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습니다. 아파트 상가를 돌아서려는데 언제부턴가 자전거 점포가 들어서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전거를 판매하는 곳인지 대여해 주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자전거를 타는 동네 아이들이 부쩍 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가에 가게를 낸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좌판에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것이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는 말이죠. 우리 세대에게 자장면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기억하게 줍니다. 미곡상 구석에 놓여있는 짐발이 (화물용 자전거를 우리 지역에서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자전거는 너무 커서 탈 수 없었지요. 동네 친구가 아버지나 삼촌이 타고 다니는 삼천리표 신사용 자전거라도 끌고 나오면 그는 바로 우상이 되고 맙니다.
빅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도 있지만 그보다도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도 참 좋았습니다. 엊그제 공중파 방송에서 왕샤오수아이 감독의 '북경 자전거'가 나오던데요. 중국인의 심리라고 한들 보편성의 측면에서 보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중국은 어디를 가나 자전거 물결입니다. 저는 한중 수교 이후 방학만 하면 중국의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어느 도시나 일 이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가령, 요즘 북경에는 빵차라고 불리는 미엔띠가 아주 사라졌음) 이 자전거만은 그대로였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자전거를 탄 중국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볼거리예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일터로 나가는 신중국의 여성들, 그 장딴지의 굳은 탄력에 미래의 신중국이 출렁이는 듯 했습니다.
교사 초년병 때 보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예전의 선생님들은 벤또라 불리우는 도시락을 자전거 뒤칸에 묶고 다니셨겠지요. 그게 검정색 보온 도시락으로 바뀌었을 뿐 자전거 출퇴근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어느 대학 총장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잖아요. 그런데 지금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교사는 없습니다. 퇴근주도 없이, 끝나기만 하면 저마다 번쩍거리는 애마를 타고 집으로 내빼버립니다.
하체 단련을 위한 운동 삼아서 일부러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아이들의 주문에 못 이기는 부모들이 자전거를 구매할 것이기 때문에 자전거 산업도 호황을 누리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앞에 늘어선 저 많은 자전거들은 뭐야?
어느 족벌 신문사가 경품으로 자전거를 내걸고 신문 구독자 호객 행위를 하는 중이라나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자전거라면 꽤나 비쌀 텐데, 경품으로는 어울릴 것 같지가 않은데, 상식적인 산술로 따져봐도 그리 만만한 교환 가치는 아닐 듯 싶은데, 글쎄, 이게 이런 식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지 뭡니까. 배보다 배꼽이 큰 건지 따져봤더니, 이놈의 배는 필적한 상대가 없을 정도로 큰 배였습니다. 그 어떤 배꼽으로 지원해서라도 구독률을 올리겠다는 '돌격 앞으로' 정신이 아니고 뭡니까. 이어구, 징그러워라. 생각하기도 싫어요.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그다지 실적을 올리지 못했답니다. 그것도 의식이라고 해야 하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조폭 언론이라는 소리를 듣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놈의 조폭 언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안띠** 이런 세력들은 덜떨어진 무뇌아처럼 취급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확고한 동선을 갖고 움직이는 이들의 운동은 무식한 짓거리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보고 싶은 것 보고 쓰고 싶은 것 쓰는데, 자유롭게 무슨 말이든지 하고 살아야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강요하고 사는 엄숙주의란 시대 착오적인 따라지들이다, 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사는데 무슨 참견이야, 하면서 얼굴을 돌리더니 퉤 하고 침까지 뱉습니다.
얼굴에 달라붙은 침을 닦고 올려다 본 가을 하늘에, 조,중,동,조,중,동,조,중,동,조,중,동,조,종,동, 하는 종이 쪼가리들이 악다구니를 지르며 흩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