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아멘!!♥
20230905 날마다기막힌 새벽 #1320
"높은 산에 올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
이사야서 40장 9절
"제가 1992년도 부터 코스타라는 집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미주나 유럽에 있는 대학생들 위주로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축은 홍정기 이동원목사님 주축으로 해서.....
그러다가 전세계에 있는 이민자들 청소년들까지 합류하는
큰 집회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집회가 있을때 저에게 설교를 맞겨 주셔서
창세기 말씀으로 고지를 정복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이 이후로 저에게 붙은 별명이 고지론자 였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고지를 정복하라라는 말에
아직도 동의를 합니다..하지만 많은 비판을 받은 이유는...
정복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복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과 세상적 개념이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은 정복은 착취 빼앗는 것이구요...
짓밟아 자기의 이익을 얻는 것이거든요...
세계를 정복하는 사람들은 그 정복지를 노예삼고 그러지요..
정복이 좋은 개념이 아니지요...
힘있는 자가 약자를 짓밟고 탈취하고 억누르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땅을 정복하라라고
한 개념은 그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정복의 개념은 섬김입니다...
내가 책임을 지고 저들은 너희보다 약하고
도움이 필요하니 그들을 잘 다스려라 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저들을 잘 먹이거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때 제자들이 거부했지만...
어찌 선생님이 저희 들의 발을?
그러나 그 이유는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겨준것처럼
너희들도 다른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라는 얘기입니다..
세상의 정복은 개인적인 야망이지요...
기독교의 정복은 소명의 성취입니다...
약한자들 부족한 자들을 돋우워주는 언덕같은
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 줘라....
공부해서 남 주나라고 할때는 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지배하는 개념으로 가는데요
공부해서 남 줘라라고 하면 남에게 줄려고 공부를 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면 잘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부 잘하는 것을 야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섬기기 위하여 남에게 베풀기 위하여돈을 벌고 성공하는 일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정신인데...
거기서 노블리스오블리제의 정신이 나타난것이 아닐까?
겸손은 실력을 낮추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참 미효한데 잘못하면 속아요...
실력을 낮추는것이 겸손이 아니라 자세를 낮추어야해요..
진짜 겸손은 실력이 높은데 자세를 땅끝까지 낮추는 거에요..
그 때 힘이 생겨요....
물은 높은데만 있어도 힘이 없고 낮은데만 있어도 힘이 없어요..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떨어질때 엄청난 힘이
발생되는 거에요...
세상을 잘 섬기고 돌보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성공을 하는 일은 굉장히 적극적인
생각인데...그것을 무조건 죄악된 것이고
야망인것으로 몰아붙여놓으면 이것이 굉장히
무능한 기독교가 되는 것이에요....
아름다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높은산에 오르라...
높은 산에 올라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는 거에요...
높은산에 올라서 전하면 그 효과가 커져요...
고지를 정복하면 전투력이 3배에서 5배 높아진데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유리하여 전쟁은 늘 고지를 정복하는데 올인하잖아요..
돈은 욕심으로 버는 것이 아니라
소명으로 버는 것이에요...
높은 산에 올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우리는 무슨일을 하던 작은 일을 하든지 성실해서요...
세상사람들의 리더가 되어야지...
세상사람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면...
힘을 발휘할수가 없어요....
제가 말씀대로 살아봐야지 하는 결심은 했어요...
이해가 되면 애해가 되는데로 따르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따라 살아야지 하고 결심은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훈력과 연습이 필요하더라구요...
그 훈련의 하나의 방법으로
신호대로 운전해 봐야지...입니다..
교통신호 한번 잘 지켜보자 교통신호도 하나 잘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겠나?
교통신호를 잘 지킬려고 무진 노력을 했어요...
제가 새벽에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운전을 하면
새벽에는 차가 없거든요 빨간불에 거의 다 차가 지나가요
그런데 지켜봐야지 하고 빨간불에 서고
파란불에 가는데 빨간불에 서면 뒷차가 내 버려두지를 않아요..
빵빵 번쩍번쩍 거려요....그래도 난 연습중이니까
안가고 있으면 제 차를 추월해서 액셀을 꽉 밟고
왕~~하고 그렇게 지나가요...
신호대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앞에 서있는것이
참으로 중요해요...
선점 선두에 서고 고지를 정복하는 것은 중요해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좋은 도구가
될수가 있어요.....
사도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배설물처럼 여겼어요..
배설물 처럼 여겼지만 배설물처럼 버리지 않았어요
바울은 이 시민권을 잘 써먹었지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높은 산에 오르라...
우리에게 주는 매우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든 장사를 하든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남보다 잘 하면 좋아요....
그래서 돈을 잘 벌면 좋아요....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이 욕심이 아니라...
아름다운 소식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높은 산에 오르고....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것이에요....
날기새..."
애쓰셨습니다..
"평안할찌어다 "
"내가 변해야
직장이 교회가
세상이 변한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기회를 누릴 믿음이 부족할뿐..."
주님의 마음으로
기대하며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한복음 17:24)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께 소중합니다. (우리는 그의 신부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소중함이 우리의 우상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 주시지만 (양자로 삼아주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위대함을 누리도록 이끄시는 방식으로 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하루를 보내기 위해 오셔서 여러분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과 함께 지낼 그 날의 나머지 시간을 여러분은 어디에 집중하시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노래와 설교가 잘못된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기쁨의 높이가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 느낌에 한정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구!” 이것은 분명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핵심도 아닙니다.
“나는 사랑 받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 “사랑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위대하고 그리스도를 가장 높이는 기쁨은 온 종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놀랍습니다!” “주님은 놀라운 분입니다!”라고 감탄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분은 가장 어려운 질문에도 답하시는 놀라운 지혜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더럽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만지시는 놀라운 긍휼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병원 검시관 사무실에 있는 죽은 여인을 일으키시는 놀라운 능력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오후에 일어날 일도 예측하시는 놀라운 선견지명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지진 중에도 주무시는 놀랍도록 두려움이 없는 주님입니다.
그분은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걸으며 우리가 목도하는 것들에 완전히 놀라움으로 압도됩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 가까이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의 불에 의해 타버리는 일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전부 (죽음까지도) 행하시려는 열망입니다. 구원, 속죄, 용서, 칭의, 화해 –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들은 사랑의 행동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목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하며 그의 놀라운 영광을 보고 감탄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고 그분을 보며 그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들과 교사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을 그의 사랑의 목표로 이끌어 주십시오. 구원과 속죄, 용서, 칭의, 화해 등이 우리를 그리스도 그분을 즐거워하는 지점까지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일에 매진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이 목표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