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3일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1억 8750만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1913∼1974)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
김환기 <우주 05-IV-71 #200>, 1971
송애리
한국 미술품의 경매 역사를 새롭게 쓴 김환기의 <우주 05-IV-71 #200>.
그 걸작이 갤러리현대의 50주년 기념전 《현대 HYUNDAI 50》을 통해 한국의 관객과 만난다.
“나는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한다. 이런 걸 계속해보자.”
-김환기의 일기, 1968년 1월 23일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 말년의 그는 수많은 점이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전면점화’의 세계를 완성했다. 그가 1971년 제작한 <우주 05-IV-71 #200>은 어떤 경지에 이른 김환기 추상회화의 정수로 통한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폭으로 구성되어 더욱 특별하다. 수직으로 긴 양 화면의 원 이미지가 조화롭게 대칭을 이룬 모습으로, 전체 작품은 254×254㎝ 크기의 정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작품을 보면, 벌집 구멍처럼 작은 네모꼴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 사이를 얇은 서예 붓으로 찍은 무수한 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점과 선, 그리고 색 면이 한 화면에서 유기적으로 만나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화면 상단의 점들이 원을 그리며 아래로 진동하듯 확장되어, 그 앞에 선 관객은 무한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채운 ‘점’ 하나하나는 우주를 구성하는 빛나는 별이자, 작품의 제목처럼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한다.
왜, 점이었을까? 그의 작업에서 ‘점’이라는 추상적 요소는 1965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1963년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작품은 구상성이 점차 사라지고 추상의 세계로 진입했다. 그는 수평과 수직의 직선적인 구성으로 점화를 그려갔다. 하지만 점차 사선 구도와 선을 첨가했고, 화면을 나눴으며, 점도 방향을 달리해서 찍었다. 김환기는 점과 선뿐 아니라 색이 지닌 감정 전달과 주제 표현의 기능 및 효과에 주목했다. 점화 초기에는 적, 청, 녹색을 사용하며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제작했으나, 이후 회청색 또는 흑회색을 주로 택했다. 전문가 사이에서 소위 ‘환기 블루’라 평가받는 그 특유의 색감이 완성된 것이다. <우주 05-IV-71 #200>는 ‘환기 블루’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무한 발산한다. 1970년대 이후 작가는 매우 다양한 계열의 푸른색을 활용했다. 물감을 번지고 색을 겹쳐 그려 농담의 미묘한 차이를 강조했으며, 화면 전체에 하나이면서 동시에 수만 가지로 빛나는 색의 층을 직조했다.
이렇게 점은 김환기가 다다른 추상을 향한 실험의 도착지였다. 또한 점 그리기는 고국에 남은 이들을 향한 그리움의 두드림이었다. 그는 척추가 손상될 정도로 고되게 수많은 점을 캔버스에 찍고 그리며 고향의 친구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 김환기, 1972년 9월 14일 일기
당대의 평가는 어떠했을까? <우주 05-IV-71 #200>은 1971년 9월 뉴욕 포인덱스터갤러리(Poindexter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도 출품됐으며, 포스터에 작품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전시를 본 한 평론가는 김환기의 ‘우주를 표현하는 놀라운 어휘’를 호평했다. “김환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영혼성을 창조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계속적이며 반복적인 패턴은 크기의 다양성이나 형태나 예기치 않은 색채들로서 흐트러짐 없이 우리의 눈을 위로해준다. 어느 때보다도 색채의 광범한 범위 속으로 깊이 들어간 그는 별빛처럼, 혹은 밤의 도시의 불빛처럼 점과 사각형의 단위의 몇 가지 색깔로서 하나의 어휘를 구사하고 있는데… (중략) 환기의 작품들은 우주를 표현하는 놀라운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1) 이 작품은 1975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제13회 상파울루비엔날레의 특별전에도 출품되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됐을까. 작가의 곁에서 오랫동안 작업 과정을 지켜본 김향안 여사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작가의 무드’에 따라 점이 찍히고, 그 점을 사각형이 둘러싸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신비스러운 빛깔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큰 점, 작은 점, 굵은 점, 가는 점, 작가의 무드에 따라 마음의 점을 죽 찍는다. 붓에 담긴 물감이 다 해질 때까지 주욱 찍는다. 그렇게 주욱 찍은 작업으로 화폭을 메운다. 그다음 점과 다른 빛깔로 점들을 하나하나 둘러싼다.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중략) 다시 다른 빛깔로 하나하나 둘러싼 사각형을 다시 둘러싼다. 전 화폭을 둘러싼 다음, 다시 또 다른 빛깔로 네모꼴을 둘러싼다. 세 번 네모꼴을 그리는 셈이다. (중략) 중첩된 빛깔들이 창조하는 신비스러운 빛깔의 세계, 이것이 이 작가의 개성이다.”2)
1972년 뉴욕 김마태 박사 자택.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 점화’ 아래서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이 김마태 박사와 함께 소파에 앉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김환기의 그림을 구매한 후 벽에 걸던 날이었다.
<우주 05-IV-71 #200>의 오랜 소장가는 재미동포 의사 김마태(Matthew Kim) 씨. 그는 김환기의 오랜 지인이자 작업 후원자였다. 김 씨와 김 화백의 만남은 6.25 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 한 다방에서 시작됐다. 훗날 김 씨는 미국으로 떠나 의사가 되었고, 김환기도 1963년 뉴욕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김환기의 뉴욕행을 여러모로 도운 인물도 김 씨였다. 47년 동안 김마태 씨의 품에 있던 <우주 05-IV-71 #200>가 2019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 옥션에 출품되어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것. <우주 05-IV-71 #200>는 한국 미술사를 새로 쓴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우주 05-IV-71 #200>는 2012년 갤러리현대의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에도 출품된 바 있다. 그 후 8년이 흘러 갤러리현대의 전시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갤러리현대는 작품 공개를 위해 이 걸작을 새로 소장하게 된 컬렉터를 설득했다. 갤러리의 50주년을 기념한 특별 전시에 김환기의 작품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컬렉터는 김환기와 갤러리현대와의 오랜 인연에 믿음을 갖고 작품 전시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갤러리현대는 1977년 《김환기 회고전》 이후 총 18회에 걸쳐 김환기의 전시를 개최, 그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해 왔다. 1982년 《김환기 전》, 1990년 《김환기 과슈전》, 1994년 《김환기 20주기 회고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99년 《김환기 서울·뉴욕 시대》, 2012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2013년 《Works on Paper: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2015년 《김환기의 선 •면 •점》 등이 갤러리현대에서 열렸다. 작가 유족인 김향안 여사는 갤러리현대와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앞서 언급한 전시가 개최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갤러리현대도 작가의 15주기를 기념한 《데생 · 과슈 –부산 · 파리 · 뉴욕 (1952-1966)》 등을 통해서 1992년 환기미술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미술사학자 김현숙은 ‘김환기의 점화가 관객을 흡인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이제 그 ‘자유로운 기운’을 다시 마주할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환기의 점화를 보며 무수한 별이 빛나는 우주의 운행을 유추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우주 상징의 기호를 감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호의 형태 및 의미가 점화를 구성하는 전부였다면 작품의 예술성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환기의 점화가 관객을 흡인하는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묵화와도 같은 발묵 효과 때문이며, 우주적 스케일로 감지되는 이유는 수많은 우주의 기호, 다시 말해 원을 둘러싼 사각형의 연속 형태와 발묵의 융합 효과에 있다.
이로써 그림을 들여다보면 어느 덧 자신이 우주의 한 점으로 수렴되고, 그 미미한 점들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발산하며 부유하는 자유로운 기운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3)
1) 안드레아 미꼬다주크, 『ARTS』지 1972년 10월호. 1977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김환기 회고전의 도록『김환기』에서 재인용.
2) 김향안
3) 김현숙, 「수화 김환기의 종이작업(1967-73)」,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갤러리현대, 2013)
홍콩 크리스티 경매서 132억 낙찰 김환기 -우주-.hwp
'코로나19 '검사도 받아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음성이어서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저는 2018년 여름 대구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김환기 전'에 보름 간격으로 두 번 가서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이때 그의 대표작 점화 6점이 출품되어 안복을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