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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빅토르 하라
칠레의 공산주의 민중가요 음악가.
2. 생애
1932년 9월 23일 칠레 산티아고 근처의 시골에서 출생했다.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잡역에 종사하던 어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다.
어머니는 칠레의 민요와 기타 연주법을 하라에게 전수했고, 빅토르는 이 때 처음으로 음악을 접한다.
1950년에 어머니가 죽자 빅토르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방황하다가 군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음악 활동에 전념한다.
칠레의 전통 음악과 포크송에 관심을 가진 하라는 누에바 칸시온에 몸 담고 있던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고 그녀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공연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1970년부터 앨범을 출판했고, 누에바 칸시온 운동에 뛰어들어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부르며 칠레의 사회 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빈민촌이나 시위 현장을 누비며 민중들의 시위와 집회에서 활동했으며,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인 살바도르 아옌데와 그의 정당 인민연합을 지지하는 유세에도 참여했다.
한편 연극계에 종사하고 있던 아내 조안 하라와의 결혼을 계기로 연극과 무용에도 손을 뻗쳤다.
이런 그의 활동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출범하면서 빅토르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그는 군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며 민중 운동을 지원하고 군부의 쿠데타 모의를 규탄하는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비롯한 우익 성향의 군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빅토르는 즉시 체포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9월 16일 처형되었다.
그의 시신은 40여 발의 총알이 박히고 두 손이 뭉개진 처참한 상태였다.
(당시 군인들이 "다시는 기타를 연주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면서 그의 손을 말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고 한다.)
(그가 살해당하기 직전에 지은 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파시즘의 얼굴들이 자아내는 공포를 보라!/저들은 계획을 칼날같이 수행해 나간다/저들에게는 피가 훈장이다/도살이 영웅적인 행동이다/오, 신이여, 이것이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까?/7일 동안 기적과 권능으로 일하신 결과입니까?/ (중략) /노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공포를 노래해야 할 때에는/내가 살아 있다는 공포/내가 죽어간다는 공포/내가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그처럼 무한대의 순간 속에/침묵과 비명만이 담겨 있는 것이/내 노래의 끝이다/내가 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내가 느꼈고,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그 순간의 탄생이리라..."
이 시는 그가 군인들에게 끌려가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옆 사람에게 종이를 맡기면서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고 한다.)
빅토르의 사망 이후 그의 아내인 조안 하라와 자녀들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전 세계를 돌며 피노체트 정권의 폭정을 규탄했고, 그의 생애를 담은 책을 출판하였다.
1990년 피노체트가 실각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진상 규명 요구가 이어졌다.
2009년 빅토르의 무덤은 부검을 위해 파헤쳐졌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다시 치러졌다.
2015년, 빅토르 하라를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전직 군인 1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6년 6월 미국 법원에서 빅토르 하라의 유족들이 전직 장교 페드로 파블로 바리엔토스에게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유족 측이 승소하여 바리엔토스가 유족들에게 2800만 달러 상당의 보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018년 7월 3일, 전직 군인 7명이 빅토르 하라의 살해 행각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23년 7월 14일, 미국 정부가 빅토르 하라의 살해자로 지목된 페드로 바리엔토스의 미국 시민권을 박탈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5일 바리엔토스는 미국 플로리다 주 델토나에서 체포되었으며, 12월 1일 칠레로 송환되었다.
3. 대표곡
3.1. Venceremos(승리하리라)
빅토르 하라가 부른 노래 중에 가장 대중적인 노래다.
3.2. Manifiesto(선언)
3.3. Canto Libre(자유의 노래)
3.4. Te recuerdo Amanda(아만다, 너를 기억해)
3.5. El derecho de vivir en paz(평화롭게 살 권리)
6집 "El derecho de vivir en paz" 수록.
가사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면서 보편적인 평화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2019년 시위 당시의 영상.
이른바 "시위대 바드", "바드가 필요한 이유" 등의 제목과 함께 il vento d'oro, 솟구치는 투지 등의 BGM을 삽입한 영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4. 여담
1973년 9월 쿠데타 당시 빅토르 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던 경기장은 2003년 '빅토르 하라 경기장'으로 개명되었다.
2018~2019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마스터드' 시리즈에서 빅토르 하라의 사건을 다루었다.
플릿 폭시즈의 4집 Shore 수록곡 'Jara'는 이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헌정하는 곡이다.
마찬가지로 2019년 시위 당시의 영상.
이른바 "시위대 바드", "바드가 필요한 이유" 등의 제목과 함께 il vento d'oro, 솟구치는 투지 등의 BGM을 삽입한 영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4. 여담
1973년 9월 쿠데타 당시 빅토르 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던 경기장은 2003년 '빅토르 하라 경기장' 으로 개명되었다.
2018~2019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마스터드' 시리즈에서 빅토르 하라의 사건을 다루었다.
플릿 폭시즈의 4집 Shore 수록곡 'Jara' 는 이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헌정하는 곡이다.
첫댓글 아옌데 하라 이런 사람들이 무참히 죽는 일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걸 보면 무력감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