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火葬 연습 / 임영만
송년 숙취宿醉가 심하여
불가마 찜질방에 갔다
내, 죽으면 들어갈 곳
그곳에 미리 들어와 구석구석 살펴본다.
수분 빼는 연습도 해야겠지
바짝 말리려면 저쪽에 머리를 두어야 할 거야
이렇게 누우면 사소한 불길에도 쉽게 달아오르겠지
주섬주섬 엮은 숙명의 실밥은
노글노글 터져 나오고
인생 이렇게 사그라지고 말겠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몸에
오래도록 비누칠을 하였다
-- 시집 『詩 한 줌이 너였다가』 (지혜, 2022.01)
* 임영만 시인
1963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시집 『서로 등이 되어』, 『풍장』, 『다시 이 자리에』, 『명왕성에서 온 스팸메일』, 『직선 혹은 곡선으로』 등
2018년 한국예총 경기도연합회 특별공로상, 2019년 경기도문학상 공로상 수상
현재 서해종합건설(공공사업부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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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 세에는 의심이 나는 점이 하나도 없었고, 오십 세에는 천명을 알았다. 육십 세에는 그 모든 것을 다 순하게 들었고, 칠십 세에는 그 무엇을 해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었다. 이 말은 전인류의 스승인 공자의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공자의 ‘삶의 철학’에 나의 ‘죽음의 철학’을 접목시켜 보고자 한다.
인간의 나이 사십이면 육체적으로 원금을 까먹는 노쇠기에 접어들고, 인간의 나이 오십이면 이자의 부담이 점점 더 늘어나 육체적으로 힘들어 진다. 인간의 나이 육십이면 육체적으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인간의 나이 칠십이면 그야말로 육체적으로 파산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의 햄릿의 과제는 모든 인간들의 과제이며, 나이 사십이 되어 육체적으로 노쇠기에 접어들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에 의심이 나는 점이 없게 되고, 나이 오십이 되면 죽음을 받아 들이고 천명을 알게 된다. 육십이 되면 친구와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칠십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떠나간다. 한 3-40년 전에는 수명이 아주 적당했고, 적어도 ‘사느냐/ 죽느나?’의 과제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임영만 시인의 [화장火葬 연습]은 참으로 이채롭고 특이한 시에 해당된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화장을 택하지만, 불과 2-3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매장을 선호했고, 자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선영에 묻히고 싶어했다. 산업적으로 도시화가 가속되고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부터 전통적인 가계의 구성이 해체되고, 이제는 장례의 풍습마저도 바뀌게 된 것이다.
화장이란 화장터에서 인간의 시신을 불태우고 그 유골을 수습하여 매장을 하거나 납골당에 모시는 것을 말한다. “불가마 찜질방”이란 어렵고 힘들 때 온몸의 노폐물을 걸러내고 목욕을 하는 곳을 말하지만, 50대의 중년인 임영만 시인은 그곳을 화장터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의 ‘화장火葬 연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죽으면 들어갈 곳/ 그곳에 미리 들어와 구석구석 살펴”보고, 온몸의 “수분 빼는 연습도” 미리 해본다. “바짝 말리려면 저쪽에 머리를 두어야 할 거야”라고 생각해 보고, “이렇게 누우면 사소한 불길에도 쉽게 달아”오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부모님의 뱃속에서 나와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의 ‘숙명의 실밥’들이 노글노글 터져 나오고, 그의 인생은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처럼, 아니 ‘칠십이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처럼, 바로 그렇게 사그라지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죽음인 것일까? 노자처럼 홀연히 물소를 타고 사라질 수도 있고, 엠페도클레스처럼 영원히 살기 위하여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처럼 나이 70을 맞이하여 자살을 택할 수도 있고, 더욱더 더럽고 추하게 이 세상의 삶에 집착을 하여 요양병원의 식물인간처럼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70’, 하루바삐 인간수명제(존엄사 제도)를 채택하여 그 신청자들에게 더욱더 아름답고 멋진 죽음을 죽게 해주기를 바란다. 프로포플을 맞듯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더욱더 맑고 깨끗하게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임영만 시인의 [화장火葬 연습}은 아름답고 멋진 죽음이며, 그 모든 더럽고 추한 삶을 거절하는 연습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