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는 장애가 없다…희망을 키워라”
한맥도시개발 류시문 회장, 절망 속에서 피어낸 ‘빛나는 나눔’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그의 사무실은 어둠침침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2개짜리 형광등마다 등 1개씩이 빠져 있었다. “절약하기 위해서”라며 사람 좋게 웃어 보인 그가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회원 2호다.
외투를 25년째 입는 사람, 점심때 3000원짜리 구내식당을 고집하는 사람, 가족 외식 때도 칼국수나 보리밥을 선택했던 사람.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회장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30억 원 이상의 기부를 실천하며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는 류 회장에게는 ‘근검절약’과 ‘나눔’의 유전자가 흐른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경북 예천 고향 마을 뒷산 무덤에 갔다가 왼쪽 다리를 다치면서 장애를 입게 된 그의 삶은,‘가난’과 ‘꿈’, ‘절약’그리고 ‘나눔’으로 나뉘는 4부작 감동 드라마다.
다리를 다친 류 회장은 설상가상으로 영양실조로 귀마저 멀게 하는 중복장애인이 된다. 여기에 가난의 굴레는 어린 소년에게 꿈마저 꿀 수 없도록 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것이다. “배가 고파 부엌의 솥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비워있었다”는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절망한 그는 뒷산 눈 덮인 계곡에서 가늘고 비틀어진 다리를 만지면서 목 놓아 울며 기도했다.
가난의 굴레와 중복장애 딛고 자수성가
“‘학교에 보내달라’는 설움과 애원이 담긴 기도가 부모님을 설득시켜 중학교 진학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이튿날 다시 그 계곡을 찾아 가보니 소백산맥 자락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그 무지개를 보면서‘나는 장애인으로서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류 회장이 기부를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어린 소년의 약속과 결심은 평생 그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두 번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가난이 원인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바로 밑의 남동생도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가난한 집 형편으로는 두형제가 모두 진학할 수 없는 처지였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동생에게 양보를 어렵게 요청하자 동생은 펄쩍 뛰었지만 형의 장애를 안타까워한 동생이 양보를 했다. 그런데 당시의 양보가 나의 한 평생 죄업이 될 줄 몰랐다. 고된 농사일에 지친 동생은 서울로 올라와 점원생활을 했다. 그러다 안국동 로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까지 1급 장애인으로 방에만 누워 있다.”
▲ 류시문 회장의 삶은 가난과 꿈, 절약과 나눔으로 이루어진 4부작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동생을 옆에서 간호하면서 류 회장이 느낀 회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생활이 어려운 가정의 중증장애인이나 고령자들의 평생 돌봄은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또 결심했다. “장애인이나 노인의 문제를 가정에서 끌어내어 사회화 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굳어진 것이다.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더 많은 행복’을 찾아주는 일을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게 됐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는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인 나눔 활동에 들어간다.
기부하고 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두 곳만 소개해 달라.
“사회복지사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한맥사회복지대상’을 제정, 매년 상금으로 2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도 도와주고 있다.” 류 회장의 나눔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장애인소리예술 단 총재,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이사, 류관순 열사 기념사업회부회장, 한국명곡진흥협회 이사장,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장애인, 노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나눔 활동에 앞장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문화에도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대구에 있는 ‘로얄 오페라단’을 지원할 때 장애인과 다문화가족 등 취약계층의 무료관람을 요청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준 것에 너무도 감사했다. 오페라공연에 무료 관람은 쉽지 않은 일인데…. 약속을 실천하는 오페라단을 보고 믿음이 간 기억이 있다. 문화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 다문화가족과 함께 관람을 하는데 그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 “시도 때도 없이 손 벌리는 사람 많다”
혹시 그동안 기부를 하면서 서운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상황은 없었나.
▲ 류시문 회장은 외아들인 원정씨에게‘부와 가난에 대한 경계’를 자주 들려주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교육관은‘사람을 서로 사랑하자’는 철학으로 이어져 나눔활동의 배경이 되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한번 기부를 받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재산은 금고에 쌓아놓고 여기저기 기부를 알선해서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 ‘정부 발주공사를 수주해주겠다’ 며 기부를 강요하는 사람 등 온갖 형태의 사람이 많다. 이들은 대개 권력 지향적이며 예의범절은 물론 일상의 교양마저 내팽개친 속물들이다. 언젠가는 이들의 행태를 책으로 펴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 그래서일까. 류 회장은 처음에는 소리 소문 없이 나눔을 실천 해왔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통해 그의 기부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하자“한 없이 부끄럽고 자랑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회장께서는 우리나라 기부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8년 모금한 2500억 원을 분류해 보면 법인기부와 개인기부 비율이 7대3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법인기부는 회사대표 또는 대주주가 개인재산이 아니라 다른 주주의 이익까지 포함해서 기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부도 필요하지만‘누리고 있는 자’의 개인기부가 미미하다는 것이 아쉽다. 로마의 천년 역사가 ‘혜택을 받는 자들의 책임’,‘ 특권층의 솔선수범’이 깃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면,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아너 소사이어티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2호
▲ 류 회장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제도가 사회지도층 기부문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류 회장은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제 운영은 사회지도층의 기부문화정착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2호인 류 회장의 자긍심이다. 이 모임은 1월 28일 사회복지공동모금에서 ‘나눔과 감사의 날’행사를 열어 ‘더 밝은 사회를 위한 회원 선언’을 하기도 했다. 나눔의 가치 창조, 재능 나눔 운동 참여, 나눔의 생활화 등으로 한국적 나눔 문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다.
아버지의 이 같은‘나눔 유전자’는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류 회장의 외아들인 원정씨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아버지 뜻에 따르고 있다. 류원정씨가 지난해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주최한 ‘위기극복 희망에세이 공모전’에 낸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유일한 아들임을 아버지에게 애써 이야기 한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크고 소중한 인간애가 가장 값진 재산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의 개인적인 이기에 의한 삶이 아닌 이 사회의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야말로 아버지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유산이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역사 발전의 동력은 나눔 문화의 실천’이라고 믿는 아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자녀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삶의 자세 또는 가정교육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 자신이 가난하게 성장해서 그런지 탐욕이 가져오는 정신적 해약을 무척 경계하고 있다. ‘살찐 탐욕보다는 배고픈 이성’을 자식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의 연설문 가운데 ‘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라. 오직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만큼만 나의 것이다. 빈곤을 수치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직 가난을 면하려는 노력이 적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라’는 ‘부와 가난에 대한 경계’를 자주 들려주고 있다.”
꿈이나 소망이 많을 텐데 무엇인가.
▲ 류 회장이 어린시절, 중학교에 가고 싶어 목놓아 울며 기도하던 마을 뒷산 계곡을 그랜드힐튼호텔 번하드 브렌더 사장, 이영기 계명대 예술대학장과 다시 찾았다.
“지난해 10월 창업한 ‘한맥네트워크’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 장애인을 비롯한 고령자, 다문화가정,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주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이 취약하지만 ‘한맥네트워크’는 정부의 지원 없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업이 되도록 하겠다. 이것을 모태로 주거시설, 병원, 학교 등이 어우러진 종합복지타운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독일의 베텔처럼 말이다.”
한맥도시개발이 건축물, 터널, 교량 등의 안전성을 진단하고 보수보강을 하는 회사로 연 매출이 50억원 가량 되는 모기업이라면 ‘한맥네트워크’는 류 회장의 애정이 듬뿍 담긴 사회적 기업이다. 직원의 50% 이상을 취약계층으로 고용하고, 수익금의 2/3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공익적 가치를 지닌 인테리어 회사다.
‘부와 가난의 경계’일깨운 자녀 교육
회장의 삶에는 역경을 극복하는 도전, 나눔의 지혜를 아는 감동이 두루 녹아있다. 그래서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많을 텐데….
“가난은 신의 저주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장애인은 신이 실패해서 만든 작품이 아니다. 지난날도 또 앞으로도 우리 앞에 영원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일 것이다. 사람을 서로 사랑하자.”
지난해 12월 12일 방영된 KBS 1TV ‘대한민국은 한 가족입니다’ 프로그램 중 ‘행복한 유산’편 주인공으로 류 회장이 등장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의 방송내용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류 회장 같은 분이 있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한다. 이 시대 춥고 배고픈 우리의 이웃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류 회장 같은 분이야 말로 대한민국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분이다’ ‘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나보다 더 약한 자의 편에 서서 힘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유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더 큰 유산을 받았다는 아드님의 말씀, 이런 걸 부전자전이라고 하나’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는 한 종사자도 “중복장애를 가졌지만, 너무 멋지게 삶을 가꾸어 오신 아주 큰 분을 만났다. 건실한 중소기업의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계셨고 사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런 아버지가 서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기는 더 큰 유산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도 참 존경스러웠다”며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나보다 이웃향한 나눔 바이러스에 ‘감동’
▲ 한 행사장에서 부인, 아들과 함께한 류시문 회장. 아들 원정씨는 아버지의 노블레스 오 블리주 정신이야말로 가장 큰 유산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작고한 유한양행 ‘유일한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뉴질랜드 교포의 소감문도 있었다. 류 회장은 방송을 보고 논산훈련소장 등 여러 사람이‘감동을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류 회장의 나눔 바이러스는 이렇게 널리널리 퍼지고 있었다.
류 회장은 “내가 장애인 아니냐? 그렇지만, 내가 가진 꿈에는 장애가 없었다. 지금 나한테 가장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가진 꿈에 날짜를 적어놓으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충고했다. 절망 끝에서도 꿈을 키우고, 또 그 꿈을 실천하고 있는 류 회장의 나눔 철학이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출처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