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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3년 2월 12일, 영국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의 리버풀에 위치한 뉴 스트랜드 쇼핑 센터에서 당시 2세였던 제임스 패트릭 벌저가 당시 고작 10살이었던 두 가해자들 존 베너블스, 로버트 톰슨에 의해 유괴를 당한 후, 쇼핑 센터에서 약 4km 떨어진 옛 월튼 앤필드 기차역 근처 철로로 이끌려 납치, 고문, 살해된 사건이다.
영국에서 매우 유명한 아동 유괴 및 살인 사건 중 하나며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너무 어린 가해자들의 나이와 그들의 불행한 성장 배경 및 잔혹한 범행 방식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더더욱 CCTV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영국이 전국에 CCTV 도배를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흉악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난 영국의 잉글랜드는 한국과 비슷한 영토 규모인데 CCTV는 500만대가 넘는다.
참고로 한국은 160만대 수준이다.)
2. 전개
2.1. 발단
1993년 2월 12일 리버풀에 거주하던 드니스 벌저(Denise Bulger)는 2살배기 아들 제임스 벌저와 같이 뉴 스트랜드 쇼핑 센터에 장을 보러 갔다.
드니스는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 안을 돌아다니다가 식료품 코너에서 고기를 사기 위해 둘러보던 중 잠시 손을 놓았는데, 아들을 다시 데리러 가려고 봤는데,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드니스는 아들이 시식 코너나 장난감 코너에 갔을 거라고 생각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마트 직원과 마트 전체를 돌아다녔으나 마트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드니스는 경찰에 신고했고 도착한 경찰은 마트 내 CCTV를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과 같이 쇼핑몰을 나가는 모습이 찍히긴 했는데...
2.2. 어린 가해자들
피해자를 유괴한 건 성인도 아닌 10대 초반의 어린 남아들이었다.
심지어 이 둘은 마치 친형제인 것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그러나 뒷모습만 찍혀 경찰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더 CCTV를 돌려본 결과 가해자의 얼굴을 찾긴 했으나 이번에는 피해자를 데려간 소년과 같이있는 공범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비슷한 또래의 남아와 같이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 두 아이는 친구 관계로 보였고 마치 피해자를 데려가는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속삭이며 피해자 쪽을 쳐다보았다.
당시 사람들은 피해자와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초등학생 애들이 2살짜리 애기한테 뭘 했겠냐며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상식적으로 당연히 사람들은 초등학생들이 장난 좀 치고 돌려보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2.3. 참혹한 시신 발견
사건 발생 후, 이틀이 경과한 1993년 2월 14일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피해자는 쇼핑 센터에서 약 4km 떨어진 옛 월튼 앤필드 기차역 근처 철로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시신의 상태는 참혹했는데 얼굴에 파란 페인트가 뒤덮여 있고 벽돌, 파이프, 발 등으로 구타당해 생긴 피멍이 얼굴, 몸, 머리에 42개나 있었으며 한 쪽 안구가 파열된채 입안과 항X에 다수의 건전지가 삽입돼있고 시신은 이미 기차에 밟혀 두 동강나 있었다.
경찰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보여주기 꺼렸을 정도. 공식적인 사인은 뇌손상이며 이는 피해자가 사고사를 당한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일단 경찰은 공범인 성인이 있을 때를 가정해 리버풀에 위치한 모든 초등학교를 샅샅이 뒤져 사건 당일 결석한 학생, 평소에도 결석이 많은 불량학생들을 조사해 용의자를 좁힌 결과 어렵지 않게 가해자 소년들 2명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3.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살인범은 당시 10세(Year 7 재학)였던 동갑내기 친구 로버트 톰슨과 존 베너블스였다.
이들은 이미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게 된 지 오래된 상태였다.
(실제로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시간도 보통 초등학생들이라면 학교에 있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들의 집에 피해자의 시신에 뿌려진 파란 페인트와 신발에 피해자의 혈흔 자국이 있었다.
로버트는 7남매 중 막내로, 가정환경이 매우 불우했다.
우선 부모 모두 심각한 중증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을 샌드백마냥 폭행하고 성적 학대를 거듭하다가 로버트가 겨우 5세 때 가출했다.
형제간에도 폭행과 폭력이 일상적이었고 더욱이 막내인 로버트를 제일 심하게 폭행 및 학대했다.
범행 일주일 전에는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존은 부모의 이혼으로 양가를 오가며 자랐다.
어머니는 질병과 우울증으로 3세, 5세, 7세이던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방치하여 경찰에 여러 차례 소환되었다.
존은 본래 활달한 아이였지만 형제들의 학습장애로 특수학급에 다녔으나 따돌림으로 자주 싸움을 벌였다.
이런 환경 탓인지 반복적으로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심각한 버릇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 교사는 조치는 물론 관심조차 갖지 않는 등 학교에서조차 방치되었다.
존이 어느 날 동급생을 줄자로 목 졸라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강제전학을 당했는데 이 때 전학간 학교에서 로버트를 처음 만났다.
이후 둘이 급속도로 친해져 당시 유행했던 공포영화 사탄의 인형이나 각종 폭력적인 비디오에 같이 푹 빠져 있는 등 범행 전부터 상태가 심각했다.
이 둘의 자백에 따르면 주범인 어른이 있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사건은 오직 이 둘의 소행이었다.
범행 동기는 단순히 "어린 애 한 명 유괴해 보고 싶다" 는 생각이었다고...
사건 당시 하루 종일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훔치거나 식당 의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등 말썽을 부리며 유괴할 아이를 찾았고 이내 표적을 찾았지만 해당 아이의 엄마가 재빨리 아이를 데려간 덕에 다른 표적을 찾았고 그게 보호자 없이 혼자 쇼핑몰을 돌아다니던 제임스였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며 접근해 손을 꼭 잡고 데려간 뒤 약 3km 가량 돌아다니며 피해자의 머리를 발로 차고 몸 이곳저곳을 심하게 구타했는데 피해자가 울거나 소리치지도 않고 마치 친형들인 것 마냥 얌전히 따라다녔기에 당시 이들의 모습을 본 목격자가 38명이나 되었지만 아무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 중 몇 명은 가해자와 피해자 일당에게 별 일이 없냐 물었지만 그때마다 가해자들은 "이 아이는 우리 동생이며 동생이 다쳐서 경찰서로 향하던 길이다." 이라는 답을 했다.)
이들은 1km 가량을 더 가 옛 월튼 앤필드 기차역에서 피해자를 쇠막대기, 벽돌로 가차없이 때리고 10kg나 되는 쇠파이프를 머리에 내려치며 살해한다.
이후 이들은 이 사건을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철로로 끌고갔고 범행 후 비디오 플레이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때웠다.
4. 피해자의 장례식
1993년 3월 1일, 피해자의 장례식이 리버풀 커크비에서 치러졌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가 연주되었다.
마이클 잭슨은 또한 아이들이 집단괴롭힘을 당하거나 학습장애가 있을 때 갈 학교인 제임스 벌저 레드 벌룬 센터의 앤섬으로 사용될 이 노래를 기증했다.
시신은 동일한 지역에 위치한 하트 교회(Heart Church)에 묻혔다.
5. 재판 및 가해자들의 근황
안타까운 성장 배경을 가진 10살의 어린 아이들이지만 범행이 워낙 참혹해 이들은 성인과 같은 조건 및 방식으로 재판받았고 2인조 범인인 존 베너블스, 로버트 톰슨이 당시 겨우 10세에 불과했다는 이유로 법정 최고 형량인 8년형밖에 선고할 수 없게 되자 너무 형량이 짧다며 더 선 등 몇몇 신문들이 독자 28만 명의 서명 운동을 받아내어 그들의 형량을 10년형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마저도 15년형으로 늘려야 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무효처리 되었다고. 결정적으로는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지만 이마저도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당시의 재판이 지나친 여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이 피고인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불공정한 재판이였다" 며 이들의 조기석방을 요청하고 영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8년만인 2001년에 조기석방되었고 동시에 새 이름과 신분을 받아 사회로 복귀되었다.
둘 다 성인이 된 이후 수감된 전력이 있으나 로버트 톰슨은 이후 과거를 세탁해 결혼하고 사무직으로 잘 살고 있으며 존 베너블스는 2010년 아동 포르노 사진을 다운받고, 소아성애자에게 사진을 팔기 위해 접근한 중죄를 저질러 수감되었다가 2013년 풀려났으며 데이트 사이트에 등록되었다.
가해자들의 신원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때 사기를 저질러 수감된 적이 있었던 한 사람이 존 베너블스로 오인받고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6. 사건 이후 피해자 유가족의 근황
해당 사건이 일어난지 8개월 후인 1993년 10월, 피해자의 친남동생인 마이클 퍼거스(Michael Fergus, 현재 31세)가 태어났다.
허나 마이클의 탄생 이후 친부모 랄프 벌저(Ralph Bulger), 드니스 벌저는 이혼했고 드니스는 이후 스튜어트 퍼거스(Stuart Fergus)라는 남자와 재혼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마이클과 더불어 현 남편과의 사이에서 토마스 퍼거스(Thomas Fergus), 리온 퍼거스(Leon Fergus)라는 두 아들도 더 얻는다.
이후 랄프 벌저도 재혼해 늦둥이 딸을 얻었고 2018년 이 이복여동생도 아버지와 함께 피해자의 무덤을 찾았다.
7. 미디어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소설, 영화 등으로 재구성되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23년 2월 26일자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7.1. 영화 목록
7.2. 소설 목록
첫댓글 미친..어린놈들이 더 어린 아기를ㅠㅠ
미친새끼들; 가해자들 감방에 넣을게 아니라 그냥 저때 죽였어야지...
시발 잠이확깬다 애가 너무너무 잔혹하고 불쌍해 너무 어리잖아
미친놈들
가해자들 살려둘 필요가 있나.. 저건 불량품이잖아 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