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화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소서 (막12:1-12)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일을 두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인지 따져 물었다. 이에 예수께서 포도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가 때가 이르러 농부들에게 세를 받기 위해 한 종을 보냈더니 그들이 그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고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였다. 그 외에도 많은 종을 보내었으나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는데 곧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이다. 아들을 보내면 존대하겠지 싶어 보내었으나 그 농부들이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하고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할까?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한 것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고 꾸짖으셨다.
이 비유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줄 알았으나 그들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두고 떠났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주인이 보낸 종들은 선지자들을 그리고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말씀에 가장 능통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견고할 것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가장 알지 못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가장 앞장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예배를 인도하는 대제사장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은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지 못해 안달한 것인가?
권력과 돈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타락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5)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상)
사탄의 계략에 넘어간 하와의 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나무만 보이게 된 것이다.
하와는 이방인이거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동산을 함께 거닐던 사람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누리는 권력과 위엄 그리고 돈과 명예에 이미 그들의 눈은 하와가 보았던 선악과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변명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결코 선두에 그들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
또 다른 권력에 목말라 하는 무리를 선동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들이 그러했듯이.
믿음과 불신앙은 결국 ‘들을 귀’있는 자와 ‘닫힌 귀’를 가진 자의 차이인 것 같다.
성경을 제 아무리 줄 줄 외우고 잘 가르쳐도 닫힌 귀를 가진 자는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으로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자요,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된다.
주여!
아굴의 잠언이 오늘 내 기도가 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9)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으로 굽은 길을 가면서도 그 길이 의의 길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될까 두렵습니다.
자기기만에 빠져 종교적 열심이 믿음이라고 착각하는데서 돌이켜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