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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예술가 밸런싱 아티스트 邊南錫
“重力 이용한 물체 쌓기 덕분에 두바이 왕자 초청받았다”
⊙ 돌멩이, 냉장고, 자전거, 노트북 등의 물체를 모서리나 귀퉁이로 세워 동적이면서 아름다운 조형미 연출
⊙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의 방송 프로에 출연하던 기인(奇人)에서 설치미술가로 변신
⊙ 세계적인 사진작가들과 그룹전도 갖고 UAE 왕족 초청으로 7박8일 동안 두바이 몰에서 공연하기도
邊南錫
⊙ 50세. 경희대 체육학과 졸업.
⊙ 현재 설치미술가로 활동중.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변남석(邊南錫)씨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스키에서부터 스노보드, 인라인스케이트, 웨이크보드까지 못하는 스포츠가 없다. 실력도 프로급이다. 그가 즐기는 스포츠 종목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는 “중력(重力)의 원리를 이용하면 누구든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한다.
중력은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와 있듯 ‘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변남석씨는 이 힘의 원리를 뉴턴만큼이나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 그 덕분에 스포츠를 넘어 예술의 세계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중력을 이용해 기묘하게 쌓은 물체가 뜻밖에도 뛰어난 조형미를 띠어 설치미술가로 거듭난 것이다.
변씨는 돌멩이, 냉장고, 자전거, 노트북 등 우리 주변에 흔한 물체를 모서리나 귀퉁이로 세워 동적이면서
아름다운 조형미를 연출한다. 그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물체는 뭐든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물체가 서 있는 장면이 예술이라면 물체를 세우고 쌓는 과정은 마술에 가깝다. 그는 작은 돌멩이 위에 부정형의 바위를 끝이 뾰족한 모서리로 세우는가 하면 볼링공처럼 표면이 둥글고 미끄러운 물체를 탑을 쌓듯 높다랗게 쌓는다. 이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물체와 물체가 맞닿은 부분에 본드 같은 접착제가 발라져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체에는 무게중심이 있습니다. 이 중심이 수직으로 만나 정확하게 일치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서게 되죠. 무게중심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곧바로 무너집니다. 중력을 이용한 것이라 일반적으로 삼각형 형태로 쌓아올린 탑과 달리 어느 하나만 무게중심을 잃어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죠. 제일 꼭대기 작은 돌 하나를 들어내도 전체가 무너집니다.”
변씨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촬영해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돌 쌓기 동영상은 상당한 조회 건수를 기록했다. 덕분에 아랍 왕자의 초청으로 두바이도 다녀오고, 서울시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또한 국내 유명 사진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룹전에도 참가했다. 그가 직접 카메라에 담은 설치 작품은 이제 예술품으로 인정받아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개척한 이 분야 예술가를 ‘밸런싱 아티스트’라 이름 붙였다. 그의 작업은 물론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은 ‘석기시대 예술’ 혹은 ‘탱이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탱이’는 ‘돌’을 지칭하는 제주 지역 방언 ‘돌탱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돌 쌓기 작업 덕분에 스포츠맨에서 아티스트로 변신한 변남석씨의 흥미진진한 인생역정을 들었다.
체육 전공한 만능 스포츠맨
변남석씨의 고향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이다. 그는 고려대 뒤편에 있는 개운산에서 봄이면 아까시나무 꽃을 따먹고,
겨울이면 참새 잡으러 다니며 들짐승처럼 자랐다고 한다.
“1960~70년대 서울 보문동은 도시라기보다 시골이었어요.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이고 들이었죠. 자연의 정기를 받고 자라서 그런지 저는 지금도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스노보드나 웨이크보드 등의 레포츠를 즐기는 이유도 대자연과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지요.”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변씨는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후 서울의 한 종합스포츠센터에 관리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곳에서 10년쯤 근무하다 독립해 경기도 분당에 495㎡(150평) 규모의 실내 스키장을 열었다. 성수기인 겨울이면 스키와 스노보드를 가르치고, 비수기인 봄, 여름, 가을에는 학교체육 강습을 하는 등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꽤 안정적으로 사업체를 꾸려나갔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비롯해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인라인스케이트 등 철마다 다른 레포츠를 개인적으로 즐길 여유마저 생겼다. 그런 변씨가 돌 쌓기에 취미를 붙인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고 한다.
“2003년 여름 북한강에 웨이크보드를 타러 갔다가 혼자서 춘천에 있는 등선폭포에 들렀어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폭포 주변에 보니 돌멩이가 지천이더군요. 심심풀이로 기다란 돌 하나를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얹었어요. 그러곤 카메라에 담아 집으로 왔는데, 저녁에 사진을 보니 놀랍게도 사진 속에 한 여인이 석양을 등진 채 다소곳이 서 있는 거예요. 무심코 얹은 두 개의 돌멩이가 완벽한 여인의 형상을 자아낸 거죠.”
그는 운명처럼 가슴에 박힌 이 ‘여인’이 밤사이 거친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까, 폭우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그러곤 날이 새자마자 등선폭포로 달려가 ‘여인’이 무사한 걸 보고서야 안도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중심 잡기 연습에 몰입했다. 길거리에 있는 돌을 모아 집으로 가져온 후 쌓고 또 쌓는 연습을 했다. 다양한 스포츠 활동으로 체득한 능력 덕분인지 돌 쌓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돌의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 이렇게 저렇게 쌓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인천의 을왕리 바닷가를 찾아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한적한 바닷가에서 그는 파도가 조각해 놓은 아름다운 돌밭을 발견했다. 그날 부로 이 돌밭은 자연이 선사한 그의 작업장이 되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바닷가를 찾아가 돌 쌓기 작업을 했다. 바람이나 태풍에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쌓고 또 쌓았다.
“자연이 선사한 작업장에서 자연이 빚어놓은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지요. 수많은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한 작품이 많았지만 바람과 파도가 앗아가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게 자연의 순리니까요.”
UAE에서 날아든 초대장
그의 작업은 자연을 해치거나 훼손하지 않고 이뤄진다. 일반 조각가들처럼 돌을 특정 장소로 옮기지도 깎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을 ‘생태 예술’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춘천의 폭포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을왕리 바닷가를 거쳐 남한산성 계곡과 분당 탄천 등으로 점점 영역이 다양해지고 확대됐다. 늘 혼자 작업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 후 카메라에 담아 ‘신기한 돌들’이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이 블로그를 봤는지 어느 날 KBS 한 오락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가는 “특이한 현상이나 사람을 찾아 방송에 소개한 후 반응이 좋으면 상금 100만원을 주는 프로그램인데 출연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못 할 것도 없다’ 싶어 출연하기로 했고, 남한산성 계곡과 을왕리 바닷가 등에서 촬영을 했다. 방송 결과 시청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상금 100만원은 그의 몫이 되었다. 이후 그는 SBS의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 주로 기인(奇人)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게 인연이 돼 지난해에는 유튜브 전용으로 제작한 서울시 홍보 영상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 동영상은 그가 서울시 주요 문화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장소에 어울리는 소재를 이용해 작업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다원(茶園)에서는 도자기 찻잔 위에 주전자를 주둥이로 세우고, 남산 한옥마을에서는 통나무 위에 가야금을 귀퉁이로 세우며, 서울의 명물 찜질방에서는 구운 달걀 위에 항아리를 세우는 식이다.
“서울시에서는 이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기인 200명을 모집했다고 해요. 그중 100명을 뽑고, 다시 10명을 선출한 후 최종 1명으로 제가 선택된 것이랍니다. 서울시 얼굴로 뽑힌 셈이니 저야 영광이었죠.”
그렇게 제작한 동영상이 유튜브에 오른 지 1년여쯤 되었을 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사는 한 아랍인으로부터 영어로 된 이메일이 한 통 날아들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그는 처음에는 그냥 스팸메일로 알고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뜨자 그때야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대충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파악됐다.
“이메일은 올해 3월부터 오기 시작했어요. 같은 메일이 반복적으로 와서 하루는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도록 했습니다. ‘두바이 왕자인데 당신이 출연한 동영상을 봤다.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비즈니스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두바이 쪽에서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가 ‘왕자의 초청을 받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하며 단념할 즈음 이번에는 항공우편이 날아들었다. 우편물 속에는 인천-UAE 왕복 항공권과 UAE 5성급 호텔 스위트룸 7박8일 숙박권이 각각 두 장씩 들어 있었다. 아랍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동시통역사와 동행하라는 메모가 함께 있었다.
두바이에서 초특급 대접받아
지난 5월 초 UAE 두바이 왕자 셰이크 함단 빈 모하메드 알 막툼 초청으로 7박8일 동안 두바이를 방문했다.
그 기념으로 돛단배 모양의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작업했다.
지난 5월 그는 아랍어 통역사와 함께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바이 왕자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초청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7박8일 동안 놀다 오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고 한다.
“제 작업 과정을 보고 연락해 온 것이라 최소한 현지에서 작업을 하게 될 것이란 것은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두바이에 작업할 만한 소재가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70kg에 이르는 돌을 자루에 담아 챙겨갔는데, 입국장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았습니다. 수하물의 무게가 규정보다 많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가 당황한 것에 비해 통역사는 차분했다. 통역사는 조사관에게 “이 사람은 두바이 왕자의 초청으로 공연을 하기 위해 왔고, 자루 속에 든 돌은 공연 소재다”라고 설명했다. 그러곤 왕자의 측근이 알려준 전화번호를 내밀자 재빠르게 확인해 보더니 정중하게 사과까지 하면서 입국장을 통과시켜 주었다.
숙소는 주메이라 비치 호텔. 창문을 열면 돛단배 모양의 7성급 호텔 버즈 알아랍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황금빛으로 치장된 스위트룸은 아랍의 궁전 같았다. 마중을 나온 왕자의 측근은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다. 어디든 어떤 시설을 이용하든 룸 넘버만 대면 자동결제가 되도록 조치했으니 아무 생각 말고 편안하게 쉬었다 가라.”고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부르즈 칼리파(버즈 두바이) 빌딩에 있는 두바이 몰로 갔습니다. 세계 최고(最高) 빌딩에 세계 최대(最大) 쇼핑몰이라 하더니 정말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더군요. 그곳 몰에서 작업할 공간을 물색하고 있는데, 다국적 여자 세 명이 책임자라며 달려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자 1명, 남아공 여자 1명, 현지인 여자 1명이었어요. 이 여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사전 약속 없이 몰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통역이 “왕자가 이곳에서 공연하길 원한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무조건 “안 된다”며 “왕자로부터 인증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통역은 또다시 왕자의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몰 책임자들을 바꿔주었다. 그때야 비로소 허락이 떨어졌다.
승강이한 시간까지 합쳐도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연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밖으로 나오니 몰 여기저기에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쇼핑몰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포스터 속 인물이 내가 맞나 싶었죠.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에 제작해 붙였을까 신기해하면서 포스터를 들여다보니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토대로 만든 것 같더군요. 두바이 왕자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분수 쇼 마다하고 그의 쇼에 관객 몰려
그의 주요 작업장은 경기도 분당의 탄천이다.
물 위로 돌을 쌓으면 그림자가 비쳐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공연 장소와 홍보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고 나니 무엇으로 작업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화려한 쇼핑몰이라 돌은 어울리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데, 이를 눈치챈 왕자의 측근이 “쇼핑몰 곳곳을 다니면서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라”고 일러 주었다. 쇼핑몰 내에 있는 어떤 물건이든 고르면 작품 소재로 사용하도록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쇼핑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산 냉장고, 세탁기, 노트북 등의 가전제품이 많더군요. 이왕이면 우리 제품으로 하자 싶어 그것들로 골랐죠.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자 또다시 몰 책임자가 다가와 “이곳은 이슬람 국가여서 1시간마다 기도하게 돼 있다”며 기도하는 동안에는 작업을 멈춰줄 것을 부탁했다. 더불어 저녁 6시 이후에는 30분 간격으로 건물 25층 규모의 세계 최대 음악 분수 쇼가 펼쳐져 관객을 뺏길 수 있다는 걱정까지 해주었다.
그는 분수 쇼를 의식하지 않고 쇼핑몰 내 제품을 이용해 12개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저기서 “저걸 어떻게 붙였느냐”는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분수 쇼 대신 그의 공연을 선택한 것이다.
“일주일 동안 원 없이 작업하고 원 없이 놀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를 초청한 셰이크 함단 모하메드 알 막툼 왕자를 직접 뵈지 못한 점이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페르시아 UAE 간 정상회의가 있어서 거기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워 면접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왕자의 측근이 저의 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여줄 거라고 하더군요.”
모든 일정을 마치자 왕자의 측근이 개런티라며 1만 달러(당시 한화 약 1300만원)가 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일주일 동안 최고의 대접을 받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그가 “비즈니스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고 개런티까지 챙겨준 것이다. 그는 두바이 왕자의 초청을 통해 새삼 자신이 하는 작업의 가치를 확인하게 되었다.
디스커버리 채널과 출연 협의 중
몇 년 전부터 그는 실내 스키장을 후배에게 임대하고 돌 쌓기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요즘 그의 주요 작업장은 경기도 분당의 탄천이다. 이곳에서 그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가슴 설레며 작업한다고 한다.
“제 작품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무너집니다. 새 한 마리가 앉았다 날아가도 쓰러지고 말죠. 그 때문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런 날이면 오히려 작업할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어느 날 비가 많이 와서 작품이 물살에 휩쓸릴 것을 우려해 징검다리에 설치했는데, 거친 물살을 배경으로 서 있으니까 더 멋있고 환상적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눈이 오는 날 작업하면 어떨까, 물이 많이 튀는 곳에 작업하면 어떨까, 그 결과가 궁금해 끝없이 도전하게 됐지요.”
그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작업한다. 계곡에서 작업할 때는 기암절벽이나 산의 형세와 조화를 이루도록 돌을 쌓고, 바다에서 작업할 때는 인근의 섬과 파도와 잘 어울리도록 작업을 한다. 작품을 멋지게 담아 놓으려 사진학과 교수인 친구를 통해 공부도 했다. 타고난 조형 감각 덕분인지 친구는 그의 사진을 보고 “너 사진 참 좋다”며 유명 사진작가들의 그룹전에 끼워 주었다.
“굉장히 유명한 분들과 함께 전시회를 했는데, 그분들이 저보고 ‘사진은 테크닉보다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한데, 변 선생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며 부러워하데요.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김아타 선생처럼 유명해질 수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는 설치미술가이면서 동시에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용 무대에도 진출했다.
“지난여름 두 달 정도 스프링 댄스시어터 현대무용팀과 연습해서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 극장에서 무용 공연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도전해 보니 무용 역시 즐거운 작업이더군요. 자연의 일부인 신체를 표현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당 탄천에 ‘탱이 길’ 조성하는 게 꿈
그는 탄천에 수없이 많은 돌을 쌓아 이곳을 올레길과 같은 ‘탱이 길’ 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의 밸런싱 아트는 국내 방송은 물론 일본과 브라질 등 해외 방송에도 자주 소개됐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인 디스커버리 채널이 그의 작업 영상을 사용하고 싶다고 제안해 구체적인 협정서가 오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독특한 작업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기회가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떻게 하면 선생처럼 돌을 세울 수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다시 세우는 끈기와 집중력,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만 있으면 누구든 세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분당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밸런싱 아트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실습용으로 달걀을 준비해 모두에게 세워보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이것저것 본 것이 많아 ‘그건 선생님처럼 특별한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더군요. 반면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순수해서 그런지 달걀을 세우려 열심히 노력하더니 끝내 세우더라고요. 결국 이것을 본 고학년 아이들도 힘을 얻어 도전하게 됐고,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지요.”
변남석씨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탄천에 나가 돌 쌓기 작업을 한다. 완성된 작품은 재미삼아 던진 아이들의 돌에 맞아 매번 무너져 내리곤 한다. 그래도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작업하는 즐거움과 완성한 작품을 보는 기쁨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언젠가는 탄천을 제주의 올레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처럼 ‘탱이 길’로 조성하는 것이 꿈”이라며 웃었다.
(2021년 2월호 월간조선) / 글·사진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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