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님
3월 31일
불법사드철거 김천평화촛불 932회
비 그치고 꽃이 한껏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밤,
오늘도 932번 째 촛불을 들기 위해 시민들이 모였다.
저녁에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늘 따뜻한 것을 준비하려 애쓰는 함수연 님이 갱시기(밥국)를 끓여왔다. 지나가던 학생 아이가 맛있게 먹었다.
사회자인 김종희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 기획팀장이 '사드 배치 승인 위헌 헌법 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각하' 판결을 비판했다.
2016년 7월 8일 외교부 장관은 백화점 쇼핑하던 때 사드 배치 발표를 했고, 같은 달 13일에 성주를 사드 배치하는 장소로 결정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2월 28일 박근혜 탄핵이 절정으로 치닫던 그때에 롯데 골프장과 부지를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라고 발표를 하고, 3월 2일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4월 19일과 20일에 골프장을 쪼개기로 해서 32만8779평방미터를 주한미군에게 공유를 하였습니다.
전략적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기 위한 꼼수로서 이렇게 쪼개기 부지를 제공하고서 4월 26일, 9월 7일에 사드 체계 일부를 배치하였습니다.
2023년 작년에 환경영향평가에 대하여 협의를 완료하였다라고 선언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김천과 성주의 주민들, 원불교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생존권,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기본권,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에 대해서 2017년 4월 6일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모두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미 당국은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사드 배치 결정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에 "미 합중국 육해공군이 한반도 남한에 대비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가 부여했다"라고 되어 있고 "따라서 부지를 제공해야 될 의무를 지고 있어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라고 얘기는 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고 있는 것처럼 사드 배치는 단순한 그냥 미국 무기 하나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우리의 안보에 국가 안보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고, 사드 기지 주변 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기본권의 제약을 초래하는 그러한 '국가 간의 조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의사는 물론이고 권위와 독립된 자주 국가로서의 헌법적 기본 질서마저도 다 주한미군에게 내어준 상태로 배치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평등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종교의 성지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끝까지 나설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러한 결의의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서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촛불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제주 4.3사건이 있다. 이에 대해서 동영상을 시청했다.
https://youtu.be/M0oetkBf_Fc?si=MmPbVIRWFhkK3aNV
제주 4.3 5분 요약 정리 | 씨리얼 사회탐구
대통령도 이효리도 참석하는 4.3 70주년 추념식4.3이 대체 뭐길래그 큰 섬은 핏빛으로 물들었을까요?제주 4.3을 5분 안에 정리해드립니다.🤍'씨리즌'이 되어주세요! 우리 함께, 세상을 조금씩 더 좋아지게 만들어봐요. ▶씨리얼 멤버십 가입: https://www.youtube...
http://www.youtube.com
함수연 님이 나와서 관련 시를 낭송했다.
김종희 사회자가 4.3사건에 대해서 공부한 것을 덧붙여 말했다.
"제주도민들이 1947년 4월 3일부터 시작해서 1954년 9월 21일까지 장장 7년 7개월에 걸쳐 수많은 희생을 낳았던 그 가장 언저리에 있었던 요구가 뭐냐 하면, 바로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자. 분단된 땅에서는 살 수 없다.'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드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고 있고, 사드 때문에 평화가 침해되고 그래서 '사드를 뽑아내야지만 온전한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 외쳐야 되는 이유도 결국은 일제 식민지배와 외세에 의해서 강요된 분단이 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는 공부였습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돌아가셨던 수많은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에 평화 심는 일에 굳건한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겠습니다."
노래하는 목수 신명섭님이 광장을 찾아왔다.
준비한 곡은 아니나 4.3사건에 대한 영상을 보니 그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작곡 · 작사 안치환 · 노래 신현중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아-
아.. 아- 아-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1988년 <총파업가 (노동자 노래단)>에 먼저 수록되었고,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수록되었다 한다.)
다가올 4.16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추모 노래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불렀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정태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사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어둔 길모퉁이 돌아 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가고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은 또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저 미완의 혁명이라 말하는 4.19혁명때 죽어간 이들.
진달래 (이영조 시, 한태근 곡)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너무 무거운 노래를 부른 것 같다면서 다함께 부르는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뜨거운 고마움의 박수.
이름마저 소야(소성리의 다른 이름) 훈으로 지은 이석문 님. 소성리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있지만 "어머님 잘 싸우셨어요. 저는 항상 어머님들을 사랑합니다." 이야기하고, 지적 측량을 하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겠단다.
지적학 1페이지에 보면요. 국토개발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개인 소유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라고 돼 있어요.
사실 그럴까요?
우리나라에 돈 되는 땅 절반은 국가와 기업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절반은 뼈 빠지기(빠지게) 땅 파고 과수나무 심고 해야 되는 우리가 하나씩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다들 측량 한 번씩 해보셨잖아요. 아니면 옆에서 하는 거 본 적도 있었을 거예요.
근데 간혹 가다가 지적 불법지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도면하고 현장하고 맞지 않는 거예요. 왜 그렇게 맞지 않는지를 제가 말씀드릴게요.
우리 지적도는 언제 만들어졌냐 하면요.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는데 일제가 만든 목적이 우리나라 세금을 합리적으로 거두기 위한 것과 토지 수탈에 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 근대화를 해서 철도를 놔줬다, 도로를 개설했다 하는데, 전부 다 자기의 이익과 우리 국토를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지적도는 일본 동경에 측량 원점이 있어요. 원점이 대단한 게 아니고요. 보통 산에 가시다 보면 삼각점이 있잖아요. 동경 원점에서 펼쳐 가는데 우리나라로 넘어오면 가까운 곳 대마도에서 부산과 거제도 두 점에 넣어 측량을 했습니다. 그 두 점 가지고 우리나라 전국을 측량했습니다. 지금 지적도는 그때 만들어진 겁니다. 그 정밀도는 대단했습니다. 실제로 측량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야 칼 차고 다니면서 폼 잡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아마 당겼을 거예요. 기분 나쁘지만 일본의 정교한 측량 기술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그리고 지적도를 만들고 임도를 만들었잖아요. 지금도 측량하러 가다 보면은 주인 없는 땅이 간혹 발견 돼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임야 같은 경우는 자기들이 힘드니까 우리 백성들한테 도면 만들어가지고 같이 공부해 와라 그러면 등록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 토지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없고 무지로 인해서 등록을 안 했어요.
그 토지들이 다 조선총독부로 넘어가지고 그 땅을 일본인 정착민과 일제 부역했는 사람들한테 다 나눠줬습니다.
해방 후에 그것이 전부 다 국유지가 돼가지고 지금 아마 분명히 저 산에 우리 조상님들 산소도 건설부 땅도 있고 기재부 땅도 있잖아요. 그때 다 그렇게 넘어갔다고 보시면 돼요.
지적 불법지 문제점이 언제 발생됐는가 하면은 한국전쟁이 일어났어요. 측량 기준점들이 그 당시 폭격을 하게 되면 산위에 다 폭격을 하잖아요. 진지도 구축하여 그때 거의 한 75%가 망실이 됐는데, 한편으로는 우리 조상이 묻혀 있는 저 산위에 가 있는 것이 우리 혈을 끊는 존재다 해서 실제로 우리가 뽑아낸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이걸 빨리빨리 재건을 해야 돼. 도로도 놓고 건물도 또 새로 지어야 되고 그래서 이 미군정에서 그때부터 빨리빨리 날림 공사가 시작 되는데 대충 해가지고 검증도 안 한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해버렸어요. 그래서 지적불법지가 됩니다.
고객들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면, "일본 놈들이요. 우리 땅 뺏으려고 이거 지적도 만들어가(서)" 하면 "그렇지'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그다음 "한국 전쟁 끝나고 미 군정이 측량을 엉망으로 해가지고 이렇게 됐다"라고 하면 뭐라고 하시는지 아세요?
"미국 때문에 우리가 해방됐잖아. 니들이 일 잘못 해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무슨..."
미 군정이 지적 측량 오류를 심각하게 범해서 지적 불법 했다라고 했는데도 우리가 한국과 전체적 이익을 위해서 침묵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그냥 30년 살아왔는데요. 저도 일해 오면서 한때는 노동조합 하면서 제가 좀 열심히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울진까지 쫓겨 갔다 왔어요. 심지어 타 도까지 가야 되는 그런 그 정도까지 열성분자였는데...(웃음)
매뉴얼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된다는데 힘이 없는 시절에 제가 무슨 이들을 보호하고가 필요하겠어요? 그분들과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다 조합원들이었는데 저는 이제 막바지에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 조직이든 내 이웃이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할 위치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 선배님들하고 우리 우리동지님들 혹시 권력을 가졌든 재물을 가졌든 지식을 가졌든 너무 남용하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혹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우리 곁을 떠나는 동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저도 막바지 와서 우리 지역에 사드 뽑는 평화 운동도 하면서 국가의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길에 함께 가겠습니다.
사드 뽑고 우리 땅 찾자!
이동욱 대책위 공동위원장이 나와 공지를 했다.
공지 : 4월 27일(토) 오후 2시 진밭교에서 16차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이 있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십시오.
그대들이 있어 우리 촛불이 꾸준히 밝혀집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운영팀 여러분!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준 유정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