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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분들은 지겹게 들으셨겠지만 난 의경 출신이다. 자대를 가서 처음 겪은 시위는 끝날 무렵의 광우병 촛불시위였다. 일상에서 유리되어 있던 정치적 이슈가 내 일상 속으로 급작스럽게 파고 들어온 것이다. 평택 쌍용자동차, 화물노조 파업등을 거치며 가장 인상이 깊게 남아있는건 2009년, 대전 법동에서 있었던 시위였다. 말그대로 죽창이 머리위로 날아들고 중대가 박살나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서있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 그 시위 전에 자살한 노조원이 있었고, 그를 기리고 하는 과정에서 시위가 격화된 모양이라 이해가 갔다. 나도 친구나 동지가 그리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지.
각설하고 그날의 시위는 만여명 정도가 참여했다. 만명이 모인만큼 군상들도 다양했다. 의경들을 일으키고 보호하는 시위대 아저씨도 있었고, 죽창을 내려치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 내는 목소리도 다양하고 시위대들 끼리 다투기도 한다.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런 다양성은 필연적이다.
만여명이 모여도 이럴진대 어제같은 10만 이상의 대규모 시위라면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목소리가 다 터져나온다. 언론에서는 게중 있었던 폭력적인 모습이나 이석기 석방 같은걸 물고늘어지며 '불법폭력집회'임을 강조하는 모양새지만 시위현장에 있다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느끼기 힘들다. 순간을 포착한 몇장의 사진, 짧은 동영상, 얄랑한 법규정을 들이대며 '평화적으로 하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댄다. 객관적인 사실아니냐 하며 그쪽에서 좋아하는 팩트 중심주의를 펼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팩트가 아니다. 취사선택된 사진과 동영상, 법규위반들만 있을뿐. 선동이라 말하지만 뭐가 더 선동적인지도 자명하다. 제대로 판단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시위가 던지려는 메시지보다는 방식과 외연에만 천착한다.
불법이니 합법이니 하며 법 성애자 같은 모습이 어제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엔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없다. 외치고자 하는자와 입을 막으려하는 자만 있다. 때문에 무임승차자 같은 언론, 경찰, 정부의 합법 타령이 역겹다. 애초에 10여만명의 집회시위 과정에서 쇠파이프나 종북적 메시지는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런데 집착해서 시위 자체가 갖는 메시지를 왜곡하고 비틀어선 안된다. 얼굴에 각질좀 붙었다고 더러운놈으로 치부받진 않잖아.
어제 시위의 요구조항은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정교과서 이슈와 노동개혁에 대한 것들이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이것들이 갖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니네 맘대로만 하지말고, 우리 얘기좀 하자' 작금의 정국을 보면 대체 여론수렴은 언제하시고 소통은 언제하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청와대가 여론수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슈는 선물받은 진돗개 이름짓기 정도 였던거 같다. 시위가 갖는 메시지와 왜 그런 메시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지 10만명중 일부가 보인 모습에 천착하는건 사람을 무슨 제품으로 보는듯해서 불편하다. 공장가서 불량률따지는 거 같다.
사람은 자유가 제일 중요한 동물이다. 십여만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위를 한다는건 그 자유의 상징이다.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메시지를 던질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그런 현장에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아대는 모습은 그분 유년기의 추억으로 치워놓아두셨으면 했는데 그분에겐 추억이아니라 현실인 모양이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 하겠지만 현장에선 대규모 집단끼리 충돌한다. 누가 먼저 때렸냐 같은 개인간의 폭력에 대해 형사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여기에 적용하는건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군중이 모이면 군중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 목소리를 한올한올 따다가 종북이네 빨갱이네 불법이네 하는건 새치한가닥 나왔다고 넌 흰머리가 되었다 하는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석기 석방을 외친다 한들 외칠 자유는 보장하는게 민주주의 아니던가.
한국 헌법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는 있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페미니즘' 같다. 집회결사라는건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선택할수 있는 강력한 수단중의 하나인데 그것 조차도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면, 우리는 이걸 자유라고 부를수 있는가. 소통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유라는 옷을 입히고 넌 자유롭다라고 말하는건 오만하고 불쾌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하다. 참담한 건 난 어제 그 시간에 술마시며 놀고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쓰는것 조차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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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일베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페이지들에서는 방구석에 앉아 키보드로 시위대를 비웃으며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놈들이 넘쳐난다. 폴리스 위키같은 페이지는 이런저런 법조항에 사진을 들이댄다. 솔직히 거기에 빨갱이, 폭력시위대 아웃같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역겹다. 강자에 굴종하며 심리적 경계선을 긋고 나는 너희와 다르니 물대포를 맞지 않는 일류시민이다 같은 멍청한 우월감밖에 안보인다. 아주 천룡인들 나셨다. 의경출신이라는 사람들의 댓글도 많이 보인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저런놈다 똑같다 이런류의 댓글인데 자기가 그 공간에 왜 서있고, 왜 그런 처지가 되었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없다. 자기를 그 공간으로 내 몰은 자에 대한 반발은 1도 없다. '난 강자의 편이니 너희와는 다르다'라는 심리.
솔직히 다양성을 보장하는게 내 가장 큰 가치지만 사고 프로세스가 정지된 것 같은 분들의 댓글보면 한숨만 나온다.
다음에 이런일이 있다면 꼭 참여해서 이 큰 몸으로 물대포를 막는데 힘을 보태야 겠다.
글 내용이 공감되고 글 자체도 잘써서 가져와봤어요..!!
특히 저 '오빠가 좋아하는 페미니즘' 비유까지 완벽
쩌리 처음이라 떨리네.. 이런글 안되면 말해줘요 바로 삭제할게!!
문제시 바로 수정
와 ... 진짜 글 잘쓰신다 이런 사람이 계시다니 ㅠㅠㅠㅠ
링크 가서 댓글도 좀 보고 왔는데 11개 요구안이 왜 자꾸 종북이라고 우기는거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어디가 종북? 북한 없으면 못사는 븅신들 ㅋㅋㅋ
읽는 내내 진짜 잘쓴다 이생각...막히는문장 필요없는 문장이없어 이게 존나팩트지
진짜 글 너무 잘쓰신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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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너무나 멋지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