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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dmitory.com/horror/37709329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에는 지금은 경천댐이라 불리는 경천호가 있다.
(동네에선 동로댐으로 많이 불림.)
겨울이면 빙어낚시나 캠핑도 많이오고,
춘추엔 민물낚시하러 많이들 오는 곳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면 실제 물색깔이 이럼. 낚시하는 사진들도 다 포함)
근처엔 여름이면 지금까지 불교학교도 자주 열고,
규모도 좀 큰 김용사라는 절도 있다.
할머니께선 보통학생(지금의 초등학교)때 즈음이라고 했다.
대략 1940년도로 추정
(보통학교 에서 국민학교로 바뀐게 한국은 1942~45년이다.)
초파일(석가탄신일)은 성탄절과 다르게 음력으로 센다.
그해는 초파일이 평달로는 4월30일
윤달로는 5월29일이라는 말이 안되는 날짜였다더라.
(뒤져보니 윤년 1944년인듯.
신기한건 그 이후로 2014년까지
4월달이 석가탄신일인적이 단 두번 밖에 없음.
또 5월 말일로 나온 것도 하나밖에 없다.)
어려운 서론은 접고,
다른해와는 다르게 좀 일찌막히 시작된 초파일에
증조할머니께서 빠질 수 없었지.
떡보살 이름에 걸맞게
간에서 고슬고슬한 수수떡들하고 감자개떡 같은 것들을 지어서
절간에 공양하러 갔다고 했어.
공양을하고 불공을 드린 뒤에,
날씨가 좋아서 진남교반(전국8경중 하나)이랑 이어져서
김룡사 앞까지 길게 곧은 영강을 따라
주욱 강기슭을 거닐러 산책을 하셨단다.
강줄기를 따라 경천호까지 자갈이 광활하게 펼쳐져 멋들어지고
강 건너엔 가파지른 절벽 사이사이로
장송(소나무)들이 구불구불 자라나있고,
두루미가 날아다니는 천혜의 절경이라
심신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어.
그렇게 가다보니 커다란 호수가 나왔는데
절벽에 나온 장송들은 온데간데 없고
맑은물은 탁해져서 녹조가 심했다고했는데,
기운이 사이하고 음습한 것이 좋지 못했다고...
그 와중에 한 부부가 하얀 가루를 호길따라 경천호에 뿌리고 있었는데,
가서 보니 화장(시신을 불태워 장사를 지내는 것)을 한 납골이었어.
노부부가 수척해 보이고
쪽머리에 은비녀를 곱게 꽂은 女노인이 서럽게 울고있어서
증조할머니께서 가서 다독여 주었어.
"뉘 장을 지냈길래 이래 서럽게 웁니겨?" 하고 물으니,
이제 갓 10살되는 종손이 있었는데
지 할미 따라 산에 약초랑 나물캐러 갔다가 그만
칠모사(까치살모사, 물리면 일곱걸음안에 죽을정도로 독성이 강하단다.)
에 물려서 죽었다고 하고.
男노인이 말하길
"온몸이 푸르죽죽한 것이 지독한 놈한테 물린 것 같았다."고 ...
증조할머니는 납골이 다 없어질 때 까지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노부부가 남은 손까지 털어 납골을 다 뿌리자,
소매에서 향 하나를 꺼내 자갈을 모아 세우고 제를 지내주셨다고 했어.
노부부에게 감사인사를 받고 다시 절로 돌아오는데
또 다른 가족이 상을 치뤘는지 납골을 들고 왔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아. 이 지역이 음습하고 기운이 좋지 못한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댐 바닥을 보니,
그제서야 녹조들 사이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하는
수많은 영들이 보이더란다.
안타깝기도 해서
이듬해에 제를 한번 크게 지내야 겠구나
생각하고 김용사로 돌아왔다고...
밤이 깊어 호롱불이 다 꺼지고,
잠을 청하려고 증조할머니도 자리에 누었는데
-톡 톡 하고 창호지를 가볍게 두두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한 비구니(여자 스님)가 옥수수를 잘 쪄가지고 들어왔어.
"산세가 험해 사람도 없는 절이었는데
이렇게 초파일이 되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주니 참 고맙고,
불자님이 또 절에 떡까지 공양해주셨으니,
고마운마음에 이야기 벗이나 할까해서 들어왔습니다."
하니 증조할머니가 흔쾌히 비구니를 자리로 모셨어.
예천에 유명한 대학 찰옥수수를 잘 찐 것이 쫀득하고 매우 맛이 좋았다고...
특별할 것 없는 절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증조할머니께서 생각난듯
오후에 보았던 노부부와 경천댐에서 보았던 영들을
비구니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해보았더니
뜻밖에도 비구니는 매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경천호는 강기슭과 붙어있어서
강길 따라 물장구 치던 아이들이며
헤엄치며 놀던 호기로운 청년들도
거기만 가면 빠져 죽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춘추가되면 녹조가 매우 심해져서
물을 뜨면 걸죽허니
녹말(광합성으로 생기는 녹조식물)이 한가득할 정도라고...
경천호에 빠지면 그 녹말이 매우 많아 뭍으로 헤엄치기도 힘들고
신묘한 것이 물이 걸죽허니
사람이 빠지면 뜨지도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아서
증조할머니가 본 영들처럼 죽는 익사자가 많다고...
헌데 보니 경천호 주변 절경이 좋아서 찾기도 많이 찾고,
납골도 많이 뿌리는데
그 골분(뼈가루)들이 떠내려가다가
경천호 바닥에 허옇게 쌓인다고 했다.
녹말이 엉겨붙고, 낚시해서 건져올린 물고기 배를 갈라보면
하얀 사리같은 납골들이 한가득 들어있다고 했다.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생각하시길 빠져죽은 영들하고
성불하러 뿌려진 납골의 영들하고 사이가 좋지못해서,
더욱 기운이 사이하고 음습했구나 하고
마저 이야기를 이으려는데 비구니가 말을 끊더래.
"헌데 쪽머리에 은비녀를 한 노부부라면
동로에 사는 약초꾼네 같은데 그 집은 종손이 없습니다."
하더래.
놀란 증조할머니께서 자세히 女노인의 모습을 읊어서 확인해보니,
확실이 비구니가 아는 그 노부부가 맞는데 종손이 없다는 거야.
이야기를 마무리한 채, 의문만 품고 밤을 보내고...
날이 밝자마자 증조할머니는 절에서 불자들과 떡을 만들어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리기위해서
탁발(공양을 받으러 다님)을 나선 스님들과 동행하여
떡을 돌리고 공양을 탁발받고 하는 식으로 초파일을 보냈는데
어제 경천호에 납골을 뿌리던 그 노부부집도 들르게 됐어.
노부부가 알아보고는 보살님 고맙다고 귀한 약재들을 공양으로 주더래.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아궁이 앞에
웬 어린 아이형상의 영이 아궁이를 손짓으로 가리켜서 보게 됐다고..
그 집 아궁이에서 하얗게 탄 숯들 사이로
허연 뼈같은 게 보여서 물으니,
"아 얹그제 돼지를 한마리 잡았는데 먹고 남은 뼈같습니다."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돼지를 치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돌아가는길에 살짝 뒤를 돌아보니
男노인이 女노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궁이에서 그 정체모를 뼈를 꺼내는데,
좀전에 본 아이 형상의 영도 그렇고 모골이 송연해지고,
도축하던 집들의 돼지잡고 나온 뼈를 생각해보면
아궁이 속의 뼈는 그보다 작고 여린 뼈들임을 딱 봐도 알 수 있었어.
기겁한 증조할머니께서
즉시 스님께 어린아이 유골을 본 것 같다고 고하고
불공드리러온 아저씨들과 청년들에게도 협조를 구해서
다시 한번 노부부 집을 찾았는데
엉성하게 뭘 급하게 태우고 있더라.
사람들을 보자마자
男노인이 황급히 장작을 막 넣어 무엇을 감추려 했는데
즉시 청년들이 가서 장작을 빼내고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긁어내니,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반쯤 퍼석해져선 나왔어.
이게 뭐냐고 순사를 부르겠다고 사람들이 윽박지르니
노부부가 망연자실하게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한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어.
뭐 식인을 하거나 그런건 아니었고,
자식들도 다 서울로 떠나고 쓸쓸하게 지내는 찰나,
몇년전에 피촌
(갖바치 고리백정같은 조상을 둔 사람들이
그 일들을 이어받아 하는 집단 촌)에서
거지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거둬들여 약초를 가르치고,
심부름을 시키고 하면서 키웠다는 거지.
한 날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삼을 찾으러 산을 탔는데,
잎이 파릇하고 뿌리는 짙은 질 좋은 산삼을 발견하게 된거야.
그래서 곱게 캐서 바구니에 담고 내려오는데
송이버섯들이 나무밑에 곱게 자라있어서
(동로엔 지금도 질좋은 송이버섯이 나온다)
그것도 캐려고 간 찰나에,
당귀하나 찾아캐서 바구니에 담으러온 아이 하나가
시장기가 돌아서 더덕인 줄 알고 그 비싼 산삼을 먹어버린거지.
바구니를 확인하던 女노인이 놀라서
뱉으라고 아이를 다그치는데 삼킨게 뱉어지나.
결국 주위에 집히는 나무몽둥이로 혼쭐을 낸다고
다듬이로 빨래패듯 여기저기를 패다보니
10살도 채 안된 여린 아이가 그 매질을 버티겠어?
아이가 죽어버린거야.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들어서.
그래서 男노인에게는 칠모사에 물려서
시퍼렇게 독이올라 죽었다고 거짓말을 쳤는데
실제로 칠모사에 물린걸 본 적이 없으니
물려서 온몸에 멍이들고 부어올라 죽었구나 하고는
대승사에서 화장해서 유골을 뿌리다가 증조할머니를 만난거지.
그후에 노부부가 집에 돌아오니
남은 아이 하나가 男노인에게
女노인이 아이를 패서 죽이는 것을 봤다고 고한거지.
그날밤 노부부는 심하게 다퉜고
아이가 읍내나 마을에 나가서 말실수를 할까봐
결국 죽여서 태워버리기로 결심하게 됐고,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거야.
후에 순사들에게 신고하여 노부부는 잡게 됐대.
알게 모르게 시골에는 퍼지지 않는 사건 사고들이 많은 편이라고 하더라네.
죽은 아이의 넋을 기리려고 경천호를 찾아 불자들과 제를 크게 올리고
빠져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해 성불제도 올렸다고 해.
제를 올리고 돼지머리를 보자기에 싸서 경천호에 던져 넣으니
뭍에 머리가 보일락 말락 떠있던 영들도 사라지고
이듬해 춘추엔 물이 많이 맑아져서 적당한 녹조였다고 하네.
경천호는 1983년 경천댐으로 준공되게 됐고
경천호와 이어진 진남교반과는 철문으로 단절되게 돼.
그러나 댐 철문에 끼어 죽는 익사자들도 생겨나고,
지금도 진남교반 근처에 화장터가 있는데
유족들이 유골을 진남교반 하류에 꽤 많이 뿌린다고 해.
아이러니하게도 꼭 그듬해에는 댐에 녹조가 심해진다고...
첫댓글 아유... 산삼 그게 뭐라고.. 산 목숨이 더 중요하지..
222... 애가 무슨 죄야ㅠ
한국식 괴담? 옛날얘기 너무 좋다ㅠㅠ 새삼 딴 말인데 진남교반 진짜 절경이고 탁 트여서 시원하고 너무 멋짐 가는 길도 좋아 다음 번에 가면 이 얘기 생각나겠다
유골을 많이 뿌리면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물이 고여있는 댐 저수지 특성상 녹조가 심해짐..ㅠ..당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