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29, 일 마치고 나면
11월 4일 월요일.
전성훈 씨를 찾는다.
그동안 종종 혼자서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곤 했다.
오 분 남짓 짧은 시간 안에 돌아와 화장실에 가거나 손을 씻고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부러 따로 묻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얼추 짐작하기로는 십 분쯤 된 것 같은데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있어도 농장 안에 있을 테니 걱정이나 염려라기보다
동행한 사람은 일하는데 정작 취업해서 일하는 사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으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성훈 씨! 성훈 씨 어디 있어요?”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가만있어 보니 어디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리 나는 데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한 칸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다.
조심스레 입구를 열고 들어선다.
있다.
전성훈 씨가 보인다.
별말 없이 원래 있던 데로 조용히 돌아온다.
전성훈 씨가 일하고 있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바닥을 쓸었다.
흙 모아 담을 통까지 챙겨 갔다.
흙을 쓸어 모으는지 빗자루로 흩뜨리는지 구분되지 않아 보였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품은 하려는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혼자 있다 보니 얼마쯤 지나 장비를 모두 챙겨 돌아왔다.
기억할 하루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퇴근이다.
일 마치고 나면 사용한 도구를 정리하고 손을 씻는다.
장갑을 벗어 한쪽에 놓고 손 씻으며 묻는다.
“성훈 씨, 장갑 어디 있어요? 정리하고 갑시다.”
대답 대신 검지를 들어 어디를 가리킨다.
빨랫줄에 널린 장갑 두 쪽이 보인다.
하나하나 빨래집게로 야무지게 집었다.
늦은 건 나였다.
전성훈 씨는 진작에 정리까지 끝냈다.
11월 5일 화요일.
날이 좋다.
비닐하우스라 날씨와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비닐을 사이에 두고 들어오는 빛이 다르다.
그날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달까?
오늘도 퇴근길에 전성훈 씨가 정리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 쓰레기통을 비닐하우스 입구 한편에 세워 둔다.
빗자루 중에 초록색은 전성훈 씨, 보라색은 내가 쓴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전성훈 씨가 한 번 사용한 후로 그렇게 정했다.
혹여나 잘못 가지고 가면 가까이 와서 꼭 바꾸어 준다.
장갑도 널었다.
이번에도 한쪽에 빨래집게 하나씩 콕 집었다.
그사이 꽃이 폈고 벌이 들었다.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전성훈 씨를 도와 비질 중에 이유 없이 ‘꽃을 보려고 딸기를 키우는 사람은 없겠지만’이라는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정진호
‘꽃을 보려고 딸기를 키우는 사람은 없겠지만’. 덤으로 얻는 게 많죠. 이렇게 농사일을 하면서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감사를 느끼게 하는 시선에 또 감사함을 느낍니다. 신아름
① 전성훈 씨는 할 일을 살피고 찾아서 하는 사람이군요. 요즘 말로 이런 직장인을 무어라 칭하겠죠. 잘은 모르지만, 무어라 부르든 성실한 직장인이군요. 자기 하는 일과 직장에 애정이 있어 보이고요. 이런 의지와 열정이 있다니 감사합니다. ② ‘그사이 꽃이 폈고 벌이 들었다.’ 김훈 선생님의 문장을 보는 듯합니다. ‘꽃을 보려고 딸기를 키우는 사람은 없겠지만.’ 하루키 선생님의 문장을 보는 듯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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