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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blog.naver.com/kkhy162/221796299966
문경 도자기축제라는 지역에선 꽤 유명한 축제가 있어.
찻사발 축제라고도 하는데,
이런 축제들이 벌어질 만큼
천년역사를 자랑하는 양질의 도자기들이 많아.
출요(구워진 도자기를 꺼내 선별하여 기준미달은 망치로 깨버림)
가 특히 까다로운 만큼 품질이 뛰어나고
특히 선을 많이 감은 자기들이라 유려함이 일품이야.
지금도 인간문화재를 포함하여 8대가 넘게 걸쳐 내려오면서
그 유구한 혼을 굽는 도예 명장들이
아직도 맥을 끊지 않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어.
오늘 쓸 지역인 문경읍 당포리는
일전에 경천호에 관해 쓴 글에 나오는 김용사와 매우 가까운 동네야.
지금 당포리엔 문경窯(기와 가마 구울 요)하나만 남고
요家(가마 굽는집)들이 다 사라졌지만,
당시엔 근처에 있는 운달산의 토질이 좋아서
도자기 굽는 요家들이 많았더래.
1937년도 당시 문경에
유치원같은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이전의 교육시설이 전무했어.
물론 학교를 안 가는 경우가 더 흔했지만.
헌데 증조할머니께서는
딸(지금 할머니)의 나이 5세때 김용사에 맡기게 되었어.
보통학교에 들어가기전 8세까지는
김용사 1년 운암사 2년 계셨다고 해.
그당시 사람들은 1920~30년대부터
어느정도 돈이나 쌀같은 것을 공양드리고
큰 절에 어린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운 좋고 선한 곳에서 스님들에게 한자 공부도 배우고
또래아이들이나 거기에 사는 동자승(어린 승려)들과 어울려
개구지게 놀기도 하고,
보통학교 입학전 까지는 그렇게 교육하는 방식이 있었다고 해.
그 날은 증조할머니께서 불공도 드리고,
쌀도 공양하고 할머니도 만날겸 김용사로 가셨어.
증조할아버지따라 소금팔던 시동도 데리고,
그렇게 두 분이서 젊고 힘 좋은 당나귀 두 마리를 타고
쌀 반가마니(40kg)와 큼지막한 보따리를 싣고 가셨어.
도착하니 할머니(당시6세)께서 탁트인 암자에서
동자승들과 과수도영
(불가의 오도송중 하나로
고승들의 깨달음을 한자로 풀어 노래한 것)
을 읊고 계셨는데 낭창하니 듣기 좋았대.
"절기종타멱~(절대 그이를 쫒아가 찾지 말아야지.)
초초여아소~(나와는 소원하여 멀어만 가네.)
-중략-
거금정시아~(도랑물이 이제 바로 나인데도,)
아금불시거~(나는 이제 도랑물이 아니라네)"
하고 까랑까랑 노래를 불르셨다고.
어찌나 고와보였는지 오랜만에 보는 딸이 너무 이뻐서,
당나귀에서 내려 단걸음에 다가갔다고 하셨대.
할머니께서 증조할머니를 보고는
"어머니~!"하고 와락 내려와서 안기니,
암자에 있던 또래 꼬마들이 "좋겠다" 하며 부러워 했어.
앞에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 한 분이
죽비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법구)를
자신의 손바닥에 탁탁- 치고는
꼬마들을 향해
"초파일(석가탄신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부러워 말아라."
하고는 암자에서 내려와서
(불가에서는 인사를 할때 더 높은 곳에서 인사하면 안 된다.)
합장하며 증조할머니께 인사를 올렸어.
증조할머니께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하고 합장을 올렸어.
"보살님 오셨습니까."
하고 비구니가 말하고는
증조할머니 치맛자락에 꼭- 매달려
얼굴을 부비고 있는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활짝 웃으며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따님을 만나셨을진데,
해인(該仁 :갖출 해, 어질 인 할머니 법명)이와
함께 가시기 전까지 있으시지요."
하고 다시 한 번 합장을 했어.
증조할머니께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보고있던 시동을 시켜
암자에 있는 꼬마들에게
보따리 안에 담아온 강정하고 가락엿을 다발로 꺼내어주니,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집어가서는
너도나도 하나씩 입에 물고 줄줄- 빨아먹었다고 해.
이윽고 딸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주지스님(사찰을 대표하는 스님, 큰스님과는 다름.) 계신 불전이었는데,
열려있는 문 사이로 웬 곰보의 노인이 먼저 주지스님과 얘기 중이었어.
증조할머니를 발견한 주지스님이
"떡보살님 오셨습니까."
하고는 활짝- 웃으시면서 일어나 합장을 하니,
옆에있던 곰보의 노인도 구부정하게 따라 일어나서
"유명한 떡보살님이셨구만,
이렇게 반가울데가!
요 앞 물방아골 운달窯(기와 가마구울 요)에서
가마굽는 노인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어.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웃으시며
"아, 네. 반갑습니다..."
하는데 옆에서
"우리 어머니는 만병도 고치고
귀신도 잡는 큰 보살님이에요!"
하고 할머니께서 말을 끊으셨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어른들 말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라고 하니,
노인이
"애들이 다 그렇지 않우? 따님이 아주 당돌하네~"
하고 껄껄 웃으시더래.
증조할머니께서 툇마루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그나저나 방해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라고 자리를 비워줄 심산으로 말하자,
주지스님이 손사래를 내저으며
"아닙니다. 들어오셔서 차 한잔 같이 드시지요."
하고 노인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더래.
감사의 표시로 살짝 목례하고
다시 올라가서 널찍이 떨어져 앉으셨다고 해.
할머니께서도 따라올라가서
냉큼 다과로 놓여진 약과를 집어가지고
증조할머니 치마폭에 앉아서 먹고있었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주지스님이
증조할머니께 차를 한 잔 건네니
"감사합니다. 솔 향이 깊은 것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하며 맛을 보니 향 만큼 맛 또한 청량감 있고 훌륭했다고 해.
"이 찻잔이 여기 계신 옹(어르신)께서 직접 빚은 것이온데,
아주 훌륭하여 차 맛까지 더 깊습니다."
라고 주지스님이 말을 덧대니
곰보의 노인이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껄껄 웃었어.
노인은 김용사에서 10리정도 떨어진
운달산 물방아골에서 도예를 하는 옹이었는데,
오랫동안 불경공부를 한 불자이기도 했대.
김용사에 잘 만들어진 다과그릇과 찻잔을 공양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어.
이런 저런 담화를 나누다가 날이 깊어지자 합장을 한 뒤,
증조할머니께서 다 마신 찻잔을 고이 내려놓고는
시동을 시켜 쌀과 가져온 떡을 공양하셨어.
그 후에시동의 방을 얻어주고
자신도 사랑방 안채를 빌려 짐을 풀으셨더래.
해가 저물고 품으로 파고드는 할머니를 팔베개 해주고는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하길
'참으로 예쁜 잔이던데,
내일 일어나면 길을 조금 돌아 가더라도
물방아골에 들러 자기그릇을 몇개 구비해야 겠다.'
생각 하셨대.
날이 뜨고 증조할머니께서 짐을 다시 꾸리니
어렸던 할머니는 퉁퉁 눈이 부어서
"어머니 가지마세요... 또 열 밤을 자야 볼 수 있잖아요."
하고 엉엉 울더래.
마음이 아렸지만,
후 일을 기약하면서 품에 안아 쓰다듬어주고
보따리 안에서 예쁜 옥노리개를 꺼내어 쥐어주고는
절을 나섰다고 해.
할머니께서 멀어지는 증조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있는데,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가
"해인아~ 이제 그만 와야지."
하고 불러서 금세 걸음을 뗐다고 해.
증조할머니와 시동이 가는 길은
물방아골 이름처럼 습기가 많고 음습했어.
운달산을 바로옆에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오솔길이어서 그런지
바위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져 서늘한 기분이 일었는데,
장마철엔 산사태도 가끔 일어나는 곳이라서
시동과 증조할머니께선 더욱 조심히 당나귀를 몰게됐지.
그렇게 한참을 가고있는데 갑자기 시동이 당나귀를 멈춰세우고
"아가씨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뒤도 안 돌아 보시고는
"저도 알고 있어요. 신경쓰지말고 가요."하셨어.
시동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유를 물으려다가,
문득 뒤에 멀찍이 쫓아오는 사람을 쳐다보게 됐는데
머리가 어깨죽지까지 눌려박혀있어서인지
양 쪽 눈이 어딜보는지 다른 곳을 쳐다보는 사팔이였다고 해.
결코 멀쩡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지.
시동은 순간 척주가 간질간질- 거리셨는지 부르르 떨면서
황급히 다시 당나귀에 올라타 길을 재촉했어.
이따금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니,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 따라오는데도
당나귀를 타고 가고있는 자신들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더래.
그렇게 쫓기듯 아닌듯 긴장속에 십여 분쯤 가다가
오솔길을 지나 볕드는 들녘으로 왔는데,
뒤에 쫓아오던 남자가 갑자기 더럭- 땅을 들먹거리며 달려오더니
볕이 닿는 곳 앞에서 뒤틀린 양눈을 똑바로 모아서
억울한 듯 쳐다보다가 사라졌다고...
증조할머니께서 차분하게 나귀를 세워 풀을 뜯게하고 잠시 쉬는데
시동이 나무에 당나귀를 묶고 다가와서
"그게 대체 뭐였습니까?"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은 객귀였다고 해.
객사한 귀신이 저렇듯 죽은 곳 근처를 떠돈다고,
운달산 산자락 절벽에서 자살을 했거나
산사태같은 변고를 당해 죽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자칫 붙으면 병도나고
심하면 몸에 붙은 객귀가 쉴새없이 귓가에 떠들어대니
홧병이 나서 죽을 수도 있다고...
시동이 자신의 몸 이리저리를 살피면서
"그럼 행여나 객귀가 씌이면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무당들이 객귀물림이나 푸닥거리를 해서
떼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안심시켜줬어.
옛 민담에 밖에서 변고를 당하면
시신을 집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장을 바로 치뤘다고 해.
탈난 영이 객귀가 되어 해코지를 한다고 믿었던 거지.
반대로 아픈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옮겨 오는 사람도 많았는데,
집에서 호상을 치르면 영이 악해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시동이 "그것 참, 끔찍하게 생겼읍디다."하고는
"아가씨는 무섭지 않으십니까?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하며 말을 이으니 웃어보이시며
"저도 무섭지요.
오금이 다 저렸어요. 다음부터는 혼자 도망 가야겠어요."
하고는 싱긋 웃곤
챙겨온 감자를 조신하게 까서 시동에게 하나 건네어 주었다고해.
시동이 어버버하게 받아서는
감자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운달요에 다다르니
장성한 청년 한 명과 어제 보았던 곰보의 노인이 나와 맞이 해주었어.
"보살님 아니시우? 여긴 어쩐일로?"
노인이 물으니 증조할머니께서
"어제 보았던 자기가 예뻐서 몇개 구비해가려고 들렀습니다."
했어.
알겠다는 듯이
"그렇구만, 따라오시요."
하고는 뫼셔가는데
시동이 허겁지겁 당나귀를 싸리울타리앞 나무에 묶어놓고는
따라들어왔어.
노인이 안내해서 따라간 황토방은
시유(초벌구이가 끝난 도자기에 광택을 내기위해 잿물을 바르는 과정)가 끝나고
재벌구이(가마에 초벌한 도자기를 두번째로 굽는 단계)를 기다리는
상감(자개, 금, 은, 호박, 옥 등 따위를 박아꾸미는 것)이 잘 된
훌륭한 자기들이 서른점이 넘게 진열된 곳이었어.
그 중에 특히 한 점(갯수단위)은 정말 고왔는데,
오색자개가 영롱한 봉황모양을 그렸고,
봉황눈에 흑옥이 박힌 멋들어진 작은 백자기 항아리였어.
한참을 쳐다보니 노인이 다가와
"아름답지 않우?"
하여 증조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니 노인이 재차 말하길
"같은 불제자인데 보살님에게 내가 싸게 드리리다."
하여
15원(당시 쌀한가마니가 13원 정도,
지금 돈으로 15원은 20만원 조금 넘음)과
쌀 한되를 더 주어 구비하기로 하셨어.
아직 재벌구이를 해야한다고 하여,
사랑방을 얻어 하루 쉬고 가기로 하였는데
날이 저물고 증조할머니께선 온 김에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 먹는 것이 변변찮아 보이니,
저녁밥이나 채려줄 요량으로 부엌으로 갔다고 해.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말린고기를 불려 국을 끓일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하이고, 아버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꺼멓게 옷을 태운 시동이 허겁지겁 부엌으로 와서
증조할머니께
"아가씨 퍼뜩 나오셔야 겠습니다!" 했어.
상황이 급박해보여서
무슨 일인지 묻지않고 잰걸음으로 성급히 나와보니
노인이 옷을 다 태우고 얼굴이 살짝 발갛게 익어서 쓰러져있고,
노인 아들로 보였던
그 청년이 주저앉아 무릎에 노인의 머리를 받쳐서
찬물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달려와 노인의 안위를 살펴보니
다행이 큰 화상은 아니었다고 해.
시동을 시켜 무를 갈아오라 하고,
청년이 노인을 닦아주던 천 안에 넣게해야 살살 닦았어.
증조할머니께서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청년이 말하길
"아버지께서 치매가 살짝 있는데,
돌아가신 형님이 부른다고
가끔 가마로 기어 들어가실 때가 있습니다."
하고는 시커멓게 옷을 태운 시동을 한 번 보고는
"평소에는 저와 같이 불을 때우시는데
오늘은 제가 잠시 토련(도자기 만들 진흙을 발로밟아 공기를 뺌)
하러 간 사이에...
이 분이 발견하고 급히 빼내셨기에 망정이지..."
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시동에게 물어보니
"들어는가는 걸 보고 황급히 다리를 잡고 빼내었습니다.
헌데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노인이 어찌나 힘이 센지,
결국 어쩔 수 없이 뒷 머리밑을 쳐 기절시켰습니다."
하고는 청년의 눈치를 살피더니
청년이 괜찮다는 듯이 목례로 답하곤 가마에 흙을 끼얹어 불을 껐어.
노인을 방으로 옮기고난 뒤,
증조할머니께서 치료물품을 챙겨오지 않은 까닭에
찬 황토진흙을 얼굴이 고이 펴 발르고
식으면 재차 발르고 하면서 하던 간병을 시동에게 부탁하셨어.
청년과 시동이 간병을 하는 사이,
밖으로 나와보니 달볕이 밝아 제법 시야가 보였다고 해.
그 집에 있던 목향(평범한 나무향)을 피워 들고 다니면서
가마 근처를 살펴보니,
뭐 별다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마 뒤로 가 보니 향냄새를 피하는 듯
뭔가 후다닥- 도망가다 들썩- 거리고 사라지더래.
불은 껐지만 아직 가마는 열을 내뿜고 있었는데도
유독 가마 뒤쪽은 전혀 열이 나지 않고 냉기가 돌아서
겁이 덜컥나더래.
침착하게 일단 발길을 방으로 돌려서 가려고 했는데,
순간 한 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다시 뒤에서 들썩- 거리더니
후다닥-거리는 발 소리가 바로 뒤 쪽에서 멈추었어.
한 겨울 고수동굴 속처럼 냉랭한 한기가 목덜미로 불어오는데
귀를 한바퀴 돌더니 귓 구멍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더래.
"덕평(시동 이름)총각!!"
하고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소리를 빽- 질렀어.
놀란 시동이 문지방에 걸려 발을 찧을정도로 뛰쳐나왔다고 해.
그랬더니 또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들썩-하고 한기가 사라졌다고...
식은땀이 다한증 심한 사람처럼 손끝에 맺혀 떨어질 정도로
오싹한 경험이었다고 해.
평소에 영을 보는 것과 달리,
무언가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위험해질 듯한 느낌이었다고...
시동이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괜찮아요. 우선 청년과 확인할 것이 있어요."
하고는 노인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가 청년에게 물어
그 집에있는 곡주(곡식으로 담근 술)를 노인의 입에 붓고는
급한대로 목향을 피워 둔 채,
청년과 시동을 대동하여 밖으로 나왔어.
가마에 홰(횃불 대)를 넣어 불을 붙인 뒤에,
좀 전에 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가 보니
재벌구이가 끝난 도자기들을 식히며
출요(기준미달은 그자리에서 깨어버리고
양질만 고르는 마지막 작업)
를 앞두고 있었는데,
유독 큼지막한 자기항아리 하나가 색이 거무튀튀하여
청년에게
"이렇게 거무튀튀한 것은 어찌하면 나옵니까?"
하니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상합니다.
그을음과는 분명 다른 것인데
黑토(검을 흑)로 빚은 것처럼 이런 도예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여 시동이 뒤에서 지레 겁을 먹고는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불을 비춰 자기속을 들여다보니,
아까 느꼈던 한기가 안에서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더래.
무언가 아차 싶었는지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옹(어르신)에게 가봐야겠습니다."
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돌리니
시동과 청년이 머리속이 정리가 안 되서
서로 처다보며 흐음- 하며 따라갔는데,
이내 호롱불에 비친 방문으로 그림자 기어다니는 형상을 보고는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놀랐다고...
겁도 없이 증조할머니께서 문을 덜컥-열자
시동이 본 방안 상황은 이랬어.
곰보의 노인은 깨어 있었어.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기어다니다가
문이 열리니까 앞에 있던 증조할머니를 밀어젖히고
다시 가마로 돌진을 하더래.
시동이 막아서는데도 구부정한 노인이 힘이 어찌나 좋은지
성난 황소마냥 바짓가랑이 붙잡은 시동을 질질 끌고갔다고 해.
이윽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버려.
다행인 것은 청년이 아까 가마에 불을 끄고 흙을 끼얹었기에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은 아니었어.
하지만 무척 뜨거웠다고 해.
그 안에 쪼그리고 앉은 노인은
기이하게도 무척 추운지 벌벌- 떨고있었는데,
시동이 일어나 툭툭- 흙을 털고는
"할아버지! 나오세요. 거기있다가 열병나요."
하는데도 들은 체도 않고 있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청년을 보고
"옹께서 치매가 아닌 듯 해요."
하고는 설명을 덧대는데,
낮에 시동과 오면서 본 객귀가 있었는데 그것처럼
지금 노인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령도 객귀같다고 했어.
객귀들린 사람에게서 보는 것 같이,
양 팔과 다리로 노인의 몸을 휘감고
귀에는 무언갈 계속 속삭이고 있는데,
눈은 계속 증조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해.
그 객귀의 입에서 모공이 송연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계속 노인의 귀로 들어가고 있다고.
그러자 청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지금 아버지께서 귀신에 씌였다는 겁니까?"
하니 시동이 청년에게 진정하라고 다독이며 말하길
"저도 낮에 객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팔뜨기 절름발이여서 아주 흉측했습니다."
하니 청년이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며
"정말입니까?" 하고 물었어.
증조할머니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는데
"지금 이 령은 키가 훤칠하고 덩치가 있습니다.
힘이 무척 세서 옹께서 옴짝달싹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고 설명을 덧대는데
매부리코에 높게솟은 눈꼬리까지 설명하자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말하길
"제가 도예를 배우기전에 형님이 한 명 있었는데,
온달산 높은 곳에서 좋은 흙을 캐러 가신다고 하시곤 돌아오지 않아
가 보니 낙사(떨어져 죽음)를 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모셔오진 않고 그 곳에서 장을 치뤘는데,
그 형님하고 똑같습니다!"
했어.
그러자 증조할머니께서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객귀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고 낮엔 땅속에 숨어있기도 하는데,
질 좋은 흙에 숨어있다가
청년이 자기 구울 흙을 캐올때 숨어서 딸려온 것 같다고 했어.
청년이 깊은 한 숨을 쉬더니
"얼마 전에 형님이 죽은 곳 근처에서
흙을 해 온적이 있는데, 그것이...."
하면서 말을 멈추더니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고 초조해 하고 있었다가,
재차 노인을 빼내려고 가마 안에 팔을 넣고 힘을 쓰는데,
어찌나 굳건한지 옴짝달싹도 안 하더래.
행여나 남아있는 열기에 살이 익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멀뚱히 서있는 시동에게 도움을 청하여
항아리에 담아놓은 물이 바닥날 정도로 가마위에 끼얹었다고 해.
할머니께서 그 집 방안에 이불을 가져와 가마위에 얹고
"여기다가 부으세요"
하니 이불이 물을 머금고 좀 더 오래 가마를 식혔어.
그렇게 한참을 반복하자
날이 약간 밝아 첫 닭이 울고 동이 약간 텄는데
황급히 나귀를 타고
당포1리 마을에 무당을 데려와서 객귀물림굿을 했다고 해.
다행히 무당이 용했는지 할아버지는 가마에서 나올 수 있었고,
다음날 집에서 채비를 다시 해온 증조할머니께서
죽은 청년의 형님 묘자리로 가서 위령제를 올려주고,
객귀가 숨어있었던 거무튀튀한 자기를 묘 앞에 묻어주었다고 해.
시동이 이유를 묻자
"그 귀신이 흙에 미련이 있어
좋은 자기를 보고 숨어 들은 것 같아요."
하고는 행여나 다시 노인을 찾지 않을까 하여
숨어있던 자기를 묘 앞에 묻어 준 것이라고 해.
1주일 뒤에 노인의 안부를 물으러 증조할머니께서 가셨었는데,
노인은 많이 나아져서 청년에게 성을 내며
열정적으로 도예를 가르칠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이 곰보인 이유가
증조할머니께서 그 집에 가기전에
자주 가마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얼굴에 화상을 입다보니 곰보가 되었다고 하더래.
고마움의 표시로 봉황자기를 공짜로 주셨다는데,
공짜라고 싱글벙글 하던 증조할머니를
시동이 이해못하겠다는 듯
멍하게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해.
첫댓글 옛날 이야기 같다 글 써줘서 고마워
와 이 할머니 이야기 다 흥미진진하다
옛날 얘기 듣는 기분으로 한자한자 꼭꼭 눌러 담으며 읽었어! 무서운 얘긴데도 뭔가 기분 좋아지는 글이야
와 진짜 재밌다 읽는데 장면이 생생해
이젠 거의 전래동화급이구먼.......
잼써 ㅠㅠ
재미있다ㅋㅋ
재밌다 진짜 옛날 예적 이야기 듣는 기분
와 좀 소름돋는데 진짜 옛날얘기 듣는 기분이였어 잘봤어!
와 진짜 드라마 한편 보는 기분이야. 머릿속에 솔솔솔 그려짐.ㅋㅋㅋㅋ 재밌다
와 글도 읽기 쉽게 넘 잘 쓴거같아 재밌다
재밌다! 흙에 미련이 ㅜㅠ 가져가려던 흙이었나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