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23. 바다시 - 문학이야기
시 ‘청포도’ (이육사. 1904-1944)읽기
마음을 품다
남진원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고 함께 바라보고 싶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이 같은 일련의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시 속의 화자는 ‘청포를 입은 고달픈 사람’을 사랑한다. 그를 위해 깨끗이 닦은 식탁을 준비한다. 그곳에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준비한다. 청포도를 함께 먹기 위해서다.
청포를 입은 분이 찾아오는 곳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의 어느 날이다. 그 청포도에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을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 향토성과 신성성이 깃들어 있다. 아무나 함부로 맛볼 수 있는 청포도가 아닌 것이다. 왜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함뿍 손을 적시며 먹을 것이니까.
사랑하는 정인은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면 그 푸른 가슴을 저어 오는 흰 돛단배를 타고 오는 분이다.
그런데 그 정인은 청포를 입은 고달픈 몸이다. 나라를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분이기에 고달픈 것이다. 시적 화자는 정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최대의 준비를 하l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시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상된다.
여름은 열정의 계절이다. 약동하는 젊음의 계절이다. 매미가 울면 숲속의 나무들은 악기하나씩을 갖고 연주를 하는 듯 신난다. 참외와 수박이 익어가는 원두막이 떠오르고 어릴 때엔 원두막에 올라 친구와 여름방학 숙제를 하곤 했다. 냇가에선 수영을 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얘기소리가 물위에 물방울처럼 번져나간다. 온 몸이 물에 젖은 아이들의 검은 색 살갗은 친근하면서도 강인한 힘을 느낀다. 이 모두가 여름이 선물하는 원초적 에너지들이다. 시 ‘청포도’를 읽으면 이런 역동적 에너지가 전해지며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날들을 함께 떠올려 기쁨에 젖기도 한다.
또, 시 ‘청포도’는 읽을수록 청량하고 맛이 난다. 정열적인 여름이 생각나고 싱그러운 청포도와 푸른 바다, 흰 돛단배가 주는 매력적인 영상미 때문만은 아니다. 마음을 품었던 사람들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하나하나 청포도 사이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도 이 시가 주는 수확물이다.
아름다움을 떠올릴 수는 있는 힘, 이것은 살아가는 데 참, 소중한 시의 가치가 아닐까.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는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1944년에 생을 마감했다. 안동에 대표작인 ‘청포도’, ‘광야’, ‘절정’의 시비가 서 있다.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17회나 투옥되었다. 처음 투옥 당시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하였다고 한다. 1934년 신조선사에 근무하며 이듬해 1935년에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한다. 시 이외에 한시, 시조, 논문, 평론, 시나리오 등 여러 장르에 작품을 집필하였다.
시조는 「춘추삼제(春秋三題)」(1935)가 있다.
1937년 신석초, 김광균 등과 함께『자오선』동인 활동을 하였다. 여기에 ‘청포도’를 발표하였다.
이육사의 발표지면은 『조광』, 『풍림』, 『문장』, 『인문평론』등이었다. 그의 시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민족혼이 스민 시 작품과 저항정신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수감 중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1964년 『육사시집』이 문우들에 의해 발간되었다.
절정(絶頂)
- 이육사 -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명시 한 편은 만권의 시집과도 맞먹는다. 명시의 가치를 말할 때 돈으로 매김 할 수 없다. 그러니 50억짜리 집 한 채의 값을 어찌 시 한편과 견줄 수 있으리.
1930년대 문예지들
☘시문학(1930~1931, 3권), ☘문예월간(1931~1932, 4권), ☘조선문학(1933~1939, 20권) ☘문학(1934. 3권), ☘삼사문학(1934~1935, 6권), ☘시원(1935, 5권), ☘시인부락(1936~1937, 2권) ☘풍림(1936~1937, 8권), ☘자오선(1937, 1권), ☘단층(1937~1938, 3권), ☘맥(1938~1939, 5권) ☘문장(1939~1941, 27권), ☘인물평론(1939~1941,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