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법정으로 가야 할까.
가수 서태지와 이재수의 <컴백 홈> 논쟁이 가요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서태지는 현재 가수 이재수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했고 이재수의 음반에 대해 판매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민사 법원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를 두고 ‘최고의 가수 서태지와최악의 가수 이재수의 싸움’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가수 이재수측은 “전혀 한 개인을모독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패러디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차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는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재수를 옹호하는 여론 역시 “우리도 얀 코빅같은 패러디 가수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패러디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부족하다”며안타까워 하고있다.
또 패러디 작품이 나올 만큼 우리 뮤직비디오의 현실이 풍성해지고 발전됐다는 증거라며 반겼던이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서태지 측이 상처받았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담아만든 노래 <컴백 홈>이 이재수에 의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게 왜곡된데 대해 창작자의 기분이 상했음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특히 뮤직비디오 중 양현석이 입에 밴드를 붙이고 등장하는 장면, 변기위에 앉아수화를 하듯 랩을 하는 장면 등은 당사자 입장에서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태지가 누구인가.
20세기 말에 등장해 21세기가 열린 후에도 여전히 대중문화의 핵심에 서있는최고의 뮤지션이며 <교실이데아> <1996> 등의 노래를 통해 줄곧 절대권력에 저항하는 자유 정신을 부르짖어 온 가수가아닌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뮤지션 서태지와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하는 신인가수 이재수의싸움.
이 싸움의 주도권은 누가 봐도 서태지가 쥐고 있으며여론은 이 두 사람의 싸움이 법정까지 이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현재이재수측은 서태지측이 원한다면 <컴백 홈>을 음반에서 삭제할 수도있다며 한 발 물러나 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
그의 관용을 기대한다.
이경란 기자 ran@
=>이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무슨 서태지가 이래냐??
아님 기사가 왤케 편협하냐냐??
천명중에 한명이 편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숑~~~
근데 이런 편.협한 기.자가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지...
아니..한두개 빼고는 전부라는 거지.....
[서태지 공식 입장] 이재수 고소사건에 대한
우퍼엔터테인먼트는 헌정앨범이라는 가식적인 변명을 하고 있다
헌정대상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만일 내가 누군가를 존경해서 헌정앨범을 만들고자 했다면 당연히 예의 바른 정식요청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 몰래 불법으로 음반을 발매한다면 그것도 헌정앨범일까?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일은 나와 매니아들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면서
다른 일반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일이기에 고민 끝에 설명이 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기획사 우퍼는 몇 달 전 양군기획에 "울트라맨이야"를 "울트라면이야"로 패러디를 할 테니 허락해달라
는 요청을 했다.
나는 검토 끝에 이번 건은 왠지 서태지의 이름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서만 이용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우퍼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의 이름을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저작권
법으로 살수 있는 95년작 컴백홈을 선정해 우리측에는 알리지도 않고, 또한 그나마 저작권료조차 지불
하지 않은 채 불법적인 음반을 제작했고 컴백홈을 타이틀곡으로 앞세워 홍보 비디오까지 찍으며 음반판
매를 시작했다.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우퍼 측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변했다. "법적인 절차를 다 밟았고 지불할건 다 지불했다. 우리는 문제없다." 라고.
저작권협회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 음반을 출시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 없이 거짓말을 했
다.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떳떳하게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건 정말 잘못됐다. 그냥 대충 넘어갈 일은 아니다. 또한 쉬운 일도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
다.
잘못을 범하고도 사과는 커녕 또 다른 불순한 목적으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원만
한 해결책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바로 저작권협회에 연락해서 확인을 했다. 저작권승인팀의 담당자는
"사전 승인을 해준 적이 없다"라고 확인을 해주었다. 게다가 이미 승인 없이 음반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저작권협회에서도 자체 감사팀을 조직해서 조사할 계획이며 특히 본건의 경우,
"원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이 가사를 무단 변경했으므로 저작권 중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어 저작권
자의 허락이 없이는 사후 승인은 물론 사전승인도 있을 수 없다" 라고 분명하게 저작권협회 담당자로서
의견을 밝혔다.
난 적어도 그 말을 믿었다. 그건 법이니까.
이에 우리의 변호인 측은
"사전승인도 없이 출시된 이번 음반에 대해서 사후승인을 원하지 않는다"는 저작자인 나의 분명한 의견
을 내용증명을 통해(7월10일) 저작권협회에 제출했고 또한 법원에는 판매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7월 11일 다신 한번 저작권협회에 전화를 걸어 절대 사후승인을 원하지 않는다는 전화를 걸어 확
인했다
하지만 또 한번의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겼다..
최근 신문기사를 보고 나서야 저작권협회에서 사후승인을 해주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7월 10일, 저작권자의 요청으로 '사후승인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법률적 효력이 있는 내용증명이 저
작권협회에 전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일 후인 7월16일에 감쪽같이 사후승인이 나버린 것이다
과연 이 땅에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에 사후승인은 커녕 사전승인도 안 된다던 저작권협회에 그 사후승인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문의를 하
자 그 당시 담당자는 휴가를 갔다고 했고 '침해팀'담당자가 전화를 응대했다.
여기서 우린 또다시 참으로 이상한 말을 들어야 했다.
저작권협회는 저작권자의 권익보호와 올바른 저작권의 위탁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그렇기 때
문에 사전승인 없이 출시된 앨범에 대해서는 사후승인 요청이 들어오면 저작권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
해서라도(?) 신속히 사후승인을 해주고 있다라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내 음악을 지켜달라는 내용증명을 받고서도 저작권자의 권익(?)을 위해 저작권자에게는 전화 한 통화
상의도 없이 서둘러 사후승인을 내주었단다. 내가 싫다는데도 날 위해서? 과연 무슨 논리일까?
그리고 이 소식이 보도를 통해 전해진 7월31일, 이재수 측은 문화대통령이 속 좁게도 정당한 법적 절차
를 밟은 정당한 패러디를 문화적 차이로 이해 못한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맞불을 놓겠다고 여론을 형성
하며 대응했다.
그러나 이 건은 엄밀히 말하면 패러디에 대한 제소가 아니며 이재수 개인에 대한 제소 또한 아니다. 물
론 그들도 이점을 더 잘 알 것이다..
거대 기획사의 철저한 상업적 계략에 맞선, 한 음악인의 정당한 권리를 위한 올바른 주장이라는 표현이
맞는 말 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처구니없게도 마치 거대가수 서태지 대 힘없는 이재수라는 형태의 대결구도로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여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부조리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어쨌든 음악을 도둑질 당한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의 탈을 써야만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정당하게 나의 음악을 지킬 것이다.
왜 유난이냐고?
이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이 직접적으로 걸려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혼신을 다해 만
든 상대의 음악을 쉽게 생각하고 작가의 동의도 없이 편법적으로 돈벌이에만 이용하는 일은 앞으로 없
어져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판례를 남기기 위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비록 속 좁다고 매도 당한다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결국 내게 창이 돌아온다 해도......
난 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비록 승소를 하든 패소를 하든 이번 건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저작권의 보호와 오히려 패러디문화를 바르게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
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음악인의 최소한의 권익보호와 제대로 된 한국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모든걸 걸고라도 이 어려운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나와 생각이 같은,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들도 물론 함께한다.
10년, 20년 후 우리나라 문화의 수준이, 그 모습이 어떠할지
한번만 생각해보자. 이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몫이다.
-패러디조차 이해 못하는(?) 속 좁은 문화대통령이 -
=>사실 사서함듣기전에...
이재수와 우퍼측이 시종일관 그들의 억울함에 호소하고..
온갖 서태지의 속좁음에 떠들어대던 기사를 볼때
나또한 혼란스러웠지~~~~~
팬인 나도 이랬는뎅
모르는 사람은 정말 이상한 꼬라지`~~연출된다 했겠지~~~
사서함 듣구 또 혼자 분노했지~~~
어어어어억~~~~~~~~~
글구 거기까지 알아냈지...
쒸펄연제협똘마니 건모새끼가 기획사에서 그렇게 던
뜯어먹히구 신승훈 노이즈등등을 키워낸 어쩌믄
수만씨보다 더 큰 사단의 오야붕이신 사람.김창환씨가
이재수의 이번 '이란'앨범의 프로듀서이신걸~~
글구 우퍼의 사장님이신 김광환씨는~~
현 저작권협회의 부사장님이신걸~~~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수만씨는~~
"이사"님이시죠`~후훗~~그래서 그렇게 표절이 아닌
나름대로의 번안곡이 많으신가~~~~~ --;;)
그래..이재수...뒤에 캡숑큰 여우 두마리업고..
그러고도...약자..이시겠지.....
쿡찍어쑤욱 10] 서태지와 이재수
2001. 8. 7
딴따라딴지 전임 논설위원 파토
안그래도 격변이 많은 대중가요판... 요즘들어 여러가지 문제들의 돌출로 인해 더욱 시끄러워 지고 있다는 건 다들 느끼고 계실거다.
연제협과 엠비씨 문제도 그렇고, 가요순위프로폐지 건 등 구조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던 사안들이 표면화되는 과정에서 각종 트러블이 발생하고 있는거 말이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새로운 소동이 저작권 문제를 중심으로 발생했으니, 바로 서태지와 이재수의 공방이 그것이다. 본지에서도 소개한 바 있던 '음치 가수' 이재수가 내놓은 패러디 앨범 '이란' 에 수록된 '컴배콤' 과 관련되어 원곡의 저작권자인 서태지가 법적인 대응을 해 온 사건 말이다.
서태지나 이재수나 본지가 인터뷰, 기사 등으로 어떻게든 연관을 맺고 있던 사람들... 서태지의 경우 귀국 직후 그의 행보에 대한 본지만의 논평과 다른 매체와는 차별화되는 직격 인터뷰로 큰 호응을 받은 바 있고, 이재수의 경우는 본지에서의 소개가 지금의 유명세를 얻게 된데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본지가 '쿡찍어쑤욱' 코너를 할애해 가면서까지 이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그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최초의 패러디 관련 분쟁인 이번 일이 가진 상징성, 즉 이번 사건이 어떻게 풀려나가느냐가 이후 유사한 상황의 선례로 굳어질 - 특히 법정에서라면 판례로 -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큰 데다가, 문제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이번 사건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상황의 본질을 전혀 캐치하지 못한 채 일반 독자의 수준조차 넘어서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 이런 현실이 결국 본지로 하여금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또 본지가 나선다. 법적인 문제, 실제적인 원인 등등... 관련된 모든 사항을 까발려주기 위해.
패러디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한번씩 관련된 법적 문제들에 궁금증을 가졌을거다. 과연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부터가 패러디이며, 원 작품과 패러디 작품들의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것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개봉된 '무서븐 영화' 라는 패러디 영화의 경우 수많은 다른 영화를 본따서 뒤섞어 만든 넘이다.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한 짓을 알고 있다' 에서 '매트리스' 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재와 이름, 장면을 그대로 차용해서 만든 이 영화. 과연 원작들의 허락을 받고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 만든 것일까.
그럼 옛날에 인기 있었던, 탑건을 패러디한 '못말리는 비행사'나 람보 2를 흉내낸 '못말리는 람보' 같은 패러디 영화들은 어땠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 각국에서 패러디와 관련된 법령이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건 열라 간단하다. 왜? 프랑스 외에, 패러디와 직접 관련된 법조문은 전세계 어느나라의 법전에도 없기 때문이다. 좀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영국,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선진국들 어느나라에도 패러디를 다루는 법령은 없다.
...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이 문제가 예술, 법, 산업 등과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열라 섬세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법령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어렵거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각 케이스마다 상황이 다르고, 따라서 적용할 수 있는 제도나 법령도 달라질 뿐더러 무엇보다도 패러디라는 개념 자체의 정의조차도 모호한만큼 법으로 정리를 해놓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법정 공방이 될 경우 그때그때 문제를 따져봐야 하고, 가능한 판례를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패러디가 공정상용(fair use, fair dealing) - 공정한 이유와 방법으로 사용했는가의 여부 - 에 해당하는지 판례의 일치조차 보지 못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패러디를 자유이용(freie Benutzung)으로 인정할 것인가, 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진작품의 패러디에 대한 사건에서 '저작재산권'의 침해가 아니라 '저작인격권' 의 침해라는 판례가 있다. 서태지가 건 소송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사정이 이런 만큼 울나라의 저작권법에는 패러디에 관한 규정도 없고, 아직은 관련된 판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게 뭘 뜻하느냐고?
적어도 법적인 측면에서, 현재로서는 서태지나 이재수, 어느쪽의 손이던 간에 번쩍 들어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패러디는 일반적인 표절이나 모방, 도용과는 약간 다른 성격... 즉 패러디 특유의 유모나 비꼼을 통한 '재창조'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런 고유한 특성을 각각의 작품에 따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에 따라서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게 되니 말이다.
이 판정에는 패러디 작품의 내용이나 수준도 관련이 지어지고,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적 배경도 연관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저자의 저작권 행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도 개입된다.
프랑스의 경우, 이미 공표된 저작물의 저작자는 저작권법상 자유이용(저작재산권의 제한)의 한 형태로서 그 저작물의 패러디, 파스티슈, 캐리커처를 금지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단서 조항으로서 '해당 쟝르의 관례를 준수한다' 로 정리하고 있다. (프랑스 저작권법 제122조의 5 제4호).
이 말을 좀 풀어보면, 아무리 원작의 저작권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작가가 자기 작품을 활용해서 패러디를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작자가 지적 제산권의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이런 법을 굳이 제정한 이유는 패러디가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가진 예술 형식이며,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해서는 원작자의 저작권법상 권한을 제한하면서까지 보호해 출 가치가 있다는 사상적 기조를 명시하려 한 것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법 규정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클리어한 건 아니다. 왜냐구.
국어 사전에서 패러디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특정한 작품의 매우 진지한 소재나 특정 작가의 고유한 문체를 흉내내어 저급한 주제에 적용하거나 희화화 하는 수법. 또는, 그런 수법으로 만든 작품.
한편 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의되어 있다.
어떤 저명 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 시문. 어떤 인기 작품의 자구를 변경시키거나 과장하여 익살 또는 풍자의 효과를 노린 경우가 많다. 창조성이 없으며 때로는 악의가 개입되지만 여기서의 웃음의 정신은 문학의 본질적인 것이다.
보다시피 두 정의가 내용이 좀 다르다. 앞의 것은 '흉내' 에 주완점을 두었을 뿐 풍자나 비판 등의 요인은 패러디의 본질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뒤의 것에는 풍자, 조롱 등의 동기가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즉, 풍자나 조롱 등의 기조하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만 패러디로 볼 것인지, 혹은 그냥 순전히 웃기기 위한 것도 패러디의 범주에 넣어 줄 것인지 등 미묘한 문제들이 논쟁의 촛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호함에 근거하여 원작자와 패러디 작가측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대되는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넘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의 이야기구조를 그대로 흉내내서 웃기게 만든 장편 대하소설 '거미' 를 내놓았을때, 나는 이 작품이 패러디이므로 베르베르가 원작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베르베르는 내 작품이 패러디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질낮은 모작에 불과하므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프랑스법 상의 단서 규정인 '해당 쟝르의 관례' 라는 부분도, 이것이 성문화된 규정이 아니므로 그 해석이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따라서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역시나 그때그때의 판단에 의거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 버린다. 결국 프랑스에 존재하는 패러디 관련 법조문도 그렇게 실용적인건 아니란 소리다.
미국의 판례를 봐도 이런 어중간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먼저 <Put It Where the Moon Don't Shine> 이라는 코믹한 음반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음반에 수록된 곡 중 <When Sunny Sniffs Glue>는 <When Sunny Gets Blue>라는 제목의 곡 38소절 중 처음의 6소절을 복제한 것이었다. 들으면 노래 테마를 바로 알 수 있고, 가사도 바꾼 것으로 음반은 전체 길이는 약 40분, 그 중 패러디한 부분은 29초였다.
이에 대해 원작자 측은 저작권 침해, 부정경쟁 및 명예훼손으로 피고를 제소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피고가 원고에게 사용허락을 요청하였으나 원고가 거절한 후 사용하였다.
패러디를 행하는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인 경우 특정 저작물의 사용은 허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경우는 '듣는 사람이 원저작물을 상기하기 위하여 필요한 분량' 을 초과한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재판이 보여준 결론은, '패러디'라는 소기의 예술적 목적을 위해 특정 작품의 일부를 모방하는 것은 패러디라는 쟝르의 특성상 막을 수 없으며, 원작자가 비록 자기 곡의 패러디화를 거절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 셈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이런 관점으로 가닥이 잡혔나?
그렇지도 않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코미디극인 <스칼렛 피브> 에 대해, 저작권자인 MGM 영화사가 저작권침해 및 부당경쟁으로 법원에 제소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연극제작사쪽은 이 뮤지컬 코미디는 패러디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건에 대해 조지아 북부지방법원은 이 코미디에는 패러디의 의도를 반영하는 비평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단순한 오락을 넘은 사회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영화의 패러디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원작의 요소를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사용에 의한 보호의 가치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두 판례들을 통해, 각각의 상황들이 가진 미묘한 차이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거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한눈에 판정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0분당 29초는 괜찮은거라면 70분당 3분은 어떤지 - CD 한장 70분 분량에 한곡 전체를 패러디해서 넣으면 이정도 비율이 될거다 - '사회적 가치'라는 기준은 과연 뭔지, 심지어는 원작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거절당했다'는 것이 오히려 적법함의 근거가 되는 등... 각각의 상황과 작품의 성향에 의해 아주 예민하게 적용된 부분들이 많단 말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패러디와 저작권 부분은 법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유명한 패러디의 황제이자 이재수가 닮고 싶어하는 인물인 '위어드 얼 얀코빅' 역시 그의 모든 패러디 작품에 원작자의 동의를 미리 구하고 있다.
얀코빅의 패러디 활동은 법적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원작자에게서 직접 사용 허락을 받음으로서 오랜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얀코빅 자신은 '그냥 만들어도 위법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들과의 관계를 위해 일일히 허락을 받고 있다' 고 말하지만, 자칫 복잡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없애기 위한 예방조치인 것도 분명하다. 물론 얀코빅은 거절당한 곡은 패러디화 하지 않는다. 프린스의 경우가 그 예다.
그럼 이쯤에서 맨 첨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무서븐 영화> 나 <못말리는 람보>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했을까? 그리고 저작권료를 지불할까...?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모른다. 왜... 이것 역시 결국은 미국 영화판의 '관례' 와 '상식' 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게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판의 경우는 고전적인 씬을 재해석해서 화면에 담는 '오마쥬'라는 방식이 심심찮게 사용되므로 패러디에 대해 보다 관용적인 입장을 갖고 있을걸로 보인다.
필자가 아는 것은 단지 이거다. 미국 음악판에서조차 패러디 관련된 법이나 관례가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한번도 이런 패러디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울나라에서는 특히나 '관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일이 첫 케이스인 거고, 이 재판의 결과가 이후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했을때 기준이 되는 판례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법적인 판단은 서태지와 이재수, 두 진영간의 합의가 없는 한 전적으로 판사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위에 설명드린 복잡한 문제들이 전부 고려되는 가운데서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자하면, 패러디와 관련된 직접적인 법률이나 판례가 없는 만큼 이번 사건이 헌법 21조에 명시한 '언론/출판의 자유'및 21조 4항의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어야 할지, 그리고 저작권법 제 12조 성명표시권과 13조 1항의 동일성유지권 및 동조 2항의 동일성 유지권 예외 조항속에서 어떤 입지로 설정되는지 등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들이다.
그리고 이재수의 소속사 우퍼 엔터테인먼트가 주장하는 바, 즉 '판매가 시작된지 3년이 지난 음반은 원작자가 허락하지 않아도 갖다 쓰고 돈만 주면 된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저작권법 50조의 성립여부 또한 재판부 판단의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원작자와 사전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 이재수측은 '울트라맨이야'를 서태지에게서 거절당한 후 발매 3년이 넘은 '컴백홈'을 서태지와 협의없이 가져다 썼다 - 문화관광부의 공식적인 승인절차를 받아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이런 과정을 적법하게 밟아오지 않은 이재수/우퍼 측이 이를 법적인 근거로 내세운다는건 무리가 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관련 지식이 없는 분들로서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뿐이니, 법적인 문제는 일단 이정도로 하겠다.
하지만, 그저 '우리는 판단할 수 없으니 법정으로 보내자' 고만 말하고 이 논의를 끝내기에는 좀 석연찮은 면이 있다. 글타... 이번 사건은 패러디냐 아니냐, 저작권법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대가수 서태지와 초짜 신인 이재수라는 주역배우들의 역할이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태지의 소송건이 많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이재수에 대한 동정론을 불러 일으키는 듯이 보인다.
그럼 이제부터 그것과 관련된 진실을 함 찾아나가 보자. 이번 상황의 배후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
현실의 문제
독자 열분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다.
'아 씨바... 언더가수 이재수가 울나라 최초로 패러디 가수 함 해보겠다는데, 천하의 서태지가 그런 것 가지고 재판까지 걸고 늘어지냐? 쪼잔하게...'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다. 이미 가질것 다 가지고 있는 서태지와 이제 막 데뷔하는 병아리 패러디 가수... 굳이 서태지 쪽에서 싸움을 걸 가치가 있는건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혹은 어느 일간지 기사 대로 '문화적 권위주의'의 냄새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피상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먼저 이 문제를 바로 보기 위해 전제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울나라 사람들은 이런 식의 일에 대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버릇이 있다. 때로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관점은 대게의 경우 객관적인 상황 판단과 처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많다.
법 앞에서 서태지와 이재수는 동일한 두 명의 자연인이다. 그 둘 사이에서 저작권법 관련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두 사람의 재산이나 명성의 차이와는 관련없는 일이다. 한쪽이 상대의 불법적인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 소송을 내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권리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서태지가 이재수의 '귀여운 짓'에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해 줬으면 하고 바랄 수는 있고, 이건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울나라 대중음악판 현실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상식이 통하지 않고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막가는 울나라 가요판 시스템을 마치 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하는 허무한 낭만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게 그저 '귀여운 짓'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이재수의 활동 방향에 촛점을 맞춰 생각해보자. 속칭 '신바람 이재수'라고 불리우는 그는 '배칠수의 음악텐트' 에서 활동하며 약간의 팬들을 거느린 인터넷상의 엽기가수였다. 그때까지의 그는 분명 문화판의 비주류 하위구조 속에서 독특한 소재와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참신한 존재였다. 본지가 '록의 지존' 운운하는 코믹 기사로 그를 소개해 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본지 등을 통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지자 그의 행보의 색깔은 달라졌고, 움직임은 빨라졌다. 뜻밖에 굵직한 티비 씨에프에 출현하고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스콜피온즈와도 직접 만나서 낯뜨거운 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티비 프로그램들이 몇개씩이나 되고, 세인의 주목속에서 음반도 발매하는 입장으로 도약한 상태다.
지금의 이재수는 쇼 비지니스 시스템의 서포트를 받는 오버그라운드 엔터테이너다.
이처럼 그는 더이상 마이너가 아닌, 티비가 주축이 된 쇼 비지니스 시스템에 직접 뛰어든 오버그라운드 엔터테이너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사실 '록의 지존' 글을 직접 쓰고 그의 통기타 버젼 '스틸 러빙유'에 일렉기타와 각종 반주를 입혀 편곡작업까지도 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그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신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활동 자체의 질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상업적 전망을 바라본 기획사의 매니지먼트가 뒤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 쇼 비지니스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캐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매니지먼트가 기존 티비 출연 가수들의 경우와 거의 같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거라는 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재수가 소속된 우퍼 엔터테인먼트가 과거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웠던 라인음향의 사실상의 후신으로서, 김건모를 키워낸 바 있는 김창환 사단이 주도하고 있는 주류 음악기획사라는 점에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따라서 이재수의 패러디 음반 역시 그 자체의 침신성이나 수준여부을 떠나 거대 상업기획사의 전략적 산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재수 '본인'의 생각이나 목표와는 상관없이 그가 속한 기획사에게 있어서 그의 모든 활동은 울나라 티비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한 전형적인 상업 기획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상업성을 극대화 하는 방법으로 서태지와 컴백홈이 선택되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서태지가 이재수 측의 요청을 거절한 것과 이후에 벌어진 저작권 협회의 '사후승인'에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즉 이재수와 우퍼 언저리에서 맡을 수 있는 '돈을 쫗는 자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사실이 어떤지의 여부를 떠나 이재수의 최근 활동이나 울나라 가요판의 성격으로 미루어볼때 의심받기 충분한 상황이니 말이다.
울나라의 대중음악판은 상식과 양심이라는 보편적인 기조하에서 돌아가고 있지 않다. 돈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를 쓰고 덤벼드는 양아치들의 속고 속이는 노름판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서태지의 입장에서 '패러디'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또 하나의 뻔한 상업주의일지도 '모르는' 이재수의 프로젝트에 자기 곡을 선뜻 빌려줄 맘이 내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만약 이재수의 활동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 알았다면 필자 역시 그를 본지에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그의 '음악'과 이름을 본지를 통해 알린 이유는 그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하위문화의 독특한 캐릭터로서 역할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 주자는 순수한 의도였을 뿐, 씨에프 출연과 티비 오락프로그램 등 기존의 쇼 비니지스 시스템에 진출하여 한몫 잡도록 돕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프랑스 외에 전세계적으로 패러디 관련 법안이 없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나라들에는 패러디 작품이 없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쌈. 물론 약간의 분쟁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양심과 상식, 이해와 관례에 의해 서로간에 용인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에는 굳이 패러디 관련 법이 필요없는 거다. 헌법과 저작권법, 그리고 일반 상식에 의해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플하고 명백한 구조의 대중음악판 시스템과 인적 구성이 갖추어져 있기에 법이 따로 없이도 적절한 형태의 자기규제나 암묵적 합의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에서라면 그 까다로운 마이클 잭슨이 얀코빅의 패러디 활동을 용인해 줄 수 있는 여유와 신뢰가 음악판 내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울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한가지가 히트하면 개나소나 얼굴에 철판깔고 다 덤벼드는 울나라 가요판... 서태지가 만약 이재수에게 컴백홈 사용을 허락해 준다면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제 2, 3 의 이재수가 새로 나와 그에게 '난 알아요' '필승' 등등 온갖 곡들의 사용을 요청한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최근의 어이없는 편집앨범 붐을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 울나라 음악판에 이른파 패러디 음반들이 홍수를 이루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질적인 면에서 개판일 것이다.
이넘이 얀코빅에게 흔쾌히 곡을 쓰도록 허락해줄 수 있었던 건 이넘 개인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서가 아닌거다...
이처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히 보이는데 이재수의 패러디가 어찌 신인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귀여운 짓으로만 보일 수 있는가 말이다.
즉, 이번 일에서 나타난 서태지의 '여유없음'은 울나라 음악판의 천민적 속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그가 이런 일에 '여유있게' 대처하는 순간, 그것이 어떤 넘들에게는 여유가 아닌 헛점으로 보일 것이고 그 결과 기를 쓰고 덤벼들어 모든 걸 다 벗겨 갈려고 할 가능성, 충분하다.
미국에서는 얀코빅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의 가수가 결코 붐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얀코빅의 'Eat it'의 경우 15년여 전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일찍부터 대박을 쳤고 이후에도 'Smells like Nirvana', 'Asshole Sun' 등 계속 화제의 곡들을 발표해 오고 있다. 이런걸 보면 얼핏 생각하기에 얀코빅을 흉내낸 온갖 가수들이 쏟아져 나올 것도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가 멀까. 첫째로 여기에 덤벼드는 가수들이 별로 없다는 거다. 얀코빅의 독자적인 영역과 태두로서의 무게를 인정하는 마당에 이걸 어줍잖게 흉내낸다는 것은 뮤지션들 자신으로서도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음반사는 물론 대중들 조차도 이런 존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패러디 가수는 그 시초이자 최고봉인 얀코빅 하나면 충분한 것이고, 그걸 또 흉내내는 아류 따위는 거부할 줄 아는 주체성이 그들에게는 있다. 우리에게도 과연 이런게 있을까?
세번째는 얀코빅 밴드가 우리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실력이 있는, 음악을 잘하는 팀이란 거다. 그들이 패러디곡을 연주하는 수준은 원곡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데, 이 점은 초기 밴헤일런을 흉내낼때부터 얼마전 사운드가든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울나라는 아직 진정한 패러디 음악이 나올 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설사 내막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순한 상업적인 술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가 어렵다. 시스템이 청정해지고 뮤지션들과 창작자들이 이를 신뢰할 수 있을때, 상대의 의도를 의심을 갖지 않고 볼 수 있게 될때, 그럴 수 있을 만큼 모든게 정돈된 담에나 가능한게 패러디 음악이 아닐까.
이제 저작권협회의 '사후승인'이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 좀 알아보자. 서태지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전승인은 물론 사후승인도 절대 불허한다고 여러차례 통보했건만, 결국 사후승인이 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식의, 심지어는 원작자의 뜻마저 무시하는 저작권협회의 사후승인은 울나라 음악판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후승인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뽕짝 메들리' 테입이다. 이른바 커버 버젼으로 불리우는 이런 음반들은 원곡의 멜로디와 노래를 그대로 차용해서 다른 가수가 새로 녹음해 만든 것인데, 특성상 테잎 하나당 수십곡 이상이 들어가게 되므로 일일이 원작자에게 사용허가를 받는다는 건 어려워진다.
이박사 초기의 메들리들도 커버버젼으로, 아마도 사후승인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 테잎을 다 만들어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승인을 받게 되는데, 이게 사후승인이다. 이런 커버버전에 한해서는 원작자의 승인 없이 저작권협회의 승인만으로도 허가가 나게 되어 있다.
서태지가 저작권 협회에서 들은 사후승인의 이유 중 '저작권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라는 아리송한 말이 뽕짝테잎의 경우라면 성립이 될 수 있다. 불법적인 메들리 테잎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저작권협회에서 굳이 연락도 잘 안되는 원작자들의 의견을 일일이 묻지 않은 채 알아서 승인해주는 셈이니 말이다. 이런 경우라면 사후승인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태지등 본격파 작곡가들의 경우에까지 이런 방식이 무작위로 허용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뿐더러, 공증된 서류로 통보한 원작자의 불허 입장까지 무시한 협회의 승인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원작자의 승인 절차 없이' 사후허가를 해줄 수 있다는 말이 '원작자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허가해도 된다는 것과 동일한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재수 측 기획사와 저작권협회간의 아리송한 담합의 결과던지, 아니면 원작자의 뜻과 관계없는 저작권협회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조치던지 - 뽕짝 작곡가 및 이재수 음반에 있는 다른 곡들의 작곡가간에 이른바 형평의 문제 등 - 혹은 이번 상황과 뽕짝 메들리 테잎 제작과의 차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거나, 앞서 간단히 이야기한 저작권 법 50조, 즉 3년이 지난 음반에 대한 재녹음 판매 허가 조항에 대한 저작권협회의 무지의 소치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서태지가 저작권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니므로 이 부분의 진정한 내막은 이번 일과 관련되서는 명백해지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저작권협회의 이런 행동은 직무유기나 월권의 혐의가 농후한,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한다.
결론
자. 이제 모든 걸 총정리해 보자.
서태지의 거절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후 승인은 떨어졌다. 그리고 서태지는 음반판매금지 가처분신청과 성명표시권및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권법상의 침해를 들어 민/형사상의 고소고발을 단행했다. 법적인 부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재수의 음악이 공정한 패러디물, 즉 2차 창작물의 독자성을 인정받음으로서 원저자의 반대와 상관없는 '공정사용' 으로 허가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 모작이자 지나친 모방, 그리고 원저자의 의도에 반하는 사용에 의한 인격 침해로 결론이 날지... 혹은 그 중간에서 어중간한 결론이 날지는 재판이 끝날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일에 대한 서태지의 분노와 소송을 '문화적 권위주의' 내지는' 쪼잔함'으로만 치부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거다. 이런 인식은 서태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처한 대중음악판의 현황을 구조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얼핏 보이는 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이 싸움은 결코 골리앗 서태지와 다윗 이재수의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유리한 것은 저작권협회를 비롯하여 음악계의 모든 시스템적 관행과 특성을 뒤에 업고 있는 이재수란 사실이다. 사후 승인이 떨어졌다는 자체가 이를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재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욱 이름이 알려졌을 뿐더러 이유야 어찌되었든 서태지와 맞장을 뜨는 존재로 이미지가 수직상승했다. 음반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이 떨어진다 한들 이미 상업적인 이익을 취할 만큼 취한 다음일 것이다. 그로서는 아무것도 손해볼 것이 없다.
서태지는 마치 주류의 선봉인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한편 서태지는 이름과 존재감으로는 주류지만 실제로는 울나라 음악판의 주류가 아니다. 지금 그의 팬들은 과거의 무작위적 대중이 아니라, 일종의 컬트를 형성하고 있는 '서태지 매니아'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울나라 주류에서 인기있는 음악은 그가 하고 있는 것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이런 모습이 그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을 뿐, 그는 현행 울나라 음악판 시스템에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이며 외골수인 셈이다. 그의 '이름'이 가진 파워가 다른 비주류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방송사 등에서 끌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언제까지 약발이 먹힐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이 싸움의 주체는 아래와 같이 새로 정리되야 할 것이다.
한때 주류였고 지금도 주류로 보이지만 실은 비주류인 서태지
Vs.
비주류로 보이지만 실은 주류의 시스템을 업고 주류를 추구하는 이재수
자. 일단 이런 시각으로 다시 상황을 보시라. 그리고 열분들이 가졌던 편견을 버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하자. 최종 결론은 판사가 내리겠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고 자칫 어느쪽으로든 감정적으로 현혹되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이재수의 활동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둘만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자신의 패러디에 대한 열정은 진심일 것이고, 그런 음악이 울나라에서 나오는 것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순수한 목표도 천박한 울나라 쇼 비지니스 시스템의 도움을 얻는 순간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될 수 있고, 그것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우리가 처한 슬픈 현실이다.
난삽한 울나라 사회에는, 특히 음악판에는 너무나 많은 부조리의 함정이 있다. 이 함정들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두눈 부릅뜨고 살피는 것, 그것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복잡하고 소모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힘을 모아 우리의 음악판을 깨끗하고 공정한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