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뒷모습
권혁수
올해 광주 비엔날레를 알리는 신문 보도기사 사진은 레바논계 프랑스 작가 푸아드 엘쿠리(60)의 출품작 ‘아틀란티스 2012’의 한 장면으로, 아라비아계 남자와 소년이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영상이다.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화면에는 파도만 넘실거리는 막막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들은 그런 현실의 2012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보도사진을 보고 나는 어느 시인들의 모임에서 한 시인이 천경자 화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났다. 천 화백을 만나는 사람은 세 번 놀란다고 했다던가. 우선 천 화백의 늘씬하고 세련된 뒷모습에 놀라고, 얼굴을 보고 놀라고, 그 여자가 천경자라는 사실에 놀란다는 것이다.
오래전 춘천에서 살던 시절, 어느 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 필자는 춘천에 있는 난정(蘭亭)이라는 서루(書樓)에서 붓글씨를 쓰던 한 여고생으로부터 ‘아침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노라’ 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등굣길이었다고 한다. 여고생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수령 100년쯤 되는 목백합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는데, 그 푸른 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학우의 뒷모습이 어찌나 싱싱하고 아름답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는 이야기였다.
“목백합 푸른 나뭇잎처럼 햇빛을 받아 긴 머릿결이 눈부시게 찰랑거리는 거예요…… 그 아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래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겠구나!” 라고 나도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여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청에 근무한다는 한 젊은 공무원이 불쑥 자신도 ‘오늘 아침에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노라’고 한마디 꺼내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백일 전에 첫아들을 보았는데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는 자기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부끄러운 듯 살짝 뒤돌아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 어찌나 그림 같던지 ‘어서 빨리 글씨를 쓰고 집으로 가봐야겠다’며 싱글벙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붓글씨 쓰는 뒷모습 역시 다정하고 훈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기분 좋게 서루에서 나와 약속 장소인 대폿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그 대폿집에서도 <뒷모습>에 대한 담론이 벌어졌다. 그날의 담론은 나의 선배 문인이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료 국어교사 한 분이 청마 유치환 선생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가 경주여고에 재직했을 때 교장인 청마 선생이 회식자리에서 들려주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청마 선생은 이따금 대구 인근 방직공장에 교양 강연을 나갔다고 했다. 방직공장은 여건상 여직공이 많은 관계로 강연 주제는 주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마 선생이 강의시간 30분 전에 어느 공장에 도착하여 수위실에서 잠시 공장의 작업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그날 강연할 내용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때마침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기사 한 사람이 뚜벅뚜벅 공장 안에서 걸어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안전모를 꾹 눌러쓰고 검은 기름때가 짙게 밴 작업복 차림의 기사는 공장 정문 앞에 멈춰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시내 쪽에서 성장(盛裝)을 한 중년의 여인이 공장을 향해 다가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문 앞에서 만났고 무슨 내용인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더니 어깨를 맞대고 함께 석양이 비치는 아스팔트 도로를 천천히 걸어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그 모습, 청마 선생은 “인생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중년부부의 뒷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뒷모습> 하면 프랑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1923 ~ 1999)를 많이들 이야기한다.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 가운데 에두아르 부바는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고집했다. 소녀의 뒷모습, 무희의 뒷모습, 소를 모는 농부의 뒷모습,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바다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벌거벗은 뒷모습, 여인의 뒷모습,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는 여인들 그리고 속삭이는 연인들……의 뒷모습.
세계 어느 지역 사람들이나 살아가는 뒷모습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은 보지 못하지만 자신의 뒷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며 살아가고, 살고 싶어 소망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꿈을 향한 그들의 뒷모습은 가난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예쁘거나 착하지도 않고 오직 참다우며 정직할 뿐이다.
시인 이영식은 “뒷모습은 너무 정직해 슬프다”는 이철호의 산문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시 「뒷모습」(시집 『휴』)에서 “허무를 한 짐씩 짊어진 등짝들/벼랑의 막막함이 뒷짐을 지게 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추억이 있으리라. 그 가운데 대개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떠들곤 한다. 하지만 왠지 이시인의 시어처럼 누구나 허무한 누군가의 뒷모습에 대한 추억을 한두 가지쯤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뒷모습, 어느 버스터미널에서 본 여자의 뒷모습, 경찰에 쫓겨 달아나는 죄인의 뒷모습…… 같은 그늘지고 좀 실망스럽고 우울하지만 너무나 솔직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삶의 벼랑 같은 것들.
오늘날, 시인의 뒷모습은 어떤가? 누구에게나 가슴에 맑고 따스하게 남겨질 수 있을 그런 뒷모습일까?
화두로 던져본다.
─계간 『시에』 2012년 가을호
권혁수
강원도 춘천 출생. 198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소설, 2002년 『미네르바』로 시 등단. 시집 『빵나무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