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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박원순표 정비사업’… 예산·인력낭비 누가 책임지나
하우징 헤럴드 2013.09.11
주민들 ‘사업추진 희망’의견이 많아 당초 취지 무색
전문가 “사업추진 지원 방향으로 출구전략 전환해야”
서울시가 실태조사 결과에 당황하고 있다. 구역 해제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려 했던 실태조사가 ‘사업 추진 희망’ 쪽으로 주민 의견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인 서울시와 구청이 직접 나서 실태조사를 실시하면 주민들이 환영하며 사업 반대 의사가 쏟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완전히 뒤집혀졌다. 자칫했다간 이 실태조사 결과가 되레 서울시 출구전략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돼 버릴 참이다. 주민 의견이 취합된 상황에서 구역 해제를 할 수 없는 확실한 물증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출구전략 ‘비상’=저조한 구역 해제 실적으로 서울시 출구전략 시나리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8일 서울시가 발표한 ‘뉴타운·재개발 실태조사 1년 추진경과 발표’ 보도자료에 따르면 실태조사 추진대상 구역 571곳 중 138곳의 실태조사가 마무리됐다. 실태조사 범위는 당초 610곳이었지만, 이 중 실태조사 대상으로 ‘관리처분인가 신청 전’ 단계까지만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확정되면서 571곳으로 대상이 줄었다.
자료에 따르면 이번 1년뿐만 아니라 2011년부터 현재까지 3년간 누적된 구역 해제 실적은 610곳 중 150곳이다. 610곳은 정비구역 307곳과 정비예정구역 303곳으로 나뉘는데, 정비구역 307곳 중에서는 단 29곳이, 정비예정구역 303곳 중에서는 121곳만이 해제됐다. 결과적으로 정비구역에서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 구역이 해제됐고, 정비예정구역에서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구역이 해제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303곳의 정비예정구역에서조차 구역 해제가 50%를 넘지 못하는 사실이 서울시 출구전략 실패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비예정구역은 대개 추진주체가 없어 구역 내 찬반 갈등이 없으며, 그 결과 서울시의 출구전략 정책이 가장 효과적으로 스며들어 서울시 정책에 호응하는 주민들이 쉽게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역 해제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업추진을 기대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정비구역의 10%도 안 되는 낮은 해제 비율은 이미 예견됐던 결과라는 반응이다. 정비구역과 정비예정구역은 추진위·조합이라는 추진 주체와 비대위로 갈리는 갈등 구조로 나뉘기 때문에 대개 주민들 의견이 고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추진위 또는 조합이 설립됐다는 의미는 50% 또는 75%의 동의가 선행돼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뒤집히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추진위와 조합이 있는 곳들은 구역 해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며 “추진 주체가 있다는 의미는 최소 사업에 동의한 주민들이 50% 이상 있다는 뜻인데, 이들의 종전 의견을 뒤집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섣부른 출구전략에 책임론도 나와=예산과 인력만 낭비했다는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 최조웅 시의원에 따르면 서울시가 현재까지 실태조사 업무에 사용한 비용만 해도 10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용으로 사업추진 지원에 전용을 했더라도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냈을 것이라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공공융자금 예산으로 95억원을 책정했다가 지난 5월 조기에 소진, 융자 종료를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공공관리과를 비롯한 출구전략 관련 인력이 늘어나는 상황에 빗대 공무원 숫자만 늘리고 있다는 비판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커다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 출구전략이 ‘효과 제로’ 상태라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입장에서는 실태조사를 통해 구역 해제되는 곳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2011년 박원순 시장 당선 후 이듬해 1월 첫 번째 정책으로 정비사업 출구전략을 내놨던 박 시장의 출구전략 정책이 후한 점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도시설계 전문가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정비사업 반대 의사 표명으로 구역 해제가 많아야 유리하다”며 “그렇게 돼야 ‘이것 봐라, 주민들이 이렇게 사업 중단하기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현행 출구전략 정책 시행이 옳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는 평소 구역 해제에 대해 중립이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구역을 해제 시키는 것에 정책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시정 책임자인 박원순 시장의 정비사업 행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뉴타운·재개발 분야가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쉽게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섣불리 나섰다가 문제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구역 해제라는 현행 출구전략 방법으로는 뾰족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사업추진을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역 해제라는 방법은 적당한 출구전략 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태조사 기한도 막바지에 이르면서 서울시 출구전략은 시간압박에도 내몰린 상태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실태조사 및 추진위·조합 취소 규정은 내년 1월 31일까지만 유효한 한시 규정이기 때문이다. 당초 출구전략 시스템에 의해 조속한 시기에 구역 해제 및 추진위·조합 취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주거환경연구원 진희섭 연구위원은 “해제만이 능사는 아니며 결과적으로 실태조사가 서울시도 부담이 된다”며 “실태조사로 구역이 해제된 곳들이 나오게 되는 데 그곳의 도시관리에도 뾰족한 답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병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