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다시 한국에 아름다운 축구 추억을 안겼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18일 오전(한국시각) 캐나다 오타와 랜스다운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E조 조별리그 최종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후반 조소현, 김수현의 연속골로 2대1로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은 1승1무1패(승점 4)를 기록하며 E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2003년 이후 12년 만에 나선 월드컵 무대에서 첫 승과 함께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사상 본선 진출이라고는 2003년 한 차례였다. 그나마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전패를 기록하면서 치욕을 당했다. 그래서 1승은 목마름 그 자체였다. 16강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이번 여자월드컵 역시 이미 조별리그 두 경기를 치렀지만 승리하지 못하면서 16강은 물 건너간 듯했다.
스페인과의 경기 전까지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점치는 도박사도 거의 없었다. 같은 조 브라질이 2승으로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한 가운데 코스타리카(승점 2), 한국·스페인(이상 승점 1)이 남은 16강행 한 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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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캐나다 온타리오 오타와에서 펼쳐진 2015 FIFA 여자월드컵 E조 3차전 한국 대 스페인 경기현장. 스페인의 빅토리아 로사다(24·아스널 레이디스)가 한국의 지소연(24·첼시FC 레이디스)을 수비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은 스페인을 이긴다 해도 자력 진출은 어렵고 브라질과 코스타리카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선 태극 낭자들을 위한 기적 같은 드라마가 펼쳐졌다. 한국은 전반 29분 스페인의 베로니카 보케테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절망의 나락에 빠진 듯했지만, 후반 경기를 뒤집었다. 한국은 후반 경기 시작과 더불어 수비라인을 미드필드 쪽으로 끌어올리면서 ‘닥공(닥치는 대로 공격)’ 전술로 나섰다. 공격에 올인했다. 결국 후반 8분 조소현의 골이 터지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은 뒤 후반 23분에는 김수연이 상대를 침묵케하는 역전골을 터뜨리면서 드라마를 썼다.
스페인!
이래저래 스페인은 또 한 번 우리 국민에게 기쁨을 주었다. 월드컵에서 기분 좋은 경기를 추억을 안겼다. 한국은 스페인을 만나면 이상하게도 기적을 만들어 갔다. 1994년 미국월드컵 C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5분과 10분에 연속 골을 허용하면서 패색이 짙었지만, 경기 종료 5분 전 홍명보의 프리킥 골에 이어 종료 직전 서정원이 천금 같은 골로 2대2 동점을 만들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월드컵에서 이처럼 감격스런 순간도 없었다.
서정원은 “당시 내가 찬 볼은 직선 쪽으로 골문 구석에 꽂혔다. 정말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축구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기억에 남는 골이었다”고 회상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에서도 한국은 스페인을 맞아 전후반 연장 접전을 벌였지만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대3으로 승리했다.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골을 넣으면서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당시 스페인의 호아킨은 승부차기 4번째 키커로 나서 이운재의 방어에 막혔다. 호아킨의 실축과 홍명보의 골은 양팀의 운명을 갈랐다.
한일 월드컵에서 남자 대표팀의 추억 이후 오타와에서 13년 만에 한국의 낭자들이 멋진 추억을 만들었다. 태극 낭자들은 종료 휘슬과 함께 벅찬 세리머니로 16강 진출을 자축했다. 한국여자축구의 위대한 첫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