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 표시는 갈림길이 왼쪽이나 오른쪽 방향 표시일 뿐 특정지점 등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등산 지도/고도표
금시교 아래
금시교 아래..밀양 아리랑길..출발
포장 길로 진행..(우측 흙길도 있다)
뒤돌아 본 그림
이정표
금시당백곡재 입구 / 이정표... 금시당 둘러보고 진행하고자 한다.
금시당과 백곡재 2채로 된 건물이다. 금시당은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광진(1517∼?)은 명종 1년(1546)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실록』,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후에 벼슬이 좌부승지에까지 이르렀다. 금시당이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말로 산수와 전원에서 여생을 즐긴다는 뜻이다. 명종 21년(1566)에 처음 지은 금시당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743년에 백곡 이지운 선생이 복원한 것이다. 백곡재는 백곡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철종 11년(1860)에 세운 건물이다. 이곳에는 이광진이 직접 심은 은행나무가 있어 금시당에서 내려다보는 밀양강과 잘 어우려져 있다
용평(백송 또는 월연)터널.. 1905년 1월1일 개통된 폭 약 3m, 총연장 약 130m 로서 경부선 철도터널이였으나 1940년 4월 경부선 복선화 사업으로 이설된 이후 일반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정우성 주연의 영화 "똥개", MBC베스트셀러 극장 차인표주연의 "뿌리", 전설의고향 등 많은 드라마가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터널 우측으로...
우측 다리를 건너가면 추화산 메인 등로이나 직진한다.
월연정 ; 전라도 담양의 소쇄원과 비교되는 정자로 월연대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모여서 집합체를 이루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정자 건축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조경 양식을 보이고 있다.
쌍경당과 월연대 등 주건물을 세우고 직접 이름을 붙인 쌍청교(雙淸橋)·영월간(迎月澗)·수조대(垂釣臺)·탁족암(濯足巖)에..
행단(杏壇)·죽오(竹塢) 등의 화초와 나무로 주위를 아름답게 조경했다.
월연정(月淵亭)은 본래 월영사(月影寺)가 있던 곳으로 월영연(月影淵)이라 하였다.
이 건물은 한림학사등 여러 요직을 지내다가 기묘사화를 예견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월연 이태(月淵 李迨)선생이 중종20년(1520년)에 세운 정사(亭舍)로 처음에는 쌍경당(雙鏡堂)이라 편액(扁額)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33년(1757년)에 8대손인 월암(月菴) 이지복(李之復)이 쌍경당을 복원하였다.
월연정 뒤로 가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길이 넓다.. 염려했던 것보다 길이 좋네..
지금부터 길이 조금 희릿하다... 갈림길인지 ? .... 좌로 간다.
순간 길이 잡초에 묻혀있다.
곧 길이 뚜렷한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 몇걸음에 갈림길이 있어 사거리가 될 수 있다.
좌측 몇걸음에 갈림길
~~ 15:39 휴식 후 출발
조금 가면 이정표 삼거리 / 섬벌마을 갈림길(하산시 이 길로 간다)
길은 좋다... 복원된 추화산성이 있는 이정표 갈림길
봉수대는 넓은 길로... 추화산 가는 길은 조그마한 소로길이다(이 길로 내려옴)
<추화산봉수대 282 / 월연정 1279 금시당 3005>
봉수대 가는 길
추화산성 안... 굉장히 넓다.
경상남도 밀양시 해발 243m의 추화산 산마루에 있는 돌로 쌓은 성으로, 밀양읍성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km지점에 있다.
추화산성은 신라가 가야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터로 추정된다.
성의 둘레는 1430m이고, 성의 구조는 동, 서, 남에 문터가 있고 북쪽 계곡의 평지에는 우물, 연못 부속건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추화산 서·북부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군사적 고지이면서,
주변의 주민과 군사들에게 적의 침입을 알리는 기능을 하였던 곳이었다.
성안에서 기와 조각, 토기 조각, 분청자기·백자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추화산성은 처음에는 읍성으로 사용되다가 새읍성이 현재의 밀양시내 쪽에 지어지면서 산성으로서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1095 / 추화산성터 282 월연정 1561>....우측으로
봉수대
정면에 보이는 정상으로 향하다.
추화산 가는 길
[삼각점 242.4m] 추화산...우측으로
정상에서 잠시 내려가니 폐건물이...
창훈문(폐건물) -퍼온글-
이 곳에는 밀양의 수호신으로 추숭받던 손대장군 孫兢訓(손긍훈), 박대장군 朴郁(박욱)의 사당이 있었다.
밀양인들은 언제인지는 모르나 그들을 밀양 성황신의 주신으로 받들고 塑像을 봉안하였으며 관부에서는 제향을 올렸다.
1875년에 安仁遠 등 고을 유생들이 경상감사 朴齋寅에게 건의하여 推火山頂의 원위치를 찾아 복원 재건하고 推火祠라고 했다. (孫柄鉉이 1929년경에 발행한 密州勝覽에서).
1894년 갑오개혁이후에는 관부의 제향은 폐지되고 후손들에 의해 봉사가 계속되었다. 1924년에 석조로 사우를 재건하여 彰勳閣이라 개칭하고 廣理君 손대장군 소상만 봉안하였다. 1948. 2. 7 폭동 사건으로 추화산정의 사당을 훼철하고 광리군의 소상을 재숙소인 春福齋로 이봉하였다. 이상은 밀양지(밀양문화원 , 1987년 발행)에서 옮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