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지난지 몇년 후, 1922년 6월 21일, 구 시대의 귀족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내무 인민 위원회로부터 앞으로 평생동안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 후 그는 32년간 호텔에 연금 상태로 지내며 그동안의 유혹적인 귀족 생활에서 벗어나 영어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호텔 룸, 식당, 찻집, 와인 라운지, 이발소, 식품 저장 창고, 수선실, 로비등을 오가는 것만이 삶의 전체 공간이 되었다.
한 때, 그는 자살 시도를 할만큼 삶의 의미를 잃었지만 곧, 절망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상상과 깊은 감수성으로 새로운 행복을 개척해 나간다. 마침내, 호텔은 그의 집이자 직장, 고향, 모스크바, 러시아 전체,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는 '소우주'가 된다:
'이른 봄, 호텔 옥상의 벌통에서 채집한 한 스푼 벌꿀의 달콤함 속에서 저 멀리 그의 고향인 '니즈니노브고로드'지방의 햇빛과 , 황금색 즐거움, 사과나무 숲의 또렷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것들은 영속하지 않는 법이다.혁명은 과거의 소외층이 주류가 되는 권력 이동을 의미한다. 황제와 귀족 ,교회 그리고 그들의 유산은 적폐대상으로, 몰락하고 새로운 플로레타리아 혁명의 주체들이, 볼셰비키, 스탈린, 후루시쵸프의 순서로 권력을 계승한다.
새로운 사상은 새로운 제도와 방식,가치관, 화려함을 등장시키고, 예술과 문학의 모티브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어느날, 호텔에서 파는 모든 와인의 라벨을 제거하고 레드, 화이트의 구별없이 단일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결정이 내려진다. 이유는 와인의 차별화는 귀족적이고 퇴폐적이며 약탈적이라는 것이다.
한 병의 와인은 생산지의 기후, 풍토,샛깔, 맛, 향, 강우량 등의 최종 추출물이자 개성 그 자체임을 무시한 결정이었다. 기존의 일상화 되고 고정된 소소한 생각과 방식, 도덕, 행동까지도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고, 사상의 선명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선악의 뚜렷한 잣대에 의해 통제와 감시를 한다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경직화되고 비 인간화된다. 그리고 정치적 특권층이 서서히 부패하는 등 새로운 적폐와 모순을 만드는 것이 통상,우리 인간의 한계다.
역사는 다른 이념을 가진 계층 간 투쟁의 되풀이며, 늘, 주관적인 선 악으로 이분화되어 불안정한 평형 상태를 유지해 왔다. 백작은 이와 같은 역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새로운 위치를 자각한다.
백작은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학창 시절의 친구(미시카)가 그의 문학적 순수의 양심에 따라, 오직 이념적인 잣대에 근거하여 기존의 러시아 문학을 수정하고 재단하려는 당국과 싸우다가 결국, 시베리아 유형 후, 죄수처럼 통제되며 몰락해 가는 과정을 목도한다,
그리고,호텔에서 처음 사귄 친구이자 티 없이 맑고 영리한 어린 소녀 니나, 그녀의 이상적인 사회국가를 향한 순수한 열정역시 역설적인 체제의 비순수성에 의해 희생양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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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철학을 선택해야 한다. 친구들의 몰락과 라벨 사건은 백작에게 새로운 철학의 선택을 강요한다. 그는 귀족에서 웨이터 출신의 총지배인 밑에서 일하는 웨이터 주임으로의 변화를 기꺼이 수용한다.
그것은 '역경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이 때,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는 부모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백작은 만나는 사람 수도 많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몹시, 제한된 환경이었지만, 통제되지 않는 자기 만의 자유로운 공간을 잃지 않았다. 그의 해박한 지식은 와인, 음식, 호텔 운영, 별자리, 유럽 전반의 정치, 문화, 문학, 역사, 철학, 음악 영화를 망라했다.
그는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로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즉, 니나, 그녀가 남기고 떠난 딸 소피야, 여배우 안나 우르바노바 ,웨이터,주방장, 지배인, 이발사, 수선사 ,옛 친구 미시카, 악단 지휘자 그리고 소련 공산당 고위 관료인 오시프 등을 모두 자기 편으로 만든다.
니나가 남긴 딸, 소피야와의 부녀 관계는 백작의 인생에서 새로 주어진 소명이었다. 그는, 호텔, 국가 만찬장 준비를 하며 공산당의 인위적이고 반 자연적인 위계조직 (권력 서열)을 파악한다. 특히, 미국인 대령(리차드)과의 만남으로 자신과 소피야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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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그의 친구가 말했듯이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였다. 여배우와의 비밀스런 사랑, 니나 등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인간관계(인간애),사소함과 편리함 속에서의 행복 추구,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가들(체호프,톨스토이. 푸시킨, 차이콥스키 등)에 대한, 자부심과 소양, 그리고 신사다운 양심은 지배 당하지 않는 자존감의 기둥었다.
그는 끝까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역경 속에서.절망을 희망과 행복으로, 구속을 자유로, 비천함을 교양과 품격으로, 유물적 사고를 유심적 사고로 인도하며,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아무리 험난하고 기나긴 역경에 처한다고 해도 그 영혼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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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이상, 줄거리와 간단한 독후감입니다.
뉴욕 타임스, 58주 베스트 셀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추천 도서
하이네 (m choi)
첫댓글 그 소설의 핵심을 아주 잘 요약해 보여준 민성형의 능력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난 그저 재미있게 있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신간을 많이 읽고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munro형도 읽어 보셨군요! 늘 과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치매 예방차원에서 약간의 독서는 하고
있습니다만..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