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불가(佛家)의 말씀들
다음의 글과 글씨는 호남지역에 사는 얼굴 모르는 어느 스님이 경주최씨 문중 사람에게 보시를 요청하는 것을 수락하여 구매한 것이다. 괘불처럼 벽에 걸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현관 벽에 걸어 두고 출입할 때 음미하고 있다.
忠孝爲節 不求虛榮(충효위절 불구허영)
敦睦爲業 安貧自娛(돈목위업 안빈자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함을 절개로 삼고
허황된 영화로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친구와 친지 간에 도탑고 화목하게 지냄을 업으로 삼아
청빈한 가운데서도 스스로 평화로움을 즐긴다.
-梅軒居士가 法海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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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게송(偈頌)은 측천무후가 작자로 되어 있어 내가 매우 놀라워하는 게송이다.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천수경을 차례대로 염불할 때, 첫째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외운다. 먼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세 번 외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을 외운다. 즉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를 외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반드시 외우게 되는 진언이요 게송이 바로 이것이다.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불교 경전, 불법, 진리)을 만나는 것은 맹구우목(盲龜遇木)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무슨 뜻인가. 바닷속에 사는 눈먼 거북이가 숨을 쉬기 위해 백 년에 한 번 수면 위로 오르는데, 그때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나뭇가지를 우연히 만나는 경우이다. 이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부처님 가르침 만나기가 그처럼 어렵고 희귀한 일이니, 부처님 가르침의 참뜻을 알게 되도록 간절히 발원하면서 불경을 펼치고 연다는 뜻이 이 게송의 뜻이다. 나는 이 게송을 외울 때마다 오묘하고 경건한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開經偈(개경게) : 경전을 펼쳐서 여는 게송>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遇(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위 없이 깊고 깊은 오묘한 말씀이여
백천만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우니
제가 이제 듣고 본대로 받아 지녀서
여래의 참된 말씀의 뜻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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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금강경 4구 게송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말씀은 금강반야바라밀경 속의 4구절로 된 게송인데, 이는 불교의 ‘공(空)사상’을 압축 표현한 것이다.
금강경(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즉 의지하는 바의 중심 종지가 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은 금강경의 제1분에서 제32분까지의 내용 중에서도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공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게송이라 할 수 있다. 그 뜻을 깨닫고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독송(讀誦)하며, 다른 중생들에게 전하는 지혜의 보살행을 하면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 구절을 통해서 외워서 낭독하는 일의(讀誦)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金剛經 4句揭(금강경 4구 게)>
1)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上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존재하고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인 것은 실체가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은 줄을 알면 부처님 세계(진리의 세계)를 볼 것이다/제5분
2)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응당 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소리, 냄새, 맛, 신체적 촉감, 의식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머무는 바(집착)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제10분
3)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그 사람은 그릇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제26분
4)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모든 유위(有爲)의 법(내 마음이 조작한 삼라만상)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또한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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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관음사에 입문하여 기본교육을 받을 때, 불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계율인 오계를 공부하였다.
오계는 다음 다섯 가지 계율이다. 첫째 불살생(不殺生/살생하지 마라)의 계율, 둘째 불투도(不偸盜/도둑질하지 마라)의 계율, 셋째 불사음(不邪淫/삿된 음행을 하지 마라)의 계율, 넷째 불망어(不妄語/거짓말하지 마라)의 계율, 다섯째 불음주(不飮酒/ 술 마시지 마라)의 계율이다.
나는 이를 공부하면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불음주의 계율인데, 그때까지 나는 밥보다는 술을 더 자주 가까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니, 도저히 하루아침에 술을 끊을 자신이 없었다. 따라서 초보 불자로서의 수행의 생활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고, 말 못 할 고민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러한 고민이 간단하게 해결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회주 스님이신 무일 우학(無一 又學) 스님의 5중도행론, 대자유인론에 대한 법문을 접하면서부터이다. 나는 그 즉시, 그러면 그렇지, 광대 원만한 부처님께서 중생의 불쌍한 마음을 무조건 외면하실 리가 있나 하고, 환희작약(歡喜雀躍)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되 작취미성(昨醉未醒 )하거나 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받드는 청정한 마음 상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술이라고 이름하지 말 것이며 어디까지나 그것은 곡차(穀茶)라는 것이었다. 그 시간 이후 나는 대자유인으로 사는 흉내를 잘도 내고 다닌다. 혹자는 내가 대자유인론을 줄줄 외우니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마음을 다스리되 구애받지 아니하고, 즐기되 집착하지 아니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씀인가?
<五中道行論(大自由人論/대자유인론)>
1) 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아니한다.
2) 生而不持(생이부지) : 만들되 가지지 아니한다.
3) 開而不偏(개이불편) : 개방하되 치우치지 아니한다.
4) 統而不拘(통이불구) : 마음을 다스리되 구애받지 아니한다.
5) 樂而不着(요이불착) : 즐기되 집착하지 아니한다./무일 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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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四弘誓願(발사홍서원 : 네 가지 큰 서원)
나는 네 가지 큰 서원을 부처님에게 드리는 것을 해 왔다. 불경의 말씀을 읽고 외우고 하는 것은 마음을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된다. 나는 작가 플로베르가 인생에서 읽기를 강조한 말을 지금도 새기고 있다. 플로베르의 말이다. “몸이 자라는 데 음식이 필요하듯이, 정신이 자라는 데는 읽기가 필요하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나는 스티븐 로저 피셔 <읽기의 역사>에서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써 우리 자신을 만든다. 우리가 읽은 것이 우리다.”라고 한 말을 좋아한다. 나를 키운 불경을 오늘도 읽고, 나를 잡아 준 좌우명을 새겨 보는 일은 모두 읽기를 행하는 일이다.
衆生無邊誓願度(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이 한량없으나, 맹세코 제도하오리다
煩惱無盡誓願斷(번뇌무진서원단)
번뇌가 다함 없으나, 맹세코 끊으오리다.
法門無量誓願學(법문무량서원학)
법문이 한량없으나, 맹세코 배우오리다
佛道無上誓願成(불도무상서원성)
부처님의 도는 위가 없으나, 맹세코 이루오리다
自性衆生誓願度(자성중생서원도)
내 마음속 중생심을 맹세코 제도하오리다.
自性煩惱誓願斷(자성번뇌서원단)
내 마음속 번뇌를 맹세코 끊으오리다
自性法門誓願學(자성법문서원학)
내 마음속 법문을 맹세코 배우오리다
自性佛道誓願成(자성불도서원성)
내 마음속 깨달음을 맹세코 이루오리다.
첫댓글 불경이 어렵네요. 뜻풀이를 읽으니 고개가 주억거려 지지만~~'대자유인론'는 마음에 새겨두고 한 번씩 더듬어 암송하면 좋을 듯 합니다.
그렇지요? 한문 표기인데다, 부처님 말씀의 깊이를 중생이 다 헤아리지 못하니 저도 어렵게 여겨집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그것대로 그저 지금의 헤아림 만큼이라도 다가려는 마음이 있으면 수양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생전에 법해가 제게 했던 말 입니다.
정선생님, 댓글로 법해의 사람됨과 언어에 공감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법해의 글을 이곳 카페에 올리는 이런 방식으로, 그의 초고들을 다듬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넘기려고 합니다.
수모,최수모,1961년6학년때,난1반,그는3반,흑백사진한두장으로, 고등학교때도,무성영화의 몇장면으로,나이들어가며 기억들이 퇴색되어간다지만, 까만교복 뽀얀얼굴이였지. 이밤에 오랜만에 카페에,<法海최수모유고자서전>박교수의 추천으로,이렇게 접하니,뭐라할까?지난 추억에 感興이내요.고맙고요.나름의 話頭로 그와 어떤얘기를해볼수있을런지...첫번추천글,법해 고최수모고백록1/아버지의 별명('21.9.29)을 접해보았다.
량훈 仁兄! 여기 들어오셔서 수모 친구를 추억하는 말씀 전해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량훈형은 법해 수모형과 청리초등학교 동창이었다가 다시 김천고등학교에서 동기의 인연을 이어간 것이었군요.
간간 여기 들러서 댓글로 옛날 추억들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말씀 전해 죽 바랍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