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이력서
‘춘농 졸업, 강원도 임산과 도고원 취직, 36년 11월 21일간 강원도 공무원 근무, 원주시장 명예퇴직’
이것이 내 이력서의 전부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이력서이다. 게다가 이력서의 여기저기
몇 군데 얼룩이 져서 볼썽사납다.
이력서의 경력 란은, 시냇물이 흐르듯 순탄하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이력은 좌천을 당하거나,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침체돼 있거나 또는 남보다 승진이 늦거나 해서 보기에 흉하니, 이것이 바로 내
이력서의 얼룩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얼룩이가 내 이력서에는 유난히 많다.
맨 처음의 얼룩은, 회계과 감사계장에서 지방과 지방세계의 평주사로 좌천된 얼룩이다.
나는 도청이 원주에서 피란살이를 할 때에 서무과 운수계장으로 발탁되었었다.
그때 내무국장은 춘고 출신의 심상대 씨로서, 강원도의 인사는 춘고 대 춘농으로 말이 많아서, 춘농
출신은 인사 면에서 불리한 때인데, 나는 춘고 출신의 같은 연배의 직원을 제치고, 28세의 최연소
계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1년여의 운수계장을 거쳐 회계과 감사계장을 1년 남짓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지방과 지방세계
평주사로 좌천을 당했다. 심 국장은 “백진용 지방세계장은 곧 군수로 나갈 것이므로, 그 후임으로 미리
갖다놓는 것이니 세법을 잘 연구하라.”고 한다.
그때 지방세계장의 직급은 지방참사로서, 사무관 계장과 지방참사 계장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나의
행정 선배가 많은 터에, 더욱이 춘농 출신인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만약에
이것이 실현된다면 강원도 인사로서는 공전절후의 파격적 인사가 되는 것이다. 반신반의의 이 인사는,
심 국장이 그 직후 충청나남도 내무국장으로 전보되는 바람에 우야무야가 되고 말았으며, 지방참사를
시켜주겠다는 심 국장의 진의(眞意)는 영영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5‧16 혁명 이듬해인 1962년 4월에 38세의 나이로 재정과장에 발탁된 것은 자랑스러웠으나, 그다음 회계
과장으로 자리를 바꾸어 7년간이나 쳐박혀 있었으니, 이것이 또 하나의 얼룩이 아닐 수 없다.
이 용 지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박경원 지사는 그의 승진후보자명부에서 아예 나의 이름 석 자를 삭제
해버렸는지, 행정 후배인 주우영, 김명한, 최종민을 연이어 군수로 발탁했다.
박경원 지사가 사임하고 그 후임으로 부임한 엄병길 지사도, 그의 전임자처럼 나의 행정 후배인 장도경,
심영목을 군수로 발탁하고, 더욱 심한 것은 내가 재정과장 때 예산계장으로 데리고 있던 김오영을 군수로
발탁하더니, 예산계 차석으로 있던 정영철까지도 군수로 발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도 무능한가?’ 하고 비애를 느꼈으며, 이것이 가장 큰 얼룩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병길 지사는 나의 얼룩진 이력서가 안쓰러웠던지, 1970년 3월에 춘성군수로 발령을 했는데, 나는 재임
3개월이라는 최단명 군수에 그치고 도 양정과장으로 좌천되어 또 한 번 동료들의 비웃음을 샀다.
내 이력서의 또 하나의 얼룩이는 동료 공무원을 내손으로 숙청한 일이다.
4․19와 5․16 그리고 10․26 등 정치적 격동을 겪은 정부는 그때마다 죄 없는 공무원을 대량으로 정리했는데,
그 세 번에 걸친 공무원 숙청의 악역을 내가 맡았었다.
4․19 당시와 5․16 직후에는 내가 서무과 인사계장으로 있었으니 그렇다 치고, 그로부터 근 20년 후인 1980년
8월에는 내무국장으로 돌아와 또다시 공무원 숙청의 메스를 들이댔으니 꽤도 운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 동우회 회원 중에도 그 당시 억울하게 당한 분이 많이 있어서 가끔 “그때 원 회장이 내 사표를
받아갔지!” 할 때에는 그것이 농담인줄은 알면서도, 언중유골의 가시 돋친 한 마디에 뜨끔하기도 한다.
내 이력서를 더럽힌 얼룩이가 그 뿐이랴만, 그래도 ‘원주시장 명예퇴직’의 여덟 글자가 있어서 그런대로
나를 위안해 준다.
사실 많은 후배와 부하가 나를 추월했으나 그 대부분이 도중하차를 했는데, 나는 부이사관 직급인 시장
으로서 고향인 원주로 금의환향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고, ‘명예퇴직’을 한 것도 나로서는 매우 자랑
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유능하고 성실한 선배 공무원들이 단 한 분의 예외도 없이 정년을 마치지 못하고 후진을 위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자의 반 타의 반 그 직을 물러날 때, 내일처럼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년퇴임’이 나의 소박한 소망이었지만 ‘신분보장’을 거지발싸개만도 못 여기는 우리나라 인사
풍토 속에서는 정년퇴임이란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러던 차에 ‘명예퇴직제’가 처음으로 생기고 김영진 부지사가 명예퇴직 의사를 타진해왔을 때 ‘올 때가
왔구나!’
체념하고 즉시 ‘명예퇴직 강원도 제1호’의 테이프를 끊었던 것이다.
명예퇴직제는 표면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만, 이것도 하루속히 폐지돼야할 독소 조항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로서는 이것을 감지덕지했던 것이다. (춘천행우)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3공 5공시절에도 그랫고 어느 정권이든 정권이 바뀌면 줄 잘서서 승진하려는 풍토는 공직사회에서 항상 있게
마련이지요. 그래도 종욱친구 부친께서는 묵묵히 소임을 다하시며 순리에 따라 인생을 살아 오신것이 약삭바
르게 줄잘서서 승진했던 사람들보다 열배 백배 잘살아 오신겁니다.자동차도 과속질주하면 사고나고 폐차하듯
이 먼저 승진해 군수로 나간후배들은 결국엔 일찍 공직을 떠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80년숙청은 어느부서든 할당제였기에 어쩔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