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세대들은 '진주'라고 하면 문해력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왜냐하면 우리말의 대략 70%가 한자어로 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명인 경우
에는 더 하다. 한자로 쓰면 뜻 글자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일본에서 기사들을 상대로
표지판에 일본글자인 가다가나와 한자를 써 놓고 어느 쪽이 빨리 이해가 되느냐를
조사했는데 일본글자보다도 한자가 더 빨리 인지된다는 시험결과도 있다.
나의 출생지는 경남 진양군 사봉면 부계리이다. 고향을 이야기하라면 사봉인 셈이다.
그런데 1995년에 진주시와 진양군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진주( 晉州 )시가 되고 말았다.
진주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고 유곡동과 대평리 주거유적지등에서 청동기
유물과 여러 진주고분에서 철기시대의 유물과 가야시대의 유물이 수없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진주지방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약 2천년경 이전부터라고 추정된다.
가야시대에는 고령가야의 고도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거열주,청주,강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23년(1896)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성종2년(983)에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조선 고종33년(1896)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진주는 경상남도에 속해지고
도청 소재지가 되어 관찰사가 진주에 상주하였으며, 경남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25년4월1일 경상남도의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는 진주시로 승격되고,1995년1월1일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와 진양군이 통합되었다.
(이상 진주시 유래참조)
어제 7시 저녁미사에 다녀왔다. 7시 미사는 보통 부주임 신부 혼자서 주관하는데 어제는
또 한 분의 젊은 신부가 참여했다. 강론 말씀때 자신을 소개하면서 53사단 소속 군종신부
베드로라고 하였다. 3주간 우리 우동성당 청년회를 지도하기 위해 초청되었다고 했다.
그가 2016년 신부서품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임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모시고
서해안으로 '엠마오' 휴가를 떠났다고 했다. 저녁때가 되어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해물탕으로 식사를 하는 도중에 '퍽'하면서 돌을 씹었다고 했다. 기분이 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돌이 아니고 영롱한 진주( 眞珠/珍珠, Pearl) 였다고 한다. "여기 진주가
나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 50~60명이 큰 박수를 쳐 주더라고 하면서
"다음주에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이제 자신은 여러분들이 가정과 사회라는 밭을
갈면서 '진주'를 캘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참고로 '엠마오(Emmaus)'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시며 나타나신
사건(루카복음 24:13-35)과 관련된 지명입니다. 일부 수도회나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부활절
이후 바쁜 사목 활동을 마친 뒤,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며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휴식을 취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엠마오 휴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