선근의 곳집을 지으심이요.
六.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 모든 옳고 바른 결과와 원인이
하나로 같아서, 그 모든 선근과 그것을 가진 중생들까지도 차별이 없이해주심이요.
七.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일체 중생이 모두 다함께 복되고
이익 되게 하심이요.
八.진여상희향(眞如相廻向); 보살이 중생들을 위하사 진실한 모양에 순응하여
이루어진 모든 공덕과 복을 함께 누리시게 함이요.
九.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 일체 모든 법에 집착되거나 속박되는
바 없이 해탈을 얻어 선법을 돌이킴이요.
十.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심에 온갖 복덕을 구습
하셔서 이를 진실계의 한량없는 공덕으로 되돌려 회향하심이요, 그복덕으로
중생도 또한 부처가 되도록 힘쓰심이라.
<마>십지(十地) : 이것은 보살이 중생들을 제도하심이 마치 땅이 만물을 그 위에
나게 하는 것과 같은바, 보살도 중생들을 짊어지고 교화하시며 이익을
베풀어주신다는 뜻으로 지(地)라고 한다.
一.환희지(歡喜地); 보살이 참다운 지혜를 내어 불성(佛性)의 이치를 바로 보고
기쁨에 다다르신 지위요.
二.이구지(離垢地); 모든 번뇌와 어리석음을 초월해서 깨끗함이
진여체와 같은 것이요.
三.발광지(發光地); 보살이 비로소 반야의 지혜로 광명을 나타내시는 지위요.
四.염혜지(念慧地); 발광지에서 더욱 더 크고 힘찬 지혜의 불꽃을 사방으로
내시는 지위요.
五.난승지(難勝地); 모든 진리의 지혜로서 우리의 살아가는 이치에 맞게 하시는
것이요.
六.현전지(現前地); 이미 우주의 본체와 보살의 체가 둘이 아닌 지위요.
七.원행지(遠行地); 깨닫고 깨닫지 않은 분별까지도 초탈한 상태에서 더욱 더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신 지위요.
八.부동지(不動地); 진여체가 되는 지위요.
九.선혜지(善慧地); 거의 불타가 되신 지위요.
十.법운지(法雲地); 오직 하시는 바의 일이 모든 중생들에게 가장 값진 이익만을
주시는 지위다.
<바>등각(等覺): 오십이위중 오십일위에 해당하는 지위로서 이 자리에 오르면
부처님과 대등하다시피 하므로 등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불(佛)은 아니다.
<사>묘각(妙覺): 오십이위중 맨 마지막으로서 깨달음을 몸소 실천하여 궁국적으로
깨달은 것을 깨달은 행동으로 남김없이 연결시킨 지위이시다. 이 각행이
궁만(窮滿)하야 사 비로소 불타(佛陀)인 것이다.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道);(원컨대 삼악도를 영영 떠나며)
*원아속단탐진치(願我速斷貪瞋痴);(탐진치 삼독을 속히 끊게 하옵시고)
*원아상문불법승(願我常聞佛法僧);(항상 불법승 삼보를 만나기를 원하오며)
*원아근수계정혜(願我勤修戒定慧);(원컨대 계정혜를 부지런히 닦기 원하오며)
*원아항수제불학(願我恒修諸佛學);(항상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받들기 원하오며)
*원아불퇴보리심(願我不退菩提心);(항상 보리심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기 원이 오며)
*원아결정생안양(願我決定生安養);(아미타불 서방정토에 나기를 원하오며)
*원아속견아미타(願我速見阿彌陀);(속히 아미타불을 만나 뵈옵기 원이 오며)
*원아분신진찰(願我分身邊塵刹);(이 한 몸이 온 세계에 두루 이익 되게 원하오며)
*원아광도제중생(願我廣度諸衆生);(끝없는 중생을 모두 제도하기를 소원합니다)
서원(誓願): 여러 보살님들의 중생을 위한 소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네 가지 서원은 모든 보살님에게 한결같이 공통되는 것이므로
총원(總願)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님네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네 가지만은 반드시
실천해야 되는 것임으로 가히 원을 세운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선서를 했다라는 뜻으로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네 가지 큰 서원을 발하옵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중생이 끝이 없지만 기어이다 건지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번뇌가 끝이 없지만 기어이다 끊으리다)
번뇌(煩惱): 번뇌라는 말은 [잡념]이라고 간단히 표현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번뇌라고 말할 때는 상당히 복잡한 의미가 있으니 여기서는 우선 간단히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번뇌란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겨서 때로는 욕심도
내고, 화도 내며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여 몸과 마음을 어지럽고 산란케하는
마음의 제요소를 말한다.
이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열 가지 근본 번뇌가 있고, 사리분별에서 생긴 것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근본번뇌와, 사물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수혹(修惑)과, 이치의 잘못 판별에서 오는 견혹(見惑)등이 있으며 오리사(五利使),
오둔사(五鈍使)와 삼계에 따라서 분류한 팔십팔번뇌와 백팔번뇌와 나아가서는
팔만사천 번뇌가 있다고 한다.
인간이 수도를 하여 불타가 되기 위해서는 이 낱낱의 번뇌를 다 끊을 수 있는
지경에 다다라야만 하는 것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짐작 코도 남음이 있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한량없는 법문을 기어이다 배우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위없는 불도를 기어이다 이루리다)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내 마음속 모든 중생 기어이다 건지리다)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내 마음속 모든 번뇌 기어이다 끊으리다)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내 마음속 모든 법문 기어이다 배우리다)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내 마음속 모든 불도 기어이다 이루리라)
*발원이귀명례삼보(發願已歸命禮三寶);(소원을 일어켜사와 삼보님께
목숨 바쳐 예배드립니다)
귀명(歸命);귀명이라는 말은 나무(南無)라는 말과 비슷한 것이다.
다만 그 내용의 강약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나무라는 말은 보다 종교적인 것을 나타내며,
이 말에는 귀위할 주체인 나 보다도, 의지할 바의 의지체인 불보살님께
더 큰 비중을 두는 용어요, 귀명(歸命)은 그 의지할 자신의 주체에 더 큰
비중을 두어서 자기의 목숨일지라도 불보살님께 바치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겠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나무는 어른스럽고 점잖으며 자신이 만만하게 불보살님에게
의지한다는 태도이고, 귀명은 청년의 용맹스럽고 저돌적이며 약간의 모험적인
신앙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나무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시방에 상주 하시는 부처님께 귀위 합니다.
*나무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시방에 상주 하시는 법보님께 귀위 합니다.)
*나무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시방에 항상 계시는 스님네께 귀위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수경만을 외울 때는 여기에서 끝나거나 아니면 장엄염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천수경을 외운 뒤에 불공이나 다른 예식으로 계속 예행해 나갈
경우에는 대부분 뒤에 오는 개단진언, 건단진언 등을 계속하여 정법계진언까지
외워나가는게 통례이므로, 여기에서는 정법계진언까지 계속 해석해 나가겠다.
물론 비단 불공이나 예식시가 아니더라도 본 경에 있어서는 계속 송주를 해나가서
{정법계진언}까지 끝마치는 것이 훨씬 좋은 뜻과 내용이 담겨져 있음은 물론,
본경(本經)의 내용을 자세히 관찰해 보아 누구나 마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 (삼업을 깨끗케 하는 진언)
삼업(三業);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마음으로 짓는 업 [구업(口業)참조]
*개단진언(開檀眞言);(법단을 여는 진언); 이 개단전언은 앞에서 읊어온
모든 염불은 그 내용이 거의 모두가 죄를 용서받고 소원을 이뤄 주십사 하는
것에 일관되어 왔으나, 이제부터는 진정한 우리의 교주 부처님에게 모든 영광과
소원과 죄의 용서를 하나로 귀결시켜 끝맺음을 해야 할 것인바, 이[개단진언]은
바로 그러한 뜻으로 부처님이 앉으실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다.
*건단진언(建檀眞言); (법단이 세워진 진언) : 소원을 비는 자와 그 소원을
들어주실 부처님이 한 자리에 갖추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청정한 법계에 대한 진언) : 앞에서 이미 언급된
본문에서 나온[정법계진언]과 이[정법계진언]은 말이나 문자가 꼭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이 중복된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으나 앞에 나온 [정법계진언]은
[옴남]이라는 진언이 있고 이 위의 것은 그것이 없는 뒷말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 나오는[정법계진언]은 천수경전체의 연결로 볼 때 이는 다름 아닌
이 천수경 자체의 경회향(經廻向)에 의해서 다시 한번 더 강조된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은 이 [정법계진언]의 뒤에 이어지는 경문의 내용으로 보아도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즉
*나자색선백(羅字色鮮白);(훤한 빛으로 진언을 편 것은)
*공점이엄지(空点以嚴之); (공점으로서 장엄이 됨이)
공점(空点); 이 점은 모든 법의 공하다는 이치를 나타내 보인 공리(空理)가
마치 점(點)을 찍은 것 같아서 일목요연하게 흐트러짐 없이 잘 끝맺음되었다는
의미다.
*여피계명주(如彼啓明珠); (맑은 구슬을 꿰매어서)
*치지어정상(置之於頂上); (저 정상에 둔 것이 됨이요)
정상(頂上); 머리의 맨 위 약간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이는 사람의 몸뚱이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본문(本文)에서 이것을 사용한 뜻은 곧 불교의 최고
높은 자리인 정각(正覺)(깨달음)의 자리를 말한다.
*진언동법계(眞言同法界); (진언이 법계와 같아)
*무량중죄제(無量衆罪除); (한량없는 죄를 소멸하나니)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 (모든 사악에 부딪치거든)
예처(穢處); 더러운 곳이다. 즉 죄스럽고 악이 되며 나쁜 영향을 끼칠만한
모든 처지와 경우를 말한다.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 (마땅히 이 글<천수경>을 외우고 외워라)
가차(加此); 위의 말은 가행(加行)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다.
가행(加行)은 다시 힘을 더하여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가차(加此)도 그러한 뜻이다.
다만 여기에서 이것이라는 [차(此)]자를 붙인 것은 천수경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당하거든 그럴수록 이 천수경을 많이 외우라]는
말로서 이 천수경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끝)
*천수경을 수지독송하는 법우님들은 이 해설서를 일독하시어
항상 뜻과부합한 천수경을 독송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소서()()()***
***화곡산에서 일없는 노인 합장***
원오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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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배웠읍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일없는 노인이 아니시군요. 살아게시는 부처님. 거룩하심니다. 금방 도를게치신 젊은부처님게 큰절 올림니다.
뜻을 정확히 몰라 답답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읽어볼랍니다 ()()()
뜻을 정확히 몰라 답답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읽어볼랍니다 ()()()
뜻을 정확히 몰라 답답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읽어볼랍니다 ()()()
글을 읽을수 있는 인연을 주신 부처님께 감사합니다 불공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행길에 오르신 미래의 부처님들을 위하여 하나의 징금다리가 되도록 항상하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성불하소서!()()()
()...닉이 낮아서 높아 보이는 님!~손에 쥐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초심자에게 많은 도움 주시는군요! 기도 시간 되어 다 못 읽고 나머지는 내일 읽겠습니다.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