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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다음 이미지 및 위키백과 사전 내용 참조
2009년 3월 18일 방송된 무릎팍 도사 문성근편
2012년 나는 꼼수다 봉주 19회 장준하 의문사 편
장준하 윤동주 문익환 이 세분의 이야기를 해볼까함
위 사진에는 윤동주시인 문익환 목사님만 있음
사실 윤동주 시인은 서시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장준하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또 모름
바로 이분들 이심
하지만 이분들은 정말 김구 선생님처럼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하는 분들임
그러나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는가!!!
바로 박정희 대척점에 서있던 인물이었기 때문
박정희와 같은 시대에 살며서 선택의 기로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하며 살아오신분들이심
특히 장준하 선생님은
박정희가 가장 무서워했던 인물이심
실제 에피소드 하나를 투척하면
장준하 선생님을 중앙정보부에서 맨날 조사 한다고 어쩌고 끌고 갔음
37번 체포되었으며
9번 투옥 되심
그러다 어느날 장준하 선생님 또 끌려 간것임
그런데 뭣도 모르는 쫄갱이 정보위 조사관이 장준하 선생님보고
어디서 건방지게 구냐고 막 때릴라고 그런것임
장준하 선생님 빡침 !!!
그사람을 딱 손으로 잡고
오히려 그사람들을 막 때릴라고 함
"나는 독립운동한 광복군 장교인데 나라를 배반하고 민족을 반역한 천황에 충성했던 일본군 장교놈 부하가
어디감히 나를 때릴려고 하느냐 !!"
호령호령하심
부하 쫄아서 바로 상사에게 달려감
"저사람이 막 조사도 안받고 비협조적이고 감히 박정희 각하보고 친일파래요 " 막 이름
그 상사 하는말
"말은 맞는 말이다 "
그러고
장준하 선생님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고
장준하 선생님 나가실때 경례를 했다고 함
이렇듯 장준하 선생님은 유신 독재 시대에서도 그 이름만으로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른이셨음
그리고 장준하 선생님은 박정희 같은 놈에게 비교 되는 것도 기분 나빠하셨고
사실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인물 이었음
이분이 75년도 8월에 산에서 등산중 돌아가심
당연히 의문사
그리고 박정희는 장준하선생님이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서 말이라도 꺼내면 바로 잡아감
정말로 긴급조치 3호로 조항이 있음
(이분이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되버림 )
그래서 실제로 이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는 구속되었고
외신 기자들은 추방되었음
이것만 봐도 박정희가 장준하 선생님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수 있음
이 돌아가신 시기가
박정희 막기위해서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로 장준하 선생님을 추대했고
장준하 선생님은 이러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출마를 결심하셨을 때임
물론 장준하 선생님도 자신이 전면에 나서면
위기를 느낄 박정희가 뭔짓이라도 할것이라고 예감은 하셨음
그래서
김구선생님에게서 받은 태극기
-장준하 선생님은 김구 선생님 비서이심 -
나중에도 이야기 하겠지만 징병에 끌려간후 거기서 탈출해서
걸어서 대한 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까지 가심
거기서 김구 선생님을 만남
그리고 그분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됨
김구 선생님에게 받은 태극기는 어떤 태극기 인고 하면
바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기 전에 김구 선생님하고 같이 서서 찍은 사진 뒤에 있었던 그 태극기임
이걸 김구선생님에게 받아서 가지고 들어오신 것임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이걸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고
이대에 기증을 하심
현재 이대에 있는 국보와 같은 귀중한 태극기가 이 태극기임
암튼
박정희는 72년 유신헌법에서 6년으로 연장시킨 임기이후에는 대통령 선거를 해야하는데
그때가 너무너무 두려운 것임
바로 이런 장준하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모두가 장준하 선생님만이 박정희 유신독재를 막을 수 있다 하고
모였을때 의문사를 당하신것임
결국 박정희는
나중에 아예 단독 후보
체육관 투표 = 그것도 박정희가 뽑은 국회의원들만 투표할수 있음
이렇게 법을 뜯어 고쳐서 야당 후보가 아예 나올수도 없게 만들었음
이런식으로 79년 김재규에 의해 사살될때 까지 18년동안 독재를 했음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 했던 사람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만
(나도 많이 알고 있지는 않음 ㅠㅠ )
이야기 해볼려고 함
장준하 선생님과 문익환 목사님은 동갑 1918년 생이심
윤동주 시인은 1917년 생인데 12월 30일 생임
또래니까 뭐 친구했던 것 같음
어렸을적 부터 친구였던 것임
무릎팍 도사에서 나왔던 내용임
이곳에 가면 아직도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 자료와 사진이 전시 되어있음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어릴적 친구인데
그 성격 정말 달랐음
1940년 패망에 가까워진 일본은 마지막 발악을 함
강제 징집 명령으로 조선인을 징집했음
이때 세분은 성격에 따라 각자 다른 대응을 함
먼저 문성근씨 아버지 문익환 목사님
"난 일본을 위해 죽을 수 없다 "
일본 신학교 교장을 찾아가서 단판을 함 2~3시간 교장과 토론
그래서 전학을 허가 받고 전학 가버림
윤동주 시인
일단 입대를 하고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하고 생각함
적을 알고 그곳에서 부터 독립운동을 하자 라고 생각했던 것
그 과정을
자세히 보면 윤동주는 38년 4월에 연희전문 학교에 진학을 하고 거기서 시인 정지용을 만나게 됨
윤동주는 정지용을 존경했음
그래서 1942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에 일본 릿교 대학 영문과에 들어 갔다가
정지용이 다녔던 일본 도샤시 대학으로 편입함
윤동주는 일본에 건너가려고 했기때문에
거기서 독립운동을 하려함
일본에 가려면 창씨 개명을 해야만해서
윤동주를 일본에 보내려고 윤동주 집안은 창씨를 개명함
윤동주 집안도 독립운동가 집안임
이일은 윤동주를 일본에 보내려고
윤동주의 의지와 다르게 이루어진 일이라고함
나중에 이렇게 된것을 알고 윤동주는 엄청나게 괴로워 했고
참회록 이라는 시를 씀
(윤동주 집안은 창씨개명들을 하지 않고 독립운동으로 하려고 만주로 이주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집임)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 중에 계속 감시 상태에 있었음
불량선인 이라고 해서 요즘 말로 24시간 밀착 감시 불법사찰 뭐 이런 것임
그러는 와중에도 윤동주는 자신이 이곳에서 편하게 공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 했음
쉽게 쓰여진 시에 그런 고뇌가 잘 나타남
쉽게 씌여진 시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쉽게 쓰여진 시 는 내가 좋아해서 그냥 같이 올림 좋은 건 같이 봅시다 ^^>
윤동주는 정말 말그대로 문인 이었음
외유내강
(근데 윤동주 아버지는 윤동주를 의과 대학에 보내려고 했다고 함..... 그때나 지금이나... 아부지...ㅠㅠ )
1943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사상범으로 체포가 됐음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도모하던중에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가 돼서
그로부터 2년후
생체실험 당하다 돌아가신 것임
(수감중에 정체를 알수 없는 주사를 수차례 맞은 것으로 판명되어 이것이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고 보고 있음 )
이때 시신을 수습하러 건너 간것이 윤동주시인 아버지와 그의 당숙
쎄시봉 윤형주 씨 아버지
(사진 쪼꼬매...ㅠㅠ )
암튼 저기서 서있는 아저씨가 윤형주씨
윤동주 시인의 6촌 조카
안타까운 것은 윤동주 시인이 위독할 때 전보를 하나 보냈음
위독하니까 보석으로 빼내 올 수 있다는 내용 이었음
그런데 이게 사망 전보 보다 늦게 도착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윤동주의 사망전보를 젤 먼저 받은 사람이 문익환 목사님의 어머니이심
(문성근 아저씨 친할머니 되시겠습니다.ㅠㅠ )
그렇게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윤동주 시인 장례식은
문익환 목사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이
집전하셨음 ....
1945년 향년 29세 윤동주 시인은 그렇게 순국하심
문익환 목사님 -시인 이시기도 함 호는 늦봄
윤동주 시인에게 쓴 시
동주야 -문익환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과 장준하 선생님 이야기는
뚜비 컨티뉴
아웰비백
이분들 삶은 역사라서 쓸려고 보니 간단하게 요약만해도 많다....
그렇지만 박그네씨가 자꾸 현대사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그렇다면 뭐라도 할 수 밖에...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4.[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첫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356
5.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두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468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0. [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feat .오후 3시 의문의 괴전화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5900
11.[그때 그시절] 세명의 거짓말쟁이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feat.장준하 죽음 그후)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첫댓글 박심은데 박난다.. 장준하 선생님 돌아가신거는 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거랑 오버랩되네....
아....윤동주 시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라 시집 전집도 필사했는데...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도 같이 투옥됐었는데 윤동주 시인 돌아가시고 송몽규도 얼마 후 세상떠나고ㅠㅠ송몽규도 시인이었는데 시가 남아있는게 별로없어...
장준하 선생님은 잘몰랐는데 ㄹ혜애비도 저렇게 무서워할정도면ㅠㅠ시뱔 ㄹ혜애비 개새끼야
진짜 그때랑 달라진게 뭘까...윤동주 시인 정말 존경합니다...정말로 ...
글 고마워요 여시! 정말 잘 읽고 가요
여시글 너무 잘읽고있어!저런 훌륭하신 분들이 계셨다는게 너무 벅차다ㅜㅜ
박정희 진짜....어휴 그애비의그딸 ㅉㅉ
이런글넘나좋은것 ㅠㅠㅠ계속 올려줘 여시얌
아 너무 슬퍼 .. ㅜㅜ
마지막 저 시는 무릎팍 도사에서도 나왔었지. 보면서 눈물 엄청 흘렸는데 여시 글 보니 넘 좋다 좋은 글 고마워 장준하 선생님 이야기도 기대할게!!
박정희때문에 이런 분들이 알려지지 않아서 슬프다. 그래서 국정화교과서는 더욱 반대해야하는거야. 독재자 딸 박근혜 노답
여시 고마워 진짜 술술 잘읽힌다 두고두고봐야지
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