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선(快速船)
-오랜 친구가 되어
나이가 들어 세월의 빠름에 젖다 보니 가는 세월에 속수무책으로 그러려니 하고 따라간다. 졸업한 지 오십오 년의 세월이 흐른 오랜 친구가 된 중학 동기들 이십여 명이 하루 여정을 떠났다. 다들 일흔을 넘겼으며, 코로나의 시련을 이기고 모여 단양 방면으로 향했다.
오늘 만남의 인연은 회장단이 발의하여 원인을 제공했고, 이에 동기생들의 협력과 참여로 원인의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연줄이 닿았다. 그러니까 ‘因’과 ‘緣’이 하나가 되어 인연이며 하루 여정이 성사되었다. 그 인연은 그저 온 것이 아니라 오게 만들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기쁨과 행복이 뒤따랐다.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를 둘러보았다. 소백산 북쪽 줄기 두 능선의 계곡을 따라 요사채가 줄지어 있었다. 비탈진 길을 따라 계단으로 마지막까지 올라갔다. 그곳은 대조사전(大祖師殿)이었다. 구인사를 창건한 상원원각 대조사의 ‘금동존상’이 모셔져 있었다.
대조사의 법어(法語) 중에서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가 참모습이며 나고 죽는 것이 덧없음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을 곱씹으며 내려오면서 사명대사의 설법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생야일편 부운기, 사야일펀 부운멸”이라고 했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이 한 점 구름이 솟아오르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마도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한 것은 부처님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모르겠다.
그곳을 떠나 충주호로 갔다. 거기서 쾌속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보았다. 호수 좌·우측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거북 바위를 비롯하여 곰, 초가집 등의 여러 괴석이 세월에 버티며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물 위를 빠르게 달리는 모습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간의 화살을 쫓는 기분이었다. 또 배가 기울어지는 묘기를 부려 감탄했으며 스릴과 쾌감을 느끼게 했다.
쾌속선의 빠름과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어짐이 우리의 남은 인생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빠르고 기울어지고 있지 않은가? 빨리 가는데도 서러운데 암초를 만나 기울고 있다. 졸지에 배가 기울어 뒤집히는 것처럼 동기 중에는 더러 지하로 내려간 친구도 있으니 말이다. 조용한 호수에 돛단배를 타고 유유자적하며 느리게 갔으면 좋으련만….
돌아오는 길에 자꾸 쾌속선이 눈에 아른거리며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인 것을 하고 마음을 달랬다. 그러면서 세월아 부디 더디 가라고 간구해 보기도 했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예측불허라 내일의 걱정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즐거움과 행복에 감사하면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