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나라의 000연구논문에 의하면
재탕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하면 나타나는 기사가 있다. 커피에 관한 것이다. 한 달여 전에도 ‘오전에 커피 세 잔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모 일간신문의 기사를 인터넷판에서 읽었다. 심장질환에 좋다고 하였던가? 기사는 그저 하루 커피 몇 잔이라고만 기술하였을 뿐 잔의 크기나 커피의 농도, 어떤 형태의 커피인지 자세한 사항은 소개하지 않았다. 덧붙여진 건 기사 내용의 신빙성을 위하여 ‘000에 발표된 000나라 000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이 보충되었다. 분명 그 논문 속에는 실험으로 입증된 몸에 좋다는 커피의 일반적 형태가 기술되어 있을 텐데 그런 내용은 기사에서 빠져있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커피를 말함인지, 연령층은 어떻게 되고 성별은 어찌되는지 등등 독자가 알아야 할 핵심요소는 빠져있고 그저 커피 몇 잔만 강조될 뿐이다. 각 나라마다 커피의 형태나 농도가 다르고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즐기는 커피의 종류가 다르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커피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을 알려달라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물론 회신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은 ’믹스커피‘라고 한다. 특히 건강을 염려하여야 하는 연령층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또한 우리의 체질은 서양 사람들과 같지는 않다. 그래서 믹스커피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000의 연구논문에 따르면....”을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인터넷서핑 실력이 부족한 것인지 자료가 없는 것인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TV에 하얀 가운을 입은 분들이 여럿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자들에게 의학적인 지식과 상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영양학적인 것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영양학+의학을 곁들여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처음 생겼을 때 이 분들이 정보를 전달하고 난 다음 장면에는 ‘일반 개인의 의견입니다’ 또는 이와 유사한 자막과 함께 어떤 분이 나와 본인의 건강 유지를 위하여 무슨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느니 무슨 ***을 기반으로 식단을 만든다느니 하는 소개가 있고 곧 이어 그 하얀 옷 입으신 분들이 보충 설명으로 “그 ***속에 좀 전에 소개해 드린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라는 멘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대형마트에 가면 어김없이 그 소개된 ***이 입구나 앞쪽에 진열되어 있곤 하였다. 요즈음도 집사람은 그런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나도 곁눈질로 쳐다볼라치면 이 나이 먹도록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영양소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다. 그런데 그 분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커피와 공통된 점은 ‘000에 발표된 000나라 000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으로 보충 설명이 따른다는 것이다. 소개되는 영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은 거의 외국산이다. 과거와 다른 것은 요새는 마트에 가도 예전처럼 그런 ***이가 앞으로 진열되지는 않는 것 같다. 수입식품이 밀려들어올 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때에도 “우리나라의 000의 연구논문에 따르면....”이라고 신토불이에 걸맞은 기사를 접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내 기억에서 소멸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즈음 아이들도 ‘각기병’이라는 것을 들어 보았을까? 내 머리 속에 아직 남아있는 정보들 중에 가장 크게 각인되어있는 것이 그 ‘각기병’이라는 것이다. 쌀이 부족하였던 시절 쌀밥만 먹으면 그 병에 걸린다며 밀가루나 콩 혹은 각종 잡곡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토불이를 강조하던 것과 유사하다. 요새 정보를 찾아보니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병’이라 한다. 이 병은 비타민 B1이라는 영양소가 결핍되어 발생한다는데 잘 도정된 쌀에는 그 영양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지금도 다른 보충 영양소가 없이 쌀밥만 먹는다면 그 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지금은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식단을 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소별된 병이라고 하는데 그 병이 강조되던 시대에 굶지는 않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쌀을 대하기 힘들어 보리나 콩 혹은 다른 곡물들로 대신한 집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나도 즐기는 것이지만 특히 요즈음 아이들은 라면을 즐겨먹는다. 초등학생인 내 손자 녀석은 걱정하는 할아비에게 자신은 하루 종일 라면만 먹어도 좋다며 “할아버지 끓이는 라면은 주식이고, 컵라면은 간식이에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재미있는 것은 각기병에 대한 자료 중에는 라면만 먹으면 그 영양소가 충분하지 않아 인위적으로 비타민 B군을 첨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밀가루 라면이 노랗게 보이는 원인은 그 영양소가 일조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나.....
우리나라 학자 분들도 연구는 하고 계실 텐데 국제적이지는 않더라도 위와 같은 일반 국민들과 밀접한 생활 기사나 TV프로그램에서 “서양의 000에 의하면” 보다는 “000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000의 연구논문에 따르면....”이라는 인용은 언제 접할 수 있으려나? 신토불이는 유행에서 지나갔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연구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2025년 3월 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YAF35H0jkmg 링크
Adoro - No Se Tu - Contigo Aprendi -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