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장기간 성적 욕망을 억압하다가 좌절로 끝나는 어느 저명한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이성(理性)과 사랑(에로스) 그리고 아름다움과 예술적인 삶에 대한 성찰의 글로서 카뮈 등 다른 노벨상 수상자의 글들이 그렇듯이 그 안에 깊은 사유와 은유를 담고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읽는 동안 산문시같은 운율감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1910년 경, 뮌헨을 배경으로 시작으로 한다. 그 당시 뮌헨은 이미 공원, 합승 마차, 전차, 기차, 호텔, 식당, 포장 도로 등을 갖추고 있는 근대화 된 도시였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50 대의 소설가이자 저술가이며 시인인 아쉔바흐는 자기 집 근처에서 산책 중에 만난 기이하고 낯선 남자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어디론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강렬한 욕구와 열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정처 없는 마음의 불안, 젊음의 목마른 갈망, 오래 전에 잊어버린 새롭고 생명력 넘치는 내면(억압된 성적 욕망)의 확장과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환상을 경험한다.
아쉔바흐는 지금까지 도덕성과 예술가적 열정을 가진 유명 작가였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권력과 명예를 지켜 주는 고독이라는 예의 범절을 받아들이는 반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유희와 반항과 즐거움을 포기했다.
그는 향락과 안락을 거부하고 힘든 일과 일상의 신성하고 분별 있는 소임에 충실하였으며 느닷없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충동 같은 것은 이성에 의해 그리고 단련된 자기 규율에 의해 곧바로 억제되고 교정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외모의 남자와 만난 후 그는 지금까지의 명성에 초점을 맞춘 삶, 정열적인 봉사 위주의 삶으로부터의 도피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해방 욕구, 즉 모범적인 작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느꼈다.
자신의 작품에는 화염처럼 불타오르며 유희하는 변덕스런 특징이 결여된 듯 느껴졌다. 그 변덕스런 특징은 내면적인 것 이상의 그 어떤 것, 세상의 삶을 향유하는 기쁨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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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 아쉔바흐는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수레를 따라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하얀 꽃들이 피어 있는 가로수 길 양쪽에 음식점, 상점, 숙박업소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름답고 자연의 향기를 담은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100년의 시공을 넘어 생생히 그려진다.(필자가 본 베네치아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14살 정도의 금발머리의 병든 타치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폴란드 미소년, 타치오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은 아쉔바흐에게 신화적인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마치 태초의 시간, 신들의 탄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인들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는 타치오에게서 생명과 동시에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본다.
무(無)라는 것은 완전한 것의 하나의 형식이 아니던가? 그가 새롭게 꿈꾸는 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절도가 없는 것, 유혹적이고, 금지된 것이다. 예술과 고독....예술은 일종의 고양된 삶이었다.
'고독은 독창적인 것, 과감하고 낯선 아름다움, 그리고 시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고독은 전도(顚倒) 된 것, 불균형적인 것,그리고 불합리하고 금지된 것들'도 만들어 낸다.
타치오를 훔쳐보며 그는 피가 끓어오르는 감격 ,기쁨 그리고 자기 영혼의 고통을 느끼며 '신은 우리들에게 정신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젊은 인간의 형상과 색채를 사용하였다. 영혼은 육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더 높은 관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라고 웨친다.
작가는 아름다움과 에로스, 지혜와 이성, 미덕과 예술가의 길 사이의 교차되는 갈등을 다음과 같이 문학적인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감각적인 인간이 걸어가는 길이며 예술가가 정신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이다. 또는 그렇지 않고 그 밖에도 신적인 것, 이성, 미덕, 진리 등이 우리 앞에 감각적으로 나타난다면?
우리 시인들은 에로스 신이 옆에 와서 안내자로 나서서 길을 안내해 주지 않으면 아름다움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위에서 ,작가(노벨 문학상 수상)는 즐거움이자 치명적이기도 한 에로스가 신적인 것, 아름다움의 길과 짙은 연관성이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아름다움(사랑),진리,이성, 미덕이 감각화 될 때 이는 곧 신을 보는 것이다, 시련은 생산적 창조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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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포로가 되어 열정의 끈에 우롱 당한 귀족 칭호의 작가 아쉔바흐는 소년 타치오를 뒤좇는 불안하고 비밀스런 스토커(stalker)가 된다.
소년에게 매료된 그의 영혼은 이제까지 쌓아 온 삶의 엄격함과 온갖 의무로 부터 해방된다. 사실상 그는 죽음을 뒤쫓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도취와 환상, 감각 속으로 빠져 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때마침, 도시를 엄습한 전염병(콜레라)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 둘, 베네치아를 떠난다. 그리고 분노와 욕정, 혼돈과 무절제, 영혼의 파멸을 조장하는 전염병의 냄새는 주인공의 사랑의 종말과 죽음을 예고한다.
타치오 가족들이 떠나는 날 오전, 아쉔바흐는 바다가에서 소년이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훔쳐본다.그리고 타치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죽음의 신이 자신에게 손짓하며 부르는 것을 느끼며 숨을 거둔다.
책의 주인공인 아쉔바흐는 아름다움에 빠졌지만 그것을 찬미할 뿐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려 하지 않았다. 작가는 퇴폐적인 예술가상을 추구하지 않았고 문학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그는 '세상의 거의 모든 위대한 것은 근심과 고통, 가난, 고독, 신체의 허약, 악덕, 열정과 수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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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지음>
이상, 내용과 일부 소감입니다.
(하이네, m choi)
첫댓글 하이네의 문학평은 프로의 경지에 근접하다고 생각됩니다. 경탄할 일입니다.
에구~ 송구합니다! 책 내용을 요약, 소개한 것 뿐입니다.
소생은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