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힘은 상상력이다. 진부하고 나른한 일상을 있는 그 자체로 묘사하려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일상과 또 다른 새로운 일상이 존재한다. 그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힘도, 역시 상상력이다. 길예르모 델토로는 현존하는 영화작가 중 가장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 중 한 명이다. 그의 환타지 영화 [판의 미로]를 본 사람들이라면, 마술처럼 새로운 존재를 만들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그의 놀라운 상상력을 목격했을 것이다.
길에르모 델토로 감독의 [헬보이2-골든 아미]는 만화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그가 4년 전에 선보였던 새로운 슈퍼히어로 [헬보이]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슈퍼 히어로가 넘쳐나는 시대에 등장한 헬보이는 여느 슈퍼 히어로들과는 사뭇 다르다. 지구를 구하는 것보다는 맥주나 밀크쉐이크를 마시며 TV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는 헬보이가 과연 슈퍼 히어로일까?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불그죽죽하며 잘 생기지도 않았고, 섹시하지도 않으며, 매너가 좋은 것도 아니다. 훈남도 아니고 성격도 거친 헬보이지만 순수한 마음과 유머감각이 있다. 유머 감각이야말로 슈퍼 히어로의 강성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대중들의 정서에 연착륙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는 것을 길에르모 델토로 감독은 알고 있다.
초월적 힘을 자랑하는 다른 슈퍼 히어로들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치는 아이덴티티의 혼란이나 성장과정의 상처 등이었다. 그런데 헬보이는 유머감각이라는 막강한 무기로 대중들을 무장해제시킨다. 유머감각은 정서적 여유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무리 숨가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터져나오는 헬보이의 유머감각은 대중들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작품에 탄력성을 부여한다.
캐릭터의 독특함만이 [헬보이] 시리즈의 장점은 아니다. 헬보이의 탄생과정과 성장, 그리고 최초로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이루어졌던 [헬보이]와는 다르게 [헬보이2]에서는 본격적으로 최강의 맞수를 만나 제대로 한판 승부를 벌인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이미 전편에 끝났기 때문에, 2편에서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더 화려하게 상상력을 펼쳐낸다.
바위 같은 무쇠주먹을 가진 헬보이(론 펄먼 분)의 지원세력으로 등장했던 전편의 캐릭터들, 자유자재로 불을 다스리는 헬보이의 여자 친구 리즈(셀마 블레어 분), 악수하는 순간 손바닥에 접촉된 정보로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수중생물 에이브(더근 존스 분)도 계속해서 헬보이를 지원한다. 새로 보강된 캐릭터는, 도대체 통제가 안되는 헬보이를 감시하기 위해 등장한 요한(존 알렉산더 분). 그는 모든 기계나 생물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심령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초능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조직 B.P.R.D의 리더이다.
그들이 힘을 합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수천년 동안 어둠 속에서 잠자는 황금의 군대, 골든 아미를 깨워 세계정복을 꿈꾸는 요괴세상의 누이다 왕자(루크 고스 분)다. 악의 세력이 막강해야 거기에 맞서는 헬보이 군단도 빛을 발한다. 누아다 왕자는 단순히 사악한 캐릭터는 아니다. 세계평화를 유지하려는 아버지까지 살해하는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맺어진 고대의 평화협정을 깨고 인간들의 세상을 멸망시킨 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잠든 요괴를 하나씩 깨워 자기편으로 만든다. 하지만 황금의 군대, 골든 아미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조각난 왕관의 마지막 조각이 필요하다.
누아다 왕자와 쌍동이로 설정된 그의 여동생 누알라 공주(아나 윌턴 분)는 단순히 흑과 백, 선과 악으로 설정된 헬보이 군단과 누아다 왕자 사이의 균형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다. 오빠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니는 누알라 공주는 헬보이 군단의 에이브와 만나 그의 보호를 받는다. [헬보이2-글든아미]는 이야기 구조의 팽팽한 긴장감이나 캐릭터의 독특함도 돋보이지만, 그것들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놀라운 상상력이다. 특히 수많은 요괴들과 기이한 생물체들이 등장하는 트롤 마켓씬은 지금까지의 환타지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헬보이2-골든 아미]는 대부분 헝가리 부다페스트 지역의 허름한 건물에서 촬영되었다., 트롤 마켓 씬은 도시 외곽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동굴 속의 셋트에서 촬영되었다. 화려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트롤 마켓 씬에는 독특한 시장풍경과 함께 기이한 요괴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작품의 후반부에 전개되는 황금의 군대와 헬보이 군단의 최후의 대결은, 황금색 배경과 사방에 설치된 톱니바퀴의 위협적인 이미지 속에서 펼쳐진다.
강력한 악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헬보이 군단은, 시각적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는 액션 씬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매혹적으로 활동한다. 권선징악적이며, 센치한 감성적 낭비까지도 드러나는 상투적 구조속에서도 신선함이 유지되는 것은, 환타지 영화의 독창적 상상력이 살아있기 때문이며 기존 환타지에서 만나볼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