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14)-2… ◇
* [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집필 오상수 *

▶ 2013년 4월 1일 (월요일) : 제13일- (2)
*[포카라]-사랑곳-페와호수- [비행기 탑승]- [카투만두]*파슈파티낫트 사원 탐방

*[포카라 공항-카투만두] …안나푸르나 연봉이 보이는 하늘 길
☆… 오후 1시 40분, 네팔의 꽃, 날리구라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포카라공항에서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여기서 수도 카투만두까지 걸어가면 하루도 빠듯하고 버스 타고 가면 6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하늘 길로 30분만에 날아갔다. 비행기 속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니 안나푸르나 연봉이 구름을 이고 나의 눈높이로 이어져 갔다. 청명하고 화창한 날이다.




☆… 오후 2시 10분,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하니, 예의 ‘아세아트래킹’에서 미니버스를 대기시켜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시내 진입하여 일단 삼사라호텔(Samsara Hotel)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 그런데 거기에 우리의 쿡 마일러가 나와 있지 않은가. 그는 어제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에베레스트 산록의 오지 마을인 굼중(Gumjung)의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내일 우리를 배웅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와락 포옹까지 했다.


*[한국식당 <빌라에베레스트>] …시원한 냉면, 그리고 ‘앙도로지 셀파’
☆… 우리는 마일러를 대동하고 호텔에서 가까운 한국음식점 <빌라에베레스트(Villa Eberest)>로 갔다. 이곳은 우리가 트레킹 들어가지 전날 식사(3월 21일)를 한 곳이었다. 오늘은 이상배 대장과 아주 친밀한 네팔인 사장 ‘셀파 앙도로지’가 홀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사람 좋은 우리나라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감이 드는 인상이었다. 그는 네팔의 셀파족(Sherpas) 출신인데 네팔에서 한국음식을 가장 근사하게 잘하는 요리사이다. 한국인과도 매우 친밀하여 한국을 몇 번 다녀가기도 했다. 그리고 식당의 벽에 게시된 한국 신문 기사를 보니, 그는 여러 차례 신문에 보도되기도 하고 인터뷰한 기사도 있었다. 처음 한국인 등산객들을 위하여 안내하고 요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냉면을 시켜서 먹었다. 그 동안 건조한 날씨에 시달리며 속이 타는 일정을 보냈으므로, 처음 이상배 대장이 점심 메뉴로 “냉면, 어떻습니까?” 했을 때부터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먹어보니, 삼삼하고 시원한 물냉면의 맛은 우리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워낙 면발로 된 음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한식당 <빌라에베레스트> 사장 ‘앙도로지’] … ‘카투만두’의 어제와 오늘
☆… 점심을 먹고 난 뒤, 앙도로지는 우리 식탁으로 와서 함께 자리를 한 후, 이 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네팔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들려주었다. 특히 네팔은 몇 년 전 왕정이 무너지고 난 후, 민주당과 마오니스트들이 번갈아 집권하다가 지금은 수상이 없이 6명의 장관이 국정을 이끌어나간다고 했다. 아직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 산악국가인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Kathmandu)는 해발 1,300 미터 분지에 있는 인구 100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도시이다. 한때 칸티푸르(Kantipur, ‘영광의 도시’)라고 불렸던 이 도시는 과거 원주민인 네와르 족이 살면서 도시문명을 건설했다. 특히 중세의 말라 왕조 시대에는 네와르 문화가 꽃을 피워 화려한 사원과 수많은 기념비가 세워졌다. ‘사람보다 신들이 더 많은 도시’라고 불리는 카투만두는 1990년 민주화 이후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농촌에서 사람들이 이 도시로 밀려들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늘면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때문에 지금은 신보다 인간이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구시가지에는 오랜 역사 속에 다듬어진 사원과 여러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바자르에는 사람과 물건이 넘쳐나고 큰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곳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에게 카투만두는 여전히 동경의 도시이다. 예전에는 카투만두 분지를 ‘네팔’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농촌 사람들은 카투만두에 간다는 말을 ‘네팔에 간다’고 말한다.

*[파슈파티낫트(Pashupatinath) 사원 탐방] …힌두교식 화장장
☆… 점심 식사를 한 후, 호텔의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카투만두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낫트(Pashupatinath)를 찾았다. 앞서 이 대장이 ‘네팔에 왔으니, 특별한 곳을 안내해 드리겠다’고 하면서 찾아간 곳이었다. 사원으로 가는 카투만두 시가지는 그야말로 ‘먼지 지옥’이었다. 네팔의 가장 심각한 세 가지 문제가 도로와 전기와 수도라고 하는 이 대장의 설명은 사실 그대로였다. 길거리는 사람과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겨 있고, 포장이 된 곳이나 안 된 곳이나 차들이 지나가면 누런 먼지가 일어 시공을 가득 매웠다. 그 속에서 노변이나 길 안쪽에 난장(亂場)이 들어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먼지와 자동차 경적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사고 팔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가고 있었다.

☆… 이 사원과 화장장을 관람하려면 우리 돈으로 약 8,000원 정도의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이다.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길 안으로 들어가니, 바그마티 강이라고 불리는 서울의 청계천 정도의 개천이다.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거대한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낫트가 있고, 그 건너편에 천변 화장장(火葬場)이 있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상류에 2기, 하류에 4기의 노천화장장이 있었다. 개천 가까이 들어가니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화장장 몇 군데에서 꾸역꾸역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화장대는 개천 바로 옆에 가로·세로 3m 정도의 콘크리트 단(壇)을 일정한 간격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지금 막 화장이 끝나서 연기를 피우는 곳도 있고, 지금 불이 활활 타오른 곳도 있고, 붉은 천으로 덮은 시신을 옆에 놓고 화장을 하기 위해 의식(儀式)을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바로 그 화장장 앞에까지 가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화장장에는 해당 가족이나 친지인 듯한 사람들이 긴 의자 주위에 몰려 있고, 또 동서양의 많은 관광객들이 화장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 한 여인이 애절하게 통곡을 하면서 우는 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화장대(火葬臺)에는 삼 단 정도의 장작을 쌓아 놓았고 이런저런 의식을 마친 시신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딸 같기도 하고 손녀 같기도 한 어린 소녀가, 화장대에 올라가 쌀을 뿌리면서 시신 주위를 돌고 난 뒤, 시신의 머리에 이마를 맞대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어서 가족 친척 들이 차례로 나와 소녀가 한 것과 같이 그렇게 고인과 이승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의식을 진행한 후, 점화를 한다. 불길은 거세게 일었다. 그렇게 태우고 난 재는 그대로 옆에 있는 개천에 쓸어 넣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힌두교식 장례였다. 불길 속에 타는 시신을 바라보며, 우리 인간의 생명, 누구나 똑 같이 가야 하는 삶과 죽음의 노정을 생각하며, 존재의 허무감이 가슴 아프게 밀려오기도 하고 누구나 맞아야 하는 운명의 업보를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살아 있는 이 시간이 과연 무엇인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묵연히 이승의 마지막 불꽃으로 타는 시신을 지켜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개천을 성(聖)스러운 강(江, 바그마티 강)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강은 말라서 화장장 쪽으로 실개천처럼 흐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물에 손발을 씻고 나왔다.


*[파슈파티낫트(Pashupatinath) 사원] …힌두교 광신도 ‘사두(Sadhu)’
☆… 힌두교 사원은 크고 웅장했다. 파슈파티낫트(Pashupatinath) 사원은 갠지스강의 지류이며 성스러운 강으로 일컬어지는 바그마티 강의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일 뿐만 아니라 인도 대륙에 있는 4대 시바사원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힌두교의 3대 신 가운데 하나인 시바는 파괴의 신으로 바이라브, 루드러, 마하데브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괴수의 왕’이라는 파슈파티낫트도 그 화신 가운데 하나란다. 바그마티 강변의 길을 따라가면 키라테쉬르 사원으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는데, 이곳에는 가장 오래된 ‘시바 링가’(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시바의 상징)를 모시고 있다. 현재 네와르족의 사두가 지키고 있다고 한다. 파슈파티낫트의 기원은 키라테쉬르 사원에 남아있는 시바 링가로 판단했을 때 적어도 기원 전 3세기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한다.

☆…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저자처럼 오고 갔다. 지붕과 높은 담장 위로 날랜 원숭이들이 날아다녔다. 사람과 동물, 종교와 삶이 그대로 혼융된 듯한 느낌이었다. 성(聖)과 속(俗)이 그대로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대장이 ‘이 사원의 명물, 이 사원에 사는 귀신들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행랑처럼 이어진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행랑채 안의 바닥에 는 모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정말 귀신인가 사람인가 옷을 걸쳤는지 벗었는지 수염과 머리털이 뒤엉켜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바로 힌두교 광신자인 ‘사두(Sadhu)’이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마당 안의 단 위에 올라앉아 관광객과 사진을 찍는 귀신도 있고, 뼈만 앙상하고 얼굴의 골이 깊게 파이고 산발한 머리의 어떤 사두는 같이 사진을 찍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석순 대원과 노재성 군이 사두와 함께 사진을 찍고 돈을 주었다. … 뒷맛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승의 생명들과 강 건너 저승으로 가는 주검의 불꽃이 강하게 뇌리 남아서 전신을 휘저었다. 사원을 나오자 서쪽의 수림 위어 벌건 햇덩이가 오늘 하루의 시간을 마감하듯,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




*[파슈파티낫트(Pashupatinath)] …힌두교에 대하여
* ‘사두(Sadhu)’는 집과 일터, 가족을 떠나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반라 상태에 진흙투성이인 채 거리를 돌아다닌다. 가진 것이라고는 뜨리술(trisul)이라는 삼지창과 걸식용 사발뿐이다. 일종의 힌두교 광신도(狂信徒)이다. 사두는 인도 대륙 전역에 있다. 때로는 카투만두의 파슈파티낫트에서 열리는 마하 시바라트리 축제가 있으면 도처에서 떼를 지어 모여든다. 관광객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얼마간의 박시시(bakshaeesh, 팁)를 받는다.
* 힌두교는 3,500년 전 인도 중부의 아리안 족에게서 기원한 다신교이다. 탄생-죽음-환생이라는 생명의 윤회를 믿으며 이러한 굴레로부터 ‘목샤(moksha, 해방)’를 목표로 한다. 환생할 때마다 목샤에 근접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그 결정적인 요소인 ‘까르마(karma, 업(業))’는 글자 그대로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생전에 나쁜 짓을 하면 나쁜 까르마를 지어 저급한 존재로 환생하고, 선업을 쌓으면 고차원적인 존재로 환생하면서 윤회의 굴레에서 궁극적 해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 힌두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4권의 베다(Veda)가 가장 중요하다. 베다는 힌두교 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신성한 지식’이다. 베다의 일부인 ‘우빠니샤드(Upanishad)’는 우주와 영혼의 형이상학적 본성을 탐구하는 경전이다. 힌두교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뿌자(puja, 기도), 사망자의 화장, 그리고 카스트제도이다. 카스트제도에는 4가지 주요계급이 있다. 브라흐만은 승려, 끄샤뜨리야(네팔의 경우 체뜨리)는 군인 및 정치가, 바이샤(Vaisya)는 상인이나 농부, 수드라(Sudra)는 육체노동자 및 장인이다. 모든 계급의 가장 하부에는 불가촉천민인 하리잔(Harijan)이 있는데, 카스트에 속하지 못한 채 주로 육체노동과 더럽고 험한 일에 종사한다.
* 힌두교의 신(神)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수많은 신을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이 가진 수많은 속성이 육화된 화신(化身)을 통해서다. 전지전능한 신은 보통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 보존의 신 비슈누, 창조의 브라흐마로 화한다. 한두교 사원은 흔히 이들 중 한 신(神)을 모신다. 하지만 실제 힌두교도라면 대개 바이슈나비떼(비슈누 신봉자) 혹은 사이비떼(시바의 신봉자)로 두 신 중에 하나를 숭배한다. 그밖에 수많은 하급신이 있다. 또한 소를 신성시하여 네팔에서도 소를 죽이면 감옥에 간다.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