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고, 일 년 중 가장 거룩한 <성주간>이 시작합니다. 유혹과 변모, 정화와 거듭남 그리고 죽음으로 살리라는 사순 5주간의 주일 복음의 주제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은 저는 노인 병원에서 2014년 USB에 보관했던 모든 강의록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 후 다시금 예전 것을 복원하고 종이로 인쇄해 둔 자료들을 컴퓨터 작업으로 수집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과 달리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성경도...저희 수도회 회헌도 새롭게 번역본을 바탕으로) 덕분에 주일과 평일 복음 묵상과 피정강의도 새롭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래 보내드린 <고통 받는 것을 배우기>는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잡지 참사람 되어(편집인 한현) 2005년 3월에 번역 게재한 내용입니다. 이 자료를 뒤늦게 발견해서 새로운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을 바탕으로 정리해서 보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울러 이런 좋은 내용을 번역 게재한 <참사람 되어>의 편집인 한 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고통 받는 것을 배우기
성인에게 고통은 여전히 고통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고통이 그의 사명에 장애물이 되거나,
행복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행복과 사명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 토마스 머튼-
행복의 추구를 고통과 연결시켜 말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고통이 없다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단식이나 운동에 해당하는 말이다. 진짜 고통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 확실히 행복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과 가능한 멀리 떨어질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고통을 통과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도 고통은 늘 상 똑같이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일, 사랑, 내적인 평화를 통하여, 혹은 모든 일상의 걱정에서 이탈할 때에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추구는 어쨌건 어떤 만족을 준다. 그러나 단지 만족할 때에만 행복할 것이라는 말은 단순한 중언부언에 불과하다. 만족이란 어떤 거절, 불똥, 얼음 한 조각, 부서진 막대기 하나 때문에도 쉽게 사라질 만큼 약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성인들의 안내가 필요하다. 그들은 고통이 더 이상 절대적인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행복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그들은 고통의 의미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이 결코 파괴시킬 수 없는 어떤 의미나 진리가 삶의 심장부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고통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하느님이 선하시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죽음이나 생명도, 어떤 높이나 깊이도 참으로 우리가 그 선을 원한다면, 결코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하느님이 버리는’ 자리는 아무 곳에도 없으며, 모든 상황 속에서, 심지어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복음의 가장 심오한 신비라 생각한다.
수레바퀴의 축
여러 성인들이 고통에 관한 완벽한 논문들을 썼다. 첫 번째로 쓴 사람은 보에티우스(480-524)성인으로 「철학의 위안」을 썼다. 불행을 직접 경험하면서 쓴 이 책은 고통과 행복의 관계를 명료하게 다룬다. 보에티우스는 명망이 놓은 그리스도인으로 로마 왕실의 고위층관리였다. 궁정의 음모에 휘말려서 반역죄와 철학에 대한 불경한 연구의 죄목으로 명예가 박탈되고, 구금, 고문 후, 결국 처형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의인화한 후견인, 철학부인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섰다. 철학부인은 고통 중에 있는 그의 제자를 위호하면서 보에티우스에게 세상의 걱정에서 이탈하고 오직 최고의 선, 하느님, 모든 것의 창조주께 몰두하라고 촉구한다.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그의 평화와 평온함은 더 이상 바깥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보에티우스의 지금도 이어지는 유산중의 하나는 삶을 천천히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로 묘사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지상에서 재물, 권력, 명성들을 즐기는 사람들은 ‘떠오르는’ 지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지나가버리는 것들로부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바퀴의 표면에만 매달리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우리의 번영과 만족은 걱정과 주의 때문에 그늘진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찾으려고 이웃과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야 한다. 인간행복의 즐거움은 한 순간에 그치며, 회한과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즐겁다 해도 행복은 떠나려고 결심하면 가차 없이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부인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수레바퀴의 바깥 테를 떠나야 한다고 한다. 즉 행복이 지나가 버리는 재화에 있다는 망상을 버려한 한다. 하느님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수레바퀴의 중심을 향해 가야한다. 그렇게 할 경우 행복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거룩함의 추구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에티우스는 거룩함을 무엇이라 생각했는지? 단지 스토아 철학에서 주장하는 체념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지 ? 대답은 수레바퀴의 축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에 달려있다. 그 주제에 대해 철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없다.
중세기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고통에 대해 더 실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14세기 초에 씌어진 「거룩한 위안」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에크하르트는 30여 가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떤 주장은 소수의 신비가들 만이 따를 수 있는 제안이다; “참으로 완전한 사람은 자아에 죽고, 하느님과 그 분의 뜻에 취한 나머지 그의 온 행복은 자아와 자아에 관한 관심에 전혀 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진리만 알고자 한다.”
또 다른 주장은 좀 더 지상에 가까이 내려 앉아 “어떤 상실도 완전한 상실이 아니다”라는 격언에 관한 성찰로 표현한다. 잃어버린 것보다 갖고 있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편안해지려면,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대신 더 못사는 사람들을 행각해보라는 주장을 펼친다.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고”, “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가! 또 때로는 철학 부인이 보에티우스에게 주었던 충고를 상기시키는 주장도 한다. 즉 우리의 고통은 “사물의 바깥에 살고 있거나 비우지 않거나,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피조물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 속에는 확실히 지혜가 있다. 고통에서 이탈할 때, 다른 이들의 불행과 우리의 고통을 비교하거나, 받은 축복들과 그 무게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아마도 보다 넓은 전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가서 철학적 논쟁을 통하여 적절한 위안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짐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다가오는 한 친구의 친절한 행위와 이 모든 철학적 논쟁들을 기꺼이 바꿀 것이다.
고통을 체험하면서 우리들은 무심한 온 우주가 우리와 대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장 확고부동한 무신론자들조차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은밀한 슬픔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는다. 연민이란 ‘함께 고통 받는다’는 뜻이다. 에크하르트도 고통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연민을 축복한 것이라 해석된다. 결국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은 옆에 무심하게 물러나 않아서 세상의 고통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그 분을 십자가로 이끌었다. 그 십자가는 모든 고통이 집중된 자리였다. 십자가가 돌아가는 세계의 움직이지 않는 축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무심한 귀에 떨어지지 않고, 실제의 심장부에서 자비와 연민의 원리와 만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크하르트는 우리를 철학의 위안 너머로 데려간다. 그는 “우리가 고통 받을 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고통 받고 계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미 아는 것처럼, 고통이 친구의 공감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연민 속에서 내가 받는 위로는 얼마나 클 것인가!” 라고 설명한다.
성인들의 삶
모든 성인이 다 고통에 관한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통을 하나도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다. 박해, 질병, 굶주림, 친구와 가족의 죽음, 위대한 일과 개인적 꿈의 실패, 결실 없는 노동에 의한 소진, 외로움, 영적 고통 등. 성인들의 삶은 고통의 연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고통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디는 값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 고통은 신앙이 단련되고, 시험을 받는 도가니와 같았다. 그리고 많은 성인들은 그들의 회심과 소명의 식별 때 고통을 겪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보면 중요한 전환점에서 고통이 보이고 그 고통은 성인에게 새로운 ‘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많은 다른 성인들의 삶도 이와 비슷한 체험들이 일어났음을 본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무기력이 끼치는 영향을 감지하고, 새로운 목표에 필요한 에너지를 발산 시키는 고통과 불행의 역할을 깨닫는다. 어떤 경우에 그 고통은 질병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상실로, 혹은 어떤 야망의 부서짐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더 깊은 대답들을 찾기 위하여 나아간다.
영적인 안내자
고통이 삶의 황량함과 헛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결과는 마땅히 절망일 것이다. 그러나 성인들의 삶에서 고통은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고통은 성인들이 갖고 있던 착각과 망상을 벗겨줄 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은총의 현존을 더 빨리 느끼도록 예민하게 만든다. 이렇게 될 경우 고통은 자비로운 친구가 되고, 심오한 영적인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으면서 어떤 성인들은 십자가의 고통에 자신들을 내던질 수 있는 경험을 갈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영감, 연민, 깊은 헌신등 극한적인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경험들을 원했던 것이다.
노르위치의 줄리안( 1342-1416) 이야기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는 영국의 은둔자이며, 신비가로서 저서인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젊었을 때 죽음과 같은 위중한 병에 걸려보기를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실감 있게 느껴보고 깨닫기 위해서였다. 또한 회심, 연민, 하느님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세 가지 상처들’을 받고자 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줄리안의 기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보인다. 그런데 줄리안이 흑사병 대란에서 살아남은 사실을 기억해 보자. 그는 고통이 말 그대로 실제이고, 만연되어 있던 때에 살았다. 줄리안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겪었고, 그래서 고통의 본질과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개인적 경험 안에서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질병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정화되고, 그 후에 그 질병 때문에 더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해서”였다.
줄리안은 고통을 체험하고자 하는 그의 간구가 서른 살 때에 응답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때 그는 신비스럽고 파괴적인 질병을 앓았다. 나를 밤낮으로 그는 마비상태에 있었고, 견딜 수 없게 고통을 겪었다. 마침내 사제가 병자 성사를 주기 위하여 왔고, 줄리안의 얼어붙은 시선 앞에 십자가를 들었다. 그때 갑자기 모든 고통과 비탄이 그를 떠나갔다. 그 순간에 줄리안의 표현을 보면, 그는 “살을 입은 예수님, 고통 중에 있는 살을 입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줄리안에게 말했고, 다른 신비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신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하느님의 손안에 호두처럼 잠겨있는 세계를 보았고, 확신이 자리 잡았다. 결국 우리의 살에 무슨 일이 이러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며, 모든 것이 좋을 것이고, 모든 사물의 모습이 좋을 것”이라는 잊을 수 없는 환시를 본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쥴리안의 환시는 병리학적으로도 생생하다. “나는 왕관 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뜨겁고 마음대로 풍부하게 흐르며, 살아있는 시내였다. 떨어지는 커다란 핏방울.... 마치 청어의 비늘처럼”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의 관상은 사랑의 깊이에 모아졌다.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 분이 고통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줄리안에게는 이 모든 사실이 위한과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에 “갑자기 그분은 기쁨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분이 고통을 받았던 이유는 그분의 본질적인 선함 때문에, 우리를 그분과 함께 그분의 기쁨의 상속자로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내가 너를 위하여 고통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만족하는가? 네가 만족한다면 나도 만족한다. 너를 위하여 수난 받는 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며, 끝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내가 더 고통 받을 수 있다면, 분명코 나는 더 고통 받을 것이다.” 모든 예상이 빗나가며 쥴리안이 죽지 않고 완쾌되었을 때, 그는 받은 계시를 모두 라틴어가 아니라 중세영어로 썼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노르위치의 교회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지금가지 그의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먼저 극한의 고통을 겪었으나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더욱 강해지고 에너지를 충만하게 받은 삶의 지혜를 절실하게 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살았다.
14세기의 줄리안이 가졌던 비전들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쥴리안의 신비적인 관점은 교회의 전통적인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류의 모든 죄의 빚을 대신 갚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빚을 대신 갚았다는 말에 대해 위안을 받지 못하며, 편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쥴리안에게 예수의 고통이 지닌 깊은 의미는 하느님의 연민이 얼마나 깊은가, 우리와 함께 기꺼이 고통을 겪으시는 하느님 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에서 위로를 얻을지 모르지만, 쥴리안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했다. 줄리안은 고통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가 “영혼과 육체로서 하느님의 선함으로 옷을 입고, 그것에 둘러싸인 존재”라는 거룩한 진리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쥴리안이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터득한 영감이며, 절망이나 금욕적인 체념이 아닌 깨달음이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이 연민을 실천하는 기회라고,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생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천하기엔 엄청난 사랑의 이야기이다.
수동적 축소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뇌의 작은 부분만 사용하게 된다. 우리 몸에는 운동이 부족한 근육들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인간성의 어떤 부분들은 어떤 체험들이 일어날 때까지, 사랑에 빠진다든가, 아이를 가지거나, 죽음에 직면하거나, 잠들어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체험을 하게 되면, 생명을 얻는다. 고통은 이러한 체험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불란서의 가톨릭 작가인 레온 불로이는 이렇게 섰다. “사람은 그의 빈약한 마음속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리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들로 고통이 들어가 생명을 불어 넣는다.”
마음속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 자리들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거나, 좋은 모습이 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통은 회한, 자기 연민, 냉소를 더 가져오기 십상이다. 고통 그 자체를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그러나 고통은 생산적일 수 있다. 우리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모든 고통과 두려움은 단지 장애물에 불과 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들은 목표를 다르게 설정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존경하며 섬기도록”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명에 충실하게 충만하게 수행하는 만큼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를 설정한다면, 고통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동맹자가 될 수도 있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인들은 대부분 힘보다 연민을 더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다. 쟁기가 굳은 땅을 뒤엎어 물을 더 스며들게 하듯이, 고통도 굳어진 마음을 열어 더 깊은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초기 사막의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표티키의 디아도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노동과 약함으로 시험되어야 하느님의 거룩함이라는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고통이 ‘십자가로 가는 왕도’ 라고 하면서 그 길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고 준비하신 길이라고 한다. 그러한 빛으로 조명한다면, 우리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을 더 잘 간직할 수 있게 만든다.
불란서의 예수회원이며 신비가였던 피에르 떼이야르 샤르댕 신부는 고통과 실패가 가져오는 건설적인 영향에 대해 썼다. “성인들의 삶, 그리고 일반적으로 볼 때 지혜와 선함이 출중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비하시키거나, 영영 보잘 것 없게 만들 것같이 보이는 시련, 추락으로부터 단련되고 정제되어 고귀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 경우 실패는 마치 식물을 전지하는 칼처럼 그를 더욱 순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고통은 우리 내면의 생명수가 흐르도록 길을 열어주고, 우리 존재의 가장 순결한 ‘성분들’을 자유롭게 풀어줘서 우리가 더 높이 더 강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신학자요,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는 바오로 사도의 우주적 신비주의와 진화론 및 현대우주론의 사상을 화해시키고자 했다. 그는 수십 년을 중국의 고비사막에서 인간의 유래에 관한 발굴을 하면서 돌과 화석화된 유물을 수집했다. 그는 별들의 폭발, 거대한 대륙형성, 그리고 산과 협곡들을 만들어내는 지각변동 등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가능한 한 가장 넓게 관망하면서 그 안에서 생명과 우주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또한 신앙의 눈을 가지고 무생물로부터 원시적인 형태에 이어 더 복잡한 형태로 변해 가는 생명의 모든 변화 뒤에 있는 어떤 운용의 원리를 진화과정 속에서 분별하였다. 이러한 유기체들은 변화를 거듭하며 의식, 사랑 그리고 더 고귀한 영적 에너지의 형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떼이야르는 개인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알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영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인간화의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거룩해지는 변화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에서 뿐 아니라, 아마도 더 큰 변화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겪는 것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떼이야르는 이것을 수동적 축소의 원리라 불렀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불운들이 있으며, 이것들도 수동적 축소에 포함된다. “즉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우리를 둘러싸는 벽, 우리 몸에 침투하는 보이지 않는 병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말 한마디.....다양한 종류와 다른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들과 사고들, 비극적인 개입과 중단, 다른 것들의 세계와 우리로부터 투사되는 세계 사이에서 오는 모든 것들”이다. 또한 수동적 축소에는 이런 것들 이외에도 세월의 덧없는 흐름, 노년이라는 점차적 쇠퇴가 있다. 세월과 나이는 “ 조금씩 우리 자신을 훔쳐서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를 막다른 벽”에 밀어 놓는다. 떼이야르는 우리가 성취뿐만 아니라 패배에 의해서도, 우리의 힘뿐만 아니라 약함에 의해서도, 우리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참아내야 하는 것에 의해서도 형성되며 , 평가된다고 생각했다. 즐거움과 고통 모두가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해방시켜서 실제의 거룩한 중심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떼이야르 자신도 성취와 패배를 직접 경험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교회 당국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진화론을 통합시키려는 그의 노력을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그가 원죄 교리와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훼손시킨다고 비난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책을 출간할 수 없었다. 그는 교회 당국의 끊임없는 비난과 그의 정통성에 대한 중상 아래 연구했다. 이러한 제재는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겼으며, 수동적 축소에 관한 생각도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
떼이야르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 미국의 여 작가 홀래너리 오코너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 주제가 “은총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미치는 은총의 행위”라고 서술했다. 오코너는 그의 소설에서 소시민의 덕, 사회적 지위, 자기만족적인 이성주의, 혹은 조용하고 고상한 기호 등 착각과 망상이 억지로 벗겨지고 잘려져 버린 인물들을 자주 묘사했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더 깊은 진실과 용서의 필요를 깨닫게 된다. 오코너는 독자들에게 의미 없는 바보짓으로 여겨지는 육화, 원죄, 구원 등의 주제에 관해 써야 한다는 도전을 강렬하게 느꼈다. 가톨릭 신앙과 인간의 지성이 어울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반증으로 떼이야르 샤르뎅의 저서 글을 권유했다. 그리고 떼이야르의 작품들 중에서도 수동적 축소의 개념이 특히 오코너에게 개인적으로 강한 영향을 주었던 같다.
오코너는 일찍이 루푸스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사망하였다. 나중에는 치료약의 영향 때문에 관절이 점차 쇠약해져서 지팡이에 의존하며 걸었다. 그래서 죠지아의 밀레쥐빌에 있는 가족 농장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 두 시간 정도 글을 쓰거나, 가축들을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코너는 부조리에 대해 날카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었고, 우스광스러운 것과 비참한 것을 화해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그는 감상적인 동정심을 좋아 하지 않았고, 그의 저술 활동과 병력을 연결시켜 평가하려는 비평가들에게 강한 반발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는 병 때문에 저술에 도움이 되는 훈련을 받았고, 우선 순위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이 떼이야르의 ‘수동적 축소’ 라고 하면서, 어떤 노력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고통이나 상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고귀한 자질이라고 평했다. “나는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오코너는 “어쨌건 내가 할 일은 쓰는 것뿐이며,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고 했다.
그는 예술가로서 그의 가장 큰 책임이 예술을 훌륭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삶이 진행 중에 있는 하나의 작품이라 여겼다. 그러한 삶의 의미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성공에 따라 평가받지 않는다. 인간 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고귀한 책임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선물들을 사용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존경하며 섬기는 것” 이라고 오코너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창조적 삶의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행위는 이 세계의 재화들이 최대한으로 거기에 충만하게 활용되어야 하는 지속적인 행위이다. 긍정적인 선물들과 함께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가 말한 ‘수동적 축소’까지 다 포함하여 활용되어야 한다.”
오코너는 물론 자신의 긍정적 탈렌트와 고통 등 모든 재화를 활용하여 그가 진정한 나라라고 불렀던 나라를 향해 살았다. 한 친구에게 이렇게 섰던 것처럼, “나는 결코 아픈 것 말고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아픔은 장소이다. 그 장소는 유렵으로 긴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배울 것이 많은 장소이다. 또한 언제나 아무도 함께 있지 못하고,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장소이다.” 오코너는 39살에 죽었다. 그의 짧은 삶에는 소위 흥미로운 드라마가 부족하다. (일생 집과 닭장 사이에서 살았기에) 그러나 그의 삶이 피폐한 삶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는 상식적인 의미에서 신비가도 아니었지만, 그리스도교적 신비의 핵심을 매우 깊게 살았다. 그것은 노르위치의 쥴리안이 거룩한 계시 속에서 받은 것과 같은 영감으로서, 이 세계가 그 모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죽을 만한 가치고 있다고 하느님께서 인정 하셨다는 신비이다.
하느님의 뜻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증한 고통에 대한 위로 책 중 하나는 이것이다. 만일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변형시킨다면, 고통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나는 평온해지고 온전히 행복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역사를 보면 많은 설교가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그런 충고를 강요해 왔다. 그런 충고가 인간의 행복을 더 증가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대안들이 없을 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진, 가뭄, 전염병이 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가하면, 가난의 고질화, 에이즈 환자들을 보면서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드리면, 견뎌낼 힘을 받든가 아니면 하느님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적 체념을 대신할 대안이 있다. 장삐에르 꼬샤드는 그의 책 「거룩한 섭리에의 의탁」에서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함께 찾아보자고 한다. 꼬샤드는 매일의 모든 행위가 갖고 있는 영적인 차원을 지적한다. 즉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 의무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깃든 영적인 차원에 대하여. 모든 행위들은 그 순간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사’이다. 그러한 사실에 늘 깨어 산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의 경험이 지니고 있는 거룩한 심연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고통 받을 때 특히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도전은 우리의 영적인 자세가 바깥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가지는 것이다. 매우 심각한 불행 한가운데에서 조차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있다. 우리가 불운의 베일을 뚫고 어떤 변하지 않는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신앙에 의해서이다.
꼬샤드가 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옆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도둑의 경우를 그 예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외적인 상황은 똑같았으나, 내적인 자세는 알다시피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첫 번째 도둑으로 하여금 회한과 증오의 태도를 취하게 했고, 두 번째 도둑은 그의 조건을 넘어 영원과 만나게 된다. 꼬샤드는 단지 이렇게 주장한다. “하고 있는 대로 계속하면서 인내해야할 때 인내하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할 때, 당신의 태도를 변화시켜라.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하느님이 청하시는 모든 것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꼬샤드의 이런 주장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은 방문회 수녀들이었고, 그는 그들의 영적지도자였다. 그렇다면 그런 수녀들이 삶의 잔인함, 역사의 암흑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란서 혁명 때 옷을 벗기우고 단두대로 행진해 갔던 사람들은 바로 그런 수녀들이었다.
그러나 고통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매우 우둔한 소리로 들린다. 대학살 속에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계 무역센타 붕괴 속에? 캄보디아인들의 몰살 속에? 이런 폭격 속에? 한 아이의 고통 속에? 그런데 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 말이 단순히 일어나고 있는 나쁜 일들을 합리화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어떤 상황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도전으로, 모든 상황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도전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뜻이란 우리의 운명에 대한 축복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숨겨진 도전은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응답하라는 것이다.
영국의 여의사인 쉴라 캐시디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도전을 발견했다. 1970년데 초기에 칠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던 그는 군사 쿠테타에 이는 폭력적 탄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한 부상당한 혁명가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문을 당했고, 죄수들 수용소에 갇혔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사라져갔다. 캐시디의 경우, 국제적인 압력으로 석방되어 칠레에서 추방되었다. 회고록에서 캐시디는 고문의 힘이 자신을 두려움과 공포로 너덜너덜해진 공처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일생 시달리는데, 단지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존재들이 서로에게 어디까지 극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고문이 그쳤을 때 , 제일 먼저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철장에 매달려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애원하며 영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빈손을 탄원보다 봉헌으로서 하느님께 뻗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를 나가게 해주세요, 라기 보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제게 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무력함과 감금 속에서 남는 것이 하나있다면, 그것은 자유였다. 즉 하느님의 손에 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자유였다.”
이 기도의 효과는 그의 태도를 즉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필요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상황을 직면케 한 점차적인 과정으로 나타났다. 캐시디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의탁의 선택은 상황의 굴레를 빠져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선택이며, 갇힌 사람들이 그들의 굴레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새장속의 새처럼 그들은 철창에 날개를 부딪치면서 소진되는 선택을 하거나,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마침내 놀랍게도 그 안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후에 캐시디는 영국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면서 칠레에서의 경험으로 불치의 암환자들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환자들의 절망적인 질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나입니까?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우리도 회한과 절망 속에서 힘을 소진시키며 철창에 우리의 날개를 때리든가, 아니면 마리아의 기도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에 우리의 기도를 합쳐서 노래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죽음이 아니라, 이 날 그분과 함께 있는 것, 말하자면 낙원에 있은 것임을 신뢰할 때 할 수 있는 기도이다.
「러시아에서 그 분과 함께」의 저자인 미국의 예수회 회원 윌터 씨스체크 신부도 이와 비슷한 자유와 평온함의 경험을 했다. 그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23년을 살면서 수차례 죽음과 직면했다. 그가 경험한 잔인함과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가장 큰 고통은 그가 자신의 운명의 부당함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싸우게 됐을 때,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만큼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 자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때에 자유와 평화를 느꼈다. 그의 시련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동료 죄수들에게 영적인 위로를 주거나, 사제직분을 수행할 때, 혹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할 때에 그는 “즐거움, 하느님만 신뢰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신앙에 대한 확신”을 경험했다.
씨스체크 신부는 후에 상황이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은 큰 유혹이라고 했다. “이런 삶은 내가 기대했던 삶이 아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도 이런 유혹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위로는 항상 하느님의 뜻을 믿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의 하느님의 뜻이 아니며, 우리가 그렸던 대로가 아니고, 우리 인간의 빈약한 지혜에 적합한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의 뜻이고, 매일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창조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뜻이다. 우리에 대한 그 분의 뜻은 매일의 24시간이다. 그때에 우리 앞에 놓여 진 상황, 장소, 사람들 속에 있다. 그 순간 그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 보시기에 중요한 것이며,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바라시는 바로 그것들이다.”
장삐에르 드 꼬사드의 주장은 씨스체크 신부의 경험으로 증명되었고, 다음의 내용이 신심적인 이상주의가 아니라 생생한 삶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하며 모든 것을 이끄신다. 이 사실을 모든 상황과 모든 조건 속에서 식별하는 것,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알아본다는 것은 모든 상황과 현실을 받아 드리고 완전한 신뢰와 확신 속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를 그분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분은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가 겪은 시련에 대해 쓰면서 씨스체크 신부는 아무런 회한이나 후회의 자취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경험은 독특하지만, 그가 배운 교훈들은 모든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구원은 매일 그리스도의 같은 십자가를 지고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아침 하느님께 모든 기쁨, 모든 일, 그리고 그날의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 다시 봉헌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감옥에서도, 시베리아 노동 수용소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행복의 비밀은 단순히 매순간을 목적과 책임감을 잦고 살아가는 것이었고,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 속에게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발견하기로 결심했으며 대면한 것이었다. “삶에서 신앙의 진실을 믿고 매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평화를 알 수 있는 사람, 더 투신할 수 있는 사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게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위하여 다만 직접 해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볼 때에 당신은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읽기
현재의 순간 속에서 거룩함과 행복의 길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현재 순간들의 연속 그 이상이다. 우리들의 삶은 그 전체를 덮는 활꼴과 같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고통으로 점철된 이야기일 터이지만, 고통이 그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필하 수 없는 질문, 즉 나의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하여 먼저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순간’ 에 제한하여 그 의미를 찾아본다면, 우리의 삶을 하나의 전체로 보기가 어렵다. 고통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독한 외로움, 어떤 공허감 밖에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자로의 누이, 베타니아의 마리아도 예수께 불평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 그러나 나의 삶을 계속되는 어떤 이야기로 보고 어떤 차원에서 그것을 또한 하느님의 이야기로 믿을 때에, 나는 삶의 의미가 어떤 한 순간이나 또 다른 순간 속에서 발견되는 아니며, 또한 가장 좋은 순간이나 가장 나쁜 순간도 아니며, 이야기 그 전체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라자로는 죽었으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니며, 그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성 아오스딩은 그의 삶을 전체로서 보았던 첫 번째 사람이다. 자신의 삶이 흩어져있는 일화들의 연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이며 영적인 성찰의 대상으로서, 더 깊게 파고 들어가 숙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삶의 중추점인 회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본다. 이 빛으로 볼 때 그는 그를 보살피고 행복을 향해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에 손길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손길은 하느님이 그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던 도덕적,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도 그곳에 있었다. 하느님을 발견할 때 까지 그는 행복을 우정, 괘락,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식에서 추구했다. 그러나 이런 추구에서 성공했어도 그에게는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무엇인가가 빠져 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빠진 것은 확실했다. 후에 깨달았지만 그는 절대로 혼자 있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내, 저 멀리에서 당신의 자비는 충실하게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우리를 꽉 잡을 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 겪는 고통, 상실 혹은 배신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의 길이 닫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있음을 알아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우리의 희망과 좌절이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될 수 도 있다. 우리는 확실하게 보이는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전조라는 것을 신앙으로 배우게 된다. 성인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비록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길로 이끈다 해도, 인도하는 섭리가 있다고 믿었다.
까를로 까레또(1910-1988)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 회원이었다. 44세에 그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그는 그때가지 이태리의 카톨릭 청년 운동에 유명한 지도자로 활동했다. 친구들은 사막으로 가는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행동과 치적이 아니라, 너의 기도 너의 사랑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 가난, 고독, 기도의 분위기 등 그는 이 모든 것을 빨아 들였다. 그러나 까레또는 한 가지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알프스에 작은 형제회 공동체를 만들고 산악인들을 위한 구조팀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 꿈은 눈사태처럼 쓸려가 버렸다. 사막을 걷던 도중, 그의 친구가 그의 넓적다리에 주사를 잘못 놓아서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일생을 절룩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까레또 역시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느님이 용납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그는 “나는 여기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왔는데 그 분은 나를 골탕 먹이고 절름발이가 되게 해버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후, 그는 그 실수가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운이 나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것을 은총으로 바꾸셨다.” 그는 지프차를 얻어 기상학자가 되었다.
“내 의사하고 상관없이 나는 내가 속한 곳에 사막이 있었다. 눈 속을 걷는 대신, 모래 속을 걷고 있다. 불운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던져 주었다.”
까레토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비탄과 절망 속에서 그를 끌어내어 새로운 수용의 상태로 데려간 은총에 계신다. 선이 악으로부터 올 때, 신앙의 눈은 그것이 하느님의 실수할 수 없는 징표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의 발길은 고통을 우회하지 않는다. 까레또는 가난과 고통의 상처가 특별하고 매우 소중하며 달콤한 꿀을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가 산상에서 선포했던 진복팔단이라는 꿀이다.
이 잔 모두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예수의 이야기로 조명하며,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단순히 교의와 도덕적 격언집으로 축소될 수 없다. 또한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영광스러운 신비들’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거부, 배신, 버림받음, 외로움, 피땀이 흐르는 고통까지 포함한 이야기 전체에서 발견된다. 예수는 충실함의 기쁨과 고통이 서로 갈라질 수 없게 섞여 있다고 믿었다. 두 제자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을 하느님 왕국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그분은 대답한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는냐?” (마태오 20,23)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쓴 것과 단것, 슬픔과 영광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잔을 마실 수 있는가?」라는 저서에서 나웬은 잔이 삶 자체를 상징하며, 우리는 삶 안에 있는 모든 갈등들을 받아들이도록 초대되었다고 성찰한다. 잔 안의 내용물은 너무나 분리 할 수 없게 섞여있기 때문에 잔을 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나웬이 삶에서 직접 경험한 교훈이었다.
나웬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가를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아오스딩과 달리, 청년 나웬은 이미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속의 자신의 자래에 대해 아오스딩과 비수한 불안감, 걱정을 느꼈다. 그는 애정과 인정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로 시달렸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적인 공허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웬은 우정의 큰 선물을 지니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공동체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를 한 자리에서 밀어내고 또 다른 것을 계획하게 만든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사명으로, 서커스그룹의 지도신부 등등. 그러나 대중의 인정도 오직 고립감만 더 깊게 해 줄뿐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예수가 경험했던 유혹들이 “더 인기가 있고, 더 강력해지며, 더 위대해지려는 것” 이었다고 표현한다.
1986년 그는 토론토에 있는 새벽 라르슈 공동체에 거주사제가 되었다. 그는 장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았다. 그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젊은 청년 아담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아담은 말할 수도 없고,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담을 돌보면서 나웬은 자신에게 더 깊은 내적 회심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웬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투쟁의 끝은 아니었다. 새벽공동체에서 일 년을 지낸 후 나웬은 오랫동안 눌러온 긴장이 극도에 달하며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몇 달 동안 그는 거의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이제 그 자신이 무력한 사람이 되어 침묵 중에 존재에 대한 확신을 울부짖고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나의 자기인정, 살고 일하는 나의 에너지, 사랑받고 있다는 나의 느낌, 치유에 대한 나의 희망, 하느님께 대한 나의 신뢰 등 모든 것이” 그것은 전적인 암흑의 체험이며 끝이 안 보이는 심연으로의 추락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주 하느님이 실제인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일까 하는 의심으로 불안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내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도 하느님께서 나를 홀로 있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더 평화롭고 더 전체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면에서 들리는 사랑의 목소리”에 대한 더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그를 “나의 짧은 생의 울타리를 넘어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는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르슈를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공동체를 집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에게는 고통만이 그곳의 유일한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에는 축하, 친밀함, 동료애, 소속감, 가족으로서 수용되는 기쁨이 있다. 즐거움과 슬픔은 이곳에서 서로 섞여 있다. 다시 말하면, 즐거움이 슬픔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하다. 나웬은 이렇게 표현한다. “새벽 공동체에 살면서 나는 많은 이들이 슬픔만 보는 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슬픔은 여전히 그 곳에 있지만 어떤 것이 나를 변화시켜서 다른 사람들 앞에 앉아 있게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공동체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나웬은 삶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나웬의 성공과 영광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과 아픔도 바라봐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이야기에 속하며 궁극적으로 은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나웬이 예수의 메시지라고 했던 메시지이다. 즉 “진정한 기쁨과 평화는 고통과 죽음을 우회하지 않고, 그것들을 정면으로 통과할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사실과 신비
고통의 갈래는 우리 존재 깊숙이 파고 들어와 전체에 얽혀 있어서, 그 갈래를 마구 잡아당기면 나머지 부분도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진다. 우리는 비틀거리고, 넘어지며, 걷는 것을 배운다. 우리의 변화는 막다른 끝이나 실망으로 점철되어 있고, 아무도 그것들로부터 온전히 빠져 나갈 수 없다. 질병과 고통은 몸이든 마음이든 피할 수 없다.
고통은 사실이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그 고통을 직면하는가?’ 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준주성범」에서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는 항상 대기 중이다. 그리고 어디서든 당신을 기다린다. 당신이 어디로 도망가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딜 가든지 당신은 항상 자신을 달고 가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의 대안들을 제시한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 십자가가 당신을 질 것이며, 당신이 원하는 목표로 이끌어 줄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존재하지 않은 곳으로 .... 그러나 십자가를 기꺼이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짐이 되고, 당신을 더 무겁게 누를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 한다. 한 십자가를 쫒아 버리면 또 다른 십자가 더 무거운 십자가가 당신을 쫒아올 것이다.”
성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시하면서 위로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한다. 즉 그들은 고통을 변모시키는 길을 발견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더 친밀하게 자신들을 연결시키고, 이웃과 더 연민어린 통합을 이룬다. 성인들은 이렇게 행복에 대하여 가장 어렵지만 가장 결정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삶의 상황에 대하여 제한된 통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우리의 태도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안락과 사치 한 가운데에서 비참하게 느낄 수 있는 것만큼, 성인들이 증언한 바와 같이,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행복 할 수 있다.
초기 교회 교부들은 하느님이 예수를 ‘미끼’로 사용하여 어떻게 사탄을 잡으려고 하는지 묘사하기 위하여 쥐덫의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곤 했다. 성인들도 고통 중에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하여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바가 있다. 덫은 튀어 오르지만 우리는 잡히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깊은 심연은 멀리 떨어진 우리의 참 나라에 있다. 그 나라는 천둥과 서리, 무너지는 빌딩의 땅 너머 요동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