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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문학기행
일시:2010.3.1.월~12.금 11박 12일
여행국가: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2010년 3월 1일 월요일 인천출발, 네덜란드 암스텔담 경유, 포르투칼 리스본
* 인천공항 출발
포르투칼 리스본을 가는데, 네덜란드 암스텔담을 거쳐 간다. KLM 866항공 14:40분 비행기로 간다. 공항에는 우리의 명절인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가 소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의 공항이 자랑스럽다. 지하철 타고 110번 게이트로 이동하여 우리 부부는 24B, 23C 좌석에 탑승했다. 구름층을 뚫고 오른 비행기는 힘차게 날고 있다.
* 시베리아 툰드라 설원
비행기는 시베리아 툰드라 동토 위를 날고 있다. 3월의 시베리아는 눈과 얼음으로 덮혀 있다. 차가운 땅이다. 이곳을 수없이 지났는데, 저런 풍경도 여러번 보았는데 나는 여전히 가슴이 전율한다. 저 언 땅을 독수리의 고뇌로 걸으며 고행하던 졸시 [설원을 걷는 독수리]가 눈앞에 전개되어서다. 와 보지도 않았던 시베리아 동토를 백과사전에 의지하며 시적자아가 여기까지 왔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살아있다. 유럽을 여행한다는 설레임도 크지만, 봄에 지나는 시베리아 툰드라 설원은 항상 큰 선물을 선사한다.
* 네덜란드 암스텔담 공항에서 환승
네덜란드 암스텔담 공항에는 현지시각 오후 6시, 한국시각으로는 3월 2일 새벽 2시에 도착했다. 스치폴공항에 온 것은 세번째다. C9게이트에서 포르투칼 리스본행 20:30분 비행기로 환승한다. 금새 주변이 어두워졌다. 네덜란드의 여행은 몇년 전에 이미 하였고 서유럽을 여행할 때 이곳을 경유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언제 와도 아름다운 공항이다.
* 포르투칼 리스본공항 도착
밤 11:20분에 도착했다. 참으로 먼 나라에 왔다. 한국을 떠난지 24시간만에 여기 온 것이다. 고단함도 잊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신비로 행복하다. 한국과의 시차는 9시간이다. 포르투칼이 늦다. 한국시각으로는 3월 2일 오전 8:20분이다. 스페인은 7시간 시차다. 리스본공항은 어둠에 싸여있다. 공항 외벽에 리스보아 공항이라고 있다. 현지어로는 리스본이 리스보아다. 현지 교포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며 포르투칼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리스본은 포르투칼의 수도다. 포르투칼은 남한과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1/4로 1천만명이다. 그중 270만명이 리스본에 살고 있다. 바람이 많은 해변국이다. 11월~4월은 우기가. 겨울 온도가 춤춘다. 춥다가도 덥다. 우산은 꼭 챙겨야 한다. 두터운 잠바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리베리아 반도의 나라, 태양의 나라다. 대서양과 접하여 자외선이 강한 나라다. 내일보터 본격적으로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갈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리스본 시가지를 달려 유명한 축구장을 지나 호텔로 갔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포르투칼 리스본, 까보다로까, 신트라, 파티마
* 포르투칼 리스본 호텔
해변가에 위치한 프라이야말 호텔이다. 바닷가 마을 호텔이란 뜻이다. 가장 서쪽 반도, 서쪽 나라다. 한국은 최동땅이고, 포르투칼은 최서땅이다. 리스본시는 큰 지진의 역사가 있어 그때 반이 물속에 잠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로 갔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나는 지금 대서양 최서단에 서 있다. 울창한 마을길도, 우람한 야자수도 이국의 향수를 자아낸다.
이곳 사람들은 조식은 빵과 커피 정도로 아주 간단히 먹는다. 점심, 저녁은 잘 먹는다. 육식을 하여 추위를 안 탄다. 모든 것이 느리다. TV 리모콘도, 엘리베이터도 서행이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식수는 꼭 사 먹어야 한다. 작은 물 한병에 1유로다. 비싸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 8층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바다와 해안마을 비경이다. 주택의 지붕이 모두 적색이다. 푸른 나무와 바다와 절창이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바다 비경에 더 영혼이 다가간다.
* 포르투칼 리스본 돈까를로스 동상
까보다로까 언덕으로 가는 길에 잠시 내려서 보았다. 리스본 해변에 바다를 응시하며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돈'은 포르투칼 말로 '왕'이란 뜻이고, '까를로스'는 영어로 '찰스'다. 그러니까 까를로스 왕의 동상이다. 1908년에 사살된 왕이다. 작은 나라에서 15세기~17세기에 식민지 지배국이었다. 인구의 1/4이 스위스, 독일로 이민 갔던 나라다. 12세기까지는 스페인과 지내다가 12세기에 포르투칼이 독립했다. 1910년부터 공화국으로 마지막 왕은 필립이다. 1931년 왕은 망명 갔다가 1972년에 귀국했다. 스페인 여인 소피아를 만나 결혼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로 산다. 15세기부터는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까지 진출했고 1500년 브라질을 식민지로 소유했다. 그때 아프리카 노예를 데리고 가서 사탕수수밭, 탄광에서 일 시켰다. 해마다 5천명을 배 10척에 5백명씩 태워 노예를 데리고 았다. 어쩌면 그로 인해 브라질 사람들의 얼굴색이 까만 것 같다고 한다. 포르투칼 국기에도 녹색과 적색이 있는데 녹색은 희망을, 적색은 여러 민족의 피를 상징한다. 이웃 나라 모로코는 비참하도록 가난하여 국민들이 바다를 건너 탈출을 시도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조국을 위해 공이 큰 카를로스 왕이 그날의 비장한 각오로 바다를 지키며 서 있다.
* 포르투칼 리스본 대서양 해변도시 비경
리스본은 대서양과 접한 도시라서 바다와 해변도시가 비경이다. 이민 30년된 교포 가이드 권미혜와 포르투칼 운전기사 빅도르가 우리 일행의 여정을 행복하게 이끌어준다. 빅도르는 포르투칼 말로 빅토리, 즉 '성공'이란 뜻이다. 41세인 남자 운전사는 까보다로까를 향해 해변가로 달리며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요트도 정박해 있고, 항구도 보이고, 빨간 지붕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돈까를로스 동상 곁의 바닷가에서 보니 멀리 양로원 건물도 보인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포르투칼 말을 몇마디 배웠다. '올라'는 스페인과 포르투칼 공동 인사로 만날 때나 헤어질 때 하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런 뜻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도 '올라'하면 된다. '아디오스'는 '하나민과 곁에'라는 뜻이다. 좀더 진한 인사말이다. 이제부터 버스에 오를 때 '올라, 빅도르'하기로 했다. 장거리 운전에 고맙다는 인사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총 4000Km를 버스로 달린다. 가장 많이 타는 곳은 모로코로 10시간~13시간을 달린다. 자꾸 서쪽으로 가고 있다. 리스본은 270만명 중 시내중심에는 100만명이 살고 있다. 기차와 전철을 이용하며 산다. 이곳은 카스텔로 마을의 휴양지로 더욱 고운 정경이다.
* 포르투칼 리스본 사막화 되는 해변
대서양 가까이로 다가가자 모래언덕이 보이더니 점점 확산된 황막한 땅이 즐비하다. 강수량이 적어 사막화 되고 잇다. 주변에 빈 땅이 많다. 인구가 적어서 그냥 둔다. 아파트를 지어도 살 사람이 없다. 포르투칼은 EU국 중 하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포르투칼 올 때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았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같은 이베리아 반도인데 전혀 다르게 산다. 포르투칼은 12시~1시에 중식을 하고 , 6시~7시 석식을 한다. 스페인은 2~4시에 중식, 9시~11시에 석식한다. 늦은 저녁식사로 뚱뚱한 사람이 많다. 포르투칼은 대서양과 접하며, 국경이라고는 유일하게 스페인 밖에 없다. 바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나라다. 소극적이며 건물도 거의 미색이다. 영국과 교역하고 영국의 도움을 받는다. 나폴레옹 침입 때도 영국이 도와줬다. 정열의 나라다. 스페인은 지중해와 접해 있고 투우와 플라멩고의 나라다. 적극적이며 원색 건물이 많다. 태양의 나라다. 여행을 통해 얻는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지식은 언제나 신비롭고 큰 감동을 준다.
사막화 되는 땅을 우리에게 주면 저렇게 그냥둘까, 라는 의문이 든다. 물을 끌어올려서라도 쓸모있는 땅으로 개척하여 농작물을 심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내 조국의 근면과 성실함이 큰 자부심으로 떠오르며, 한편으로는 인구에 비하여 넘치는 이 나라의 땅이 부럽기도 하다. 조금 더 달리자 짙푸른 해변의 나무 숲이 보이고 푸른 들녘의 마을도 보인다. 점점 까보다로까 언덕에 가까이 가고 있다.
* 포르투칼 까보다로까 유럽 최서단 땅끝
리스본에서 35Km, 30분 소요되는 곳이다. 점점 서쪽으로 가고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포르투칼의 전통예술인 '화두' 즉 슬픈 노래를 들었다. 스페인의 전통예술이 플라멩고라면 포르투칼은 화두가 전통예술이다. 아마리라 로데스 가수의 노래다. 기본 정서가 '사오다데'로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리움이다.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서 슬픔이 배어 있다.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칼은 동쪽으로 인도에 가서 향신료를 구해왔다. 포르투칼은 거주지 중심인 리스본, 상업지역인 포르토, 대학도시인 코인브라, 카톨릭도시인 브라가, 이 네개의 주요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리스본이며 이곳에서는 서민적 화두를 부른다. 지적인 도시는 코인브라이며 이곳에서는 지적인 화두를 부른다. 애절한 화두가 슬픈 낭만을 자아낸다. 주택의 지붕이 모두 적색이다. 더운지방의 기와는 적색이고, 추운지방의 기와는 흑색인데 포르투칼은 영하온도가 없어 모두 적색이다.
까보다로까는 해발 40m 해변 절벽 위 언덕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곳이 없다. 여기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민족시인 루이 키보이스의 시비도 있다. 까보다로까는 미래로 간다는 뜻이다. 위도 38도인데 한국보다 포근하다. 유일하게 콜롬버스가 바다로 진출했다. 유럽에서 세번째 등대인 18세기의 빨간 등대도 있다. 정말 바람은 우리의 옷깃을, 온몸을 심히도 흔든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유럽 최서단 땅끝에 섰다는 황홀함으로 곳곳을 둘러보았다. 절벽도 우람하고, 낭만적인 카페도 있고, 언덕 마을에는 민가도 보이고 무엇보다 포르투칼 민족시인의 십자가 표상의 시비가 돋보인다. 3월인데 파란 식물들이 정반대의 최동쪽 나라에서 온 먼먼 외인을 반기며 웃기 있다. 행복한 정경이다.
* 포르투칼 신트라 왕궁
까보다로까에서 30분 걸리는 신트라 마을로 간다. 포르투칼 민속음악인 화두 두 곡을 들으며 간다. 여가수가 애절하게 부르는 구슬픈 노래다. 눈시울을 적신다. 한국에서도 2회 공연했다. 현재는 사망한 둘세 핀드 가수였다. 바다의 노래, 눈물의 노래다. 브라질 노예 때, 13세기까지 이슬람 정복 때 탄생한 노래다. 한국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 OST곡이었다. 포르투칼에서는 훗볼(축구), 파두(노래), 파티마(성모마리아 발현지), 이렇게 3F 정책을 썼다.
발셀루스의 닭 전설도 들으며 갔다. 발셀루스 마을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던 순례자가 그 마을의 살인 누명을 쓰고 밧줄에 목을 매여 죽게 되었을 때 재판관에게 사형 직전에 '내가 살인자가 아니면 저 파티장 식탁 위의 목 없는 치킨이 일어나 울며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말 목을 줄에 매달아 사형 집행 순간에 목이 잘린 튀김닭이 울며 일어나 날았다는 것이다. 그 닭의 울음으로 살인 모함을 벗게 되었다는 그 전설로 포르투칼에서는 닭을 정직, 믿음의 상징이 되어 곳곳에 닭의 동상을 세운다. 세계적으로 닭울움이 조금 다른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닭은 '꼬끼리끼'하고 운단다.
포르투칼 커피는 진하며 맛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에스프레소는 유명하다. 진해서 오후에는 먹지 말란다. 잠이 안온다는 것이다. 포르투칼은 스페인보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여 통용된다. 사방이 울창하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고, 비도 많이 내렸단다.
신트라는 영국 바이런 시인이 말하기를 '에덴의 동산'이라 했다. 바닷가 인근의 마을로 세계골프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도 있다. 8세기부터 무오인이 정착했다. 산이 많은 곳으로 15세기에 사냥을 즐기던 왕이 이 아름다운 마을에 궁전을 지었다. 마누엘 양식으로 지었다. 마누엘 왕 때 발견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페인과는 떨어질 수 없는 나라다. 스페인의 주유소, 백화점 등 큰 회사가 항해시대 때부터 포르투칼에 있었다.
아랍으로부터 800년 동안 지배 받았다. 그래서 아랍 문화가 많다. 우상 숭배 금지다. 벽면에 기하무늬 예술이고, 꽃, 등 자연 소재가 많다. 조개, 열대과일, 배, 밧줄무늬 등을 그려 넣었다. 인도쪽에서 도입된 것들이다. 1995년부터 인류문화지역 자료로 지정되었다. 500m 고지의 정원이 많은 도시다. 돌이 많이 생산되어 수출한다. 이태리의 대리석은 흰색이고, 스페인의 대리석은 청색이고, 포르투칼의 대리석은 검은 색이다. 콜크나무도 수출한다. 전세계의 80%가 리베리아 반도에서 생산 되는데 포르투칼에서 50%, 스페인에서 30%다.
신트라에는 궁전이 많다. 신트라성, 페니성, 수오성 등 19세기에도 사용되었다. 굴뚝 2개가 오롯하다. 대표적 왕궁인 신트라성에 들어가 보았다. 72개 귀족의 문장 방이 있다. 까치의 방, 백조의 방 등이다. 백조의 방은 왕의 딸이 27세에 결혼했는데 27개의 백조를 그렸다. 신트라성에서 아치형 문으로 본 마을은 정말 에덴의 동산처럼 아름다웠다.
* 포르투칼 신트라 구시가지
신트라성을 나와 언덕을 타고 오르며 아기자기한 골목을 구경하였다. 고풍스런 구시가지 골목들이 갈래갈래 나뉘어지며 그 옛날의 풍습을 재현하고 있다. 기념품 가게도 많고, 커피가게도 있고, 마누엘 양식으로 꾸며놓은 집도 있고, 산과 마을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3천 종류의 나무들이 곳곳에 울창하고 집의 색상도 고와서 에덴의 동산이라고 칭한 바이런의 말은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느 곳을 걸어도 절경이다. 카메리를 대기만 하면 모두 명화로 찍힌다. 바셀루스의 닭, 전설을 떠올리며 닭이 들어있는 기념품을 세개를 샀다. 얼마전 결혼한 두 아들네와 우리집 것이다. 비록 남의 나라 전설이지만 정직, 믿음을 상징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어, 살면서 두고두고 기억하자고 사 가는 것이다. 신트라 구시가지 마을에서 보낸 시간들은 행복한 여정이었다.
* 포르투칼 국기와 약국
포르투칼의 국기가 가게 위에 꽂혀 있다. 녹색과 적색이다. 즉 녹색은 희망이고, 적색은 여러 민족의 피를 상징한다. 상가에는 약국도 있다. 유럽식 표기로 상호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둘째 아들이 약사라서, 나는 세계여행할 때마다 약국도 눈여겨 본다.
* 포르투칼 리스본 시가지
현지식으로 바칼라오 메뉴다. 생선 대구를 소금 저장해두었다가 말려서 찢어서 감자와 계란을 넣어 만든 볶음밥이다. 야채 크림스프와 빵도 나왔다. 이 나라의 빵은 한국의 흰밥과 같다. 아이스크림도 후식으로 나왔다. 맛있게 먹고 건물 앞 낭만적인 의자에서 휴식하며 오가는 사람과 시가지 풍경을 담았다.
리스본의 명칭이 포르투칼어로는 리스보아(Lisboa)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리스보아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도 영어표기고, 현지어로는 에스파니아다. 스페인은 낮잠 시간이 있다. 지배유럽국도 낮잠 문화다.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점심, 휴식시간을 갖는다. 퐁발후작 지배시부터 시작되었다. 여름에는 45도로 더워서 생긴 풍습이다.
리스본은 7개 언덕과 4개 지구로 구성되었다. 알파마, 바이샤, 바이말, 벨렘 등인데 우리는 바이샤 지구로 간다. 지진 피해 지역이다. 지진 후 조지 1세가 바둑판 도시로 구성했다. GNP가 2만 달러다. 대리석, 포도주 생산국이다. 리스본 신시가지에는 아치형 수로였던 곳이 있다. 샹제리제 모방 거리도 거리 공원도 있다. 왕의 동상도 있다. 바닥의 조각이 고풍스럽다. 나무가 울창하다. 리스본 시가지는 참 아름답다.
* 포르투칼 리스본 로시우 광장
리스본의 가장 중심으로 광장 주변은 한국의 명동 거리다. 금의 거리, 은의 거리 등 모두가 웅장하다. 테조강 1800Km가 스페인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가 끝나는 곳이다. 13세기부터 종교재판을 비롯한 모든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대부분 퐁발후작의 계획으로 지어진 18세기의 건물이다. 초대 총독 페드로4세의 동상과 분수, 꽃을 파는 아담한 가게, 대리석 의자, 물결 모양 바닥 등 넓은 로시우 광장은 그야말로 장엄하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도 있다. 주변도로에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식민지를 많이 소유했던 나라여서 인종도 다양하다. 자유시간을 많이 갖게 되어서 주변의 거리와 광장의 곳곳을 둘러보며 리스본의 문화를 접했다.
* 포르투칼 리스본 샹제리제 모방 거리
유럽의 문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보았던 개선문 앞의 샹제리제 거리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거리가 아름답다. 서로 침공하고, 침공 당하며 서로 좋은 문화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 주변이 울창하며 도로가 넓고 주변의 건물들도 웅장하다.
* 포르투칼 리스본 퐁발 후작 광장
리스본 중심부에 우람하게 솟구친 동상이다. 아래에는 말과 양, 병사들 그리고, 천사 동상이 있다. 로터리 길을 만들었고, 그 안은 광장이다. 주변에는 고급 호텔 등 고층 건축들이 즐비하여 시선을 끌어 올린다. 길도 아름답고, 동상 조각상도 아름답고다. 퐁발후작은 포르투칼의 정치 개혁가이며, 대지진을 복구한 영웅이다. 에드와르도 7세 공원과 나란히 위치하며 리스본의 훌륭한 명소다.
* 포르투칼 리스본 에드와르도7세 공원
영국 에드워드7세가 1902년 리스을 다녀간 기념으로 세운 공원이다. 프랑스 공원문화로 조성되었다. 잔디와 잘 정돈된 나무, 조각상들이 빼어난 비경이다. 리스본 시내의 전경이 보이는 조망 언덕에 올라서 바라보니 저 아래로 흐르는 처연한 테조강과 오롯하게 솟은 퐁발후작의 동상이 포르투칼의 시린 역사의 마디를 속삭이는 듯하여 오늘의 평화는 포근하지만 내 조국의 역사를 떠올리며 가슴이 서늘했다. 우산 소나무 가로수도 이색풍경이다. 우산 소나무는 스페인이 포르투칼을 침공했을 때 자국의 병사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주기 위해 우산 같은 역할을 하라고 옮겨 심은 것이다. 이것도 겉으로 보기는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슬픔이 배어 있는 정경이다. 질곡의 역사는 흘러가고, 평온한 공원이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으니 덩달아 흐뭇하다.
* 포르투칼 리스본의 아름다운 축구장
어느 나라를 가도 축구를 사랑한다. 그건 세계 공통이다. 포르투칼도 축구를 많이 사랑한다. 지난 밤에 어둠 속에서도 보았고, 오늘 또 다른 축구장을 보았다. 건축 양식도 외형 색상도 아름답다. 진한 예술 향기가 배어있다. 분홍색 스페인 대사관 건물도 크고 아름답다. 이런 유럽의 건축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고풍스럽고, 잘 보존된 풍경이 부러움을 자아낸다.
*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파티마 가는 길
리스본에서 파티마까지는 1시간 30분~2시간 소요된다. 고속도로를 타고 버스가 달린다.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가 녹색 봉으로 세운 것이 특이하다. 농촌 들녘, 넓은 땅에 경작한 곳도 있고, 산도 있고, 초지도 많다. 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올리브 농장과 포도 농장도 보인다. 점점 북쪽으로 가는데도 포르투칼의 포근한 기후를 대변하듯 온 들녘이 파랗다. 날씨는 비가 오다가도 맑고, 또 다시 비가 내리고, 검은 구름이 드리우고, 수시로 변한다.
파티마는 모하메드의 딸 이름으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여성이다. 영화 [파티마 Fatima]도 보며 갔다.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발현지에서 양치기하던 세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6번 출현을 목격한 이야기다. 5월에서 11월까지 매월 13일에 1번씩 나타났다는 것이다. 8월에 아이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감옥인까지 가두었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고행하라는 계시를 받고 붉은 밧줄을 몸에 감고 물도 안 먹고 고행한 이 세 어린이에게만 성모 마리가가 보였다. 어른들은 믿지 않았지만 후일에 모두 사실로 확인된 사실적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영화도 보다가, 포르투칼의 초지 들녘을 보다가, 웅장한 검은 구름을 보다가 지루하지 않게 파티마로 갔다.
* 포르투칼 파티마 호텔 도착
저녁 무렵 파티마 도시에 도착하여 에스트라 파티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일은 6시 모닝콜, 7시 조식, 8시 호텔 출발이다. 호텔 바로 앞에 성모 마리아 발현지가 있어 그 곳을 관람하기 위해 다시 5시에 호텔 로비로 나왔다. 도로변 담장 너머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벌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조각품이 보인다. 점점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서둘러 바실리카 성당과 성모마리아 발현 예배당 등을 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 포르투칼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지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6번 발현했다는 성지다. 1917년 5월부터 11월까지 출현했던다는 곳이다. 리스본에서 120Km 떨어진 이곳 도시 파티마에 올 때 영화 [파티마]를 보며 왔는데 그 내용이 바로 이곳의 이야기였다. 구름을 가르고 해가 뜨더니, 해가 돌더니 성모 마리아가 발현된10월 13일의 기적을 40Km의 거리에서까지 7명이 보았다. 13년 세월을 거쳐 1930년에 교황청으로부터 발현을 인정한다는 공정을 받았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은 더운데 물도 안 먹고 고행을 실천했다. 그때 어린이들에게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1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가지 기적이 나타났는데 1981년 5월 13일 행사 때 참석했던 요한 바우로에게 총알이 날아올 때 성모 마리아의 빛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총알이 그냥 지나감으로 그 빛이 살려줬다. 태양의 기적이 일어 났는데 태양이 빙글빙글 돌자 장애자들이 일어났다. 매년 5월 13일이면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
넓은 광장이 있고 양쪽 끝에는 성당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서 있다. 장엄한 바실리카 성당이 있고, 바로 앞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그 지점에 세운 조그만 유리벽의 예배당도 있다. 1917년에 발현하고 1919년에 예배당 짓고, 1928년에 바실리카 성당을 크게 지었다. 하얀 대리석 길 150m를 카톨릭 신자들이 무릎 꿇고 걸어서 내려와서 예배드린다. 맞은 편에는 성부, 성자, 성신 성삼위 일체라는 뜻이 담긴 트리달 돔식 건물의 성당이 있다. 2004년에 지은 현대식 건물의 성당이다. 저격으로 죽을 뻔 했던 요한 바울 동상도 있다. 그 후 로마 교황청은 방탄차를 승차한다. 독일인이 조각했다는 가로 170m, 세로 340m의 거대한 예수 십자가상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성모 마리아 발현 예배당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었다. 바실리카 성당은 거대하다.예배당을 찾는 이가 너무 많아서 지은 성당이다. 내부도 웅장하고 근엄하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았던 세 아이인 루시아, 하신다, 프란체스코 중 두 명, 하신다와 프란체스코의 무덤도 성당 안에 있다. 시신이 그대로 성당 안에 안치 되어 있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발현 2년 뒤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본 두명의 아이가 사망했다. 스페인 인구 30만명이 죽었고, 세계적으로는 1억명이 사망한 무서운 독감이었다. 한참 후인 1989년 두 아이, 하신다와 프란체스코는 바울에 의해 가경자로 공식 선언 되었고 루시아는 21세기까지 살다가 나이 들어 얼마 전에 사망했다. 내부를 둘러보고 나왔을 때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로마의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바울 성당을 본받아 지었다는데 규모만 조금 작을뿐 외형의 건축모양은 바울 성당과 아주 동일하다. 차츰 어두워지고 비가 흥건히 고인 파티마의 성지를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떠나왔다.
* 포르투칼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지의 코르크 나무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 울타리에 커다란 코르크 나무가 있다. 포르투칼의 주 수출 품목인 코르크가 이 나무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병마개를 생산하는 코르크 나무가 신기하여 바싹 다가가 살펴 보았다. 코르크 나무 껍질을 벗겼는데 그 자리에 숫자 7를 적어 놓았다. 그것은 2007년에 코르크 껍질을 생산했다는 표시고, 9년마다 자르므로 다음은 2016년에 생산한다는 뜻이다. 다시 재생되는 나무의 껍질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2010년 3월 3일 수요일 포르투칼 파티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 포르투칼 파티마 호텔 출발
오늘은 파티마를 출발하여 리스본을 거쳐 스페인 세비야까지 간다. 새벽 일찍 일어나 성모 마리아 발현지를 한번 더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어제 못 둘러본 트리달 성당도 가까이 가 보고, 바울 6세 동상도 보며 쌀쌀한 새벽을 가르고 산책했다. 한국보다 늦게 밝아온다. 호텔로 돌아와 파티마를 출발했다.
리스본 벨렌지구로 이동한다. 테조강의 벨렘탑, 발견의 기념비,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보고 중식 후 스페인 세비야로 넘어간다. 비는 그쳤으나 쌀쌀하고 구름이 많이 끼었다.
* 포르투칼 파티마에서 리스본 가는 고속도로의 방음벽
파티마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방음벽 색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연두색과 노랑색으로 만들어 세운 것도 있고, 주황색과 살색으로 만들어 세운 것도 있다. 방음벽이 예술이다. 도로변 들녘 가장자리에 세웠는데 파란 초지와 어울려 더욱 고운 색상으로 발한다. 소를 방목하는 목장, 고운 색상의 농가주택, 비닐하우스의 큰 농토, 올리브 농장, 분홍과 미색, 녹색으로 장식한 아파트 등 포르투칼의 고속도로변은 정겨운 풍경이다.
프랑스, 스페인, 미국은 세계 여행지 3위국이다. 유럽의 모든 관광은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텔담을 경유하여 간다. 스페인은 태양의 나라로 유명하며 성지의 나라다. 오늘 가고자 하는 스페인 세비야는 코르도바, 그라나다와 함께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이다. 스페인의 정치는 대통령 5년제, 총리 4년제로 이원 집권제다. 실권은 총리가 쥐고 있다. 리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은 유럽에서 탐내는 땅이다. 1년 농사 지으면 4년을 먹고 산다. 그 만큼 옥토다. 그래서 로마가 500년 동안 정착했다. 아랍인이 711년에 와서 1250년에 퇴출함으로 500년 머문 것이다. 아이 때 머리가 금발로 태어나면 어른이 되어 검은발이 되고, 은발로 태어나면 어른이 되어 금발로 되는 특이한 현상이다.
포르투칼에는 한인 교민이 150명 살고 있는데 교민 60명, 체류자 90명이다. 교민이 적어 한식 식당이 없다. 최초의 이민자는 병아리 감정사다. 대우 기사, 태권도 사범, 쌍용자동차 직원 등이 있다. LG, 삼성의 컴퓨터나 TV 등 가전제품은 대인기다. 한국과의 관계는 1913년 프란시스코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포르투칼 언어는 예뻐서 전 세계 1억 9천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포르투칼의 바스코다가마는 동쪽으로 가서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발견한 개척자다. 콜롬버스는 서쪽으로 가서 스페인을 개척했다. 콜롬버스는 이사벨 여왕의 도움으로 항해했다. 지구의 서편으로는 포르투칼, 동편으로는 스페인이 지구를 반씩 나누어 갖자고 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 저런 남유럽의 역사를 들으며 리스본으로 달리고 있다.
* 포르투칼 리스본 휴게소
리스본에 가까이 오자 다시 비가 온다. 차창에 비가 많이 뿌린다. 3월의 리베리아 반도는 푸르다. 여행하기 좋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울창하고, 푸들도 파랗다. 들꽃이 많고 곱다. 이곳의 겨울이라지만 한국의 4월~5월쯤 되는 풍경이다. 휴게소에 잠시 들러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리스본을 향해 달린다.
포르투칼의 빵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브레드라는 빵의 영어말은 미국어인데 포르투칼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내린 리스본 공항을 지나고 있다. 공항은 리스본 시내에서 7Km 떨어진 곳에 있다. 대항애 시대에 금은보화가 많이 들어왔다. 그때는 노동이란 것을 몰랐다. 미래의 나라이며 생산하는 것도 모르는 나라라고 했다. 어제 보앗던 스포르팀틱의 축구장도 지난다. 큰 회사가 모두 시내 밖에 있어서 차량이 시외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 시내엔 상가가 많다. 그래서 왕복 차선이 모두 복잡하다. 나라는 부자이나 국민은 가난하고, 결국 생산 없이 생활하다가 몰락했다. 1560년~1640년까지 스페인이 80년간 지배했다. 그러다가 다시 포루투칼은 독립했다. 퐁발후작은 대사로 활약했다. 사냥과 오락만 즐겼지만 포르투칼의 대지진을 잘 수습했다. 영국과의 교역도 잘 했다. 1910년부터는 포르투칼 제1공화국이 시작되었다. 파티마를 떠나 줄기차게 달려온 버스는 점점 리스본 시내에 가까이 다다르고 있다.
* 포르투칼 리스본 아치형 수로
리스본에 가까이 들어오자 커다란 아치형 수로가 보인다. 이런 수로 곳곳에 많다고 한다. 언덕과 언덕 사이, 산과 산 사이를 다리로 이어 놓고 물길을 뚫었던 것이다. 수로 너머로 리스본의 신시가지도 보인다. 건물 색상이 분홍, 미색, 살색이다. 스페인은 진한 색상인데 그것은 성격이 강해서다. 반대로 포르투칼은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색상도 강하지 않은 것이다. 포르투칼 국민은 이혼이 많다. 운전기사 같은 직업은 90%가 이혼한다. 우리 버스의 운전기사도 이혼하고 혼자 산다. 이혼이 많은 이유로는 항해시대부터 혼자 살이온 포르투칼 여인들이 강해서다.
포르투칼은 1974년에 독재가 종식되었고, 1986년에는 EU에 가입했다. 그 후 급속으로 성장했다. 2002년부터는 유로화를 통용한다. 관광이 쉬워졌다. 유로화는 현재 1유로에 한화1600원 정도로 계속 하락 중이다. 포르투칼은 세금을 많이 거둔다. 스페인은 50%가 세금으로 낸다. 스페인을 부도 직전국이라고 보도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스페인은 선진국으로 시민은 가난해도 나라는 부자다. 버블건축 파동이 나서 그렇다. 버블건축 공사할 때 노동자가 많았다가 회사가 부도나자 실직자가 많아지고 그래서 상당히 불안한 사회가 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스페인 에 사는 한인 교민이어서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역사와 정보를 많이 알려주어 여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느새 버스는 아치형 수로를 지나 리스본 시가지에 접어 들었다.
* 포르투칼 리스본 사기지 거리의 행상 여인
비가 오는데 차창 밖에서 중년 여인이 이슬람교인의 검은 옷을 두르고 행상을 하고 있다. 차도변에서 물건을 들고 행인을 대상으로 판다. 우리에게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사달라고 하는데 애처럽다. 눈을 마주치면 끝까지 집요하게 팔아주길 강요하는 경우를 세계여행 중에 여러번 보았기에 사주지 않을 거면 아예 눈을 피해야 한다. 안쓰럽지만 외면했다. 가난하지 않은 나라에서 보는 조금은 서늘한 풍경이다.
* 포르투칼 리스본 테조강변 풍경
리스본의 중심을 흐르는 크고 아름다운 강이다. 그 주변에 벨렘의 탑, 발견의 기념비, 제로니모스 수녀원 등 관광명소도 많이 있다. 테조강 다리는 장관이다. 전철과 1950년에 탄생한 지하철이 리스본의 큰 이동수단으로 테조강변을 지나고 있다. 스페인은 1919년에 지하철이 개통되어 오랜 역사인데 포르투칼은 지진으로 좀 늦게 건설되었다. 철로와 전선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테조강은 깊어서 대형 선박의 이동도 가능하다.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낭만을 자아낸다.
* 포르투칼 리스본 테조강변 벨렘탑
테조 강가에 귀부인이 치마를 펼치고 앉은 모양이다. 나비가 앉은 것 같기도 하다. 밧줄 등 자연물도 건축했다. 1515년부터 1518년까지 지었는데 마누엘 양식의 3층 건물이다. 아름다운 3층은 왕족의 거처로 사용되기오 했고, 2층은 포대로,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는 강물 속에 세웠는데 물이 빠지면서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1983년에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함께 문하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테조강을 바라보며 앉은 벨렘탑은 정말 아름다운 예술의 건축물이다.
* 포르투칼 리스본 테조강변 발견의 탑
테조강변에 범선 모양으로 세워졌다. 1960년에 항해 성공 기념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포르투칼 왕자인 마젤란과 바스코다마 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탑의 아래 양 옆에는 항해시대 때 바로 진출하던 사람들의 용감한 동상이 있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하다. 대리석 바닥의 조각 문양 하나하나도 항해에 대한 깊은 의미가 부여된 것 같다. 바로 길 건너편에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이 우람하게 마주하고 있다.
* 포르투칼 리스본 제로니모스 수도원
대단히 크고 웅장하다. 300m의 폭으로 건물 끝에서 끝이 아득하다. 1502년에 건설 되었다. 원래는 항해사들이 출발하기 전 무사하기를 기원하던 기도원이었는데 그후 왕의 거처로 씌이다가 현재는 박물관이다. 마누엘 왕이 유명하여서 그의 이름을 딴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16세기에 발달한 건축양식으로 포르투칼에만 있다. 나뭇잎, 꽃, 밧줄,조개, 노끈 등을 조각한 자연물 중심의 장식이다. 안에는 포르투칼의 대서사 시인 까몽이스와 바스코다가마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수도원의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니 비가 더 많이 내린다. 수도원 건물의 외벽에 붙은 조개와 밧줄 문양이 아름답다.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의 푸른 잔디와 나무도 향기롭다.
* 포르투칼 리스본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바스코다가마 무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 들어서니 입구에 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첫번째는 시인 까몽이스의 무덤이고, 그 오른편으로 바스코다가마의 무덤이 있다. 원래 이 수도원은 1498년 바스코다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것이다. 바스코다가마는 반듯이 석관에 위에 누워 항해의 무사귀환을 빌던 그날의 모습으로 아직도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포르투칼인의 거룩한 주검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 포르투칼 리스본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민족시인 무덤
수도원 안의 입구에 포르투칼의 대서사 시인이며 민족시인였던 까몽이스의 무덤이 있다. 무덤이라기 보다 아직도 살아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는데 포르투칼에서는 칼이 정의의 표상이다. 시인은 정의의 칼을 죽어서도 놓지 않고 있다. 아래 부분에 그의 육신이 누워 있어 창살만 열면 정담을 나눌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도 대한민국 코리아의시인이다. 나도 내 조국을 많이 사랑한다. 세계여행을 하며 기행시를 써도 어느 한순간 내 조국 대한민국을 잊는 적이 없다. 나의 시속에도 그런 조국애가 많이 담겨 있다. 나의 시를 사랑하는 한 독자는 이은상 시인님의 시를 보는 것 같다며 조국애가 담겼다고 했다. 포르투칼 민족시인 까몽이스와 창살을 마주하고 산자와 죽은자의 대면이지만, 한동안 그런 동일한 상념으로 마음을 교류했다.
* 포르투칼 리스본 테조강 다리와 예수상
리스본의 테조강은 1800Km로 상당히 길고 폭도 큰 강이다. 주변에는 명소와 주요건물들이 많다. 이 큰 테조강에 다리가 단 두개뿐이다. 바스코다가마 다리와 사이오 다리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다리는 사이오 다리다. 에펠탑 설계자가 설계한 다리다. 아래로는 기차가 다니고, 위로는 차량이 다닌다.
제로니모스 수도원까지 돌아보고 우리의 버스는 사이오 다리를 건너 갔다. 비가 많이 와서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의 운전면허는 맨처음에 12점을 준다. 그리고나서 교통법을 어길 때마다 벌점으로 점수를 빼앗아 간다. 운전 중 핸드폰 사용시 4점, 벨트 미착용시 4점, 과속시 4점, 그렇게 하여 2년 후쯤이면 점수가 다 소진되고 다시 면허증를 따야 한다. 2시간마다 15분~30분 휴식하는 것이 운전수칙의 의무다. 버스 값이 4억원이다. 개인이 사서 운행하거나 회사 소속의 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저 건너편 산 위에 예수상이 높이 서 있다. 포르투칼을 지켜주는 의미의 예수상이다. 28m의 거대한 석상으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모방한 것이다. 정말 리오의 예수상을 많이 닮았다. 다리도 아득하게 길고, 두 팔을 버리며 리스본을 보듬고 있는 예수도 높은 산 위에서 거룩한 형상이다.
* 포르투칼의 우산 소나무
우산 소나무는 그늘이 많이 샌긴다. 나무 생김새가 한국의 소나무와는 다르다. 꼭 우산처럼 생겼다. 원래 스페인에서 자라던 소나무안데 스페인이 포르투칼을 지배할 때 자국의 병사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기 위하여 포르투칼에 옮겨 심었다는 것이다. 에드와르도7세 공원 부근의 도로변 가로수가 우산 소나무로 짙푸르다. 포르투칼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도 들녘 곳곳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유럽의 소나무는 아시아의 소나무와는 모양이 좀 다른 것 같다.
* 포르투칼 코르크 나무 농장
포르투칼의 남부로 갈수록 코르크 나무가 많았다.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길에 도로변에 코르크 나무 농장이 많았다. 전 세계의 코르크, 70%가 리베리아 반도에서 생산되고 그 중에서 50%가 포르투칼에서, 나머지 20%는 스페인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포르투칼 들녘 곳곳의 코르크 농장은 당연한 풍경이다. 병마개로 사용되는 그 코르크가 저 나무에서 나온다. 그 말랑말랑한 껍질의 나무가 신기하여서 맑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려 유리창을 가려도, 나는 물방울 사이로 자세히 보곤 했다.
*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스페인 가는 길의 목장
리스본에서 중화요리로 중식을 하고 스페인 세비야로 간다. 365일 중 200일은 해가 뜨고, 80일은 구름 끼고, 80일은 비가 온다. 그런데 금년은 기록을 깨고 있다. 올 겨울에는 눈과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부터 장거리 여행이다. 오늘만도 5시간을 버스로 이동한다. 모로코에서는 13시간, 바르셀로나 갈 때는 10시간 버스 타야 한다. 지금 버스는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로 달린다. 그곳에서 숙박하고 오늘밤 플라멩고 공연을 볼 예정이다. 플라멩고와 투우는 스페인의 대표 볼거리다. 기타 악기도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우산 소나무가 들녘에 많다가, 온 들녘과 산이 코르크 나무 군락이다가 초지의 드넓은 목장이 전개된다. 목장 곳곳에 그늘용으로 서 있는 나무도 코르크 나무다. 소, 양, 말 등의 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광활한 땅, 산이 없는 끝없는 들녘이 다 목장이다. 민가도 없다. 더러 들녘에 축사가 있다. 도로변에 울타리도 있고 소떼들이 무리지어 뭉쳐 있다. 완전 방목이다. 가끔씩 양떼도 무리지어 뭉쳐 있다. 미국 서부여행에서 진저리나게 본 것이 모하비 사막이었다면 여기서는 진저리나게 보는 것이 코르크 나무와 목장이다.
고속도로에 차가 없어 우리의 버스만 질주하고 있다. 우중 도로를 잘 달린다. 기후 변동이 심하여 비가 오다가, 해가 나오다가, 구름이 끼다가를 반복한다. 노변에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다. 나는 차를 타고 지나며 그 나라의 바깥 풍경을 보는 것도 세계여행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여정이다.
* 포르투칼에서 스페인 가는 휴게소
이곳 휴게소는 아직도 포르투칼 영토다. 여기서 40분 정도 가면 스페인이다. 국경지를 그냥 넘어가면 된다. 잠시 내려 휴식하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 산이 다 올리브 나무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처럼 올리브 나무가 산에 자생하고 있다. 한국의 계절보다 빨라서 벌써 노란 봄꽃이 피었다. 개나리 종류 같은 꽃이다. 언제 또 포르투칼의 땅을 밟아 보겠는가. 내가 다시 포르투칼을 오겠는가. 새로운 나라를 찾아 떠나겠지. 순간순간이 아쉬워서 포르투칼 마지막 여정의 행복을 가슴에 꼭꼭 담았다.
*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국경선
유럽의 국경선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EU국으로 통합되면서 아주 쉽게 국경을 넘어간다. 포르투칼과 스페인 국경도 그렇다. EU국기가 걸린 곳이 국경선이고 국경다리를 건너면 된다. 강을 사이에 반씩 나누어 소유하고 있다. 강의 왼편이 포르투칼이고, 오른 편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남한의 5배, 한반도의 2.4배고 인구는 4600만 명이다. 국경은 4개국인데 영국, 포르투칼, 프랑스, 피레네산맥의 작은 나라 안도라다. 포르투칼과 스페인 사이가 나쁘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사이가 나쁘다. 가까이 나라끼리는 대개 사이가 나쁘고 먼나라끼리는 사이가 좋다. 그런데 스위스와 이태리는 접경국인데도 오히려 사이가 좋다.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1시간 시차로 스페인이 1시간 빠르다. 스페인어 사용 인구는 세계적으로 4억 5천만 명이다. 중남미에 많다. 스페인 공식언어는 4개로 라틴어 방언 3개, 아프리카식 스페인어 1개다. 스페인어 인사말은 세가지가 있는데 '그라시아'는 '감사합니다', '노그라시아'는 '필요없다', '아디오스 아미고'는 '친구야 안녕'이다. '아세요'는 '화장실'이다. 스페인에 가서 '화장실 아세요?' 우리말로 하면 쉽게 화장실을 알려줄 것이란다. 그말에 우리는 웃었다. '뽀르파볼'은 '부탁합니다'로 교양있는 말이다. '쎄르돈'은 '미안합니다', '아이새끼야'는 꼭 한국의 욕 같은데 '물도랑'이다. 이제 스페인 영토를 달리고 있다.
* 스페인 세비야 올리브 농장
스페인에 오니 들녘 풍경이 다르다. 코르크 나무는 없고 올리브와 오렌지 농장이 많다. 오렌지가 노랗게 열렸다. 집도 하얀 벽에 검은 지붕이 많다. 포르투칼과는 다르다. 스페인 하면 투우, 플라멩고, 태양의 나라, 그리고 피카소의 나라다. 하얀 마을의 미하스도 대표다. 스페인은 건조국인데, 지금 3월인데 비가 많이 온다. 이상 기후란다. 산에 가서 불 켜면 불법이란다. 강우량이 북쪽은 1500mm~2000mm로 푸르고 산맥이 많고, 남쪽은 400mm로 건조하여 평야지와 황토들녘이 많으며 덥다. 비가 온후 무지개가 선명하다. 고운 풍경이다. 검은 구름도 낭만이다. 스페인 세비야에 들어오자 또 비가 온다. 호텔에 잠시 들러 플라멩고 전통예술을 관람하기로 했는데 그만 교통이 막혀서 잠시 정체로 오후 7시의 공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세비야 시가지에도 올리브 나무 농장이 인상적이다.
플라멩고는 집시춤이다. 인도의 어느 북서쪽 지방에서 시작된 방랑민족의 춤이다. 세비야가 따뜻해서 집시들이 정착했다. 한없이 서쪽으로 도망가다가 안달루시아에서 살았다. 라틴어로 '도망 다니는 농부'라는 뜻이다. 다양한 혼합의 춤이다. 탭댄스, 나무 바닥의 춤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 따 먹는 손 동작의 춤도 있다. 오페라 카르멘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춘다. 담배공장(현재는 대학교) 다니던 여자가 투우사를 사랑한다. 돈조앙은 스페인의 바람둥이다. 카사노바는 이태리의 바람둥이다. 바람둥이를 만나 사랑한다.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투우 시즌이 아니어서 플라멩고 춤만 보기로 했던 것이다. 9세기부터 온 무리들이 로마에서 왔다고 말했다. 집시가 온다고 하면 그 지역이 쑥대밭이 되므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9세기~14세기까지 500년간 스페인에 거주했다. 집시춤으로 돈 받거나, 농사 도와주고 돈 받아 생활했다. 스페인에서 방랑민족을 불러 행사시에 춤추게 한 것이 플라멩고다. '당신은 빠요다'는 '너는 집시다'로 큰 욕이다. 집시는 떼지어, 가족끼리 떼지어 아파트 밑에 둥지를 틀고 살아서 집값이 떨어져 아주 싫어 한다. 세비야에서 공연하는 1시간 30분의 플라멩고가 정통이라는데 못 본 것이 내내 아쉽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길목의 도로변에 올리브 나무 농장이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