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직접적인 불이익이 있거나 반민주적인 행태의 피해자가 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사회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세상 조용히 사는 게 편하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진 일이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뚜렷한 사회의식과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 참 많다. 나의 회원기자 첫 인터뷰에 주인공이 되어준 Paladin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있던 2008년 봄. 시민들의 분노가 촛불로 하나둘 다시 피어오르던 그때 경찰들의 협박과 거센 물대포에 맞섰던 사람. 조현오 구속수사 촉구 1인시위와 반값등록금 집회, 검찰의 한명숙 전 총리 기소 등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상식을 지킨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참 고된 일이죠. 집회에 자주 참여하다보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어려움이 많을 텐데요.
“이명박 정권 들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통제와 억압이잖아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시위도 철저한 감시대상이죠. 평생 경찰서나 검찰청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을 별의별 구실을 만들어 구속하려듭니다. 집회에 참여하다보면 경찰이나 검찰이 어이없는 범죄 혐의를 가장해 벌금형을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경제사정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벌금형도 엄청난 부담입니다. 그걸 노리는 거죠.
▲ 2009년 12월 14일 ‘한명숙 전 총리 정치공작분쇄 및 정치검찰개혁 규탄대회’ 현장.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는 결국 ‘무죄’였다.
보수단체들의 훼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님의 재판이 있는 날이면 대법원 인근에서 보수단체의 시위가 시끄러웠습니다. 충돌일보직전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죠. 그럴 때면 경찰은 보수단체가 아닌 우리 측을 채증(採證)합니다. 추측컨대 아마 제 얼굴도 많이 찍혔을 걸요.”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 노 대통령 때와 똑 같아”
- ‘사람사는 세상’ 외에도 여러 진보 모임과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음카페 <한명숙을 지키자>(이하 ‘한지’)의 카페지기이기도 하시죠.
“한지카페를 만든 건 소중한 분을 잃은 아픈 기억 때문이에요. 노무현 대통령님의 운구가 올라오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당시 직장이 울산이라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천안 부근 고속도로에서 수없이 많은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서울 쪽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제야 비로소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더군요. 내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왜 저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셔야 했는지 생각나 가슴이 너무 저려왔습니다.”
- 2009년 12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으로 5만 불을 받았다며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기소하는 일이 벌어졌죠. 명확한 증거도 없이 피의사실을 마치 확정된 범죄사실처럼 흘리면서 언론재판을 해댔잖아요.
“위기감을 느꼈어요. 노무현 대통령님 때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대통령님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기억,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어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모든 게 무너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엄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한지카페에 참여하게 되었죠.”
▲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는 역시 1년 6개월 만에 무죄 판결되었다.
- 1백여 명에 불과했던 카페 회원 수가 7월말 현재 9천여 명을 넘어섰다면서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죠. 운영진과 회원들이 애를 많이 썼다고 들었습니다.
“한 총리님이 겪으셔야 했던 말도 안 되는 검찰의 횡포를 세상에 알리는 게 급선무였어요. 온오프라인을 통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무죄’였죠.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한 총리님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어요. 사람들은 무죄의 결과보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를 더 많이 기억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쳤죠. 선거철만 되면 북풍 관련 사건이 꼭 터지는데 그 당시에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금방 전쟁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어요. 한 총리님은 검찰과도 싸워야 했고, 선거에서는 오세훈, 국가적 차원에서는 천안함이라는 사건을 들고 나온 정권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 선거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죠. 당시 서울시장 선거는 그야말로 박빙이었잖습니까.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오세훈 후보에게 10% 이상을 뒤졌지만 선거당일 투표 결과 발표에서는 자정까지도 한 전 총리가 앞섰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새벽녘 강남 3구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0.6% 차이로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제 생에서 ‘분하다’라는 단어가 그때만큼 실감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졌구나. 정말 진다는 것이 그때만큼 분한적은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분해서 며칠 동안 잠이 오질 않더군요.”
카페 운영의 묘는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
-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어도 저마다 개성이 있고, 의견 충돌이 있거나 어려운 점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카페지기나 운영자는 회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일 거예요. 강한 적 앞이나 난관이 있을 때는 힘을 합하게 되지만, 방법론적인 부분, 또는 인간관계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조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회참여를 하는 시민이라면 그 의지가 주변사람에 비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소신이랄까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강하세요.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가 함께 힘을 합하게 될 때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면에 인간관계가 아예 깨지는 경우도 숱하게 보았습니다.”
-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의견을 포용하면서 카페의 방향성에 맞는 활동도 이끌어야 하고요.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카리스마 있는 리더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정의를 제일의 대의명분으로 삼기에 한사람의 독단적 리더십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그 부분이 이 활동에 있어 가장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다 아시다시피 최근에 우리는 총선에서 패배를 했습니다. 그 후로 카페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지더군요.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만큼 모두들 간절히 바라던 승리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비판 중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은 총선 와중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분들의 주장 상당수가 독단적이고 독재적인 리더십과 거의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러한 리더십은 환영받질 못합니다. 지금 상대편을 바라보시면 답이 나오지요. 거의 사당화 되어가는 새누리당을 보시면 그게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제1당이라는 것이 믿겨 지시나요?”
-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보람 있는 일도 많죠. 전국 각지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기쁨이랄까요. 시민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이들이 손을 맞잡으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거. 서로 만난 적 없고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지만, 마치 오랜 인연을 만난 것처럼 허물없이 가까워지게 되었을 때, 그때만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팔라딘(Paladin)은 로마시대의 왕궁수비대 ‘팔라티누스’(palatinus, garde du palais)에서 유래한 말로 흔히 신성 로마황제였던 샤를마뉴 대제의 지혜롭고 용맹스런 12 기사를 일컫는다.
Paladin님도 샤를마뉴의 팔라딘 같은 면모를 가졌다. 요즘 이슈가 되는 영화 주인공 배트맨에 빗대자면 ‘무너져가는 MB시티의 다크 나이트’로 불러도 좋겠다. 다른 사람에 비해 체격은 작지만 단단한 가치관과 의지로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노력한다.
“저의 장애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리된 부분입니다. 극복할 수 있는 외과적, 약물적인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 시도를 했겠지만, 20대 후반 이후로는 그런 물리적인 노력보다 제 자신의 내면적 극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저에 대한 시선을 피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저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극복하는 중입니다. 현재 진행형이랍니다.”
“한국 근현대사는 노무현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 Paladin님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분입니까.
“저에게 노무현 대통령님은 수평적 리더십을 지닌 가장 위대한 민주시민입니다. 저는 세계사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실패를 겪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러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노무현 대통령님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그분은 제게 있어 롤모델인 분입니다.”
- 대통령님에 대해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요.
“탄핵을 당하셨을 때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뭐하냐고, 나라가 뒤집어졌다는 거예요. 댓바람에 서울로 올라갔죠. 사람이 그렇게 많이 와있는 줄 몰랐습니다. 친구 손에 이끌려갔는데 거기가 아마 교보문고 출입구 계단 부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2년 미선과 효순 양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을 당했을 때 이후 2번째로 갔던 촛불집회였습니다. 그때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탄핵 당시에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나온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그 눈빛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 앞으로 계획, 꿈이 무엇인가요?
“대의적인 목적과 개인적인 소망이 있는데요. 전자는 우리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그리고 99%의 국민을 위한 진짜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목적을 이뤄가는 와중에 시민이 참여하는 활동과 연대 즉, 단체 간의 네트워크가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우리 쪽에는 수없이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중복되어 가입해 있는 분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각자의 특성을 살려 단체 고유의 목적에 맞는 부분들은 독자적으로 수행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목적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에서는 연대가 강화되어서 더 큰일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보편지향적인 사회가 반드시 오겠지요.”
* ‘잊혀진386’님은 2008년 알콜중독자를 위한 쉼터를, 2009년부터는 안산 지역의 어려운 노인들과 차상위 가정을 위한 무료급식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매주 ‘노무현광장’에 ‘사람세상 무료급식 일기’를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