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윤상이>
공항대로의 도시가스와 강서보건소를 사이에 두고 길 건너 양천구 목2동에서 이곳 강서구 염창동으로 이사 온 것이 2010년 9월 말일이었으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다.
우리 집이 701호이고 맞은편 702호에는 윤상이네가 먼저 입주해 살았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웃에 살아도 시골과는 달리, 이웃인지도 모르고 사는 서먹한 사이가 얼마나 많던가.
우리는 오자마자 윤상이네와 친해졌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가 물려준, 음식을 나눠 먹는 버릇 때문인지, 아니면 두 살배기 간난 아기인 윤상이의 극성 때문인지, 하여튼 단박에 친해진 것이다. 더욱이 윤상이 엄마가 참 밝고 예절 바르고 친화력이 넘치는 새댁이었다. 만나면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서로 반가워서 만면에 웃음이 넘쳐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살면서 고민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윤상이네와 그 밑에 사는 602호 간의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 문제였다. 602호에도 윤상이네와 같이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이미 초등학교 학생인지라 소음 창출은 없는 셈이었다. 반대로 윤상이는 걸음 배우기와 말 배우기, 뛰놀기가 한창일 때이니, 소음제조기 바로 그 자체이었다. 때로는 울음소리도 들렸다. 옆집인 우리는 거의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아래 집은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집에서 번갈아 나에게 면담 요청을 해 왔다. 거의 며칠에 한 번씩 이어졌다. 아래 집에서는 위층의 소음 때문에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고, 윤상이네는 애기방과 응접실까지 모두 메트리스도 깔고 주의도 주고, 심지어 윽박지르고 혼내주기까지 하고 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나는 겉으로는 어느 편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가 없어서, 그저 황희 정승 흉내만 내면서 양쪽을 달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7층 위 옥상에서 꽝꽝 소리가 났다. 거의 재난 발생 수준으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소리에 놀라서 702호 윤상이 아버지와 내가 자동적으로 옥상엘 뛰어 올라가 보니, 602호 가장이 아령을 가지고 702호의 옥상 바닥을 내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던 나의 의문이 풀리긴 했으나, 두 집 가장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격투 장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나보다 더 우람한 윤상이 아버지의 덩치가 상대에게 부담을 주었을까. 아무튼 간곡한 나의 중재로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으나, 아령으로 내리친 흔적은 그 후 당사자가 아무도 모르게 페인트로 지운다고 노력은 했지만, 전쟁의 상흔처럼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가 사는 주택 건물 바로 앞에는 초등학교와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아침마다 풍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602호 가장은 그 풍금 소리가 거슬려서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항의하여 그치게 했다고 언젠가 본인이 자랑삼아 얘기해 주었다. 신경이 유달리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얼마 후 유력한 직장을 그만두었고, 그 집은 경매에 부쳐졌으며, 부부는 이혼하고 뿔뿔이 흩어져 나갔다.
사실은 두 집 간의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이글을 쓰게 된 동기가 아니다. 나와 702호 윤상이와의 아름다운 연기(因緣生起)를 잊지 않기 위하여 발심한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층간 소음 사단 이후 윤상이네와 우리 두 집은 봄날처럼 더욱 가까워졌다. 특히 윤상이의 커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그중에서도, 앞집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배꼽 인사를 앙증맞게 하는 윤상이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거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윤상이 엄마를 통하여 윤상이에게 간접 전달되었을 나의 갖가지 애정은 물론이고, 윤상이를 직접 대면할 때 내가 그에게 보이는 감정 표현을 윤상이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윤상이 엄마를 통하여 알게 된 윤상이의 장래 희망은 ‘경찰 아저씨’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들은 후로 나는 윤상이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해 주었다.
“윤상이는 훌륭한 경찰이 될 거야”
“유윤상! 열심히 해서 40살 전후에는 경찰서장이 되고, 그다음에는 경찰청장이 되고, 그다음에는 법무부 장관이 되는 거야! 그렇지?”
“… (끄덕 끄덕)”
“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힘이 약하니까 윤상이가 할아버지를 보호해 줄 거야 그렇지?”
“(끄덕 끄덕)”
윤상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나의 기대를 실은 말을 하였다.
“공부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그렇게 할 거지?”
“… (끄덕 끄덕)”
“그렇게 하면 훌륭한 경찰이 되는 거야!”
노인의 시답잖은 말인데도 싫은 내색 없이 윤상이는 그때마다 마음에 스스로 다짐을 하는지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한편 윤상이 엄마에게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윤상이 잘 키우세요. 아이들은 정승처럼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된대요.”
“예, 예, 아이고, 적어 두어야 하겠어요. 호호호”
내가 알고 있는 이 말의 배경은 이렇다.
옛날에 어느 스님이 탁발을 나가서 어느 마을의 어느 집 담벼락을 지나가던 중에, 담 넘어 집안에서 부모가 아이를 꾸짖는 소리가 들려 나오는데, 수행 중인 스님으로서는 차마 듣기 민망한 쌍소리였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할 언사가 아닌 말이었다. 혀를 껄껄 차던 스님은 그 집 안으로 들어가서, 꾸중을 듣고 주눅이 들어 있던 아이에게 다짜고짜 큰절을 올렸다.
아이의 부모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대관절 무슨 이유로 이 철부지 망나니에게 절을 하십니까?”
“이 아이는 장차 커서 훌륭한 정승이 될 아이인 고로 내가 절을 하는 것이외다.”
“예에?”
“그러니 앞으로는 이 아이를 정승 대하듯 하고, 말투도 대접도 정승처럼 하여 잘 키워야 하오”
“예, 예, 알겠습니다요!”
훗날 이 아이는 정말로 젊은 나이에 정승이 되었는데, 부모가 건강하게 장수하니, 옛날에 아이가 어렸을 때 스님과의 일이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는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여 다행히 그 스님이 어느 절에 고승으로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고 찾아뵈었다.
“스님, 그 옛날 우리아이가 정승이 될 것을 어찌 미리 아시고 계셨습니까?”
“허허 사람이 어찌 사람의 앞일을 알 수가 있겠소이까? 다만, 사람은 정승처럼 키우면 대개 정승이 되는 법이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되는 법이지요. 그날 두 분이 아이를 나무라는 소리를 담 너머에서 듣고, ‘이게 아니지!’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했을 뿐이라오”
첫댓글 바람직한 교훈 하나 얻고 갑니다.
사람은 갔지만 글은 남아 있네요. 글이 주는 여운이 그를 추억하게 만듭니다.
이 글은 제게도 반성할 거리를 많이 주었습니다.
법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그는 친구를 나쁘게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