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에 또 하나의 강대 강 대립이 생겼습니다. 보통 강 대 강 대립은 서로 어긋나는 사고속에 생기는 것이 원칙인데 비슷한 성향의 세력들이 부딪히는 약간 요상한 갈등과 대립이 생기고 있습니다. 바로 정부와 의사협회 사이의 치킨게임 말입니다.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기관차같은 게임 즉 어느 한 쪽이 이길 때까지 서로 피해를 무릅쓰며 경쟁하는 게임을 의미합니다. 의대 정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협회가 갈등을 빚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한치 양보없는 강 대 강의 대접전이 펼쳐질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그런 갈등이 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6일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2천명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의사협회는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증원을 강행했다면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불법이라며 강경 대응으로 대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원래 대선과 총선 등 나라의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서는 강경한 조치 이런 것을 잘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도 노동조합이나 강경 진보단체들과의 갈등이 아니라 비슷한 성격의 집단이 집단으로 맞붙는 약간 희귀한 장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한두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거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그동안 지역이나 특정 과에 경우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서 출발합니다. 지역 소멸 등의 우려로 지금 산부인과가 없는 군 단위와 중소 도시 등 지자체가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그리고 소아과의 경우 진료자체가 멈추거나 의사들이 소아과를 지원하지 않는 경향 등으로 절대수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이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소아과 지원을 할 젊은 의사들이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산부인과나 소아과 그리고 응급관련 부서에 의료진이 당연히 배치되어야 정상적인 의료행위가 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단호하게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결정에는 최근 소아과나 산부인과 그리고 응급치료관련 과와 관련해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발표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격렬합니다. 의사협회는 설 연휴가 끝난 뒤 집단 행동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파업의 파급력이 큰 전공의들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할 방침입니다. 서울지역 빅 5 병원가운데 4군데의 전공의들은 파업 참여를 이미 결정했습니다. 지난 정부때도 바로 이 전공의들이 의사가운을 벗고 파업에 들어서자 정부는 의료계가 마비될 것을 우려해 방침을 접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부의 입장도 의사들의 입장도 이해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가급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문제해결을 이루었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사안이 발생하면 그 사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내놓는데 가장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판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는 부류입니다. 자칫 박쥐같은 인물이라고 욕도 듣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많은 나라에서 그래도 중간자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나름 중간자역할로 제시하는 의견입니다.
우선 정부가 너무 의사세계를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의사들이 업무 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면허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물론 정부의 업무 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지요. 그렇지만 의료행위가 정부의 형사처벌이 무서워 결정되는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 생각됩니다. 물론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법에 저촉하느냐 여부는 제가 내릴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의 명분은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전공의들이 파업하면 병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치는 의사세계를 잘 모르고 하는 판단으로 느껴집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것을 병원장들이 막지 못하면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또한 파업 참여 전공의 명단을 정부에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병원측은 너무 답답한 지시라고 말합니다. 병원장의 지시가 전공의에게 먹히지 않는데 어떻게 막느냐는 것입니다. 정부측은 윗선에서 지시하면 무조건 복종하는 그런 시스템을 생각한 모양인데 사실 의료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사의 지시나 의견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이른바 상명 하달식 시스템을 생각한 모양인데 그런 상황은 군인이나 검사세계말고는 별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전공의도 엄연한 의사인데 자기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병원장이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보직변경 등은 할 수 있지만 파업에 참여하면 무조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조치는 할 수 없는 사황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가 증원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지대에서 묵묵히 의료생활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의사가 자신의 과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 너는 소아과로 가라 너는 지방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그들의 선배가 가는 그런 길로 갈 것이 너무도 명확합니다. 군대처럼 의무적으로 특정 부서에 근무할 것을 명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고등학교와 학원가에서는 요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지요. 그냥 무조건 의대 지망하겠다고 다들 난리랍니다. 정원이 늘어날 때 가지 언제 가겠는냐는 것입니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발표가 가져온 현상입니다. 무슨 의대만 가면 인생 모든 것이 해결되는냥 그렇게 세상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신없이 지원한 의대에서 졸업한 뒤 지금 정부가 의도하는 그런 장밋빛 의사 정책이 먹혀들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대 정원 문제는 칼로 무우 베듯이 그렇게 처리해서는 또 다른 문제를 많이 양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힘들겠지만 정부와 의사협회가 정말 한국의 의료계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강구해 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강 대 강의 극한 상황으로 어느 한편이 지고 어느 한편이 이기는 식이 되어서는 절대로 문제 해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차근차근 문제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정말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한국 제1의 직업이자 의술을 행하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과 고시에도 붙고 경험도 많은 정부 관계자들이 합의를 해내기가 그렇게 힘든 것만도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4년 2월 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