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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지금 박근혜를 주제로 책을 썼을까? 손석춘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아마도 나는 고성국의 인간적 매력에 반한 듯하다. 책 표지를 가득 채운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새 50대 중반인 그는 여전히 동안이다. 참여연대가 창립되고 그를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이따금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첫 인상이 겹친다. 인간적 호감은 지금도 변함없다. 몇 해 전 TV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마주쳤을 때 참 반가웠다. 그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도 굳이 논박하고 싶지 않았을 정도다. 물론, 거기에는 그가 당당하게 정치 평론의 길을 걸어왔다는 대전제가 깔려있다. 인간적 호감이 짙은 사람의 책에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진정성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같은 시기에 박근혜를 주제로 책을 냈다는 '인연', 그러면서 다른 시각을 보였다는 데 날카롭게 주목한 '프레시안 books'의 '권고'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정치평론가로서 고성국의 명성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고성국의 정치in>에서 2012년 대선을 분석한 '판 읽기'에도 공감하는 대목은 하나둘이 아니다. 가령 1987~88년의 대선과 총선을 '정초 선거'로 개념화하고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화 물결이 거대한 변화를 몰아"온 25년이 흐른 지금 "87년 이후 체제의 출현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은 핵심을 찌른다. 야권 연합이 2012년 총선, 대선 승리의 보증 수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대목도 적실하다. 고성국은 야권 연합만 하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고,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셈법이 진보 개혁 세력을 휩싸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옳은 지적이다. 박근혜의 대세론은 야권 연합 한방으로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 않다며, 야권 연합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무사안일을 경계하라는 비판도 시의적절하다. 다만 그 이유를 분석하는 데선 고성국과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의 거울>에서 썼듯이 나도 그처럼 박근혜를 만만하게 보거나 독재자의 딸로 바라보는 일부 진보 개혁 세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처럼 박근혜가 지닌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이나 강점 때문은 아니다. 그 점에서 보면 고성국의 박근혜를 바라보는 눈길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 말은 그의 정치적 분석이 감성적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는 어느 누리꾼이 분석했듯이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합리적으로 정치 현실을 분석하는 장점이 있다. 각을 세워 비판하는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짐작했듯이 내겐 그런 미덕이 없다. 물론, <박근혜의 거울>은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썼다. 하지만 <고성국의 정치in>에 견주면 전혀 중립이 아니다. 그래서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문득 고성국은 이 책을 왜 썼을까 짚어보았다.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한 비평일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선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다. 나 또한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해 박근혜 책을 썼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서평을 쓰는 상황에선 정직하고 싶다. 한국 정치의 성숙을 위해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그녀를 주제로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박근혜가 단순히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오늘의 위치에 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성국처럼 그녀를 '신뢰의 프레임'으로 분석하거나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이라는 "참 좋은 가정 환경이자 출신 배경"을 갖췄다고 단언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박근혜와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언제나 구체적 예시를 드는 고성국이 박근혜의 신뢰나 원칙에 대해선 마땅히 다뤄야 할 대목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이를테면 미디어 관련 법의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흔들린 소신이 그것이다. 육영수를 박근혜와 연관을 지어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의 아내로서 육영수는 김대중-노무현의 아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혜를 누렸다. 생각해보라. 노무현의 아내 권양숙이 청와대에 있을 때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딴 교육 사업이나 장학 사업은 물론, 천문학적 규모의 재단을 설립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정희와 육영수는 그렇게 했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정수장학회'나 '정영사' 따위는 이름부터 반민주적이고 역겹다. 그 뿐인가. 영남대학교 교주가 대통령 박정희이고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이 만들어져 지금도 그 부부의 자녀들이, 특히 맏딸인 박근혜가 대학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특권을 누렸고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유감이지만 고성국은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과거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독재자의 딸로만 박근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고성국의 명제에 동의하면서도 그 근거에 대해 판단을 달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정치의 과거, 좁혀서 박근혜가 1997년 대선 막바지에서 이회창의 선거 운동원으로 적극 나서며 정계에 복귀한 이후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과거를 찬찬히 톺아보아야 할 이유도 같은 데 있다. 지역 정치, 색깔 정치, 언론 정치라는 한국 정치의 소통 구조, 아니 먹통 구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과거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단적인 보기가 색깔정치다. 고성국은 놓치고 있지만―아니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박근혜가 노동운동을 대하는 시선은 살천스럽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바라보는 데서 색깔 정치의 과거는 선연하게 표면화한다. 나는 영남 주민들이나 유권자들이 박근혜의 과거를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기대가 얼마나 파국적인 정치 현실을 불러오는가는 책에서 제시했듯이 '이명박 학습 효과'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학습 효과마저 지역과 색깔, 제도 언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쓴 책조차 그 벽에 갇히는 상황을 예상하며 책을 출간하기란 씁쓸한 일이다. 민주당과 야당 연합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는 가장 크게 벌어진다. 물론, 고성국이 진보 개혁 세력이 야권 연합을 통해 박근혜와 일대일로 맞붙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야권의 대선 주자 중 박근혜만큼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고성국은 그 해법으로 '플러스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야권 연합'을 강조하며 '중원'에 주목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중도주의를 폐기하고 진보를 표방한 것은, 그리하여 당의 이념적 위상을 적어도 당론 상으로는 심각하게 좌 클릭한 것은 정치적, 전략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정치를 포기하고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한 그렇다"라고 단언한다. 요컨대 민주당이 "중도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어서 그는 "다른 야당들이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 중심으로 야권 연합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나는 그가 보기에 여전히 현실보다 이념으로 정치를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게 현실일까? 나는 민주당의 '좌클릭'이 현실을 반영한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책에서 썼듯이 좌클릭의 진정성을 믿지 않을 뿐이다. 야권 연합이 '플러스알파'가 되기 위해서라도 진보 대연합이 절실하다고 제안한 이유다. 고성국은 책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기원하며 마치고 있다. 온전히 그 길에서 그의 맑은 얼굴과 마주하고 싶다. |
첫댓글 고성국의 정치 환영합니다."정직"만큼 정치에서 강한 무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