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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사역과 무신론 가톨릭과 프랑스의 국가적 광란기록
제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나타날, 정확한 시기를 알기 위하여 궁금해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저들에게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으므로, 그 때와 시기를 저들이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언제 하나님의 왕국이 회복될 것인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저들이 알아야만 할 가장 중대한 사실이 아니었다. 저들은 다만 주님을 순종하는 생애 가운데서, 기도하고 기다리며 깨어서 일할 뿐이었다.
저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제자들이 살던 당시에 성공적인 신앙적 체험에 긴요했던 요소는, 오늘날에도 긴요한 것이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7,8).(1SM 185.2)
사랑의 수고는, 믿음의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의 신앙은 꾸준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들은 선한 행실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하며, 선한 행실을 유지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충성된 증인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계2:2)라고 말씀하신다.(2SM 20.4)
참된 증인께서는,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18-21)고 말씀하셨다.(2SM 66.3)
선지자는 두 증인에 대하여,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11:4)라고 하였다. 또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구약과 신약성경을 대표한다. 구약과 신약은 다 같이 하나님의 율법의 기원과, 영속성(永續性:오래 계속되는 성질)을 알려 주는 중요한 증인들이다. 그 두 성경은 또한 구원의 계획을 증거 해 준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표상과 희생제도와 예언들은, 모두 장차 올 구주를 지적해 준다. 그리고 신약의 사복음서와 편지서는 표상과 예언을 통하여, 미리 알려 준 그대로 조금도 틀림없이 강림하신 구주를 증언하고 있다.(GC 267.1)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 곧,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해야 할 시기는, 1798년에 마쳤다. 그 두 증인이 비밀리에 그들의 사업을 마쳐 갈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표상된 세력이, 그들을 향하여 싸움을 하게 될 것이었다. 여러 세기[1세기는 100년] 동안에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교회와 국가를 지배한 세력들은 법왕 권을 매개체로 사용한, 사단에 의하여 통제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단의 세력이 새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GC 268.3)
그러므로 선지자의 말에 의하면, 1798년 조금 전에 어떤 극악한 성격의 세력이 일어나, 성경을 대항하여 싸우게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두 증인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그 나라에서 ‘바로’[‘로마’ 왕]의 무신론과, ‘소돔’의 음란이 나타날 것이었다.(GC269.3)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계11:10) 무신론의 ‘프랑스’는 하나님의 두 증인의, 책망하는 소리를 침묵시켜 버렸다. 진리의 거룩한 말씀은 시체가 되어 그 길거리에, 넘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제재와 요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기뻐 날뛰었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하늘의 왕을 모독하였다. 그들은 옛날의 죄인들처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시73:11)고 부르짖었다.(GC 274.2)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의 참람(僭濫:신성모독)된 권력으로 말미암아, 살해된 하나님의 충성된 두 증인은, 오랫동안 잠잠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11:11). 그리스도교를 폐하여 버리고 성경을 금지한다는 법령이, ‘프랑스’ 국민의회를 통과한 것은 1793년이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후 그 결의를, 무효로 만들고 성경을 용납하는 의안을, 동일한 그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세계는 성경을 거절한 결과로 생긴 가증한 범죄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으며 사람들은 덕행과 도덕의 기초로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임을 인정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니라.”(사37:23).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16:21)고 말씀하셨다.(GC 287.1)
그 두 증인에 대하여,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11:12). ‘프랑스’가 하나님의 두 증인에 대하여 도전하였으므로, 그 두 증인은 오히려 전에 없이 높임을 받았다. 1804년에 영국 성서공회가 조직되었다. 그 후로 유럽대륙에, 이와 유사한 조직체들과 지부들이 형성되었다. 또한 1816년에는 미국 성서공회가 창설되었다. 영국 성서공회가 창설되었을 때에 성경은, 50개의 국어로 인쇄되어 배부되었다. 그 후 성경은, 수백 가지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었다(부록25 참조).(GC 287.2)
그러나 일요일 준수를 성경의 권위로, 보증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큰 곤란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날을 숭배하기 위하여,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한, 여호와의 분명한 선언을 무시해버릴 권리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있는가라고 질문하였다. 성경에서 얻어야 할 증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하여, 다른 방편[방법]이 필요하였다. 12세기 말엽에 영국의 교회들을 방문한 열렬한 한 일요일 옹호자는, 충성된 진리의 증인들에게 거절을 당하였다. 그는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효과가 없으므로, 일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가르침을 강요하기 위한, 어떤 방안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의 그 결함이 보충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으로 주장하는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일요일을 준수해야 한다는 명령과 이를 순종하지 않는 자를, 위협하는 무서운 협박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소위 그 귀중한 문서, 사실은 그것이 지지하는 그 제도와 마찬가지로 비루(鄙陋:너절하고 더러운)한, 위조물에 불과한 그 문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데,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있는 ‘성 시므온’의 제단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로마’의 법왕 궁이 그 출처였다. 교회의 세력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하여서는 사기와 위조도 각 시대에 걸쳐‘ 법왕권 제도에 의해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돼 왔다.(GC 576.1)
만일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빌3:14)간다면, 우리는 모든 자아를 비우고 온 세상의 주로 인해, 서서 기름부음 받은 두 존재에 의해 교통하는 두 가지, 금관을 통해 나오는 금 기름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와 섭리로, 우리를 다루고 계신다. 영원 전부터 그분은, 그분의 순종하는 자녀로 우리를 택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으시도록 내어 주셨으며, 우리가 자아의 사소함과 값싼 것으로부터 정결하게 되어, 진리의 순종을 통해 성화 되도록 하셨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매우 뒤쳐져 있다. 개인적인 사업이 필요 되며, 개인적인 자아의 순종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우리들이, 그분의 기별과 일치할 때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우리는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나타내야 하며, 그리스도 같은 품성을 완성시킬 때까지 하나님의 도성의 문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성화를 추구한다면, 그것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 해 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1SAT 302.1)
법왕이 최상권을 쥐고 있는 동안에, 성경이 금지될 것에 관하여 선지자들은 이미 예언하였다.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죄악의 사람”의 통치로 말미암아, 특히 ‘프랑스’에서 일어날 무서운 결과를 또한 지적하고 있다.(GC 266.1) 주님의 천사는 말하였다.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곳이니라...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11:2~11).(GC 266.2) 여기에 기록된 “마흔두 달 동안” 혹은 “일천이백육십일”이란 말은,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로마교’의 압박을 받을 기간을 나타낸다. 법왕권이 최상권을 쥐게 된 일천이백육십 년은, 서기 538년에 시작되어 1798년 마치게 된다. 그 때에 ‘프랑스’ 군대가 ‘로마’에 침입하여 법왕을 사로잡았는데, 그는 유배 중에 죽었다.
얼마 후에 새 법왕이 선출되었으나 ‘로마’의 교권(敎權)은, 전과 같은 세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GC 266.3) 교회의 박해는 일천이백육십 년의, 전 기간 계속되지는 않았다. 그분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극렬한 시련의 시기를 단축시키셨다. 구주께서는 교회에 임할 “큰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시면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고 말씀하셨다. 사실상 박해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1798년이 이르기 전에 이미 끝났다.(GC 266.4) “저희가 일천이백육십일을 베옷을 입고 예언하리라.”
그 기간의 대부분에 하나님의 증인은, 모호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법왕권은 진리의 말씀을 백성들로부터 숨기고 그들 앞에, 그 증언과 배치되는 거짓 증인을 세우고자 애를 썼다(부록20 참조). 성경이 종교와 세속의 권세에 의하여 추방되었을 때, 성경의 증거가 곡해되고 사람들과 악마들이, 성경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자 온갖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성경의 거룩한 진리를 대담하게 증거 하는 사람들이 수색당하고, 배신당하고,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거나 깊은 산속과 땅속의 동굴에 도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 충성된 증인들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천이백육십 년의, 전 기간을 통하여 증거 하였다. 그들은 그처럼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다한 충성된 사람들이다. 충성된 그 종들에게는 그 전 기간에 ,하나님의 진리를 선언할 지혜와 능력과 권위가 부여되었다.(GC 267.2)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계11:5).하나님의 말씀을 짓밟는 자들은 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두려운 선고의 의미는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 밝혀져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GC 268.1)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셨거나 명령하신 것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변경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시고자 사람들에게 주신 경고이다. 그 엄숙한 선언은 하나님의 율법을 경시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고 경박하게 말하는 자들은, 그 선고 앞에 떨고 두려워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도 자기 자신의 의견을 높이는 모든 자들, 자기의 편의를 도모하거나 세속과 타협하기 위하여, 성경의 분명한 의미를 변개코자 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는 자들이다. 기록된 말씀, 곧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인류의 품성을 저울질하고, 그 그릇됨이 없는 시험에 의하여 부족함이 드러나는, 모든 자들에게 정죄의 선고를 내리게 될 것이다.(GC 268.2)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 곧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해야 할 시기는 1798년에 마쳤다. 그 두 증인이 비밀리에 그들의 사업을 마쳐 갈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표상된 세력이 그들을 향하여 싸움을 하게 될 것이었다.
‘로마교’는 성경을 존중하노라고 공언하면서,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그것을 가두어 버리고, 숨겨버리는 일을 그들의 방침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로마교’의 지배 아래 그 증인들은 “베옷을 입고”예언하였다. 그런데 이제 또 하나의 다른 세력, 곧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항하여, 공공연하게 싸우고자 일어났다.(GC 269.1) 그 증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그 시체가 거리에 놓여 있는 그 큰 성은 “영적으로” ‘애굽’이었다. 성경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나라 가운데서 ‘애굽’처럼 대담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하고, 그분의 명령을 거역한 나라는 없다.
또한 ’애굽‘의 왕처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노골적이고도 오만한 태도로 반항한 임금은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로’에게 기별을 보냈을 때,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5:2)고 오만하게 말하였다. 그것은 무신론이다. 그러므로 ‘애굽’으로 표상된 나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명령을 부정하는 일에, ‘애굽’과 유사한 말을 하고, ‘애굽’과 마찬가지의 불신과 반역정신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또 “그 큰 성”은 “영적으로” ‘소돔’에 비유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데 있어서의 ‘소돔’의 부패는 특별히 ‘음란’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기록을 성취시킬 나라의 뚜렷한 특성은, 또한 ‘소돔’과 똑같은 죄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GC 269.2) 그러므로 선지자의 말에 의하면, 1798년 조금 전에 어떤 극악한 성격의 세력이 일어나, 성경을 대항하여 싸우게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두 증인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그 나라에서 바로의 ‘무신론’과 ‘소돔’의 음란이 나타날 것이었다.(GC 269.3) 이 예언은 ‘프랑스’의 역사에서 가장 정확하고 현저하게 성취되었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에 “문명국에서 출생하여 교육을 받고, 유럽의 나라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나라를 통치하는 권리를 가진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에서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인 가장 엄숙한 진리를, 이구동성으로 부인하고 만장일치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예배를 부인하는 음성을 세계는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우주의 창조주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반역의 손을 든, 국가로서 믿을 만한 기록을 남긴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프랑스’뿐이다. 영국, 독일, 스페인,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과, 무신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많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의회의 결의로써 무신론을 선언했고, 수도(首都)의 모든 인구와 그 밖의 모든 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그 결의를 수락하고 기쁨으로 노래하며 춤을 춘 유일의 국가로서,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GC 269.4) ‘프랑스’는 특히 ‘소돔’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던 특징을 드러내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옛날의 평원(平原)의 도시들을 멸망시켰던 것과, 똑같은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편만했다. 그리고 역사가는 예언에 기록된 그대로 ‘프랑스’의 무신론과 음란한 상태를 기록해 놓았다.
“종교에 영향을 끼친 법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결혼의 경시[중요한 의식을 가볍게 생각하여] 사람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계약이며 사회의 견고한 기초에,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결혼제도가 당사자 두 사람이, 마음대로 결합하였다가 다시 헤어질 수 있는, 일시적인 성격을 띤 단순한 민간계약으로 전락해 버렸다.... 악마들이 인류의 가정생활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영구적인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해 버리고, 그들이 목적한 해독을 대대로 영속시키고 성취하는 방법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결혼제도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묘한 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여배우 ‘소피 아놀드’(Sophie Arnoult)는, 프랑스의 혁명시대의 결혼을 ‘간음의 예식(禮式)’으로 평하였다”(GC 270.1)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는 예언은 글자 그대로 ‘프랑스’에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적의(敵意)가 이 나라에서보다 더욱 현저히 나타난 나라는 없다. 진리를 이 나라에서보다, 더욱 맹렬하고 잔혹하게 반대한 나라도 없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함으로, ‘프랑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GC 271.1) 성도의 피는 여러 세기에 걸쳐 흘렀다.
‘왈덴스’교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피에몽’ 산에서 그들의 생명을 버렸을 때,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형제인 '알비젠스'(Albigens)들이 진리에 대하여 동일한 증거를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 그 교도들은 참혹한 고문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왕과 귀족들과 상류계급의 부인들과 연약한 처녀들과, 그 나라의 교만한 사람들과 무사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용감한 ’위그노‘ (Huguenot)들은 사람의 양심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싸움을 계속하고, 많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피를 흘렸다.
개신교도들은 법률상 보호에서 제외된 자로 인정되어, 그들의 머리에는 현상금이 붙게 되었고, 그들은 들짐승들처럼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GC 271.2) 고대 그리스도인들 중의 소수의 후예들로서 18세기 당시까지, ‘프랑스’의 남방 산중에 숨어서 거주하고 있던 “광야 교회”는, 여전히 조상들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밤을 틈타서 그들이 산중턱이나 적막한 들에서 몰래 집회를 열고자 할 때, 그들은 갑작스런 용기병(龍騎兵:선수출신 기마병)들의 추격으로 붙잡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예나 죄수들이 노를 저어 다니는 ‘갤리선’(galleys)에서 죽는 날까지 고역을 당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기품 있고 지성적인 사람들은, 강도들과 살인자들 사이에 섞여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쇠사슬에 매여 있게 되었다. 좀 더 자비로운 처분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무장도 없이, 속절없는 형편에서 기도하고자 무릎을 꿇었을 때, 참혹하게 사격을 당하였다. 수백 명의 나이 많은 남자들, 방비 없는 여자들, 천진한 어린이들이 그들의 집회장소에서 살해되어 그대로 내버려졌다. 그들이 평소에 집회를 하던 산 중턱이나 산림 속을 지나갈 때, 시체가 풀밭 사방에 흩어져 있거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는 일은, 별로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나라는, “검과 도끼와 나무(화형에 쓰는 장작)로써 황량하여졌고, 하나의 쓸쓸하고 큰 광야로 바뀌고 말았다.” “이처럼 흉악한 사건은...암흑시대에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찬란한 시대에 자행되었다. 그 당시에 과학은 발달되고 문예가 부흥되고, 궁궐과 수도에 사는 성직자들은 유식하고 말 잘하는 변사들이며, 겸손과 자비의 미덕을 사랑하는 자들로 인정받고 있었다.”(GC 271.3) 죄악의 참혹한 목록 가운데서 가장 암흑한 것, 곧 각 세기를 통하여 자행된 잔인무도한 일 중에서 가장 끔찍스런 만행은 ‘성 바돌로매’ 제일(祭日:예수의 제자 ‘바돌로매’의 순교추념일) 무차별 대학살이다.
세상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 잔인하고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습격의 광경을 공포와 전율로써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왕은 ‘로마교’의 승려와 주교들의 강요로, 그 흉악한 행위를 묵인하였다. 그리하여 사방이 고요한 한밤중의 적막을 깨뜨리고 울려 퍼진, 왕궁의 큰 종소리는 학살에 대한 신호가 되었다. 수천 명의 개신교도들은 왕의 명예를 건 약속만을 신뢰하고, 각자의 집에서 평안히 자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끌려 나가,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였다.(GC 272.1) ‘애굽’의 속박에서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셨던 것처럼, 사단은 무수한 순교자를 내는 무서운 일에 있어서,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학살은 ‘파리’에서 7일간 계속되었는데, 최초의 3일간은 특히 광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그리고 그 일은 왕의 특명에 의하여 ‘파리’ 시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교도들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와 촌락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 일은 연령과 성별을 구별하지 않았다. 천진한 어린아이들과 백발노인도 가리지 않았다. 귀족과 농부, 노인과 청년, 어머니와 아이, 그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살육하였다. ‘프랑스’ 전국에서 학살이 2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국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7만 명이나 죽었다.(GC 272.2)
****** [‘가톨릭’세력이 개신교 ‘위그노’에게 행한 대학살로, 세계적 참살에 대해서, ‘요한 바오로’ 2세가 1997년8월에, 가톨릭의 직접개입에 대한, 공식인정과 사과발표/적그리스도 악의 죄상이 하늘과 땅에 각인되었다.] ******
“학살(虐殺:참혹한 살해의 죽음)의 보도(報道:뉴스)가, ‘로마’에 이르자 성직자들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로렌’의 추기경은 그 사자에게 1천 크라운을 상급으로 주었고, ‘성 안젤로’에서는 축포를 쏘았고 모든 교회의 첨탑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축화(祝火:불꽃광란 놀이)는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법왕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추기경과 중요한 승려들을 데리고, 큰 행렬을 지어 ‘성 루이’의 교당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로렌’의 추기경이 테 데움(Te Deum:사단찬송)을 낭송했다.... 또 이 학살을 기념하는 메달이 주조되었고, ‘바티칸’ 궁전에서는 ‘바사리’(Vasari)의 솜씨로 석 장의 벽화, 곧 제독(提督)을 습격하는 장면, 학살을 음모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왕, 실제로 학살을 하고 있는 장면들이 그려졌다.
‘그레고리우스’ 법왕은 ‘카알’ 황제에게 황금장미를 보냈으며,...그 학살 4개월 후에...그는 한 ‘프랑스’ 신부의 설교를 만족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 신부는 그 학살의 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날에 가장 거룩한 신부(神父)가 무한한 행복과 기쁨으로 보고를 받으며, 그는 위엄을 갖추고 하나님과 ’성 루이‘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나아갔다.’”(GC 272.3) ‘성 바돌로매’ 대학살을 하도록 충동한 바로 그 정신은, ‘프랑스’ 혁명에도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기꾼으로 선언하고, ‘프랑스’의 무신론자들은 소리를 높여 “염치없는 자를 박멸하자”고 부르짖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대담한 모독과 가증한 악이, 서로 손을 맞잡았으며 가장 비루한 인물, 잔인하고 사악하기 더 할 나위 없는 자, 비인도적인 자들이 무한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일에 있어서 사단에게, 최고의 존경이 주어졌다. 그와 반면에 진리와 순결과 이타적 사랑으로 특징지어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GC 273.1)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이리라.”(계11:17) ‘프랑스’ 혁명과 공포시대 동안에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무신론의 세력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대하여 싸움을 벌였는데, 그것은 세계가 일찍이 목격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국회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리고 성경을 모아다가 될 수 있는 대로, 모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공중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 하나님의 율법은 유린당하고, 성경에 명시된 제도들은 폐지되었다. 매주의 휴일은 경시되어 버렸고 그 대신에 10일마다 휴식하되, 그날은 연락[열락]하고 모독적인 일을 하는 데 바쳐졌다. 침례식과 성찬예식은 금지되었고 묘지에는 눈에 띄게, 사망은 영원한 잠이라는 표지가 붙여졌다.(GC 273.2)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과는, 전연 다르게 그것을 어리석음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자유와 국가를 예배하는 일 이외에는, 모든 예배가 금지되었다.
“파리의 한 주교는 국민의 대표들 앞에서 연출한, 가장 건전치 못하고 추잡한 연극의 주역배우로 출연하였다.... 그는 맨 앞에 나와서 회중을 향하여 선언하기를, 자기가 오늘날까지 여러 해 동안 가르쳐 온 것은, 어느 점으로 보든지 한갓 종교적 책략이었고 역사나 거룩한 진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는 정중하고 명백한 어조로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하고,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하여 왔으나, 장래에는 자유와 평등과 도의를 숭배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는 자기가 차고 있는 주교의 장식물들을 떼어서, 책상 위에 놓고 그 회를 주최한 회장과 익살스러운 포옹을 하였다. 또 몇 사람의 배교한 신부들이, 그 주교의 본을 따랐다”(GC 274.1)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계11:10)
무신론의 ‘프랑스’는 하나님의 두 증인의 책망하는 소리를 침묵시켜 버렸다. 진리의 거룩한 말씀은 시체가 되어 그 길거리에 넘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제재와 요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기뻐 날뛰었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하늘의 왕을 모독하였다. 그들은 옛날의 죄인들처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시73:11)고 부르짖었다.(GC 2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