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월드컵을 앞둔 2004년 어느날.
2006년 월드컵을 대비해 한국축구협회는 네덜란드의 명장이자 한국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 영입을 재시도한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기꺼이 한국의 부름에 응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왠 또라이가 `아예 귀화를 시키자`는 의견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히딩크는 얼떨결에 덥썩 귀화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에게는 본처와 앨리자베스 외에 수리남 애인이 또 있었고
그는 대한민국법 간통죄에 걸리고 말았다.
누가 알았으랴...
결국 히딩크 감독은 간통죄로 잡혀 들어가고 콩밥을 맛있게 먹게된다.
때문에 수십만명의 축구 꿈나무가 콩밥을 먹으면서까지 축구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엽기적인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나저나 축구협회는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새감독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가장 유력했으나, 아무래도 98년의 전례가 있는지라 몇몇
축구관계자들(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될, 아주 친숙한 이름들)이 강력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만다.
그럼 누구냐?
k리그의 여러감독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감독들은 히딩크가 이룬 업적 이상을
이루지 못하면 괜히 비난만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다들 사양했다.
웬만한 이들은 다 거절하고 이제 남은것은 박항서뿐.
그러나 위에서 반대했던, 바로 그 몇몇 축구관계자들은 선수시절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신문선을 추천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신문선은 그 제의를 이게 `왠떡이냐`며 냉큼 수락했다.
<감독취임 기자회견장>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소리 요란하고 뒤에는 `월드컵은 SBS`라는 광고문구가 박힘)
기자1 : 대표팀 감독을 맡게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신문선 : 네, 제가 축구할 때는 말이죠~
이렇게 감독까지 하리라곤 에, 생각 못했습니다.
기자2 : -_-;; ... 그럼 앞으로 어떻게 팀을 이끌어갈 계획이세요?
신문선 : 제가 축구할 때의 경험과 스포츠 생리학, 만담기술 등을 십분 발휘해
서, 제대로된 축구를 국민들 앞에 선사해 보이겠다고,
저는 얘기하고 싶습니다.
신문선은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가장먼저 박항서 코치를 해임시켰다.
그것은 평생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반려자, 송재익을 수석코치로 임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쯤에서 송재익의 훈련지도를 들어보자.
송재익 : 아~ 위험합니다~ 주춤주춤하면 안되요.
지금 박지성선수 마치 백사장에 박힌 콜라병처럼 따로 놀고 있었단
말이죠? 며느리가 시어머니 밥상 들여가듯이 차분히 제대로 해야되
요. 방금 보신각종 때리는듯한 헤딩은 아주 좋았는데 말이죠.
이러한 송재익의 말버릇 때문에 가장 골탕먹은 이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온
`이산` 등 축구유학생이었다.
그냥해도 될말을 꼭 비유나 만담을 붙이니 가뜩이나 짧은 한국말에 알아듣기가 무척이나 고역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몇몇 선수들에게는 송재익과의 의사소통에 통역까지 붙여야만 했다.
영어로 통역했냐고? 한국말로 통역했다. -_-;
신문선이 두번째로 한일은 `자신의 선수생활` 경험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이었다.
월드컵경기장의 잔디를 모두 걷어버리고 맨땅으로 만들어버린 그.
당연히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그는 `선수생활`의 경험과 철학을 믿고 있었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인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가 펼쳐진다.
그 경기에서 한국은 오대영의 참담한 패배를 당한다.
그나마 골키퍼 최은성의 선방으로 많은 골찬스를 막아낸 것이 다행일 정도.
`아니... 히딩크가 그렇게 조련시켜놓은 한국 선수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참패하느냐...` 라는 의문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신문선은 히딩크가 강조한 멀티플레이어 시스템이야말로 한국축구를 우승시킬 비책이라고 했다.
그렇다. 분명 멀티플레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누가 이운재, 김병지를 투톱에 놓고 최용수를 스위퍼에, 안정환을 윙백에 놓을 줄 알았겠는가?
경기후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당연했다.
누가 이러한 엽기적인 패배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신문선은 자신만만했고 그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긴다.
`모든것은 월드컵에 맞추어져있다. 우리는 하루 1%씩 전진한다.`
하지만 그 후 일본에 19:0, 이란에 17:0. 심지어 부탄에게까지 1:0의 패배를 당하자 여론은 들끊었고 월드컵 본선 진출마저 탈락할 처지에 놓였다.
월드컵에서 모든 걸 보여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예선탈락의 벼랑끝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대표팀은 최악의 감독 하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신문선의 엽기적인 독단에 의해 수비수를 맡게 된 최성국은 간간이 중거리슛으로 득점하며 한국을 간신히,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통과시킨다.
한국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며 느닷없이 골키퍼를 맡게 된 송종국도 밤늦게까지 송재익에게 특훈을 받으면서 골키퍼 연습을 했다.
이러한 노력끝에, 결국 한국은 월드컵 조별예선을 통과한다.
한국은 A조에 편성되었다.
A조는 다음과 같다.
터키
한국
사우디
중국
역대 최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뻐하는 대신 우려의 눈초리를 보였다.
왜냐? 신문선의 상상을 초월하는 작전들 때문에.
신문선은 히딩크가 베스트 일레븐을 조기 확정 안한다고 욕한 전례가 있었기에 일찌감치, 조별예선이 끝나자마자 베스트 일레븐을 확정해놓은 상태였다.
월드컵 직전 가진 아프리카의 강호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2:1로 승리하자
온 온국민들은 기뻐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주전 골키퍼로 점찍은 송종국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 베스트 일레븐을 조기 확정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바꿀 순 없었던 것.
결국 팔이 부러진 송종국의 팔에 배트맨 무늬 깁스를 하게 하고 스포츠 심리학을 운운하며 `부상투혼`을 발휘케 하는 신문선.
또 중국과의 조별예선 1차전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도 문제가 생겼다.
해설자 자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심 끝에 그는, 월드컵 사상 유례없는 `감독겸 해설자`로 나서게 된다.
드디어 중국과의 경기.
... 무슨 말이 필요하랴.
송종국은 수십, 수백번의 골찬스를 막아내었지만 팔이 부러진 부상자였다.
신문선도 감독석에 송재익과 나란히 앉아 최선을 다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심판에게 항의하고, 박지성을 껴안던 그때.
신문선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 못하고 있어요. 제가 선수시절에는 말이죠...`
박항서가 상대 전력을 부지런히 메모하고 레이몬드와 함께 전력을 분석하던 그때.
송재익은..
`아~ 위험합니다~`
결국 수십번의 `위험` 끝에
1:0으로 패배.
중국에게 월드컵 본선 사상 첫승, 첫골을 기록하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pride of asia`였다.
이러한 참패 후, 드디어 신문선 감독의 경질론이 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신문선이 경질된 후,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하게 되어 있지만 수석코치가 송재익인 것을...
그들은 한국대표팀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감독석에 앉아야 하는 송재익과
중계석에 앉아야 하는 신문선의 의사소통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