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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여행6 - 가론강에 걸린 퐁 뇌프 다리에서 툴루즈의 역사를 회상하다!
2018년 5월 19일 툴루즈 Toulouse 역에서 철도 파업으로 버스를 타고 알비 Albi 를 보고
돌아와 지하철로 오귀스탱 미술관 Les Augustins 을 보고는 생테티엔 대성당
Cathedrale St. Etienne 을 거쳐 동쪽에 1차 세계대전 기념비 를 보고는 되돌아 옵니다.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고풍스러운 아세자 저택 Hotel d'Assezat 에 들어가서는 보나르와
로트레크등 지방 화가들의 그림들을 구경하고는 나와 서쪽으로 걸어서 가론강 으로
가는데 도로변에서는 술을 마시며 축구 시합을 관전하는 그런 술집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유럽에서 평상시 축구 인기는 우리나라 월드컵 당시 와 같은데... 술집의 대형 텔레비전
앞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D일보 뉴욕특파원인
부형권씨가 쓴 ‘부산서 미-불로 입양된 후 25년만에 극적 만남’ 이라는
소제목에 제목은 “영화 같은 ‘쌍둥이 자매’ 영화 나왔다”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5000마일(8000km) 떨어진 곳에서 25년 넘게 떨어져 살던 쌍둥이 자매가 기적처럼
다시 만나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각자 다른 대륙의 먼 나라로 입양됐던
한인 자매의 감동적 재회 스토리를 담은 90분짜리 다큐멘터리 ‘트윈스터스’
(Twinsters · 트윈 시스터스의 줄임말) 가 미국 영화계 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영화 전문 매체 슬랜트 매거진에 따르면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달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큰 호평을 받았다. 이달 하순 ‘로스앤젤레스 아시안퍼시픽 필름
페스티벌(LAAPFF)’ 에도 초청돼 로스앤젤레스의 극장 2곳에서 상영 된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1987년 11월 한국의 부산 에서 태어나 미국과 프랑스 로
각각 입양된 28세의 서맨사 푸터먼 씨와 아네 보르디에 씨.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내다가..... 헤어진지 25년 6개월 만인 2013년 5월 다시 만났다.”
“이들이 만나게 된 계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를 통해서다. 프랑스 국적의 보르디에
씨는 2013년 2월 친구로 부터“유튜브 동영상 에 너와 똑같이 생긴 아시아계 배우
가 있다” 는 얘기를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보니 생년월일 까지 똑같았다.“
“보르디에 씨는 푸터먼 씨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우리 둘이)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당신도 페이스북 사진과 동영상으로 내 얼굴을 확인해 봐라”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 로 활동하던 미국 국적의 푸터먼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보르디에 씨를 확인 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후 둘은 영상통화 를 통해 한 핏줄임을 확신 하게 됐고 3개월뒤 런던에서 직접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보르디에씨는“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큐멘터리는 다시 만난 이들이 한국 프랑스 미국 등을 여행한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
한국은 1950년대 초부터 50여년 이상 고아 수출국(?) 세계 1위 라는 오명을 달고 살았는데
2011년 통계에서는 송출자 수는 1위 중국이 4,400명인데 비해 한국은 961명으로 6위 로
내려가 다행이지만.... 인구 비율로 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국 보다 6배나 많은 셈입니다.
문제는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많지만 남의 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인데
정부는 50여년 이상 계속된 불명예를 씯고자 입양아 출생신고를 의무화 하고
해외 입양 전에 "5개월간 국내 입양 을 먼저 시도" 하며... 국내에서 실패해
결국 외국으로 내보낼 때에도 "보건복지부장관 의 허락" 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입양하려는 미국인은 사전에 "한국 가정법원에서 열리는 재판" 에 출석하는등
입양전에 "최소 2번을 한국을 미리 방문" 해야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해외송출을 막으며
국내에서는 2011년과 2012년 2년동안 단 한건도 입양이 성사되지 못한 "장애아" 를
우선적으로 외국에 내보내고 정상아는 입양을 통제 함으로써 저만큼 숫자를 낮춘 것입니다!
금년에 제주도를 통해 들어온 예멘인 500명이 난민 신청 을 했다고 해서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혔으니 인터넷을 달군 네티즌 들은 청와대 사이트에는 저들을 막아달라는 글이
봇물을 이루었으며 시위 도 벌였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조선 말기 부터 흉년과
가난으로 먹고 살기 위한 경제적 이유로 두만강을 넘어 남의 나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구한말 일제시대에는 가난과 일제를 피해 만주와 중국 본토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를 떠돌던
난민이었는데....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난민인 우리 옛적일 은 까맣게
잊어 버렸나 봅니다? 더욱이 6.25와 그 이후 가난으로 자식들을 길거리에 버렸으니
수십년간 한국은 “고아수출 세계 1위국” 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한민족 은 과거에 수백명이 아닌 "수백만명이 난민" 으로 중국등 이웃 나라의
신세 를 졌고 버려진 우리 아이들을 받아준 외국인 들도 많은데, 이제
우린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일랑 추호도 없이...... 몇백명에 저 난리 인가 봅니다?
그러고는 가론강 la Garonne 에 도착하는데 강에는 많은 다리가 놓였으니....
그 중에 아주 잘 생긴 퐁 뇌프 다리 Pont Neuf 를 발견합니다?
파리 세느강에 놓인 그 유명한 퐁 뇌프 다리 Pont Neuf 처럼 글자대로 해석하자면.....
“새 다리” 이니 새로 놓은 최신의 다리 이지만..... 세월이 지나니 아이들이 자라
할아버지가 되듯이 이 도시 툴루즈에서 가장 오래된 고풍스러운 다리 가 되었나 봅니다?
다리를 건너가면 의료박물관과 자바투아드등 볼거리도 있지만 교외에 알비를 다녀오느라
너무 지친지라... 강변에서 풍경을 구경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데 다리 중간에 무언가
있어 보니 붉은 것이 사람 형상 인데 저 도깨비 처럼 생긴건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퐁 뇌프 다리 건너편에는 푸른 잔디 가 깔려있고 사람들이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주말인 토요일 오후를 한가롭게 즐기니, 조금후에 있을 일몰 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는데 누구 여행기에 보니 여기 강변이 일몰... 선셋 Sun Set 의 명소 라 하더군요!
이 도시 툴루즈 는 서기 415년 게르만족의 하나인 서고트족 이 로마를 약탈하고는 아키텐
지역을 양도받으면서 서고트 왕국의 첫 수도 가 되는데 507년에 알라리크 2세가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에게 패하면서 쫃겨나 나르본으로 수도를 옮긴후 바르셀로나를
거쳐 최종적으로 스페인의 톨레도 에 도읍했다가..... 720년 이슬람 사라센인 에게 망합니다.
507년에 메로빙거조 프랑크왕국에 속하게 된 툴루즈 는 서쪽 아키텐 왕국 (781년~ 987년)
에 속했다가 독립한후 제1차 십자군이 떠나던 무렵 서쪽 보르도 에 자리한
아키텐 공국으로 부터 공격 을 받고 위험에 처했었는데... 이는 제1차 십자군
전쟁에 가장 많은 병사를 동원한 주요 지휘자인 툴루즈 백작 레몽 4세 때문 이었습니다.
레몽 은 툴루즈 백작 기욤 4세의 동생이었으나 형이 딸 필리파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자,
유언을 어기고 지위를 찬탈하여 툴루즈 백작 이 되었으니, 필리파와 결혼한 보르도의
아키텐 공작 기욤 9세 는 툴루즈 백작의 지위 를 주장하며 서쪽에서 툴루즈를 공격했습니다.
레몽은 3번 결혼했으니, 2번은 근친결혼 이라 무효가 되고 파문을 당했으니 아키텐공국의
공격을 방어한 장남 베르트랑은 서자 로 보는데, 레몽은 십자군 이전에도 스페인에서
이슬람교도와 전투를 벌였고 제1차 십자군 에 가장 먼저 참가해 1096년 프랑스를 떠나
터키와 시리아를 지나 이슬람 교도들로 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왕국 을 세우게 됩니다!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샤를마뉴) 대제 는 778년 이슬람 스페인을 정복하려고 피레네산맥
을 넘자 산맥 남북에 걸쳐 거주하던 바스크족은 프랑크국에 복속하기를 거부
하는데... 가스코뉴 백작이 투항한 이래로 프랑크 왕국의 영향력하에 들어있다고
간주된 지역이었으니 이슬람과 싸우던 중인 프랑크왕 카롤루스는 그만 난감해졌습니다.
프랑크국 카롤루스(샤를 마뉴) 대제 가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를 함락 시킨 시점에서
그리스도교 바스크족 은 프랑크 왕국과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
양쪽 모두에 대해 투쟁 하기 시작했고..... 라인강변의 작센족과 피튀기는
혈투를 벌이고 있던 카롤루스 대제는 이에 781년에 속국으로 아키텐 왕국 을 세웁니다.
카롤루스는 아들 루이를 왕 으로 앉혀 아키텐은 바스크족과 피레네 산맥 너머 이슬람족 을
상대하는 데에 전담하도록 했는데.... 788년에 툴루즈 백작이 알라릭이라는 지역
지도자에게 포로로 잡히니 당황한 카롤루스는 신하 윌리엄을 새로운 툴루즈 백작 으로
내려 보내는데.... 그는 790년 알라릭을 제거하고 뒤이어 바스크족을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거기다 프랑크왕 카롤루스의 아들로 아키텐 왕국의 루이 가 피레네 산맥 너머로 진군해
헤로나 Girona 와 바르셀로나를 점령 하고 설치한 에스파냐 변경백령 이
서쪽으로 확대되면서 바스크족은 양쪽 방향에서 압박 을 받았는데......
812년 프랑크 카롤링거 왕조는 피레네 산맥을 점유했고 바스크족은 몰리게 됩니다.
프랑크왕국의 변경백령 설치에 대응해 793년 스페인의 이슬람왕국 히샴 1세 는 지하드
를 선언하고 그리스도교 아스투리아스 왕국를 공격 함과 동시에 피레네 산맥의
동쪽 셉티마니아 탈환 까지 시도했는데, 당시 카롤루스의 군대는 헝가리에서
아바르의 군대 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주력군이 빠진 틈을 타서 공격한 것입니다.
아키텐왕국의 루이 는 기스코뉴, 나바라 및 툴루즈등 기독교 영지들의 연합군을 이끌고
반격에 들어가 801년, 2년여에 걸친 공성전 끝에 바르셀로나를 함락 시키고 에스파냐
변경백령을 회복했으며 프랑크 왕국 은 나바라 왕국과 에스파냐 변경백령을 중심으로
히스파니아 일대를 거듭 습격했고 에브로 강 이서지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아키텐 왕국 은 987년에 공국 으로 지위가 낮아졌는데 제1차 십자군 시절 1100년경 부인의
툴루즈 백작 계승권을 요구하며 이곳 툴루즈를 공격했던 아키텐공국의 기욤 9세 는
최초의 음유 시인 트루바두르 Troubadour 로 불리는데..... 아들 기욤 10세는
아들이 없어 딸 엘레오노르 가 상속인이 되어 1137년 프랑스왕 루이 7세와 결혼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딸만 낳은데다가 종교에 빠진 왕 루이 7세와 1152년에 이혼한 아키텐
대영주인 왕비 엘레오노르 는 1154년에 프랑스왕에게 문안 인사를 온 19세
총각 앙주 백작 헨리 2세에게 청혼해 결혼하니, 헨리 2세는 이 해에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쳐들어 가서는...... 영국 왕위에 올라 플랜타저네트 왕조 를 엽니다.
영국왕은 프랑스 땅에 조상대대로 영지인 앙주와 노르망디 그리고 엘레노르가
결혼 지참금 으로 가져온 방대한 아키텐과 가스코뉴 에 한때는 이 도시
툴루즈 까지 보유하니..... 프랑스 국경내에서만도 프링스왕 보다 10배 나
큰 큰 영지를 보유하는지라 1337년 부터 1453년 까지 100년 전쟁 이 이어집니다.
이 도시 툴루즈 Toulouse 는 아키텐왕국(공국) 에서 벗어나기도 했는데 100년 전쟁 기간
중에 헨리 2세의 후손으로 영국의 왕자인 흑태자 는 영국군을 이끌고 아키텐을
지나 여기 우리가 거니는 강변의 도시 툴루즈 까지 공격하는 기염 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가론강변을 따라 걸어서 우회전을 하니 여기 길가에는 초상화가 들이 캔버스를
세우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얼굴 커리커쳐 를 그려주는데...... 저 아래
강변의 잔디 공원에는 앉거나 누워 주말 오후를 즐기는 청년들이 엄청 많이 보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오른쪽 길을 택해 걷노라니.... 기념품 숍과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특히나 젊은 청년들로 인해 거리가 가득 메워져 걷기도 힘든데.....
어쨌든 우린 카피톨광장 pl. Capitole 을 향해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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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저도 프리미어리그
손홍민 선수보는 재미로
지냅니다.
토트넘 지고나면
화도나고 허탈해지기도합니다 ㅎㅎ
하아...... 여행 대신에 스포츠라!
하지만 뭐 최절정기가 지나면
유럽이나 미국처럼 위드 코로나로 가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