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시 모음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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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대밭에서
박재성
찬바람의 휘모리장단에
꺾일 듯 꺾일 듯하다가
한숨 돌리고 일어서는
벌거벗은 갈대 앞에서
이미
놓아버린 사람을 떠올린다.
놓을 듯 놓을 듯해도
놓으면 안 될 사람을
놓아버리고
이제는 놓아야 할 미련만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진양조장단의 연가가
갈대의 허리를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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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갈바람에
박재성
한 뼘 높아진 하늘에
두 뼘 멀어진 태양
그 공간에
싸늘해진 갈바람 지나간다
지나간 추억에
눈시울 붉어진 단풍을
저리도 흔들어 대며
11월
역모로도 돌릴 수 없는
아쉬운 가을 낙엽이기에
멀뚱 쳐다만 보는 넋의
빈 머리가 시리다
당신 없는
가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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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겨울 낙엽
박재성
깊어 가는 밤
창가에 앉아
멀뚱 하늘을 바라본다
먹빛 밤하늘이
금방 눈이라도 내릴 양
고요마저 흡입하고는
불거진 볼을 오물거린다
순간 부는 회오리에
낙엽 한 장 창문을 스치면
에혀라
어디로 가니
바람마저 없던 먹먹한 가슴이
밤마실 간다
그곳에 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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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 바다에서
박재성
수평선 저 끝에서
파도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너와 나 사이에서
심술을 부릴 양이면
우리는 더 가까워진다
따라오는 파도의
우렁찬 울림이 거칠어지면
우리의 속삭임은
더 달콤해진다
노을 따라오는 어둠이
갈 길을 묻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하나가 된다
별똥별 불 밝혀 옆눈 흘기는
아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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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겨울 앓이
박재성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파야 한다고 했던 저주가
둘 사이의 장벽으로 남은 것일까
항상 그만큼의 거리에서
세월의 담만 켜켜이 쌓고 있다
망각은 인간의 의무라 했는데
나의 불성실한 의무는
자존심에 짓밟히고 있다
하얀 겨울
눈 속에 묻힌 낙엽인 양
제 살 얼려가고 있다
끙끙
겨울 앓이가 그리움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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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겨울 여인
박재성
눈 위에 발 딛는 소리
사박사박
저만치서 들려오는
낯익은 속삭임
하얀 눈을 머리에 인
흰머리 여인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눈앞에 멈추어서면
내뿜는 뽀얀 입김 사이에 섞인
반가움이 가득한 인사말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펼쳐진
하얀 세상을
가슴에 안았다 쏟아내는 눈빛
천사빛 얼굴에 밝게 그려지는
사랑의 미소
하얀 겨울
깊게 빠질 수밖에 없는
나의 오롯한 사랑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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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드름
박재성
바람 지나고
별빛 내리는
보일러 연소통에
모락모락 연기 오르는 겨울밤
하얗게 그리던
수많았던 꿈속 이야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맞는 아침
햇살 한 줄에
반짝
밤새 그리웠던 여인의 눈빛이
먼저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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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절초
박재성
아침 햇살 아래
맑은 이슬로
하얀 꽃잎 적시고
아홉 마디 끝에
영근 마음이
하늘에 닿았음인가
하늘마저
쪽빛으로 맑아
시린 눈 감아 보면
가슴으로 전해지는
청초한 여인의
순수함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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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 사람의 눈빛 같은
박재성
창밖에 어둠이 찾아들고
먼발치 별빛이
훔쳐보는 밤
수줍어 말 못 한 가슴의
두근거림을 들켜버린 체
그리움 안은 눈빛이 되어
마주하는 시간
그 사람의 눈빛 같은
별빛
지금
그 사람도
너와 마주하고 있니
그 사람도
내 눈빛인 양
너를 바라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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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다림
박재성
살 고운 햇살
네가 내려
따스한 오후건만
네게 안긴
나의 몸이 기다리는 것은
네겐 없는 포근한 손길
네게 기댄
나의 가슴이 기다리는 것은
네겐 부족한 다정한 사랑
그 기다림 끝에
나를 뜨겁게 달구는 손길
9월의 햇살보다 고운
나의 사랑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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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분 좋은 날
박재성
가로등 환한 불빛이
진열장의 불빛과
밀어를 나누면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이
활기를 찾는다
웃음소리와
적당한 술 내음이 묻어나고
거기에 하얀 눈 송이송이
12월의 추위가 움츠러든다
너의 손을 잡고
너의 미소를 바라보는
나의 발걸음이 그렇다
기분 좋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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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그네
박재성
포장된 도로 건
자갈밭 길이건
걷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
한 걸음 옮겨 놔야
비로써
다음 걸음을 뗄 수 있기에
흐르는 시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그 끝에
내가 쉴 수 있는 곳이 있기에
그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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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너의 사랑이 없다면
박재성
시계의 초침이 없다면
나눌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시간은 미련스럽게 흐를 것이다
거미줄에 하루살이가 없다면
어둠 속에서 배고픈 설움은 있지만
아침 이슬에 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햇살 방긋한 날
잔디에 누워
너를 바라보는 내 눈 위로
그림자 만들어 주는
너의 사랑이 없다면
나는
태양을 태워 버릴 것이다
그 추위 속에서
얼음 덩어리가 되더라도
그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로 사라진다 해도
네가
내게서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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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너의 숨결
박재성
너의 숨결을
공기 중에 흘릴 수 없어
가슴에 담아와
긴 밤 조금씩 펼치는 시간
기억 한 점에 묻어 나와
사각진 공간을 흔들면
나의 시간은
네 앞에 머물고
기억 한 점 또 꺼내면
네 미소에 머물고
기억 한 점 또 꺼내면
너의 입맞춤에 머물고
밤새워 꺼내 놓은
방안 가득한 너의 숨결로
질식한다 하여도
행복을 감출 수 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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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눈 내리는 날에는
박재성
하얀 눈을 맞아 보렴
먹빛 호수 위로
바람의 결을 따라
요동치며 휘날리는
하얀 춤사위를 보렴
때로는 멈춘 듯
먼 산 그림자 품고
송이송이 펼쳐지는
포근함에 빠져 보렴
푸드덕
까투리라도 날 양이면
네 가슴에서 솟구치는
환희를 힘껏 외쳐 보렴
하얀 수채화 위에
한 점
네가 되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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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눈의 기억
박재성
둘이 걷다가
게슴츠레 보이는 물체
잡은 손 놓기 싫어
얼굴로 받아보는
하얀 눈꽃 송이
촉촉해지며 눈앞에서
아스라이 사라지는 송이가
잿빛 하늘에서 너풀너풀
군무를 마친 흰나비처럼
발아래 소복소복
겹칠 해지는 하얀 수채화
잡은 손 놓고
손안에 담아보는 눈꽃 송이
하얀 꽃잎 열며 다가오는
미소에 젖어 들면
마음은 어느새 순백의 희열
활화산처럼 터지는
너와 나의 어린 광기가
맑은 샘인 양
펑펑
펼쳐진 눈밭에서
우리의 붉은 사랑마저
꽃으로 피어나면
천년에 새겨질 약속
눈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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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눈이 내리면
박재성
빗장 풀린 하늘에서
뚝뚝 떨굴 수 없는 가벼움이
나풀거린다
머리 위에도
구두 코 위에도
맞잡은 손위에도
사박사박
젊은 눈의 절규에 귀 기울이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을 덮으며
따라오는 어린 눈에 잡히면
그 고요의 설원에서
하얗게 덧칠되는 시간
미소마저 수줍어 숨죽이는
입맞춤은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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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당신 앞에선
박재성
첫마디가
이리도 힘듭니다
가슴이 긴장되어
두근거림이 창을 넘고
얼굴에 붉은 꽃이 핍니다
밤새
생각해 두었던 단어들
하나씩 꺼내야 하는데
수줍어 고개 숙인 체
애틋한 사랑 표시만
눈빛으로 그리다 보면
오늘도
무심한 해가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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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당신 향한 사랑만으로도
박재성
아침 햇살이
잠든 당신 가슴에 살포시 앉으면
쌔근쌔근
생명의 리듬이
자그마한 대지를 들어 올린다
그 끝
선홍빛 유두에서
내 심장의 고동 소리를 안고
미끄러지듯 가라앉는 대지 위로
포근한 햇살 담은 눈빛이 좇아가고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부드러이 입술을 부른다
당신 향한 사랑만으로도
아름다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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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당신과 나의 숙명
박재성
무슨 인연 안고
만나진 것일까요
그저 햇살 아래서 처음 본 사람
그 속에서 벗겨지는 나래
고이 접어 가슴 한켠에 감추고
당신을 바라보다가
수천 년을 날아와
내 심장에 꽂힌
큐피드의 화살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사랑의 맹세
이리될 인연
꼭 이루어져야만 할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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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당신만을 사랑해
박재성
바라보는 눈빛에
나를 맡겨도
편안한 당신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슴을 맡겨도
믿음직한 당신
세월의 변화에도
마음의 결을 찾아
보듬어줄 당신
떨칠 수 없는
사랑으로 다가오는
당신의 바보가 된
나의 속마음
당신만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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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당신을 만난 날
박재성
바람 고운 날
볕뉘를 등에 업고 오는
당신을 보며
내가 아는 아름다움의
최고를 보았고
순간접착제로 붙어버린
망막 위의 뽀얀 수채화를
지니고 살아야 했다
일 년을 백번 보내도
떨어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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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당신을 찾습니다
박재성
아침 햇살 한 줌에
고운 미소 두 줌으로 끓인
아침 차를 건네줄 사람
이고진 짐의
그림자 끄트머리를
들어 줄 사람
메마른 가슴에
따뜻한 눈물 한 방울
떨구어 줄 사람
닫혀진 콩깍지 사이로
밝은 웃음 담고
들어 올 사람
그리고
조건 없는 내 사랑에
행복 해줄 사람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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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당신의 미소
박재성
잃어버린 가슴의 반쪽이
당신 앞에서 두근거릴 때
당신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하나의 가슴은
당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나의 빈 가슴 자리에는
밝은 미소의 당신이 있어
붉은 피를 돌게 합니다
당신의 미소가 사라지면
그 피는 멈출 것입니다
나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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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당신이
박재성
당신이 달이라면
태양도 달입니다
당신이 별이라면
낙엽도 별입니다
당신 이외의 진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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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당신이 없는 겨울 풍경
박재성
삭풍에
잎새 떨군 가지 흔들리는
빈 울음소리가
오소소 소름 돋우고
의지 없는 마음에
열두 치 고드름 주렁거리면
멍한 눈이
먼 산 백설을 녹일 듯
그리움에 무뎌진 눈빛으로
허공을 가른다
그 끝에
당신이 웃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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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짓날 밤에
박재성
여름날엔
꽃잎에 앉아
어둠 줍던 달빛이건만
담장에 올라
까치발로 동동거린다
그런 긴 밤
된서리에 가슴 내밀어도
그리움도 사랑인지라
식을 줄 모르더니
열병 앓듯 지나온 시간에
그리움 안은 달빛이
창가를 떠나가면
달빛 흔적 위로
싸늘한 성에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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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음에 내리는 눈
박재성
눈 송이송이
잿빛 하늘에서
나비련가
사뿐사뿐
하나둘 세다 보면
하얀 최면에 걸린
순백의 마음이
아리아리
볼 위에 내려앉으면
몸을 사르는 하얀 살꽃
뜨끔 사르르
파고들어
새하얗게 채색하는
마음 수채화 한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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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만남
박재성
풀잎과 풀잎에 내리는 이슬
이 만남은 어떤가
이슬이 이슬을 안은 이슬방울
이 만남은 어떤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너
이 만남은 어떤가
우연일까
돌아가는 지구 위에서
바다와 바람
햇살과 시간
장소와 너
그리고 나와의 조화 속에서
하나의 어그러짐이 있으면
만날 수 없는
수천억 중의 하나인 찰나
그 찰나의 연속 선상에서의 존재
그런 만남
그런 인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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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무명초
박재성
너도
존재 이유가 있을 텐데
이름을 모르는 미안함이
늦은 가을날 만나는
초록의 반가움을 앞선다
부슬부슬 밤비에 젖어
가로등 빛 담은 초록 위에
방울방울
가을 청순함이 반짝인다
이맘때쯤 보았던
당신의 눈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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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소
박재성
너의 미소로 인해
내 마음이 행복하기에
너의 미소를 위해
내 마음을 다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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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붉은 노을
박재성
서산에서
내려다보는 눈빛에
내 가슴의
핏방울 하나 떨구면
붉게 퍼지는 노을빛
당신으로 인한
행복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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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랑
박재성
언제부터였을까
알 수 없는 설렘이
두방망이질한다
너를 만나면
아니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긴 밤
잠마저 이루지 못하니
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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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랑 고백
박재성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 가슴은
사랑을 하였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당신만을 생각하는
그 두근거림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열병을 앓아야 했고
그 열로 달구어진
붉은 열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꺼지지 않는 열꽃을
가슴에서 꺼내어
당신 앞에 바칩니다
☆★☆★☆★☆★☆★☆★☆★☆★☆★☆★☆★☆★
《35》
상고대
박재성
고향 가는 길
먼 산 바라보면
울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곱게 말아 올리고
아침 햇살 미소로
어서 오라 하신다
☆★☆★☆★☆★☆★☆★☆★☆★☆★☆★☆★☆★
《36》
서리꽃
박재성
별 하나 찬바람에 진다
별 둘 그리움에 진다
별 셋 눈물에 진다
밤을 새우며 바라보는 하늘
초롱한 눈빛이 내려다본다
소곤소곤
가슴 속 그리움 들려주면
뚝뚝
가지 끝에 떨구는 눈물
이른 아침
하얀 서리꽃으로 피어난
그리움
☆★☆★☆★☆★☆★☆★☆★☆★☆★☆★☆★☆★
《37》
시가 있는 마루
박재성
햇살 좋은 날
마루에 누워
슬금슬금 기어가는
햇살에게서
시 한 편 듣는다
☆★☆★☆★☆★☆★☆★☆★☆★☆★☆★☆★☆★
《38》
아 가을
박재성
가을
네가 오는 것은
내 가슴이 먼저 안다
먹먹하게 넓어지는 공간
그 안에
조그맣게 웅크리는 나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넓어지는 공간의 무게에
가파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통이
가을
너로구나
옛 여인의 추억을
내 가슴이 잊지 못하게
슬며시 건드려 주는 너
아파야지
내가 사랑했던 만큼
☆★☆★☆★☆★☆★☆★☆★☆★☆★☆★☆★☆★
《39》
아름답다
박재성
눈으로 보면
예쁘다
마음으로 보면
아름답다
마음으로 보는 사람도
아름답다
☆★☆★☆★☆★☆★☆★☆★☆★☆★☆★☆★☆★
《40》
어둠 속에서
박재성
또
하루 몫의 번잡함이 지나가면
약속이나 한 듯이
창문으로 어둠이 밀고 들어온다
어둠의 끝자락이 들어오면
덩그렇게 놓여 있는 내가 있다
어둠 속에서 상영되는
옛 추억이 펼쳐지고
짜릿했던 영상이 끝날 무렵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잡으려 손을 휘젓고
멈추려 발을 가위 짓 해도
뭉클거리는 어둠만 헤쳐 모이는
공포의 수직 갱도로
쑤욱
누군가
따듯한 햇살 한 줄로
나를 낚아주길
간절히
간절히 바라며
☆★☆★☆★☆★☆★☆★☆★☆★☆★☆★☆★☆★
《41》
오랜 친구
박재성
이마에 그어진 주름만큼
인연으로 이어져서
그 골 안에 새겨진 이름
꿈틀거리는 주름을 읽으면
내 마음이 읽히기에
감추지 못하는 속마음
하하 호호 걸쭉한 웃음으로
까뒤집는 삶의 희로애락은
함께 젓가락질하는 안주
한잔 술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며
별빛을 헤아리는 너와 나
저 별빛이 마름 하는 날까지
이렇게
마시며 웃자
☆★☆★☆★☆★☆★☆★☆★☆★☆★☆★☆★☆★
《42》
외출
박재성
뒷머리 띵하게 만드는 찬바람
겨울인 게야
가을에 누워
햇살에 뒹구는 낙엽 바라보았는데
겨울은 창밖에 있었던 게야
봄날 기다리는
희망 한 줄 생긴 게야
혹독함이 있기에 바라는 포근함
겨울을 즐기는 힘이
뒷머리에서 꿈틀대는 게야
돌아서 가슴으로 맞아보는 차가움이
톡톡 심장을 건드리면
후끈 달아오르는 붉은 의욕이 좋은
겨울인 게야
하얀 눈을
너와 함께 지르밟고 싶은 게야
☆★☆★☆★☆★☆★☆★☆★☆★☆★☆★☆★☆★
《43》
우리 함께
박재성
쪽빛 하늘을 보며
청명함을 느끼고
붉은 태양을 보며
정열을 속삭이고
하얀 구름을 보며
꿈을 키워가고
노란 은행을 보며
추억을 나눠가는
우리라서
함께라서
가슴 포근한 시간
☆★☆★☆★☆★☆★☆★☆★☆★☆★☆★☆★☆★
《44》
우리가 되어
박재성
네가 자란 세월
내가 자란 세월
세월로는 비슷한데
네가 자란 환경
내가 자란 환경
같을 수 있겠니
부모가 다르고
집이 다르고
꿈이 다른데
생각인들 같겠니
하지만
너는 해에 살지 않고
나는 달에 살지 않고
같은 공기
같은 물을 마시며
지구에 있기에
지금
함께 있는 것이 아니겠니
우리가 되어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섞어서
우리의 이야기 엮어가며
오손도손
우당탕탕
알콩달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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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별 후에
박재성
창밖의 어둠을 지나는 바람이
점 점 점으로 흐른다
가슴을 억누르는 먹먹함이
시간을 나누고 있는지
희열의 순간들이
점 점 점 사이에서 번득이면
떨칠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이
점과 점과 점 사이를 벌려 놓고는
눈물을 채워 보낸다
바람결이 길다
이밤을 온통 아파해도
모자란 듯
천천히 천천히 울며 간다
☆★☆★☆★☆★☆★☆★☆★☆★☆★☆★☆★☆★
《46》
처음이었지
박재성
처음이었지
너의 눈빛이 반짝일 때마다
너의 눈동자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처음이었지
너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내 가슴의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처음이었지
너의 손끝이 어쩌다 스칠 때면
온몸에 전율 되는 짜릿함에
황홀해지는 것은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 것도
처음이었지
☆★☆★☆★☆★☆★☆★☆★☆★☆★☆★☆★☆★
《47》
첫눈 내리는 날
박재성
기다림이 있어서인가
바람 없는 골목에
눈부심으로 내리는 눈
손부끄러워
입 벌리고 맞았던 시절
한 송이 두 송이
긴 눈썹 위에 쌓이면
붉은 볼 위에서 망울지던 날
눈의 요정처럼
팔 벌려 하늘을 품고는
네게 열어둔 가슴 안으로
날아들던 열셋 순정
눈에 젖은 날개가 마르기 전에
가슴을 닫고 품었어야 할
첫사랑인데
순수함만큼이나 서툴렀던
풋사랑으로
날개 마르고 남은 물방울만
가슴에 남기고 날아갔지
또 눈 내리는 날에
눈을 들어서
내리는 눈 반기다
가슴에 남은 물방울이
눈으로 흐를 것 같은
하얀 날
☆★☆★☆★☆★☆★☆★☆★☆★☆★☆★☆★☆★
《48》
촛불
박재성
초
너의 이름으로
어둠을 밝히려니
빛을 다오
뜨거운 불로
네게 다가가면
너는 몸을 녹이는 희생을
감수한다지만
심지가 없다면
한낮 불장난인 것을
내가
심지가 되어 주련다
어둠을 밝힐 수만 있다면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내 몸 사르련다
그 불빛으로
당신 모습 밝힐 수 있다면
☆★☆★☆★☆★☆★☆★☆★☆★☆★☆★☆★☆★
《49》
하얀 그리움을
박재성
어둠 속에서
하늘 병정 수천만이
대지를 점령하려 한다
치열한 전투에서
전의를 잃은 대지 위로
하늘 병정이 내려와
도열을 한다
소복소복
누가 올 것인가
승전의 도열 위로
골목길 가로등 아래
뽀드득뽀드득
정적을 깨우는 발소리가
그리움을 영접하러 간다
지난겨울의 하얀 그리움을
☆★☆★☆★☆★☆★☆★☆★☆★☆★☆★☆★☆★
《50》
햇살 좋은 날에는
박재성
눈을 감고
태양을 바라봅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듯
따사로이 온몸을 감싸주는
당신의 체온을 느껴봅니다
해맑은 미소로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을 느껴봅니다
파르라니 눈꺼풀 위를 지나는
당신의 손길을 느껴봅니다
눈을 뜨면
사라질까 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
《51》
겨울 앓이
박재성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파야 한다고 했던 저주가
둘 사이의 장벽으로 남은 것일까
항상 그만큼의 거리에서
세월의 담만 켜켜이 쌓고 있다
망각은 인간의 의무라 했는데
나의 불성실한 의무는
자존심에 짓밟히고 있다
하얀 겨울
눈 속에 묻힌 낙엽인 양
제 살 얼려가고 있다
끙끙
겨울 앓이가 그리움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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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도세상김용호님 안녕하세요.
박재성 시 모음 51편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시모음 즐감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