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99.9/ 윤성택 육십 촉 전구가 긴 하품처럼 흔들린다 목젖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골목 어귀 바람은 기댄 리어카 헛바퀴로 다이얼을 맞춘다 주파수를 잃은 낙엽이 쓸려간 후미진 끝 별들의 소음이 가득하다 엉켜있던 전깃줄도 식솔들 따라 전봇대 너머로 건너가고, 온기는 두꺼비집으로 몰려다닐 것이다 불빛이 기둥 거미줄에 슬어 있을 때 보안등은 파닥거리는 나방처럼 해쓱하다 먼지 덮인 채 뜨겁게 달아오르는 집들, 산다는 건 어쩌면 먼 곳에서 불빛 하나 끌어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켜진 창과 창은 서로를 잇대며 지상의 별자리를 이루리라 밤새 불빛 구멍에 꽂혀진 불면의 잭은 사소한 라디오 사연에도 눈물겹다 붉은 막대채널 같은 가로등이 길 위를 밀려가고 가끔씩 개 짖는 소리가 잡힌다 거미줄은 이제 스피커처럼 웅웅거린다 볼륨을 높이며 오토바이 한 대 언덕을 오르고 있다 - 시집『리트머스』(문학동네, 2011) ..................................................................
등허리에 제 몸보다 배나 더 큰 배터리를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트랜지스터를 머리맡에 두고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라디오는 FM방송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AM만 듣기에도 빠듯하여 주파수를 조심스럽게 잘 맞춰야만했다. 자정이후의 집 앞 골목길엔 적막만이 가득해 간간히 새어나오는 헛기침소리와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 음악방송이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 ‘밤을 잊은 그대에게’, ‘꿈과 음악사이’, ‘한밤의 음악편지’ 등의 음악프로를 가끔이지만 즐겨 들어왔다. 그러다 이런 음악들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어서인지 정신을 팔 다른 무엇이 생겨서인지 언제부턴가 집에서 라디오 들을 기회조차 뜸했다. 대신 습관처럼 차안에서 FM채널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뉴스도 듣고 음악도 듣는다. 어느 땐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하고서도 듣던 음악에 필이 꽂히면 끝까지 마저 들은 후에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문득문득 그 시절 그 음악이 생각나 타임머신을 거꾸로 돌리곤 한다.
지금은 FM채널이 수십 개는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FM 주파수는 87.5Mhz~108.5Mhz 까지 사용하며, 방송국마다 200Khz의 대역을 배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방송국 간에 이 대역폭이 겹쳐서는 곤란하므로 모든 FM방송의 주파수는 87.5Mhz부터 0.2Mhz씩 차이가 난다. 따라서 짝수는 없고 홀수만 있다. 아슬아슬한 홀수인 FM99.9는 서울국악방송 채널인데, 보안등 ‘전구가 긴 하품처럼 흔들’리고, ‘주파수를 잃은 낙엽이 쓸려간 후미진’ 골목길에 차를 파킹한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짐작된다.
구부러진 골목길에 해쓱한 공공의 불빛, ‘기댄 리어카 헛바퀴로’ 도는 세월의 담벼락이 파리하다. 지치고 가난한 생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온기란 ‘먼 곳에서 불빛 하나 끌어오는 것’ 그 불빛은 작은 창과 창 사이 가늘게 새어나오는 빛들의 연대이겠으나, 때로는 ‘사소한 라디오 사연’이거나 ‘별이 빛나는 밤에’ 듣는 아날로그적인 FM음악 같은 것. ‘필’받은 오토바이 한 대 ‘볼륨을 높이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권순진
Merchi Cherie / Frank Pourcel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